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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이야기/농업정책

이 땅에는 농업에 대한 악의가 존재한다(김현인, 디지털말)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1.

 
이 땅에는 농업에 대한 악의가 존재한다
버림받은 쌀 (1)

 

<디지털말> 김현인 arhatkim@kornet.net


 

   
▲ 어느 수몰예정지의 폐정미소

 
누까의 힘

 쌀겨를 농촌에서는 흔히 누까라고들 한다.   점잔을 빼는 축들은 미강(米糠)이라기도 하지만, 쌀겨라 부르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듯 거의 반드시 누까로 고쳐 불러주기까지 한다.  거기엔 농사일에 단련되어온 자신의 경력에 대한 권위가 묻어있다.  그 세계의 기분으로 그것은 일종의 전문용어인 것이어서 근자에 귀농한 도시출신의 멋모르는 신출내기들이나 쌀겨라 부르는 것이었니, 쌀겨를 누까로 고쳐주는 것에는 부질없는 것으로 흠 잡히지 말라는 배려가 묻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난 일제 강점기의 잔재임은 아무도 개의하지 않는다.  누까는 겨 강(糠)의 누까(ぬか)이며 그 시절의 누까는 정미소에서나 나오는 것이었다.  주조장과 함께 농촌의 바닥사회를 주름잡던 양대 권력의 한 축이었던 정미소, 누까는 이 권부의 상용어였고, 이를 마다함으로써 일제에 빌붙어 사는 반역적인 그것들이 천하가 제 것인 양 거만을 떨며 하대와 멸시의 구실을 찾아대는 것에 순순히 맞장구쳐 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라도 사람이 서울 가면 서울말로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건설현장에서 노가다, 데모도 등의 것이 숙련과 전문의 배타적 징표로 치장되듯, 쓴다고 해서 득되는 것은 없으면서 쓰지 않으면 곧바로 흠이 되는 것이라, 기존의 세력관계가 상당부분 온존되어 여전히 멸시받고 늘 궁핍했던 그 바닥에서 쌀겨는 해방 60주년 운운되는 지금까지 여전히 누까로 남아 있다.
  
올봄 그 '누까'값이 70% 이상 뛰었고 그나마도 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쌀 도정의 부산물로 연간 40만톤 정도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안정된 시장경향을 고려한다면 여기엔 필시 모종의 힘을 가진 자들이 벌인 음모 냄새가 있었다.  그러나 업계의 발뺌은 지극히 태연했다.  쌀이 팔리지 않으니 방아를 찧을 수가 없고, 게다가 올여름 수입쌀이 시장에 풀리면 쌀값이 얼마나 떨어질지 모르는 판인데 비싼 값을 주고 지금 벼를 사놓을 일도 아니지 않는가.  당국이 그들의 담합 여부를 조사하지 않은 것을 보면 쌀겨값의 폭등은 공급부족으로 인한 시장의 매정한 자연현상이라 치부해야 할 게고, 결국 쌀겨를 논에 뿌려 독한 제초제를 사용치 않으려던 농민들만 '누까'를 찾아 정미소를 돌아다니며 업자들의 풋풋한 주머니를 애써 채워주고 말았을 뿐이다.  
  밥맛을 잊어가는 '국민'의 뜻이라는데 대대로 힘없고 '빽'없던 농민들에게 무슨 수가 있었으랴.  제초제라도 덜 쓰면 수입쌀이 들어오고 추곡수매마저 없어져 버린 현실의 쓴 맛이 덜어질까 했던 것이 가랑비 피하려다 소나기 만난 냥, 파는 것은 고사하고 빚낸 돈으로 군말없이 비싼 '누까'부터 사야 하는 날벼락 치레는 쌀협상 이후의 21세기 새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부에서는 무슨 대책이다 지원이다 하면서 받아만 먹는 게 버릇되어 '경쟁력'을 잃어 버렸다고 힐난하지만, 그들은 대우 한번 받아본 적도 없고 뻐기며 큰 소리칠 것도 없이 살아왔으니, 세상의 묘한 일이라면 묘한 일이다. 

