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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이야기/농업정책

허물어진 빈 집 앞에 서 보았는가(김용택)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1.

* 이 글은 전태일기념사업회(http://chuntaeil.org/)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허물어진 빈 집 앞에 서 보았는가 

                 - 무너지는 농촌, 무너지는 나라 -

 

                                                                                                                  김용택(시인)



  한낮인데 날이 캄캄하다. 비가 오려나 보다. 산골인데도 매연과 섞인 안개가 앞산을 가리고 안개 속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비 오면 추워진다. 벌써 들은 비었다. 햇살이 밝고 환하게 쏟아질 때면, 빈들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빛이 마른 지푸라기에 떨어지고 바람은 억새들을 흔든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늦가을이면 어머니들은 작은 물이 흐르는 산골짜기 계곡에서 새우를 떴다. 무서리가 내리기 전 파란 풋호박을 넣고 끓인 새우 찌게는 얼마나 보기도 좋고 맛도 있었던가. 비라도 부슬부슬 오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동네 앞 작은방죽들을 품어 미꾸라지를 잡고 산골 빈 논에 물이 고인 곳을 가면 어찌나 많은 가재들이 나와 기어다니던지 금새 주전자 가득 가재를 주워(?) 담았다.


아! 억새가 눈이 부시게 흔들리고 털린 짚단들이 쓸쓸하게 서 있는 빈들에 서면 늘 가슴이 쓰라려 온다. 평생 태어난 곳에서 나는 선생을 하며 산다. 나는 내가 살던 아름다운 산천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가고 동무들이 떠나고 농촌이 무너지며 사람들의 마음이 무섭게 변해 가는 것을 보았다. 가슴 아프고 쓰라린 세월이었다. 생각하면 눈물나는 세월이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지난 몇 십 년을 떠올리며 나오는 눈물을 감출 길이 없다.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미꾸라지와 새우와 가재들과 물고기들과 무지개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노래하며 농사를 짓던 땅은 묵어 칡넝쿨이 덮어버렸다. 봄이면 파랗게 자라던 보리밭은 어디 갔는가. 여름날 이른 아침 소를 끌고 강을 건너던 농부들은 다 어디 갔는가.



“염병한다 나 혼자 어쩌라고 저런다냐?”


가을이 와도 따지 못한 감들은 버려진 채 썩어가고 어머니는 벌겋게 떨어진 알밤을 홀로 다 줍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운다. 알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줍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툭툭 알밤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염병헌다 시방, 나보고 어쩌라고, 나 혼자 어쩌라고 저런다냐?" 눈물을 흘린다. 이제 농촌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빈 들녘에 남아 개발과 보상이라는 희망만 안고 사는 농부들을 볼 때 나는 땅을 치고 싶다. 누가 저 정답고 푸근하고 정겨웠던 정자나무 밑을 황폐화 시켜버렸는가. 누가 사람들의 정을 저렇게 파헤쳐 버렸는가. 이제 돈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다 버리고 악을 쓰는 사람들을 만들어버렸는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을 주고 방을 내어 주던 게 우리네 인심이었다.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도 사람들은 돈을 받으려 든다. 돈이 안 되면 악을 쓰고, 돈이 되면 또 저렇게 악을 쓰도록 인심이 변해버렸는가.


나는 절망한다. 잘 사는 게 이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이건 아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세상이 이런 것이었다면, 나는 차라리 가난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그게 낫다. 가난해도 거긴 사람들이 있었다. 가난해도 거긴 인정이 있었고, 가난해도 체면이 있었으며, 가난해도 그 마을엔 늘 이웃으로 웃음이 넘나들었고 경우라는 게 있었다. 한마을에 태어나 그 마을에서 평생을 살며 이런 저런 일로 다투고 싸움을 했으나 굿 치고 나면 다 되었다.


마을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도둑질과 거짓말이었다.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은 그 사람 일생에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요즘처럼 이웃이, 이웃 동네 사람들이 이해득실을 따라 안면을 몰수하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다투진 않았다.



