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6년 3~4월
[좌담]
농업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이 좌담은 지난 2006년 2월 15일《녹색평론》편집실에서 열렸으며, 참석자들은 아래와 같다.
천규석―대구한살림 이사.《쌀과 민주주의》저자.
천호준―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
서수녀―전교조 대구지부 수석 부지부장.
송정복―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 보좌관.
김병혁―대구·경북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적 연대’ 준비위원.
기록 및 정리―김건우, 변홍철
“세계화는 대세”라는 여론 앞에서
김병혁 안녕하십니까? 모두들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농업문제와 관련한 기획은 그동안《녹색평론》에서 꾸준히 해왔습니다만, 오늘 좌담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각별한 자리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 국회 쌀협상 비준안 처리와 그에 잇따른 농민들의 희생, 그리고 최근 들어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움직임, 무엇보다 올 한해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한미 FTA 협상의 개시 같은 중차대한 현안들을 접하는 와중에 마련된 자리라는 점에서 그러하고요. 또하나는, 말하자면 그동안 서로 다른 위치와 맥락에서 우리 농업의 문제를 고민하고 헌신해 오셨던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고 봅니다. 먼저 참석하신 분들께서 간단하게 소개와 인사 말씀을 서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천규석 예, 저는 대구한살림 이사로 일하는 천규석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꽤 오래 전부터 유기농 직거래 운동을 해왔습니다. (사)한살림은 이 방면에서는 선구적이고, 전국적으로 보면 회원 수가 약 11만 정도 된다고 하니까, 가장 규모가 큰 단체입니다. 대구한살림은 제가 능력이 없어서 크게 활성화는 안됐습니다만, 어쨌든 저 나름으로는 이 길이 우리 농업의 대안이라고 일찍부터 생각하고, 한 20년 전부터 여러 고민들을 해가면서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수녀 저는 전교조 대구지부 수석 부지부장으로 있습니다. 지금 외국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중국산 농산물이나 기준치를 훨씬 넘는 농약이 검출되는 식재료 같은 것들에 우리 어린 학생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학교급식만이라도 질 좋은 친환경 농산물 혹은 우리 농산물로 먹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학교급식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다면 우리 농업을 살리는 계기가 되고, 또 우리 아이들 건강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오늘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왔습니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대구는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하는 데 지방자치단체장의 반발이 아주 심했고, 더구나 올해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의 시범학교를 운영해 보기 위한 예산조차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그동안 저희 전교조 같은 교육단체들도 이 문제의 대책수립에 소홀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송정복 저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전국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하기 위한 연대단체에서 일하다가 작년 7월에 의원실에 결합했습니다. 현재 맡고 있는 일은 주로 친환경농업, 농어촌 삶의 질에 관련한 부분, 새만금사업과 관련한 부분, 그리고 유전자조작 농산물 문제 등에 관한 정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천호준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 천호준입니다. 한 20년 전에 경산시 농민회를 만들고 지금까지 쭉 일해 오다가, 우리 농민운동에 대해 잘 아시겠지만 대표를 서로 맡지 않으려고 미루는 분위기이다 보니까 (웃음) 여러가지 부족한데도 제가 작년에 도연맹 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우를 조금 기르고 복숭아, 자두 등 몇가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김병혁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말부터 농민들의 투쟁이 상당히 격렬하게 일어났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홍덕표 농민, 전용철 농민이 경찰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등 매우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과를 간략히 되짚고, 거기에 대한 평가를 조금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천호준 의장님과 송정복 보좌관께서 말씀 해주시지요.
천호준 작년 말부터라고 하면 잘못된 얘기고요. 사실상 작년 봄부터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투쟁에 돌입하면서 농민회는 농사일보다도 오히려 투쟁에 더 많이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6?20 총파업’이라는, 일반시민들에게나 우리 농민들에게나 생소한 ‘총파업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대규모 나락적재 투쟁, 11월 15일 여의도 투쟁, 이어서 부산 아펙 반대투쟁, 홍콩 원정투쟁 등이 한해 내내 쉼없이 이어졌습니다. 재작년 한칠레 FTA 비준 저지투쟁 할 때, 1년 365일 가운데 약 3분의 1 정도를 서울에서 지냈다고 저희들끼리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만, 작년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농민들이 100일 이상을 서울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참으로 불행하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급기야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농민들이 사망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농민들의 투쟁, 특히 전농을 중심으로 한 투쟁을 돌아보면, 작년 말의 WTO 각료회의 반대 홍콩 원정투쟁 등에서 부분적인 성과는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를 놓고 본다면 사실상 전체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투쟁이 되고 말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현재 전농의 운동, 넓게는 한국 농민운동의 현주소입니다. 한국의 농민운동의 역사가 20년 이상 됩니다만, 그동안 의제를 스스로 만들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과제를 방어적으로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어떤 계획도 없이 결국은 남는 것이 없는 그런 운동을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농민들 스스로 한국 농업을 어떻게 계속 보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저희들도 비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로지 저지하고 투쟁하고 반대하는 투쟁으로만 일관했다는, 그런 한계에 대한 평가가 저희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저희들 내부에서도 견해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농민운동, 그 폭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또 한미 FTA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농민운동의 저변 확대, 실제로 농업을 농민들 스스로 지키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 확대가 이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지요.
송정복 잘 아시다시피 정부와 보수 정치권에서 농업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입니다. 전체 시장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부분, 가령 GDP라는 숫자로 대변되는 경제구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쌀협상 과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는데요. 쌀농사, 농업을 아주 버리기는 아직 국민정서나 농민의 요구 때문에 어렵고, 그래서 이런저런 수사(修辭)들을 덧붙이는 수준에 불과한 대응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애초부터 잘못된 쌀협상안을 두고 국정감사까지 거쳤고, 3차례나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장 점거하고 한달간 단식농성을 벌여도, 우리 농업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대응을 모색하기보다는 눈치만 보다가 비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부정책도 농업을 근본적으로 지키기보다는 어떻게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반발을 최소화할까에 맞춰져 있습니다. 세계시장 경쟁체제에서 우리 농업이 경쟁이 안된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6헥타르 규모의 전업농 7만호를 집중 육성해서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하는 궁색한 논리를 펴고 있지 않습니까. 그 6헥타르라는 규모가 최소 100헥타르 선의 외국 농업과 정말 경쟁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능하다고 우기는 것은, 실제로는 농업이 경쟁력이 없으니까 포기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김병혁 저는 최근의 농민투쟁에 대한 우리사회의 반응을 보면서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농민들에게 조금은 동정적인 여론이랄까요, 그런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아주 냉담하거나 오히려 비판적인 여론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큰 시위가 일어나면, 도로가 얼마나 정체되느냐, 얼마나 폭력적인 시위냐 하는 것이 더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고요. 정부야 그렇다 쳐도, 일반시민들조차 “세계화는 대세 아니냐, 농민들이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하는 냉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소위 네티즌들의 댓글 같은 것을 훑어보면 더욱 참담한 심정이 듭니다.