 안락사의 부고장 

-  '종합대책'
   농촌에 대한 포위는 역사상의 어떤 전투에서보다 '종합적'으로 완벽하다.  한때 절반 이상을 웃돌던 농업인구비율은 7%대로 떨어져 버렸고 그나마 절반 이상이 60대를 넘어섰으며 30대 미만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통계는 지난 10년동안에서만 매년 21만 명 내외가 농촌에서 사라졌으며, 이는 우리나라 연간 사망자수의 80%에 상당하는 것으로 향후 10년내로 현재 인구의 40%가 소멸죌 것으로 예측한다.  이것은 농촌이 이미 자연도태의 마지막 지점에 와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50대가 50대 이하를 통튼 수보다 많고 60 이상의 계층이 그 50대의 2배를 웃돌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직업이동이 불가능한 50대 이상이 4/5인 상태에서 이들이 장차 내게될 부고장은 액면 그대로 우리 농업의 부고장이 되고 말 일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당국이 쌀협상 등의 DDA에 대응한다고 내놓은 119조 원 규모의 '농업·농촌 종합대책'이라는 것은 2013년까지 매년 4,500명의 인력충원을 '유도'한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국은 '규모화'라는 것을 통하여 농업을 시장지향적 구조로 유도함으로써 농촌사회의 안정성과 식량수급의 기본요구에 대응할 수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6 헥타라는 '규모화'의 정책목표 달성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수 천 헥타 이상의 국제 기업농을 상대해야 하는 WTO체제 하에서 그 정도 규모의 경제적 의의는 전혀 무력한 것임이 이미 논증되어 있다.   이것은 곧 기존 농민층의 퇴출과 동시에 이른바 새로운 '성장동력' 모두의 괴멸로 이어질 것임을 산술적으로 예시한다.  농부 없는 농촌, 이것이 우리가 맞이할 세상에 대한 정부의 청사진인 것인가.  그렇다면  '대책'이 완결될 때 이미 4%대로 떨어져 있을 농민사회에 대하여 그 감소인구의 2, 3%만을 보전하겠다면서도 거기에 119조 원이라는 거액을 동원한다는 정책의 본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친환경'의 절벽  
  지금 농촌에서는 '친환경농업'이라는 것이 한창이다.  관내 논에 잡초가 있다고 목이 달아나곤 했던 군부독재 시절처럼 군수며 면장이며는 바지런히 논둑 밭둑을 돌아다니고, '친환경 지역'마다 김매는 소동에 하루 해가 휜다.  작년, '대책'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정책 슬로건 아래 10%의 '친환경' 농산물 육성을 목표로 내세운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의 구현수단은 화학비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고 대신 최대 150만 톤의 유기질 비료 공급을 지원한다는 것에 그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수준에서 몇 가지 '친환경' 농자재를 보조해주는 것이 덧붙여질 뿐이다. 
  친환경'의  농업은 출발점에서부터 사회적 목표로서 제안되고 추동하려는 면모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런 류의 농업이 경작지의 생화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퇴비 등의 수단으로 물리적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관건임은 국책 연구기관을 통해서도 이미 충분히 '보고'되어 있다.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기반의 문제인 사안에 대하여, 그것도 불량제조의 사회적 관행이 개선될 조짐도 없는 유기질 비료를 대안으로 삼았다는 데서 '정책'으로서의 '대책'이 제안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졍책'인 바에는 그 갭은 모조리 누군가의 짐이 된다.  힘없는 농촌사회야말로 그러하며, 이는 개인사의 향방을 바꿀 만한 것이다.  농약과 비료라는 어제의 손발은 자고나니 적이 되어 있고 새로운 지팡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물길이려니 하고 탔다가 갇혀 버린 웅덩이 한쪽의 썪은 낙엽처럼, 선택은 강요되고 결과는 지금의 농촌 모습으로 쌓여 왔었다. 