"30년 동안 백번도 넘게 다리 놓아준다고 했건만…"


문제는 나라였다. 이 놈의 나라, 이 놈의 나라가 우리들을 망쳤고, 이 땅의 지도자들과 정권에 빌붙어 '권력질'을 일삼는 지역의 유지들이 나라를 이렇게 망쳤다. 생각해 보아라.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마을 낮은 다리는 여름만 되면 늘 물에 잠겨 사람들이 며칠씩 오고 가지도 못한다. 그 다리를 30년 동안 백 번도 더 넘게 놓아 왔지만. 지금도 강을 건너는 다리는 감감하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군수 선거, 도의원, 군 의원들이 자기가 당선되면 다리를 놓아준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30년이 넘은 지금도 강을 건너는 다리는 놓을 기미가 없다. 또 선거가 돌아오니, 그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들이 허공에다 대고 표를 달라고 주먹질을 할 것이다.


지금 농촌은 개발에 미쳐 있다. 이게 나란가. 이게 정부가 있는 나란가. 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관광지 개발에 혈안이 되어 예산을 따오려는 사람들과 개발을 부추기는 건교부와 건설업자들의 광기에 휘말려 놀아난다. 여기도 관광지화한다 저기도 개발한다, 공장이 들어선다, 찻길이 난다고 현혹하고. 한 군에 몇 개씩 싸구려 축제가 판을 치며 군민들을 문화에 눈멀게 하고 피 땀흘려 내는 구렁이 알 같은 국민들의 혈세를 탕진한다. 이게 무슨 축제인가. 축제다운 축제가 어디 있는가. 늘어만 가는 ‘먹고 놀자’, ‘자기만의 축제’는 날이 갈수록 국민들을 천박하게 만든다.



"개발과 축제에 미친 나라…벚꽃 몇 그루만 만발해도 겁이 난다"


솔직히 나는 벚꽃 몇 그루만 만발해도 겁이 덜컥 난다. 저기다가 또 무슨 축제를 벌리면 어쩌지, 그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는 조바심과 걱정으로 꽃이 걱정인 것이다. 이 나라 산천에 흐드러지는 꽃이, 꽃이 아니라 걱정으로 보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 이 곳 저곳 펼쳐지는 개발의 청사진들은 휘황찬란하다. 그렇게 살아 온지 몇 몇 해던가.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강물은 곳곳을 파 헤쳐 죽어간다. 모든 국민들이 환경을 입에 달고 살아도 자기에게 이문이 없으면 그 어떤 짓도 하고 자기와 상관이 없으면 외면한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둑을 쌓으면 강바닥을 닥닥 긁어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다. 농민들의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작은 마을은 생각해 주지 않고 어마어마한 다리는 들을 건너가며 마을과 마을을 나누어버리고, 산을 건너는 다리는 마을의 균형을 깡그리 무시하며 놓아진다. 다리 발 하나만도 못하게 작은 마을은 다리발에 눌려 더욱 더 초라해지고 왜소해진다. 전 국토를 시멘트로 초토화시키며 입만 열면 환경이요. 생태요. 지속발전가능이다. 이 나라는 이제 토목공화국이 되어가고, 개발공사로 들어가는 논과 밭주인들은 보상에 눈독을 들여 눈이 멀어버린다.


모두 미쳐간다. 돈에 미쳐간다. 권력에 미쳐가고, 이문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인정사정 없다. 이 모두가 부패한 권력과 썩은 관료들과 건설업자들이 만들어 냈다. 포크레인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속에 더러운 정치자금이 오가고 관료들과 건설업자들이 이리저리 접대와 뇌물로 나라가 망해 간다. 부정과 부패가 고착화되고 일상화되고 권력화 되어 상식을 잡아먹고 합리적인 사고를 죽여버렸다. 이렇게 부정과 부패가 비리와 더러운 거래가 판을 치는데, 누가 이 나라에 투자를 하러 오겠는가. 뇌물이 아니면 그 어느 것 하나 안되는 뇌물공화국에 누가 투자를 하러 온단 말인가. 관광지를 만든다고 예산을 이리저리 다 해먹고 유치하기 짝이 없게 산과 강을 뜯어 고쳐 다시는 살아 날 수 없도록 생태계를 파괴해 놓고 생태하천이라 한다. 멀쩡한 자연을 뜯어고쳐 자연을 무참하게 파괴 해 가며 생태공원을 왜 만드는가. 가만히 두면 그냥 그게 생태 공원이 되는데 왜 파헤치는가. 앞도 뒤도 위도 아래도 체면을 팽개쳐버린 파렴치한들이 판을 친다.