전농의 투쟁에 대하여
천호준 80년대 이전, 6월항쟁 이전의 농민투쟁은 어차피 전국 단위의 대규모 투쟁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경우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1989년 무렵 본격적인 농민투쟁이 서울에 집중해서 상당히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될 때에는, 국회 앞에 불을 지르고 하면 박수를 치는 시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물론 보수언론들이 농민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는 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분석하는 기사를 쓰는 성의는 보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소위 ‘민주화’ 과정 이후에 소위 민주화세력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저는 이들을 진정한 민주화세력이라고 보지 않습니다만―특히 지금 열린우리당 안에 있거나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오히려 농민들에게 더 적대적입니다. 수구 보수세력이라고 우리가 증오하고 비판하는 세력들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물론 소수의 진보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야 농민들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함께하려고 합니다만, 우리사회의 여론 판도는 대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농민들의 폭력시위가 옳으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 개인적으로야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농민단체의 수장으로서 이러한 점은 좀 곤란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폭력시위를 자제해야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89년 2?13 여의도 대회 때에는 1만5천 내지 2만명의 농민이 모였는데,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농가 인구가 7 내지 8퍼센트, 또 농업이 차지하는 산업의 비중이 소위 ‘성 산업’ 규모와 비슷한 4퍼센트 정도다, 이런 식의 인식이 팽배해 있다 보니 언론들조차 아예 관심도 가져주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농민들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격렬한 액션을 취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절박한 심정이 농민들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농민이 다치고 죽고, 그런 비참한 과정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우리 국민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농민들에게 훨씬 냉담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우리가 일부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인 일이 있었는데, 그래도 농민들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해하고 봐주는 분위기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는 국민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동정심 또는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운동만으로는 안되는 상황에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천규석 천호준 의장이 농민운동 역사 20년이라 그러셨는데, 그건 아마도 전농의 역사를 놓고 한 말씀인 것 같고요. 농민운동의 역사는 사실 그보다 훨씬더 거슬러올라갈 수 있지요. 나는 6?25 뒤 최초의 재야 농민운동단체인 가톨릭농민회 시절부터 농민운동에 참여했는데, 그 시절에는 농민운동한다 하면 전부다 빨갱이라고 아무도 옆에 안 왔어요. 시대상황이 훨씬더 엄혹했지요. 그 시절에 심각하게 농민문제를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그때 우리는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만 가지고는 안된다고 봤어요. 정부라는 것은 끝끝내 농민 속여먹고 말살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 농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한 것이 도시 소비자들과 직접 연대해서 우리 농촌과 농민을 지키자는 유기농 직거래 운동이었습니다. 20년 전에 이미 그렇게 깨달았던 내가 볼 땐, 후배들의 농민운동이 참 안타깝고 가슴 아파요. 물론 그런 식이 아니고는 아무도 농민이 몰락해가는 참상을 주목해주지 않으니까 오죽 답답하면 자기표현의 수단, 자위 수단으로 폭력적인 방식의 시위까지 해야 하겠는가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저렇게 해봐도 결국 아무것도 안 남을 텐데, 차라리 우리 쪽에 빨리 합류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아 왔습니다.
하지만 농민운동 주류 또는 전농의 주류는 전혀 우리한테는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고향 농민회조차도 저것은 개량주의다라거나 아니면 늙은이는 이제 뒷방에 가라는 식으로 제쳐두고 아예 불러주지도 않더군요. (웃음) 전농의 헌신적인 투쟁,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런데 싸우기는 해야겠지만, 무언가 농민 스스로 대안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에 늘 안타깝고 답답했습니다.
천호준 의장께서 그간의 투쟁의 한계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를 해주시고 또 새로운 대안 모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니, 때는 비록 늦었지만 농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대안을 이제부터 우리 대구?경북 지역에서라도 허심탄회하게 함께 논의할 수 있겠다는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
김병혁 그동안 농민들이, 특히 전농이 농업을 방어하기 위한 저항운동을 해오면서, 다른 한편으로 동시에 대안까지 마련한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서는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 위에서 우리 스스로도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더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고요. 작년 부산 아펙회의를 앞두고 ‘아펙 반대 동영상’ 및 수업 등으로 상당한 사회적 논쟁의 한가운데 섰던 전교조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서수녀 선생님께서 최근의 농업 관련 정세와 관련해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서수녀 저희한테는 여러가지 우리사회 이슈들에 관한 교육용 자료,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자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식량주권 문제라든가 농업의 중요성 등에 관한 자료, 그리고 농민운동의 의의와 정당성 등에 관한 자료가 없습니다. 물론 저희 전교조 내부에서도 연구하고 개발해야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농을 비롯한 농민운동 쪽에서도 일반시민과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운동단체 등 사회 다른 부문들에 대한 홍보와 교육 문제에 조금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결국 농민운동의 고립을 초래하는 데 어느 정도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지난 아펙회의 때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는 학교현장에 수시로 이러저러한 ‘지침’을 하달합니다. 특히나 전교조를 겨냥해서는 즉각적으로 사안마다 이데올로기 공세를 폅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학교장들과 갈등을 겪어가면서도 매 시기에 학생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가르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불과 몇년 후면 모두 어른이 되거든요.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사들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사회를 보는 눈을 어떻게 키워 가느냐에 따라 몇년 후 우리사회의 인식과 분위기가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농업문제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 농민들 시위의 폭력성만이 언론에서 크게 부각되고 할 때에는, 이러한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급식 문제도 단순한 식재료의 안전성 문제 차원을 넘어, 이것이 교육현장에서 농업과 관련한 올바른 교육의 계기로서 좀더 적극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천규석 저까지 거들면 전농을 자꾸 비판만 하는 것 같아 좀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전농이 그동안 사회의 다른 부문과 일반시민들에게 알리고 교육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언론에서 보도하는 우리쌀 생산원가가 제가 보기에 터무니없이 낮아서―80킬로그램 한 가마에 7만 얼마라고 보도를 했거든요―전농이 계산하는 생산원가는 과연 얼마인지 알아보려고 전농 사무국에 전화로 문의한 적이 있는데요. 몇차례 문의를 했지만, 그에 대해 책임있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겨우 담당자라는 분한테서 팩스로 자료를 받았는데, 보니까 역시 정부발표하고 비슷하게 너무 적더라고. 깜짝 놀랐어요. 쌀 한 가마니 생산비를 8만원 정도, 아마 그 정도로 계산한 것 같던데, 그렇다면 그건 농민들더러 죽으란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어봤어요. 실제로 조사를 하느냐 그랬더니, 실제로 조사를 한 것은 아니고 오래 전에 해놓은 생산비 조사결과를 가지고 물가인상 등을 고려해서 추정치를 뽑은 거라고 하더군요. 물론 매년 실제 생산가를 조사한다는 것은 돈과 인력이 많이 드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좀 곤란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천호준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명을 해야 하겠는데요. 우선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꽤 오래 전에, 그것도 전농이 매우 바쁜 투쟁 와중에 있을 때의 일이 아닌가 싶고요. 현재 정부에서 생산비를 산출하는 표본이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해서 저희들 나름대로 거의 해마다 조사를 해서 현재 생산비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저도 지금 기억이 안 납니다만, 쌀의 경우 올해는 대략 한 가마당 17만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토지용역비, 농민 자신의 인건비를 제대로 따졌을 때 그 정도 나옵니다. 정부에서는 14만 얼마 정도로 보고 있는 모양이고요.