   이 나라의 농촌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만큼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없다.  군부독재 시대, 링컨의 '노예해방'의 그것처럼 이농(移農)은 정경유착된 재벌들에게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에 일정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 결과 생때같은 자식들을 공돌이, 공순이로 넘겨주고, 그 놈들이 모아준 푼돈으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면서 그들의 빈 자리를 농약과 비료로 메우지 않았던가.  손이 없으니 제초제는 필수이고, 소출 많은 종자만 강요하는 판에 비료와 농약이 없어선 안 되었다.  이렇게 산 것이 30년이 넘었는데, 그 간에 전체 경지면적도 20%가 줄어들었다 하나 일손은 절반을 훨씬 더 넘게 빠져나가 버렸으니, 날로 쌓이는 일의 고됨은 한쪽으로는 몸을 병들이고 늙혀 주저앉혔고 다른 쪽으로는 농약과 농기계의 빚더미가 되어 인생의 윤기를 말려 버렸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프로파간다하던 때 그랬던 것처럼, 30년이 지난 지금 '친환경'의 회오리는 아연 우리 들녘을 겁박한다.  그 시절, 댈 돈이 없다고 하여 초가지붕을 안고 있을 수 있었던가.  세상은 좋아지고 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듯이, 모든 것은 전진을 가장하며 집요하게 강요되었다.  그리고 한때 희망을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엔 그때의 헛된 희망마저 없다.  천근만근의 늙은 몸뚱이를 끌면서 오리를 좇고 우렁이를 단속하며 김을 멘다고 푸른 들에 점점이 박힌 모양새가 이 시대의 오점인 냥 또다른 비애를 보여준다.
  농약은 뿌리면 병충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비료는 한가한 나들이같은 몇 줌으로도 곡식을 여물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농약과 비료를 능사로 삼으라던 시절 1,300만 명이 짓던 농사를 그 1/4 정도의 숫자로, 농약 비료없이 온 나라가 나서서 농사 짓던 때처럼 돌봐야만 한다.  불가능의 신화가 가끔은 성공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야흐로 그들은 독약이나 발라 내놓는 파렴치한이 되어 힘없는 몸에 더하여 부끄럽게 살아가야 하리라.
  그 '친환경'이 거두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벌이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책'은 산지 공동마케팅 조직체 200개를 만들어 이를 중심으로 시장지향적 역량을 구축함으로써 정책의 완성도를 확보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기농의 브랜드가 세계시장에 나와 있는 상황에서 '친환경'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저농약'이라는 야릇한 편법은 무슨 체면으로 시장에 얼굴을 내밀 것인가.  '대책'은 저농약을 거쳐 무농약, 유기농의 단계로 나아가겠다고 하지만, 거기엔 긴세월의 인내와 희생의 각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외나무 다리의 원수보다 귀한 것이 농촌의 현금수입인 판에 몇 푼의'친환경 보조금'도 나오고 농사가 '돈벌이'까지 될 수 있다 하여 시작한 것이 태반인 현실에서 어떤 의지를 찾아내, 무엇으로 그것을 이룰 것인지, 다음 말은 아무 것도 없다.
  안전성과 가격의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이 사회의 시장심리가 저간의 실정이 이러함을 놓칠 리도 없다.  돈과 영예를 도외시하고 살아온 0.2% 미만의 유기농 농가들에게조차 시장의 이러한 등살은 지난 20여 년간 한숨과 비애의 긴 터널이었었다.  과연 최근의 농촌진흥청 조사에 의하면 '친환경' 농산물을 신뢰하는 도시 소비자는 1/3 미만이었고, 나아가 가격에 따라서는 80% 이상이 외국산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할 것임을 추계하고 있다. 

  비관적인 징후는 훨씬 집요하게 현실로 나타나는 법이다.  올 상반기에만 이미 저농약의 '친환경'이 아닌 유기농의 외국산 농산물 수입은 전년 대비 300% 이상 급증했다.  이것은 DDA 협상의 비준문제가 처리되어 외국 농산물이 동네 구멍가게에도 나타나게될 세상에 대한 야심찬 전주곡이다.  이땅에 외국 것이라면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거리낌없이 사들이면서 내 나라 것엔 내가 직접 보지 않은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풍토가 상존함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이런 마당에 이미 흠집을 안고 있는 '친환경'을 가지고 산지 마케팅조직이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상 그래 왔듯 피켓이나 들고 왔다갔다 하다가 말 자기들 끼리의 공염불 잔치가 되고 말 지 모를 일이다.  우리 또한 '우리 농산물을 애용합시다'식의 흘러간 옛 노래같은 구호를 보며 잠시 먼 추억이나 애상하게 될 것이고.
   