수 십 년 간 그렇게 농민들을 위해 휘황찬란하게 펼쳐 온 농업정책은 다 무엇이었던가. 어떤 사람들을 배불렸던가. 수십 년 동안 농촌주택 개량에 퍼부은 돈이 얼마인가. 어떤 놈들이 그 돈으로 배가 불렀는가. 어떻게 정치를 했길래 돌아오는 농촌을 만든다고 수 천 억, 수 조원씩을 퍼부었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 이 나라에 온전한 농촌 마을 하나 보존하지 못했단 말인가. 가난한 농촌 마을을 들어가 보아라. 마을에 가장 성한 것은 시멘트 길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골에 그렇게나 넓은 포장 도로가 필요가 없는데도 길을 4차선으로 포장해 놓았다.



"나라에서 하라는대로 하면 틀림없이 망했다"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고 농촌이 서서히 붕괴되어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망해버린다는 것을 모르는 농민은 없다. 나라가 융자해 준 돈으로 농사일을 성공시킨 사람은 새마을 성공 사례 말고는 없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는 소를 잘 키우셨다. 아침 저녁으로 풀을 베어 소죽을 끓이고, 가을이면 산에서 풀을 베어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소를 먹였다. 방아를 찧은 보리겨와 쌀겨로 소를 살찌우셨다. 소를 키워 논을 사고 우리들을 가르쳤다. 아버지에게 소를 키우는 일은 대단한 사업이었다. 우리 집처럼 모든 동네 사람들이 집집이 소를 키웠다. 여름날이면 강변에 벌건 소들이 한가롭게 놀았다. 강변은 자연스러운 동네의 공동 목장이었다. 해가 지면 아이들은 누가 뭐라 안 해도 소를 집으로 데려왔다. 커다란 소들을 앞세운 아이들의 귀가 모습은 전형적인 농촌의 저물녘이었다. 소를 따라 사람들이 다 집으로 들어 왔다.


그러던 것이, 그 어느 때부턴가 집집이 소들이 늘어났다. 나라에서 축산 자금을 융자를 해준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소들이 늘어났다. 융자를 해 주면(!) 그 융자 돈에서 몇 프로씩을 자동적으로 떼어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만 배가 부르고 융자를 받아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소 값은 똥값이 되어갔다. 소 값이 똥값이 되어가면서 농촌은 망해가기 시작했다.


다 알겠지만, 그 때 그 무렵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새마을을 짊어지고 가면서 미국 소를 들여다가 시골에 팔았다. 평원의 넓은 초원을 달리던 소들이 좁은 산중에 갇히니, 소들은 강 건너 산을 넘어 갔다.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소를 찾아 깊은 산속을 울며 헤매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도둑놈들이다. 세상에, 그러고도 그들은 잘 살고 그 소를 키우던 농민들은 이렇게 나라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으며 살고 있다. 농촌의 어머니들을 보라. 같이 사는 아들이 있는가. 며느리가 있는가. 손자가 있는가. 다 도시로 빼앗기고 지금도 이렇게 살과 피와 뼈 같은 벼를 불태우며 울부짖는다.



"저물녘 소 몰고 강둑 따라 돌아오던 발걸음 다 어디 갔나?"


모든 농사가 그렇게 망해가면서 농촌은 겉잡을 수 없이 붕괴되어가기 시작했다. 새마을의 일사불란한 군대식 구호 속에 농촌이 파괴되어 간 것이다. 앞산 산비탈 밭에 감들은 얼마나 많았고, 품앗이로 밤을 새워 깍은 곶감으로 돈을 얼마나 벌었던가. 알밤은 또 어떠했는가. 앞산 산비탈 밭에 닥나무로 아버지는 또 돈을 벌었다. 닥나무가 어찌나 돈이 되었던지, 우리들이 보리갈이를 하다 작은 닥나무 한 그루만 꺾어지게 해도 앞산이 무너지는 고함소리를 들어야 했다. 닥나무 한 그루가 곳 돈이었다. 집에서 닭을 키우고, 구정물로 돼지를 키웠다. 그 돼지와 닭들이 아이들의 등록금이 되고 살림의 밑천이었다.