그리고 앞서 천 선생님께서 농민들이 투쟁도 해야겠지만 유기농 직거래처럼 농민들 스스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문제에 대해, 저희 전농만 보더라도 내부적으로 회원들간에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개인에 따라,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큰데요. 전농 경북도연맹만 하더라도 의성군 농민회장 같은 경우에는 원래 윗대부터 유기농을 해오셨던 분입니다. 어쨌든 전농 내부에는 정부가 올바르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농업은 정부의 개입력 없이는 안된다는 관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아무리 나쁜 정부라 하더라도 싸움으로 얻을 것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존재하고요. 그러다 보니 아까 말씀드린 대로 수비 형태의 투쟁에 몰두해왔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분명히 전농 내부에서도 그런 점에 대한 반성이 있습니다.
한미 FTA와 한국농업의 운명
김병혁 현재 정부가 농업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은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서 그간의 정책에서 한 걸음도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식량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어갈 것이라는 경고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시기에 세계적인 식량위기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그럴 경우에 국내 농업기반이 붕괴된 상황에서 굉장히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러한 정보와 예측을 정부도 아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쌀협상 국회비준 문제도 그렇고 한미 FTA의 전제 조건으로서 쌀 개방이 사실상 합의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황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만, 왜 이렇게 무리하게 일방적으로 농업을 벼랑으로 밀어붙이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 농업인구의 대부분이 고령화되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 있지 않아 농업이 사실상 사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급하게 확인사살하듯이 농업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조금 식상한 얘기라고 보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미 FTA 문제와 관련해서 이 문제를 조금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천규석 길게 말할 것도 없이, 현 정부가 대자본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정부 내에서도 농림부 쪽은 조금 다르겠지요. 물론 기본적으로야 농업을 포기한 농정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래도 농업이 명목상으로라도 유지되어야 예산도 챙기고 조직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정부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대자본의 이익을 대변해서 농업을 쓸어버리려고 하고, 농림부나 관련 기관에서는 되지도 않을 기업농 육성 운운하면서 무언가 꼬투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뻔히 알면서 말이지요. 농업지원 예산 119조원이니 하는 논리가 다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정부 내에서도 말하자면 알력이 있는데, 그나마 농림부 쪽이 열세로 밀리고 있는 형국이지요. 농업기반공사가 한국농촌공사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할 겁니다.
송정복 농지법이 개정되고 농지은행 제도를 실시하고 그러는 일련의 상황 속에서 농촌공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새만금사업을 끝으로 더이상 추진할 간척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조직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는데요. 한마디로 자구책을 찾고 있는 셈이지요. 말로는 귀농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도 하겠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천호준 사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주의깊게 봐야 할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법적 용어가 전부 ‘농민’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된 이후에 법조문을 손질하면서 전부다 ‘농업인’, ‘농어업인’ 이렇게 고치지 않았습니까. 소위 ‘경영인’으로서 존재를 규정한 것이지요.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논리 속에 농민을 철저하게 편입시킨 것입니다. 사실 ‘농민’이라고 하면 자본주의 체제 혹은 제도 속에 완전히 편입된 개념이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그래도 ‘농업기반공사’라고 할 때에는 어떻게든 농업을 가지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이제는 ‘농촌공사’라는 이름 그대로 농촌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겠다고 하는 현 정권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도로공사처럼, 길 닦고 아파트 짓는 개발의 대상으로서 농촌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곧 죽을 농업을 왜 한미 FTA까지 추진해서 더 서둘러 죽이려고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지금 전농 내부에서도 분석과 견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은 현 노무현 정권의 본질 및 속성을 보는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한쪽은 어쨌든 간에 초국적 자본을 쥐고 있는 ‘미국’의 패권적인 지배에 의미를 더 크게 두는 입장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아직도 미국의 식민지 예속정권의 성향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다른 한편에는 단순히 미국의 식민정권으로는 볼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의 논리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 정권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해야만 그 정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서둘러 농업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미 FTA가 단순히 미국이 원해서 강행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고,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현 정권이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봅니다. 모든 문제를 무조건 미국 때문이다 하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 같아요. 사실상 농업문제를 보는 관점도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때문에 상당히 간극이 큰 편인데요.
가령 작년 아펙회의 때에도, 아펙반대, 부시반대 투쟁을 부산에서 크게 한번 잘 하고 나면 한국의 운동이 상당히 달라진다 하는 식의 과장된 논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계기를 잘 활용해서 운동의 전환점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고, 또 저도 물론 그 투쟁에 참가했습니다만, 문제를 매번 그런 식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송정복 한국농업의 위기는 산업화에 따른 국내 산업구조 자체의 변동과 아울러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은 곧 급속한 탈농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에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지요. 한미 FTA는 후자의 문제라고 봅니다. 세계화라는 초국적 시장경제에 우리 산업구조를 어떻게 편입시킬 것이냐, 그 속에서 농업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요. 그것은 결국 얼마만큼 시장을 개방할 것이냐 하는 판단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 점에서 현 노무현 정권은 철저한 신자유주의의 집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전농의 투쟁, 특히 반미?반세계화 투쟁은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러한 흐름을 유지해야만 우리가 모색하고자 하는 대안도 지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계화 투쟁 없이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도 결국에는 시장의 논리와 힘 앞에 무너지고 말 거라고 봅니다.
유기농업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잘 아시다시피 이미 세계적으로 유기농업이 농민과 소비자의 직거래 쪽보다는 시장으로 편입되어 대형마트 같은 쪽으로 비중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살림이나 여러 생협들이 대형자본과의 경쟁 속에서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이런 것처럼 반세계화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천호준 제 말 중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신자유주의나 세계화 문제는 물론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죠. 다만 현재 노무현 정부의 행태를 볼 때, 자본의 위기, 혹은 자기 존재기반의 취약성에 대한 매우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본에 너무나도 눈치를 보고 종속된 정권이기 때문에 더 알아서 긴다고나 할까요. 농업 같은 것은 하루속히 포기하고서라도 이것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조바심 같은 게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대만 같은 나라들은 왜 우리보다는 이러한 행보를 상대적으로 천천히 취하고 있느냐, 그런 나라들도 역시 어차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때문에 어려운 점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일본농업이나 대만농업도 모두 소농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은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왜 일본정부는 속도가 다른가. 이것은 좀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 이외에 작용하는 좀더 복잡한 어떤 맥락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런데 아무튼 지금 노무현 정부는 그 인적인 구성을 따져볼 때, 과거에 한때는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완전히 자본의 노예가 되어서는, 과거의 어느 정권들보다 더욱더 빠르게 개방과 농업 해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농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로지 자본의 이익만 관철하면 된다, 농업이고 영화고 문화고 교육이고 간에 오로지 자본의 이익만 관철하면 성공하는 것이다, 라고 보는 시각이 과거 어느 정권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팽배해 있습니다.