▲ 오리농법논

  겨우 운이나 뗀 시점인 올해, '친환경'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인 충남 홍성에선 팔지 못한 '친환경' 쌀이 8, 90%에 이르는 현상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면적을 늘이려는 당국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이탈을 외치는 볼멘 소리가 공공연하다.  그러나 어디로 갈 것인가.  거기엔 빚내어 뿌려놓는 농약의 햐얀 연무가 인생의 먹구름이 되어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돈은 돈대로 안 되면서, 받아먹은 보조금 돈 때문에 땀투성이 한낮에는 육신의 허리가 휘고 영농기록장을 써내느라 밤새 인생의 허리가 휘는 오늘의 농촌현실은 애타게 암담한 절벽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메아리는 언제나 공허한 것, 잘못의 탓은 필경 막다른 길로 들어선 자 자신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 강요된 치욕
 '친환경'은 수입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요구를 '품질로 승부하라'며 농민사회 내부문제로 돌린 정부의 으름장을 상기시켜준다.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 순환농업 등 익히 유포되어 있고 보다 본질적이기도 한 용어를 놔두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태어 '환경'도 아닌 '친환경'이라 이름붙인 데는 그들대로의 까닭이 있으리라.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친환경'은 일견 농촌사회에 대한 도덕적 위압이 되고 있으며, 이는 농촌에 대한 포위망이 완성되었음을 통고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포위는 공격을 위한 것, 그것이 도덕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 깃발을 들고...
  농촌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미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하여 어딘가의 집요한 승자를 위하여 도덕적 패배라는 치욕까지 최후로서 치뤄줘야만 할 듯하다.  세상은 어느 틈에 말만으로 먹고 살아가는 '친환경'의 홍위병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베어내는 것만이 능사인 무자비한 칼날로 무장한 채, 자기만은 좋은 것을 먹고 입고 쓰겠다는 '웰빙'의 대리인이 되기도 하고, 이미 자기 먹을 것은 챙겨놓고 보전 운운하며 기층민의 삶에 대해 원론적인 태클을 일삼는 환경론자들의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자들의 태반은 '환경'에 위해를 가해온 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과거사'에 대해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미래'의 청사진이라는 것을 그려대며 그들의 가치를 부풀린다.  그리하여 그들이 드는 것은 언제나 그러하듯 건설의 삽이 아니라 삽을 부릴 '원칙'의 채찍이다. 
  삽을 든 농민들 앞엔 그 채찍만 있다.  더구나 비료 농약의 피해를 최일선에서 겪어온 농민들인지라 '친환경'의 의의에 대하여 누구도 삿대를 걸 수는 없다.  그렇다고 퇴비를 만들 힘도, 손도, 돈도 그들에겐 없으며, 유기질 비료 몇 포로 짓는 농사가 온전할 수도 없는 것이라 농약과 비료를 결국 접어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구에 보조라는 것마저 사라지고 나면 이미 곱절 가까이 올라 버린 비료값을 포함하여 그 감당은 무엇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벌이는 먼지처럼 바닥에 부서지고, '친환경'의 채찍질을 피하려고 늙고 병든 몸을 속절없는 푸른 들로 내몰아 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의 밑바닥을 파먹는 일만 이어질 뿐이다. 
  구원군은 없다.  그들 스스로 가망없는 이 바닥에 눈물짓는 자들을 애써 돌려보내버렸으며, 이제까지 농업과 농민을 위한다고 큰소리치던 자들 또한 하루아침에 그 입을 닦아버렸다.  그리고 다른 입인 양 홍위병처럼 목소리를 드높인다.  비료와 농약은 안된다, 따라서 그런 농사도, 그런 농민도 안된다.  부모형제를 농촌에 둔 이들조차 고개를 끄덕여야 될 일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거만한 다둑거림은 거기서 금과옥조가 되어 빛을 발할 것이다.  세계화의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력은 생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농촌에서 그 죽음은 직업의 죽음을 넘어서 육신의 죽음으로 직결된다.  우리는 노인이 죽는 것을 젊음 등속의 '경쟁력'이 없어서 죽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옮겨갈 곳도 없이 아직까지도 노동에 얽매어 있는 이 땅의 늙은 농부들은 경쟁력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  농부의 죽음은 은유가 아니다.  벌이 잃은 늙은 몸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돈이 없어 굶어서 죽고, '친환경'이 못 되어 부끄러워 죽고, 평생을 뼈빠진 인생이 비참해서 죽을 일일 것이다.  농촌에 대한 포위의 대단원은 이렇게도 그려진다.

-   악의의 안락사
  쌀협상은 종결될 즈음, 기다렸다는 듯이 '농업 농촌 종합대책'은 발표되었다.  그러나, 5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하고 세밀한 그 계획서 어디에도 농가 세대주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우리 농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50대 이상의 농민에 대한 설계는 없다.  다만, 이른바 고령농이 '영농 은퇴를 희망'할 경우 경영이양 직불금이라는 것을 최대 8년간 ha당 월 24만 원씩 '대폭' 인상 지급한다는 점잖은 축출계획이 있을 뿐이다. 
   