닭과 돼지와 소들이 모든 농촌집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나 소들이 좋아했던 강변 풀밭에 그 누구의 손길도 가지 않는다. 불볕 속에서도 산이, 강물이 흔들리게 웃어가며 콩을 심고 콩밭을 매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날이 저물면 강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싱싱한 발걸음들은 다 어디 갔는가. 콩밭도, 목화밭도, 밤도, 감도, 보리도, 밀도, 강물에 고기들도 다 사라졌다. 이제 쌀이 또 사라진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돈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의 곡식과 우리의 과일과 우리의 식구 같았던 집짐승들을 무시하고 내쫓고도 우리가 무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나라가 아니다. 농업정책은 정책이 아니었다. 10년 20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언발에 오줌 누기 식은 정책이 아니다. 그 좋은 머리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왜 몇 십 년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우리들에게는 왜 장기적인 계획이 아무 곳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권력만 잡으면, 돈이 모이는 곳에만 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한탕해서 평생을 먹고 살겠다는 이 썩은 정치세력을 바꾸어야 한다. 그 세력 속에 무사안일로 나라의 주인행세를 하는 썩은 공무원들을 골라내야 한다.


마흔 가구가 넘던 우리 마을이 다 비었다. 이제 겨우 13가구 30여명이 산다. 동네는 조용하고 적막하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고, 깊은 밤 들고양이들의 울음만 음산하다. 마을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이 사라진 마을들이 허다하다. 빈집들은 쓰러져간다.



"허물어진 빈 집 앞에 서 보았는가?"


아! 허물어진 빈 집 앞에 서 보았는지.

쓰러져 가는 기둥과 허물어진 흙벽과 무너지는 지붕 위로 서까래가 드러난 집 앞에 서서 옛날을 생각해 보았는지?

집도 없는 빈 집터가 텃밭이 된 채 시꺼먼 굴뚝 자국 옆에 도라지가 자라 꽃이 핀다. 소 막자리에서 메밀이 자라고, 부엌자리가 남았는데 부추가 자란다. 달이 뜬 밤, 달빛아래 빈 집터에 서서 울어는 보았는지. 이제 나락가마니 하나 뿔껑 들어 경운기에 올릴 사람이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봄만 되면 논에 못자리를 하고 모를 심어 벼를 가꾼다. 그리하여 그들의 피땀어린 벼가 길바닥에 버려진 것이다. 저곡가와 저임금을 들먹이기도 이제 미안하다. 몇 십 년 동안 신물이 나게 그 놈의 소리를 듣고 살았다.


1973년도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 시골 학교에 학생 수가 700여 명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나는 날마다 아이들과 강 길을 걷고 들길을 걸어 학교에 오갔다. 아침밥을 먹고 있으면 아이들이 우리 집 담 너머로 선생님을 불렀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오갔다. 즐겁고 재미있는 학교 길이었다. 오랜 세월 그 길을 걸었으나,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내 곁에서 점점 줄어들었다.


새학기가 시작 된 어느 날 나는 우리 교실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서서 선생으로만 20년이 넘게 걸어다녔던 그 강 길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 그런데 그 날 아침 나는 혼자 학교에 왔다는 것을 그 때야 알았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마을에서 아이들이 사라져버린단 말인가. 나는 아이들이 사라진 그 아름다운 강 길을 보며 울먹였다. 그렇게 학교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마을이 텅 비고 농촌이 망했다면 그 망한 밑천으로 그 누군가는 부자가 되어 배부른 곳이 있으리라.



"국민을 개떡으로 아는 나라…무엇이 달라졌나?"


서울과 시골 우리 집을 하루만에 오가면 나는 희한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서울과 우리 동네가 너무나 다른 나라 같은 것이다. 사! 람들이 호랑이 무서워 모여 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라를 이루어 모여 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라를 이루고 모여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잃어버린 나라는 머지않아 그 존재의 가치를 잃어 붕괴될 것이다.