유기농의 이상과 현실
김병혁 한미 FTA 문제를 좀더 깊이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는 농업문제와 관련한 다른 논의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이어서 유기농업과 관련한 문제를 좀 짚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유기농업이 하나의 대안적인 운동으로서 표방되고 추진될 때에는, 단순히 하나의 농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바탕에 매우 심오한 목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생태적인 삶으로의 전환, 농촌공동체의 회복, 순환적인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공동체성의 회복, 그리고 자립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지역적 실현, 이런 것들을 유기농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목표와 이상이 자꾸 퇴색되고 거세되면서 상품으로서의 유기농업, 웰빙 상품으로서의 유기농산품, 이것만 남아있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상품으로서의 유기농업이라도 남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소비자들의 식품 안전성에 대한 관심 등이 아주 높아졌다는 측면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기농업이 너무 시장논리 중심으로 가면서 시장에 휩쓸리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유기농 보신주의’라고 비판하신 바 있는 천규석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천규석 내가 할 이야기를 다 해버린 것 같은데. (웃음) 그렇습니다. 유기농이 우리 농업, 농민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게 운동으로 할 때까지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는데, 이것을 제도화하고 제도권 속으로 끌어들이면 더 잘될 것으로 판단한 사람들이―주로 서울에서 유기농 관련 단체 같은 데서 일하던 사람들인 모양인데―꽤 집요하게 노력해서 이른바 ‘친환경농업 육성법’ 같은 것을 만들고, 친환경농업 인증제도 같은 걸 만들고, 또 무슨 생협법을 만들고 하면서 그때부터 일이 틀어졌다고 봅니다, 저는.
아마도 김영삼 정권 때부터 법 제정을 비롯한 그런 움직임들이 있었나 본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김성훈 농림부장관 시절에 본격적으로 유기농업 생산과 유통이 제도권에 편입되게 되었지요. 매사가 그렇지만, 원래 운동이었던 일도 이게 상품성이 있고 정치적으로 효용가치가 있고 하면 제도권화시키는 것이 권력의 속성입니다. 그렇게 되면 운동은 끝나는 것이지요. 그 무렵에 나는 이제 유기농운동은 끝났다 하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정부에서 인증을 해주고 친환경 마크를 붙이기만 하면 백화점에서 팔아도 되고 슈퍼마켓에서 팔아도 되는데, 이제 우리가 운동으로서 할 일은 더이상 없게 되어버린 거지요. 우리가 원래 지향했던 지속가능한 세상, 생태적인 자치 공동체마을, 이런 거하곤 아무 관계도 없이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 편입된 거지요. 자본이 유기농운동도 흡수해버린 셈이고, 우리는 죽을 고생을 해가지고 결국 자본 좋은 일 시켜주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이것은 대안이 아니지요.
서울에 있는 큰 유기농 직거래 조직도 마찬가지지만, 수입 유기농하고 경쟁이 어떻게 되겠어요. 국내 유기농 농산물 가격하고는 비교가 안되는데. 게다가 소위 편리성, 접근성 같은 면에서 대형 마트나 백화점 이런 데가 훨씬 나은데, 누가 단체에서 번거롭게 교육까지 받아가면서, 출자금에 회비까지 내가면서 가입하려고 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뭐든지 제도화되면 운동은 끝나는 거예요. 유기농으로 우리가 농업과 농민을 그나마 지키고자 했던 노력은 그로써 종말을 고했다고 보고, 이제는 다른 각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천호준 아까 천규석 선생님께서 전농이 유기농 같은 데는 신경을 안 썼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실제로 과거 20여년 전에 이런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유기농으로 정말 좋은 농산품 생산하면 그걸 가난한 도시 서민들이 먹나, 여유있고 배부른 사람들이나 먹는 거 아니냐 하고요.
천규석 맞아요. 심지어 “착취계급 좋은 거 먹고 건강해져서 노동자 착취 더 잘 해라 하는 거냐”는 공격을 실제로 많이 받았지요. (웃음)
천호준 예, 그런데 아무튼 이미 한국농업은 자본주의 체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느 농민도 돈 문제, 생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거기다 지금 우리 농업은 제법 규모화됐습니다. 과거 1인당 경작농지 면적이 0.5헥타르에서 0.6헥타르 이랬는데, 지금은 1.5헥타르 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유기농은 고사하고 친환경농업, 즉 제초제만 안 치고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제 경우 6,000평 농사를 지으려면 아주 혼이 납니다. 그래서 유기농이 아주 큰 기능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모두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한국농업의 대안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떤 대안을 만들어 내야 될 것인가, 이것이 정말 고민스럽거든요.
쌀 같은 경우, 요즘 궁여지책으로 하는 것이 지역별로 무슨 쌀 무슨 쌀 해서 특색있는 이름과 상표를 붙이고 하는데,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자가 그렇고 토양이 그렇고 다 거기서 거긴데, 아주 특별히 유기농으로 짓는 쌀이 아니라면 크게 차이가 날 게 없습니다. 이건 오로지 상표, 자본주의의 병폐 가운데 하나인 상표와 포장에 의존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게 대안이 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우리가 대안을 찾는다면 농민들의 평균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찾아야지 아주 특별한 사람, 잘 하는 사람에 맞춰서 방법을 찾고 그것을 일반화시켜서는 곤란합니다.
천규석 우리가 처음 유기농운동을 시작할 때 그것이 우리 농업 지키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과 자본을 넘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농민과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요. 그런 직거래를 위해서는 소비자를 끌어내고 설득할 수 있는 무언가 매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기농 농산물이었습니다. 그냥 일반 농산물 가지고야 도시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어낼 수 없었으니까.
물론 이상적으로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모두 유기농으로 가야 하고, 또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관행농은 지속이 불가능한 거니까요. 쿠바가 과거 소련의 원조에 의해 관행농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고립되게 되자, 유기농으로의 적극적인 전환을 통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쿠바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방향전환을 하지 않아서 식량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잖아요. 석유자원이 머지않아 바닥날 것이 뻔한데, 무엇으로 지금의 관행농을 지탱하겠습니까.
어쨌든 그렇게 궁극적으로는 유기농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결국은 대안이 되겠지만, 과거 유기농운동은 말하자면 자본주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의 선도적인 방안으로서 추구되었던 것이지, 그것 자체만으로 농업 전체의 대안이라거나 목적으로서 나왔던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옳을 겁니다.
김병혁 그러나 어쨌든 지금으로서도 전농이 우리 농업을 지키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때, 관행농업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러한 호소를 하는 것보다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앞으로는 우리 농민들이 유기농 혹은 친환경농으로 가겠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당장은 전면적인 실현이 불가능하더라도 하나의 방향으로서, 그러한 선언이 전농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의의가 매우 클 거라고 보는데요.