▲ 노년의 정처

  '대책'은 인력확보의 중심을 기존농에서 젊은 신규 창업농 위주로 전환한다고 둘러대고 있지만, 해마다 40세 이하의 젊은 층 자체만도 2만 가구 이상 농촌을 떠나고 있는 현실을 앞에 놓고 4,500명씩 충원한다는 것이 무슨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 허깨비같은 '친환경'의 '경쟁력'을 가지고 무슨 수로 그나마의 숫자라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의 어디에도 젊은 대열이 농촌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는 징후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일제 강점기 가족과 재산을 묻어두고 엄동의 만주땅으로 무장항쟁을 떠난 이들보다 더 가혹한 결단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이 뚜렷한 당시에도 그이들은 전체의 0.5%에 불과했었다.
  결국 '대책'에서 남는 것은 농민의 숫자도, 경지면적도 줄이겠다는 것뿐이다.  그로 하여 득을 보는 축이 이 사회의 어디엔가 있을 것이나, 우리의 밥상에 쌀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던 것이 겨우 지난 20년간에 불과했고 그 주역이 지금엔 늙고 병든 빚쟁이 늙은이가 되어 있음을 상기하면 우리의 '대책'은 너무나 무정하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농업, 잘 사는 농민, 살고 싶은 농촌,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운운 하며 119조 원이라는 포장을 내놓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었다.  새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마당에 그들이 포함된 모든 것은 1,20 년만 지나면 다 사라질 것들이며, 이미 그들은 조용하지 않는가.  그래서 대통령은 농림부 장관을 교체하면서 '쌀협상을 하고 나면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하면서 조롱하듯 미소지을 수 있었고, 쌀협상에 대한 국회비준 또한 농민들의 일부 항변을 조연으로 삼으면서 민주 국회의 의사봉 두드릴 버라이어티 쇼를 준비할 수 있다.
  농가의 2/3 이상은 천만 원 미만의 조수익으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지구를 몇 바퀴 돌 만한 그들의 수 십만 km 논둑은 물 한 방울 새지 않게 간수되며, 몇 푼 나오지도 않을 뙈기밭을 메는데 염천의 뙤약볕을 마다 하지 않는다.  돈 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래 도덕의 한 원천을 이루는 이 사회의 특별한 곳이 거기 있다. 
 
'대책'은 그러한 그곳을 하루라도 빨리 없애려는 듯 풋내기처럼 서둘러보인다.  '대책'의 비전은 쿠바의 경우처럼 온 나라를 유기농의 터전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도, 그것으로 식료와 보건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려는 것도, 그리하여 도시가정에서도 크고 작은 농사를 지으면서 모든 것을 재활용, 순환시키는 사회체계를 만들 계획으로 나선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대책'은 농촌에서 이미 집요해져 있다.  유기축산의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기존 축분의 사용을 힐난하고, 제초제를 뿌린 곳만큼 말끔하지 않으면 연일 김맬 것을 재촉해대며, 교육이다 점검이다 하면서 수시로 불러내는 위세는 70년대의 새마을운동 수준을 방불한다. 
   
  공과에 대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의 새마을운동은 우리 문화의 토착적 강점을 뿌리째 도려내고 막대한 부채를 농가에 안겨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우리 시대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어 있다. 새마을운동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에 관한 의혹처럼, '친환경'을 주안점으로 하는 '대책'의 승부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NGO도 아닌 제도권 선상에서 농민만이 유일하게 환경의 부채를 송두리채 떠안은 채 희망없는 노역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태반은 환갑이 넘은 노인네들이다.  노인에게 '친환경'이라는 도덕의 잣대를 내미는 사회에서, 그들은 속절없이 푸르기만 한 들에 갇혀 말을 잃고 있다.  인도주의의 팻말 아래 안락사 당하는 자가 말이 없듯. 
  경쟁력 없는 것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쟁력의 출발점은 '친환경'이어야 한다 - 우리의 '대책'이 이렇게 외칠 때 그들에게는 어떠한 말도 내놓을 명분이 없다.  농민들은 들을 떠날 수 있는 능력을 잃었고, 들에는 '노동만이 자유를 준다'는 아우슈비츠의 구호처럼 '친환경'이라는 생소한 노역의 창구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이러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 푸른 들을 떠도는 이 시대의 잠언은 보는 자에게 슬픔을 주며, 그들의 침묵은 이제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늙은 농부들을 괴롭혀 이미 바닥을 보이는 그들의 수명을 마저 없애려는 것에 119조를 쏟아붓겠다는 것이 '농업 농촌 종합대책'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악의라 불러 마땅하다.  안락사는 지켜보는 자에게만 안락한 것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보지 않게 될 것이 그들의 목숨만인지, 또한 저들이 거기서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계속)