아니 지금 우리들은 진즉 정신적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이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우리들을 한꺼번에 망치게 하리라는 불안감에 때로 엄습하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젊은이들은 이제 아예 장가를 들지 않으려 하고 시집을 가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 따위 나라에서 누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려들겠는가. 우리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말이다.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도 그 마을을 떠나 전주에 산다. 곧 내려 갈 것이다. 내려가 나는 다시 우리들의 남은 농촌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앨 때 이은 스레이트 지붕 같이 우중충한 마을에 나이 드신 어른들이 굽은 뼈를 일으키고 병든 몸으로 오늘도 나락을 널고 담는다. 언제 나라 믿고 살았더냐. 뼈가 휘게, 삭신이 문드러지게 평생 땅을 파며 살았다. 그러나 돌아 온 것은 늘 빚더미였다. 새벽 논두렁에 나가 땀과 이슬로 몸과 옷을 적시며 살아왔다. 그러나 다시 보아라! 수 십 년 동안 우리들을 위해 투자한 돈은 다 어디 갔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대로라면,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바꾸어져야 한다.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문화가 사회가 바꾸어져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비리와 부정과 부패가 국민들의 혈세를 자기 돈으로 알고 헛돈을 쓰는 이 땅의 모든 관료들을 혁신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안 된다. 22갠가 23갠가 되는 각 부를 재점검하라. 변화해 가는 세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 썩은 국가기관을 개혁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안 된다. 국민알기를 개떡으로 알고, 국민의 생각이 옳으면 오기를 부리고 뗑깡을 놓고 보복을 한다. 국가 기관이 하는 일을 비판하거나 대안을 내어놓으면 그 군은, 그 면은, 그 마을은 반드시 보복을 당한다. 예산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무지막지한 관료조직이었다. 지금도 그러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고 한번 나와 봐라.


경제 우위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아무런 경제성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값 싼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벼농사를 적극적으로 말린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논과 밭 알기를 강변 자갈돌보다 못하게 취급한다. 이 세상에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잘 사는 게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나?"


다시 말한다 이게 나라가 할 일인가. 이게 정책인가. 사실상 농민‧농업정책의 포기로 이렇게 모든 농산물을 외국에 의존하다가, 그러다가, 이 나라 모든 땅이 골프장이나, 공장 부지나 아파트나 도로가 되어있을 때 다른 나라에서 농산물을 가져 올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산단 말인가.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지금 같은 농민‧농업을 무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간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희망을 농사에서 찾게 해야 한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인간정신도, 우리들이 팽개친 행복도, 농촌에서 찾아야 한다. 아름다웠으나 사라진 작은 마을들의 농촌 공동체 정신 속에서 우리들은 오늘의 문제를 찾아 해결해야 한다. 빌딩들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서 우리들은 지금 행복한가.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세상을 비춘다고 우리들은 지금 그 불빛만큼 모두 행복한가. 행복의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나라는 부정과 부패로 혈세가 세고, 한치 앞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사회는 순간과 찰나를 모면하려는 퇴폐가 홍수를 이룬다. 이벤트로 나라를 이끌어가고, 이벤트를 무슨 정책으로 생각하는 관료와 정치집단들은 각성하고 모든 갈등을 부추기는 이 나라 모든 언론들도 대오 각성하라. 이 나라는 그 어느 집단의 나라도 아니다. 정치집단이나, 관료집단이나 언론집단들이 하는 짓을 보면 참으로 가소롭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도 그렇게는 유치하게, 속보이게, 자기를 그렇게 천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 지혜와 슬기를 모아 머리를 ! 맞대고 나라의 장기적인 계획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아름다운 국토와 아름다운 인정과 일과 몰이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삶의 활력으로 삼울 줄 알았던 농촌. 농민들의 삶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이 뒤틀리고 병든 이 썩어빠진 나라를 구하는 답을 찾아야 한다.