천호준 지금도 전농은 네가지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식량자급형 농업으로 가자. 둘째, 환경보전형 농업으로 가자. 셋째, 소득보장형 농업으로 가자. 그리고 넷째, 남북한 통일 대비 농업으로 가자. 이렇게 네 가지 선언 가운데 환경보전형 농업으로의 방향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도, 앞서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그동안 수많은 투쟁들 속에서 이러한 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와 노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내부에서 자생적인 노력들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영천시 농민회 같은 경우, 회원들 100명 가까이가 친환경 과일생산을 위해 작목반을 조직하기도 했고요. 유기농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제초제는 절대 치지 않겠다 하고 결의를 한 것이지요. 다른 작목들도 과거의 농약살포 비율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송정복 천규석 선생님께서 유기농이 제도권화되면서 운동으로서의 생명은 끝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자본주의 시장을 극복하고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했던 운동의 의미는 퇴색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각도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대부분이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 농업 전체를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그 기준과 조건을 우리 현실에 맞게 만들고 농업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도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천규석 나는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된 유기농산물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봅니다. 나는 지역에서 생산?유통되는 농업 자체가 친환경적인 거라고 봐요. 그게 관행농이냐 유기농이냐를 떠나서. 그러니까, 멀리서 수입한 유기농산물보다는 오히려 우리 지역에서 농약 쳐서 기른 우리 농산물이 더 유기적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시장논리에 따라 수입되는 유기농보다는 차라리 관행농에 의해 생산된 농산물이라 해도 지역에서 나온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직거래, 이런 것이 나는 훨씬 유기적이고 또 미래 농업의 올바른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까지 유기농운동 잘못했다 싶고 후회하는 게 바로 그거라고. 시장상품 만들어서 대형 마트다 백화점이다 해서 유기농 코너 만들어 놓고 아무 데서나 파는 거, 정부인증 마크만 붙이면 다 되는 그런 거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게 유기농운동의 종착역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완전히 헛살아온 겁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지역에서 나온 농산물, 인근 농촌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농민이 직접 도시의 노동조합이나 학교, 단체, 기관들을 통해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 훨씬 유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우리 농업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병혁 미국의 어떤 학자가 캘리포니아의 유기농 산업에 대해서 그 역사를 분석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요. 과거 1960-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실 운동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뉴에이지라든지 해서 나름대로 사상적인 배경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유기농업이 80년대, 90년대 넘어오면서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이제 상품성을 갖게 되고, 이것이 국제무역이 점점 확대되면서 캘리포니아산 유기농산물이 전세계로 수출되는 그런 상황까지 나아가게 되었다는 거지요. 산업으로서의 유기농업이 성장하게 된 것인데요. 그 저자가 책에서 내리는 결론이 뭐냐 하면―그 책 제목이《농업의 꿈》인데―이제 농부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농촌의 이상적인 꿈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기농도 이제는 완전히 산업화되고 엄청난 규모로 기계를 사용해서 짓는 유기농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환상에서 벗어나야 된다, 하는 겁니다.
유기농업이 산업이 되고, 더군다나 수출까지 하는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되지 않으면 안될 겁니다. 게다가 그 규모를 유지하려면 기계를 쓰든지, 석유를 이용한 또다른 투입물을 쓸 수밖에 없겠지요. 원래 화석연료 의존을 최소화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순환하자고 하는 것이 유기농인데, 이제 제초제 안 쓰는 대신에 또다른 투입물을 집어넣는 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유통에서도 엄청난 화석연료를 소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세계화되어 있고.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유기농업이 처음에는 반(反)자본주의적이고 반(反)산업적인 이상과 정신을 가지고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세계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지금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애초의 운동성, 저항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천규석 선생님 말씀대로 ‘지역’이라는 측면에 주목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농업 살리기의 핵심은 농가소득 보장
천호준 오늘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가 한국농업을 어떻게 지키고 살릴 것인가 하는 것인데요. 저는 문제의 핵심은 결국 농가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수입 때문에 쌀농사 망한다, WTO 때문에 농업 망한다 하는 것도 결국은 미국 같은 나라들의 대규모 기업농하고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이 안되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문제는 그것이 농민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농업소득이 안되기 때문에 한국농업이 무너지는 겁니다. 농업소득이 안되도록 하는 정책으로만 일관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농업소득이 없기 때문에 후계 농민세대가 없습니다. 문화생활, 교육 같은 문제 이전에 사실은 농사를 지어서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활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농업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고, 농민들의 위기감과 분노가 이토록 깊지도 않을 겁니다. 아무튼 기본적으로는 농업소득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농업회생의 핵심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병혁 중요한 점을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정부는 지금 추곡수매제를 폐지한 대신 다른 보조금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만.
천호준 미국 같은 경우 농업소득 가운데 55-70% 정도가 정부보조금입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3%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아예 게임이 안되는 겁니다.
김병혁 한국농업이 달리 경쟁력이 없는 게 아니라 정부보조에서 이미 경쟁이 안되는 거지요.
천호준 맞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농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경쟁력 운운하면서 그 책임이 마치 농민들에게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걸 우리 국민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열린우리당 같은 왕년의 민주화운동 세력들 얘기를 했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일수록 농민들에게 막 퍼주면 안된다고 야단들입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들의 농업보조금이 얼마나 많은지, 이러한 문제는 전혀 도외시한 채 농민들만 욕하는 거지요. WTO 규제 때문에 안된다고 핑계를 대지만, 미국 같은 경우 새로운 명목을 만들어서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을 유지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정부는 직불제 좀 하자고, 3,000평에 60만원에서 70만원으로 10만원 올려달라고 해도 안된다고 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게 전제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농가소득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유기농도 마찬가집니다.
김병혁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멀리서 농사지어서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오는 농산물이 가까운 우리 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보다 싸다는 것, 이건 정말 이상한 거잖아요. 그 이면에는 결국 막대한 정부보조금이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이 좌담을 통해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진단하기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데로 논의를 좀 진전시켰으면 합니다. 아까 하나의 대안으로서 ‘지역 직거래’에 관한 말씀을 천규석 선생님께서 하셨는데요. 그에 관해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지요.
학교급식과 지역 직거래
천규석 사실 직거래 문제는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지금 안하는 것도 아니지요. 학교급식과 관련해서도 농민들이 직접 지역의 학교들과 직거래를 하는 사례가 전북 등 몇군데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아직은 본격적인 직거래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조례에 친환경 농산물 또는 우수 농산물이나 우리 농산물 같은 식으로 식재료에 관한 내용을 명시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학교장들이 그런 농산물을 업자들을 통해서 시장에서 구입한다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시장에 편입된 유기농산물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얘기했습니다만, 똑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은 실제로 농산물의 질을 보장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런 식으로는 농민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시장만 더욱 확대하고 살찌우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기농이다 친환경이다 이런 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 탈(脫)시장 지역 직거래가 핵심이고 대안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살림이나 생협들이 해온 것처럼 개별 소비자들을 조직하는 직거래로는 지금의 농업 위기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얘기도 앞에서 했으니까 더 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직거래는 농민 조직, 가령 각 지역의 농민회와 인근 도시의 노동자 조직, 가령 노동조합들이 중심이 되어 맺는 직거래 관계 같은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조직 대 조직으로서 어느 정도의 규모와 틀을 갖추고 연대를 하자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사업장 식당의 급식 식재료를 농민회가 공급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차 노동자들의 개인 가정으로까지 이러한 관계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전농과 민주노총 같은 단위가 실질적인 노동자-농민 연대의 차원에서, 각 지역 조직별로 이러한 길을 모색한다면 그다지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농업을 한번에 회생시킬 수야 없겠지만, 상당 부분 ‘방어선’을 구축할 수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농업과 먹거리를 노동자-농민의 연대로써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회운동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노동운동계의 누군가, 가령 민주노총 같은 데서 한분이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어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는데, 매우 아쉽습니다. 만약 민주노총이 이런 문제의식에 함께할 수 있다면, 지금 여러가지 이유로 곤란을 겪고 있고, 심지어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노동운동 측으로서도 사회적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운동을 쇄신하는 중요한 방향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학교급식도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학교급식 직거래는 노동자 단체와의 직거래보다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교조 쪽에서 이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서수녀 전교조에서도 작년에 학교급식과 관련해서 특위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부의 수석 부지부장이 급식 관련 일을 총괄하기로 했고, 그래서 저도 지금 이 좌담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작년에 교원평가를 둘러싼 싸움을 비롯해서, 너무도 벅찬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교원평가 문제는 전교조의 존립 자체와도 직결된 문제여서 이 문제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급식에 관해서는 아직 저희들 내부에 다소 준비가 덜 갖추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든 참교육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인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농촌을 지키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이 학교급식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무엇보다 전교조가 이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김병혁 학교급식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서수녀 비용 문제지요. 지금 중고생의 경우 대체로 한끼에 2,000원 내외, 어떤 학교는 2,100-2,200원 정도 예산이 드는데, 이것을 학부모들이 전액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무상급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친환경 농산물 등으로 하게 되면 한끼당 500-600원 정도 추가비용이 듭니다. 당연히 이것을 학부모들에게 부담하라고 하면 반대도 많습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그렇게 나와요. 이 차액분이라도 최소한 지자체에서 보조를 해줘야 합니다. 이걸 하자는 게 지금까지 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의 핵심이었는데요. 대구도 그랬지만 지자체장들이 반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시장(市長)이 돈 없다 하면서 난리 법석을 부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설령 지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학교와 업자 간의 입찰 등에서 투명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그런 구조 속에서 결국은 이러한 노력이 정작 농민들을 지원하는 쪽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애매하게 돈만 날리는 경우가 발생할 소지도 많습니다.