 
2005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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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농업에 대한 악의가 존재한다
버림받은 쌀 (2)

 

<디지털말> 김현인 arhatkim@kornet.net


 

우리가 눈과 귀를 막고 사는 범벅꾸러기는 아니다.  우리들은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충분히 많이 알고 있다.  고엽제 피해를 일으켰던 다이옥신이 쓰레기 소각과정에서도 발생되며, 수입밀과 옥수수 등이 두달이 넘는 운송과정에 엄청난 농약으로 훈증되어 들어오고, 음식 담을 플라스틱 용기의 재질이 PP인지 PE인지를 가려 살 줄도 안다.  또한 우리들은 잘못의 뿌리를 캐가며 성명서도 내놓고 관청을 항의방문하며 1인 시위까지 할 줄도 아는 행동력의 소유자들이다.  이처럼 지성의 밀도가 어느 때보다 높은 이 사회에서 구태의연한 우리 쌀이 '지성'의 메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식료의 양과 종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유목민들의 생활처럼 집 밖을 떠도는 시간이 더 많게 된 상황에서 농경정착생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밥 중심의 식사형태는 시의를 잃었다.  뿐만 아니라 식사만 가지고서는 내 몸의 일상이 부닺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함은 날이 갈수록 여실히 드러나 왔다.  때문에 그것을 메꾸기 위해 우리들은 현미효소, 율무효소, 영지버섯, 동충하초, 매실, 오가피, 둥글레, 홍화씨, 클로레라, 알로에, 쇠뜨기, 현미식초, 헛개나무, 녹차 등등의 것을 전화(戰禍)를 피해 유랑하는 피난민 대열처럼 끝이 없이 찾아내 가야 했다.  오늘날의 밥은 비단 배를 채워주는 것일 뿐이니, 그러함으로 친다면 밥이 아니고도 편의적절한 것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럼에도 '쌀은 생명이다'며 쌀에 대한 맹신적 복종을 주장하는 것은 딱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농약 사용량은 OECD 평균의 6.5배이며, 전세계 146개국 중 4번째로 사용빈도가 높은 나라이다.  그것은 화학비료 등과 더불어서 이 띵을 환경오염 부하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로 만들어 놓는다.  우리는 중국산 농수산물의 오염사건에 경악하지만, 논에 뿌려지는 농약은 그들의 13배에 이른다.  그것이 일본의 1/6밖에 안된다고 위안하려 해도, 환경에 대한 지속적 이용능력을 따지는 환경지속성지수에서 122위에 머무르는 나라가 30위의 나라를 걸고 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우리 쌀에 대해 미련을 가질 명분은 바닥에서부터 흔들려버린다.   이러한 우리들을 누군가가 부추기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부추김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 우리의 '지성'은 쌀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비싼 유기농산물에 손이 갈 수 없는 바엔 그나마 맛이라도 나은 것을 골라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러나 하루 500원도 안되는 쌀값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파국은 확연해진다.  비옥한 땅을 배경으로 병이 생겨나기 어려운 건조한 날씨와 강한 햇빛 속에서 자란 미국과 호주의 쌀이 현지에서 우리 쌀값의 1/8밖에 안되는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고, 영하 3.40도의 혹한기를 거치는 만주의 광대한 충적토는 유기농에 준하는 쌀을 그보다 낮은 값으로 생산해낸다고 했다.  심지어 머나먼 이집트마저도 우리보다 낮은 값으로 집 앞에 도착시켜준다는데, 이 나라의 농민들은 농약 비료라도 어떻게 해보겠다는 언질도 없이 수입개방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신문과 방송엔 외국 유기농업 현장에 대한 르뽀와 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그 나라 농민들이 얼마나 낙천적이며 신념있게 농사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곤 했다.  그들이 '쌀은 생명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어도 그들의 생활 자체가 생명의 진지함에 감명받으며 사는 모습이었고,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고성만 지르는 이 땅 농민들의 '철밥통'을 떠올리며 농사란 저와 같은 성스러운 것이었지, 부러워하곤 했었다. 
  우리의 동경은 부역(附逆에 가까웠다.  미국의 10배, 호주의 20배가 넘는 땅값과 엄청나게 폭리를 취하는 농기계와 농자재들 때문에 생산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민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값비싼 조건에서 시비 걸지 않고 잘 살고 있고, 우리 농업이 붕괴되고 나면 수출상들이 엄청난 폭리를 요구할 것이라 위협하는 것 또한 수급이 약간만 어긋나도 그것을 빌미하여 두 배, 세 배의 폭등이 다반사였음을 생각하면 이 사회에서 새롭다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수입개방이 아니라도 농민 스스로 농촌을 버리고 떠나고 있기는 마찬가지지 않는가.  이러함들은 외국농산물이 우리의 시장을 석권한다 해서 사회의 대강이 달라질 것이 없음을 말해줄 뿐이다. 
특히 생산이력제 도입이 세계적 추세임을 감안한다면 재배과정을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따르는 불안은 저으기 안정될 것이고, 유기농산물도 값싼 외국산을 통하여 보다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이니 우리 삶의 여건은 오히려 나아질 수 있다고 할 만도 하다.  우리의 동경은 이처럼 합리적인 것이고, 그러나 을사 5적의 변명도 이처럼 완벽하진 못했다.