잘 사는 게 무엇인가. 행복한 게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인류정신이 무엇인가. 지금 세계는 전쟁과 테러와 자연의 재난과 재앙 속에 하루를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불안 속에 놓여 있다. 자원은 낭비되고, 하늘은 뚫려 빙하는 녹고, 종교는 타락하고, 강대국들의 욕심은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 가는 인류의 가난을 외면한다. 잘사는 것이 인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이라면 당장 잘사는 것을 거두어야 한다. 잘살다가 처참하게 함께 죽느니, 가난하게 함께 사는 것이 옳지 않은가. 진정한 인류애가 아름다운 금수강산인 이 한반도에서 싹트기를 나는 간절히 원한다.


끝이 없어서 결코 이룰 수 없는 부 대신에 가난을 돌보는 같이 사는 평등 정신을, 생명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건설 대신 생명을 자기 목숨처럼 생각하는 푸른 생명정신으로, 돈으로 세상을 고치려는 천박한 이기주의적인 탐욕과 오만 대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숨쉬는 평화의 정신이 강물처럼 넘치는 세상의 가치를 바꾸어가야 한다. 진리와 진실, 정직이 통하는 인간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류의 미래와 희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세상의 아픔과 아름다움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사는 작은 마을의 눈물겨운 인정을 노래해온 시인으로 고향에서 사는 것이 가슴아픈 고통의 세월이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나의 눈물이었다. 수 천년 동안 가꾸어 온 땅과 마음이 몇 십 년 사리에 무너지고 파괴되었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오늘도 해지는 빈들을 간다"


보아라! 사람들아! 저 빈 들판의 적막과 저 단풍 물 들어가는 산과 강을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 산천인가. 무엇하나 부러운 것 없을 것 같은 이 축복의 땅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자. 죽이지 말자. 무엇이 잘사는 것인가. 우리가 저 땅에 지금 무슨 욕된 짓들을 하는가. 저 아름다운 산천을 닮은 인정 넘치는 정겨운 사람들을 우리 어찌 우리들 속에서 몰아내고 죽이는가. 저 아름다운 산천을 외면하고 잘먹고 잘살다가 죽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도시의 아파트 한 동 한 라인에 사는 사람 숫자만큼도 저 작은 동네 사람들을 외면하고 우리가 잘살면 얼마나 잘살고 행복하면 또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산그늘이 내린다. 나는 산그늘을 좋아했다. 바람이 부는지 운동장으로 낙엽들이 굴러다닌다. 앞 산 아래 작은 마을에 불 때는 집이 있는지 연기가 오른다. 집으로 가고 싶다. 저 연기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희망의 신호가 되어야한다. 나는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지금 빈들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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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무 형식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을 오랫동안 가르치면 살아왔다. 몸도 마음도 초등학교 수준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른들이 하는 짓보다 그 나이가 내게 맞다는 생각에서다. 어른들이 이룬 것이 별로 없다. 나는 날마다 아이들에게 연필을 왜 그렇게 잡냐? 인사를 바르게 해라. 사람이 그렇게 고자질을 하면 안 된다. 복도에서 뛰지 마라. 밥을 왜 그렇게 먹냐? 숟가락을 바르게 잡아라. 이런 말들을 하며 거기다가 희망을 두고 살아서 나는 쪼잔하고 쩨쩨하다. 이 글은 부아가 치밀어 쓴 글이다. 정제되지 못한 글임을 밝혀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또 내 진심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부아가 나면 무슨 짓인들,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글을 쓰다가 내가 내게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우리가 살아 온, 살고 있는, 갈아 갈 일을 생각하니, 이 나라 구석구석이 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눈물이 나왔다.

일제 식민지와 원통한 분단과 오랜 군부독재, 그리고 썩을 대로 썩은 정치 집단들에 의한 동서 갈등과 낡을 대로 낡은 이념갈등이 우리의 정신을 닦을 수 없도록 더럽게 좀먹어 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너도 어찌 그리 쪼잖한 생각들을 하는지, 놀랍다. 쭈그러들고 오그라진 이 마음들을 펼 때가 되었다. 이 두꺼운 구각을 깨트리고 새로운 생각을 갖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누가 이런 나라를 오래오래 좋아 해 주겠는가. 싸울 것을 갖고 싸워라.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던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 사람답게 한번 잘 살아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이다.

 

2005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