김병혁 비용 문제는 물론 정부든 지자체든 이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할 것 같고요. 그런데 학교급식을 예로 들어서, 학교와 농민들이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더라도, 비용 문제와는 별도로, 생산의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조직적인 직거래 관계를 농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지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혹시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준비가 있습니까?
천호준 지금으로서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만약 농협이 아주 제대로 된 농민들의 협동조합이라면 이것을 통해 가능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바람직한 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말씀하신 직거래 문제에 관심과 책임감을 갖고 접근할 수 있는 주체는 농민회밖에 없을 텐데요. 현재로서는 전농 차원에서 그런 준비는 안된 상태입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시장체제 속에서는 농민들의 신뢰성 문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요. 예를 들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을 때에야 그런 직거래 관계를 통해 농산물을 대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만약 가격이 비싸지면 신뢰 관계를 깨버리고 엉뚱한 데 팔아버릴 수도 있고 그렇지요. 이것은 생산자의 조직화 문제입니다.
우선은 한두군데 학교와 지역 농민회가 시범운영을 하는 식으로 해서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농민들도 충분히 교육되고 단련되면서 이러한 연대 속에서 조직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협동조합(농협)이 나서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농민들이야 농사짓는 데 급급하지 유통이니 물류니 하는 데는 어두울 수밖에 없거든요. 네덜란드 같은 데는 농민들이 생산만 해놓으면 농협이 가격을 딱 매겨서 다 팔아주지 않습니까.
아무튼 이제까지 이야기한 직거래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서로 생산량을 협의해서 책임지고 팔아주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서로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또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별도로 있어야 할 겁니다. 지금 농민들은 대개 나이들도 많고 이런 일에 안목도 없어서 농민들이 직접 이런 직거래 일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천규석 천 의장께서는 조금 부정적으로, 아니면 매우 어려운 일로 자꾸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전농이 지난 20년 동안 투쟁했던 헌신과 노력만큼만 이 일에 투여를 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전농이 좀더 일찍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더라면 지금쯤 큰 성과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준비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또 농민들 가운데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하시지만, 바로 이런 일을 추진함으로써 젊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만약 농촌에 재미있고 돈도 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젊은이들이 왜 농촌으로 돌아갈 생각들을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모든 젊은이들이 그러지야 않는다 하더라도.
어쨌든 자꾸 이 문제를 부정적으로, 어렵게만 보지는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농협 얘기 잠깐하셨는데, 지금 한국의 농협한테 그런 일을 바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뿌리나 철학, 모든 게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조직이잖습니까.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지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운동을 하는데 새로운 조직이 나와야지, 일제 식민지 수탈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돈놀이 조직에 더이상 우리가 기대를 걸어서는 안됩니다.
김병혁 씨가 얼마 전에, 전북지역에서 학교급식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직거래 사업을 시작한 사례를 직접 보고 온 것으로 아는데요. 그 얘기를 좀 해주지요.
‘전북정농’의 직거래 사업 사례
김병혁 예, 정식명칭은 ‘전북정농영농조합법인’(이하 ‘전북정농’)인데요. 지난 1월 14일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 그 일을 이끌고 있는 정경식 선생이 직접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더 좋았을 텐데, 도저히 시간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것저것 묻고 들은 대로 소개를 하겠습니다.
처음 유기농업을 하시는 분들이 몇분 모여 유기농산물을 생협에 공급했는데 유기농 생산자는 점점더 늘어나는 반면, 생협 조합원은 거기에 비례해 금방 성장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보니 잉여생산물이 생기게 되고 판로를 찾지 못하게 되자, 규모가 비교적 큰 유통업체들과 거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산자들이 유통업체에 예속되고 소위 ‘가격 후려치기’ 같은 것으로 농민들이 자꾸 손해를 보게 되면서, 농민들이 직접 학교급식을 중심으로 직거래를 해보자, 직거래로 돌파구를 찾아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마침 2004년에 전북도에서 지원을 할 테니 물류센터를 지어보라는 권유가 있어서 본격적으로 추진을 하게 되었답니다. 2004년 7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2004년 말에 부분 완공했고 2005년 5월에 완공을 했답니다. 운영은 2005년 초부터 시작했고요. 비용은 5억원 정도 들었는데 전북도와 농림부에서 3억5천, 농민과 생협들이 1억5천만원을 부담했다고 합니다.
2005년 상반기부터 지역의 7개 생협에 공동물류 형식으로 공급을 시작했고, 2005년 하반기부터는 학교급식에도 공급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지역의 10개 학교와 9개의 유치원에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북 학교급식조례제정과 함께 교육감이 20억원 예산으로 20개 학교를 ‘급식비 지원 시범학교’로 지정한 것이 계기가 된 모양입니다. 전교조와 함께 20개 학교에 공문 및 자료를 보냈고, 이 가운데 10개 학교가 친환경 급식에 관심을 표명하고 ‘전북정농’ 실사를 나왔답니다. 그리고 그 10개 학교가 현재 이 직거래 조직을 이용하고 있는 거지요. 현재 공급차량은 3대를 운용하고 있고 직원은 6명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자리를 잡아나가는 시점이라 이래저래 부족한 것이 많다고 그러시더군요.
서수녀 그렇다면 나머지 10개 학교는 다른 곳의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가요?
김병혁 현재 전북의 급식조례가 ‘친환경’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학교장 임의로 급식비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북정농’을 이용하는 학교들도 전체 180가지 품목 중 50가지만 이곳을 통해 공급받고 있습니다. 충분히 짐작이 되지만 역시 어려운 점도 많다고 하더군요. 학교에서 주문할 때 사전에 공급자와 필요한 양을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주문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계약재배 방식을 실현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그때그때 부족한 농산물을 구해서 공급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직거래 문제에서 이것은 가장 큰 난관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학교급식의 경우에는, 주문받은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때에 맞춰서 공급해야 하니까요. 제때 공급을 못해서 학교현장에서 급식을 준비하는 데 차질이 생긴다면 어느 학교에서 다시 주문을 하겠습니까.