 버림받은 쌀, 나을 수 없는 상처
 
소비감소라는 사회적 결론은 철퇴가 되어  우리의 쌀 앞에 서있다.  아직 80kg 대를 서성이고 있는 소비량이 일본이나 대만처럼 60kg, 50kg 대로 주저앉는 것은 10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2003년에 이미 쌀시장을 개방한 바가 있는 대만이 시장의 상위 38%를 수입쌀에게 자리를 내준 사례까지를 감안한다면, 10년 후 우리 쌀의 입지가 지금의 1/3 이하로 축소되어 있을 수 있음을 예시한다.  오늘날에 10년이라면 거의 예측 불가능한 먼 미래라 할 만한데, 쌀의 앞날은 불행히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누구에게나 훤히 내다보인다.  이는 다름아닌 우리가 주식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의 일이며, 역사는 또힌 주식을 바꿔 성공한 문화가 한번도 없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쌀의 퇴출은 농약오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이 값이 비싸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먹으면 병에 걸리게 된다는 모함마저 당당히 그 얼굴을 팔고 다닌다.  무정한 이 사회에서 명예로운 퇴출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쌀처럼 일체의 여지가 박탈된 채, 도망갈 곳을 보면서 몰아간다는 쥐만도 못하게 치부되는 경우는 없었다.  불명예를 무릅쓰고 살아갈 수는 있을 일이나, 그것이 사람이 아닌 농부가 가꾸는 쌀인 바에 변명조차 해주는 자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다.  부차(夫差)의 와신상담처럼, 개골산의 마이태자처럼, 가슴에 새길 비분이라도 있는 이는 차라리 행복한 역사였으리라. 
  지난 세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야수적인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도덕적 뿌리를 도려내는 데 안간 힘을 썼었다.  단군 왕검을 하찮은 신화로 날조하고, 서양문물을 앞세워 우리 문화를 개 돼지의 소굴로 비하했으며,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심지어 개개인의 이름마저 바꾸어 민족 송두리채를 부모 형제도 없는 폐륜적 사생아 집단으로 만들려는 만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해방후로 그들 치하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상처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말과 사람과 물건, 사유방식에까지 남아 있어 지난 날의 치욕을 되새겨주고 있다. 
  상처는 회복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농업에서 그러함은 도처에 있다.  연간 400만 톤이 소비되는 밀의 자급율은 0.3 %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 심기 운동을 벌인 15년의 성과다.  거기에는 16만 명이라는 괄목할 만한 수의 동참자들이 있지만, 그 역시 전국민의 0.3%에 그치는 숫자인 데다가, 운동은 이미 벽에 부닥쳐 생산량의 1/4이 재고로 쌓이는 악순환의 족쇄가 채워지고 있다. 
  밀은 쌀과 마찬가지의 내역으로 외국산 수입밀에 비해 생산비가 높다는 딜렘머를 안고 있고, 우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수입밀의 위해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산 값의 1/5에 불과한 수입밀의 능청을 꿰뚫어볼 힘이 없다.  밀은 오늘날 우리의 제 2의 주곡이자 쌀과 달리 오히려 소비량이 늘고 있는 일종의 유망주다.  이러한 밀에 대해서조차 자급자족을 향해 이 사회가 보일 수 있는 회복능력의 정점은 0.3%에 불과하다.  자급율 0.3 %라는 수치 또한 아직 농민이 340만이나 있는 조건에서 이뤄진 것이니, 월 소득 3.40만 원으로 사는 농촌사회마저 붕괴되고나면 0.3%의 노력으로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우리는 상상을 그만 두어야 한다.
  적어도 농업에 관한 한, 이것은 개인의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쿠바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유기농업 강국이다.  구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철저한 경제봉쇄로 인하여 식량과 농약, 비료 등의 기본적인 농자재들을 구할 수 없었던 이 나라에 있어서 유기농업은 기아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혈로였다.  그들은 1991년 '평화시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후 15년 동안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농업개혁을 시도한다.  그렇게 하여 달성한 것이 유기농업 비율 19.7%이다.  