현재 6개월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2주마다 가격표를 학교에 보내면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천호준 이 사업의 운영 주체는 누구인가요? 그밖에 다른 문제점은 뭐랍니까?
김병혁 영농조합법인이니까 농민들이 주로 이사로 되어있고, 이사회가 실질적인 운영의 주체입니다. 정경식 선생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요. 문제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급식조례가 대법원에서 부당한 판결을 받으면서 아직 법적인 장치가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방식은 친환경 농산물이라도 공개입찰을 하고 있는데 공개입찰을 하게 되면 유통업자들이 중간에 끼어듭니다. 업자들이 우선 계약을 따내고 보자는 식으로 나오면 생산비 자체가 보장이 안되고 또 그렇게 헐값으로 계약이 되면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지켜나갈 수가 있겠느냐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정경식 선생은 친환경 농산물의 학교급식은 공개입찰이 아닌, 계약재배에 의한 지역 직거래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지역 농민과 함께하는 친환경 학교급식의 성과가 농민과 아이들,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서수녀 혹시 직거래에 의한 학교급식 운영이 학교현장에 미치는 교육적인 영향 같은 것은 있다고 하던가요?
김병혁 예, 이건 정경식 선생이 특히 강조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전북정농’에서 공급하는 농산물로 학교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이 한 500명 정도 매월 농장을 다녀간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이 머지않아 어른이 되면, 소비를 결정하는 주체가 될 것이고, 따라서 직거래 학교급식 및 농민과의 교류라는 것은 교육과정으로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정경식 선생은 보고 있습니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민주노총과 전농이 연대해야
천규석 나도 경험으로 잘 알지만, 정경식 선생이 아마도 상당히 고생할 겁니다. 하지만, 여러 경험이 풍부한 분이니까 잘 할 거라고 믿고요. 아무튼 이런 사례가 농업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사람들한테 중요한 참고가 될 거라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학교급식을 직거래화하는 데에는 특히 전교조의 적극적인 참여와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농 같은 농민조직과 전교조가 함께하는 운동 차원에서 추진되어야만 한다는 거지요. 이것은 그냥 농산물 직거래 운동이 아니고,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입니다. 자꾸 안된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지역에서―우리는 여기 대구와 경북에서―조그만 규모로라도 시작을 해야 합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실패하면 또 후배들이 이어받아서 하고, 그렇게 끈질기게 해나가는 것이 운동 아닙니까.
특히 유의할 점은 친환경, 유기농 이런 데 자꾸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아까 어느 분이 잠시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학교급식을 친환경 농산물로 모두 전환한다고 하면, 식원료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현재의 급식 관행상 농산물의 종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지역 직거래 자체가 친환경이 됩니다. 정경식 씨 얘기에서도 나왔지만, 농민이 어느 학교에 자기가 기른 농산물을 급식 재료로 공급하고 또 그걸 먹는 아이들이 자기 농장에 찾아오고 하면, 생판 모르는 시장 소비자들에게 내다팔 작물이라면 몰라도 이제 얼굴을 아는 아이들이 먹을 거니까 농약도 조금씩 덜 치게 됩니다. 아무래도 더 조심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 직거래 시스템을 통해서 바뀌는 거예요. 친환경적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농업-식품이 지역 내에서 유통-순환한다는 의미에서도 친환경이고, 이런 면에서도 친환경이 되는 거예요.
또 학교나 노동조합 쪽의 입장에서도 분명히 이것은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말고 속지 않고 농산물을 구입할 방법이 없고 소비 측면에서도 비용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데, 직거래를 통하면 분명히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어요. 또 시장에 빼앗겨온 몫을 농민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서수녀 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송 보좌관님도 계시고 하니까 정치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데, 이러한 직거래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법적 장치들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거의 모두 법적?제도적인 근거를 가지고 하는 것이고 또 그런 것이 뒷받침되어야만 전교조도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싸울 것은 싸울 수가 있습니다. 특히 학교급식 문제는 영양사들의 역할과 인식이 참 중요한데요. 현재 학교 영양사들이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그러다보니, 한마디로 학교현장에서 발언권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운동 차원에서 투쟁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하루속히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된 제도적인 여건들이 마련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정복 당 차원에서 학교급식을 우리 농산물로, 무상급식으로 지원하는 법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기득권의 벽이 너무나 높습니다. 이는 전국민적인 요구와 운동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 여기고요.
여기서 ‘지역’의 범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단순히 몇몇 단위의 거래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제도적인 차원까지 고민한다면, 꼭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에 1천만이라는 인구가 모여있는데, ‘지역’의 범위를 설정한다고 할 때 이 서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천규석 서울은 될수록 불편하게 해서 해체하고 분산시켜야지. 1천만이 훨씬 넘게 모여 사는 그들의 편리까지 배려하고 걱정하면 이 운동 못해요. 서울은 비정상이고 그래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인 거라.
송정복 예, 저도 서울은 해체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그러나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시장이 여기에 몰려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비정상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농산물이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몰렸다가 다시 내려가는 물류체계 속에 있습니다. (사)한살림의 물류체계도 그런 문제가 있는 거고. 이것을 바꿔내야 할 텐데요. 생협운동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하는 답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안될 거라고 보고요. 직거래를 구상한다면, 우리나라 전체를 어떤 식으로 나누어서 그 지역을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과제로 남습니다.
그리고 직거래로 공급을 하려고 하면, 품목도 다양화하고 농민들이 스스로 가공을 통해 잉여농산물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최소한의 자본이 필요합니다. 이것도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천규석 직거래가 어렵게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마을공동체가 해체되어서 그렇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제대로 형성되면 어려울 것이 없는데요. 본래의 마을은 사실 하나의 자치적인 조직이고 작은 나라입니다. 지금 거의 해체된 상태의 마을로서는 한 마을이 이것을 다 감당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웃 마을하고 연대해서 하면 됩니다. 가공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좋아하는 소시지, 햄 같은 것도 필요하다면 돼지 키워서 몇개 마을이 힘을 합쳐서 소규모 가공시설을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 직접 와서 보라고 하면 서로 교류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거리가 생기면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거예요. 일거리가 없으니까, 안 만드니까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꾸 도시에서 허송세월 하는 거예요. 농민운동이 여태껏 그런 것 만드는 일을 안했잖아요. 이건 운동이 할 몫입니다. 귀찮고 남 안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운동입니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만나야 할 지점도 바로 여깁니다. 이런 식으로 농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노동자들도 실업걱정 훨씬 덜 수 있습니다. 자꾸 도시에서 종살이, 노예살이 하려고 하지 말고, 농민들과 힘을 합쳐서 자주적으로 살 길을 운동 차원에서 모색해야 하는 거예요.
김병혁 지역 농산물을 직거래로 교류할 수 있는 방안들이 강구되면, 학교급식뿐만 아니라 사업장, 병원, 공공기관 등으로까지 직거래 망을 넓혀 나가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천규석 무엇보다도 먼저 조직된 노동자들, 노동운동 조직하고 연대가 되어야 합니다. 아까도 오늘 이 자리에 민주노총 같은 노동운동 쪽 관계자가 참석하지 못해서 퍽 아쉽다고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자리에 꼭 노동자와 농민이 함께 마주앉아서, 직거래를 매개로 한 실질적인 노-농 연대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송정복 민주노총 내에 작년에, 농업 관련 특위가 생긴 것으로 압니다. 그게 약 3개월 정도 운영되다가 다른 투쟁 사안들 때문에 지속되지 못했는데요. 이제 민주노총 내에서도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위한 다양한 의제들을 고민하고 있고, 전농과 함께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해 실천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토론회에서 민주노총 기획실장님이, 민주노총 차원에서 사내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하는 요구를 임단협 내용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계획이 있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물론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런 의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천규석 전농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요구를 하고 뒷받침을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천호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대구지역 본부 같은 경우에는 다른 지역보다 앞서, 지난 2004년 말, 사내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부 단위노조에서 단체교섭을 통해 이것을 실현시킨 것으로 압니다. 물론 아직 직거래 형태까지는 아닙니다만. 솔직히 전농은 직거래에는 자신도 없고 아직 잘 모르지만, 어쨌든 경북도연맹 같은 경우에는 내부에서 그런 얘기도 조금씩 나오고 하니까, 앞으로 연구를 하고 이런 논의에 적극 참여하면서 고민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웃음)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러나 아무튼 전농이 당면한 현안들과 관련해서 기존에 해오던 투쟁을 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이 농사도 짓고, 싸움도 하고, 거기다가 직거래 같은 상당히 전문적인 일까지 다 감당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지역에서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적 연대’가 준비되고 있으니 적극 참여하고 함께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농업을 살리는 것은 사회변혁운동이다
김병혁 한미 FTA 문제, 개정된 농지법에 관한 문제 같은, 우리 농업과 관련해 꼭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결국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아쉽습니다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씩 해주시지요.
서수녀 저는 고향이 농촌입니다. 그래서인지, 농토가 황폐화되고 농지가 줄어들고 마을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우리가 농업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과 함께 흙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예를 들면 교사들이 근교에 주말농장 같은 것을 마련해서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가꾼다거나 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전북의 예도 말씀하셨지만, 만약 농민들이 직접 학교급식에 농산물을 공급하게 된다면, 아이들이 자신들의 밥상을 마련해주는 농민들의 농장을 방문하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과 땅을 체험하도록 할 수 있겠지요.
또 교사들 가운데는 실제로 노후에 텃밭이라도 가꿀 요량으로 근교에 땅을 조금씩 사놓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것도 좀 조직적으로, 가령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처럼 추진해서, 농지가 다른 용도로 자꾸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농토를 지키기 위한 운동 차원에서 말이지요.
천호준 오늘 우리가 개정된 농지법과 농토 보전 문제를 다루지는 못했는데요. 아무튼 이게 지금 참 심각한 상황입니다. 현재 한국의 농지 가운데 50%가 농민 소유이고 50%는 비농민의 소유입니다. 거의 그쯤 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땅은 농업정책을 생각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인데요. 그런데 아마도 앞으로 10년이 채 안되어 약 70-80%는 비농민 소유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 정도가 되면 국가 전체, 또는 우리 경북 차원에서도, 농업정책이란 것을 제대로 수립하는 것이 아주 곤란해지게 됩니다.
근교 주말농장 말씀하셨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농토를 보전하는 쪽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말씀하신 대로 도시인이 개인적으로 땅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차원에서 집단화?조직화해야 합니다. 거기 참여한 개인들이 몇개 구좌로 참여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농업을 보전하기 위한 대안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효율성의 논리, 경제의 논리, 자본의 논리를 앞세우면 다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미봉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특히 이런 측면에서, 우리 농민들뿐만 아니라, 농업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크게 전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송정복 빚 때문에 자살하고 경찰폭력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막으려 했던 쌀비준이 엊그제 통과되었는데, 또다시 우리 앞에는 한미 FTA 문제가 닥쳤습니다. 이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의 생존권 차원에서 우리 모두 연대해서 대응해야겠고요. 앞으로 10년을 내다봤을 때 지금 추세대로라면 350만 농민이 170만, 150만 이렇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야 우리 농업, 농촌공동체를 더이상 운위하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농촌을 농촌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귀농운동본부가 있긴 하지만, 전사회적으로 귀농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는 더이상 농촌공동체와 농업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심각한 우려가 듭니다.
오늘 논의에서 ‘지역’과 ‘직거래’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논의였던 것 같은데요. 또 직거래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와 농민의 구체적인 연대라는 문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가 이런 직거래에 있어서 소비자 쪽, 예를 들면 노동자(노조) 쪽을 어떻게 설득하고 조직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의논이 못된 것 같습니다. 이건 그냥 당위성만 강조해서는 안될 일인 것 같고, 소비자, 특히 노동자(노조)들 쪽에서 볼 때에도 무언가 동기유발이 될 만한 요인이라고 할까요, 앞으로 만나고 설득하기 위한 논리가 세심하게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가능한 단위에서 비록 소규모라도 좀 가시적인 어떤 성과나 모델이 나와 준다면 훨씬 설득하고 조직하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지금 대구?경북 지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적 연대’가 좋은 결실을 맺어나간다면 다른 지역에도 상당히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아까 천호준 의장님께서 농가소득 문제가 결국은 농업회생의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직거래를 통해 전량구매, 적정가격 보장, 이 두가지만 실현된다면 분명히 소득을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충분한 수요자의 조직이 급선무이겠지만, 마찬가지로 생산자, 즉 농민들을 조직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신뢰를 얻는 것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소비자와 생산자를 조직화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논의가 후속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번 강기갑 의원께서 단식을 끝내면서 구상한 것 중 하나가,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전사회적 운동이었는데요. 현재 고민중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조직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저희도 전농과 민주노총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천규석《녹색평론》3-4월호에 실릴, 중국의 농학자이자 향촌운동가인 원 티에췬이라는 분과의 대담〈세계화와 중국농촌〉을 미리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비록 다른 나라 학자이지만, 제 생각과 같은 점이 아주 많아서 반가웠습니다.
특히 기업농은 서구 제국주의가 토착민들을 학살하고 추방해버림으로써 가능했던 생산양식이라는 점, 그래서 아시아의 나라들, 즉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한 제국주의의 배경을 갖지 않은 아시아의 나라들―물론 일본은 좀 예외입니다만―은 아예 기업농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안이 아니다라고 한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자, 제3세계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성립하는 것이 기업농이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면 기업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는데요.
그러니까 유일한 대안은 소농 공동체의 부활이라는 겁니다. 이 양반은 이것을 “향촌사회의 건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는, 이 향촌사회의 부활이 단순히 농업이나 생산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문명의 재건이자 새로운 담론의 재건, 그리고 사상의 재건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매우 중요한 발언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떻게든 직거래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농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소농 공동체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치의 문제이고, 그렇게 거창하기 말하기 전에 우리와 후대의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좌담에 참석한 분들께서도 이런 점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앞으로 함께 노력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녹색평론》의 독자들이 이러한 “문명, 담론, 사상의 재건”을 위한,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와 후손의 생존을 위한 문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고 실천에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병혁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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