 쿠바가 그러하고 있을 때의 우리나라 어느 장관시절, 농림부의 보도자료 말미엔 '국민이 산다'라는 경귀가 붙어 있었다.  국민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할 정부 부처가 거꾸로 국민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그러나 항우만 사면초가인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가예산의 5%만을 겨우 가용예산으로 배당받는 농림부이고 보면 농업정책을 국민들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농림부가 농업에 대해 그나마 전향적이었다는 평이 있기도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해지는 것은 그 장관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류세력들이다.  그들은 정책선상에서 밀어내 버린 농업을 스스로 국가 수반이라도 되는 양 직접 국민을 향해 환기시키는 장관의 오버 페이스가  불쾌했을 것이다.  그 경귀는 결국 농업에 몽매한 다른 부처를 비난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한심해지는 것은 이런 투구(鬪毆)를 일삼는 나라의 식량 자급율은 25%, 쌀을 제외하면 2.6%에 불과한 반면, 농업을 위기로 규정하고 국가적 경영을 결행한 쿠바의 그것은 43%였다는 것이다.  쿠바는 마침내 식량자급율 100%를 돌파하게 되지만, 명실상부한 완전자급을 위한 유기농 비중은 정부조직 전체가 나섰어도 전체 농업의 20%가 되지 못했다.  이러함에 '국민이 움직여야 농업이 산다'는 식으로 손을 놓고 있는 우리의 경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는 산정을 해보려는 자체가 몰가치하다. 
  무능한 정부는 뻔뻔하고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힘의 한계도 0.3 % 정도로 확인되는 상황은 정부든 사회 성원들이든 무엇인가가 결정적으로 달라지지 않고서는 단 한 치도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웅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쌀에 대해 유기농 100 %의 도덕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엔 그렇지 않으면 오염되었더라도 값이 싼 수입산을 선택하겠다는 우리의 확고한 통첩이 숨어 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내놓으라 식의 이러한 어거지는 우리가 의지해 사는 민족과 사회의 실상을 도외시한 채 내 눈 앞의 잇속만 챙기려는 파렴치함을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다. 
  당연한 수순으로, 우리는 우리 쌀에 대해서는 오염을 문제 삼아 값의 높고 낮음을 시비하고, 수입산은 낮은 값을 칭송하여 오염을 눈감아 주는 이중의 잣대를 휘두른다.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가 숨기고 있는 만만치 않은 악의이며, 이런 악의로 인하여 먹는 양으로 버리고 도덕의 질로 버리는 쌀이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예측보다 훨씬 빠를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인지는 닥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남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상처는 아니리라는 믿음 또한 우리의 악의는 장담하고 있다.  밀심기 운동은 논이 있는 자리 그대로에 뿌려 거두는 일견 단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쌀이 사라지면 논도 없을 것이고, 논이 없고서야 쌀도 밀도 0.3 %조차 한없는 꿈이 될 것인 것을. 
  이렇게 하여 우리의 쌀은 끝장이 날 것이고. '시간이 나면' 우리가 그토록 애써 버리고자 하는 쌀이 과연 무엇이었기에 수 천 년을 이 땅에 남아 있었던가, 빛바랜 앨범을 뒤적이듯 돌아보는 것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2005년 11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