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포기 정책 뒤엔 관료와 투기꾼 있다"
농업정책의 문제점과 대안
<프레시안> 2005-06-14 오전 9:10:39
<프레시안>은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건강한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연석회의(농지제도 연석회의)'와 공동으로 최근 농지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통해 촉발된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공론화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번에는 1965년 귀농한 뒤 40년 가까이 농민운동과 공동체운동을 벌여온 대구 한살림 천규석 선생이 최근의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귀한 글을 보내왔다. 천규석 선생은 규모화 영농 정책의 일환으로 1990년대 중반 '농지 소유 상한제' 철폐부터 시작돼 최근의 농지법 개정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농업정책의 배경에는 농업 관료들의 '조직 이기주의'와 농지 개발 이익 환수를 노리는 투기꾼들의 시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천규석 선생은 최근의 농지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낮은 농산물 가격 구조를 유지하는 개방 농정 시대에 농업 임대 소득을 위해 농지를 사는 어리석은 도시 자본가는 아무도 없다"며 "지금 제도 아래서도 가족의 위장 전입을 통한 불법적 농지 구입으로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는데 농지법까지 개정되면 대한민국의 온 농토가 투기장 화되고 그 파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편집자.
비극의 씨앗은 농지 소유 상한제 폐지부터 시작
우리 농업과 농민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 대답은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 문제, 이농으로 인한 농촌 공동화 문제, 농사를 계속 지어갈 영농 후계자가 없는 문제 등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농업 문제들의 근본에는 농산물의 수입 개방과 그에 대응하여 우리 농업을 축소ㆍ포기하겠다는 당국의 농업 정책이 깔려있다.
물론 이 땅의 농정이 공식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우리 농업을 축소 또는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적은 없다. 농업 재정의 예산 면에서 본다면 농업 축소 아닌 확대 정책으로 볼 수도 있다. 농정 당국은 농산물의 수입 개방에 대응하여 특히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 이후 우리 농산물의 시장 경쟁력을 높인다며 영농 자금과 농지 구입 자금 등을 농촌에 어쩌다 남은 비교적 젊은 농민들에게만 선택적, 집중적으로 지원하며 소농 경작에서 벗어나 대농이나 기업농이 되라고 끊임없이 부추기는 이른바 규모화의 농정을 펴왔다.
그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예가 1949년 농지개혁 이후부터 1가구당 3㏊(9천평)이하로 제한했던 농지 소유 상한제를 1996년에 폐지한 것이다. 농지 개혁 당시에는 북한의 토지 국유화와 무상 분배에 비해 불평등ㆍ불철저하다는 비판이 많았던 남한의 농지 제도였었다. 하지만 그 주체가 국가든 개인이든 토지의 독점을 민주적이라 할 수 없다면 소유 상한제 아래서의 남한의 사유화가 북한의 전면적 토지 국유화보다 오히려 민주적인 자영농 제도였었다.
이런 민주적 원칙의 토지제도는 1993년의 이른바 UR협상의 타결 뒤 우리 농업도 규모화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1994년에 농업 진흥 지역 안은 10정보로, 이 지역 밖은 5정보로 늘리는 것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6년 1월에는 농업 진흥 지역 안의 농지 소유 상한제는 아예 철폐했고, 5정보 이하로 제한했던 이 지역 밖의 소유 제한도 2003년 1월에는 마침내 폐지하고 말았다.
ⓒ농지제도 연석회의 |
관료들의 '조직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대농 지원 정책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키우기의 농정이 본격적으로 시행 된 지도 이미 10년을 넘겼다. 강산은 정말 몰라보게 아파트 공화국, 도로 공화국으로 파괴되었건만 우리 농업은 규모화의 농정 결과 국제 경쟁력이 높아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축소되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땅 넓은 다른 농업국과 경지의 규모화로 경쟁하여 이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농정이 규모화의 경쟁력 농정을 줄기차게 내세우며 대농 지원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빌미삼아 예산을 확대시키고 기득권을 확장하기 위한 조직 이기주의일 것이다.
그것은 소농을 몰아낸 지금의 우리 농촌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알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이 땅의 역대 정부 사람들이 밥 먹고 눈 뜨면 하는 일이 굴삭기로 산 깎아 그 흙으로 문전옥답 깔아뭉개어 공단과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배고픔과 가난을 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아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특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참상은 무슨 돈을 어디서 어떻게 긁어모았는지 어떤 태산준령이나 돌 바위산도 가리지 않고 까부셔서 민중의 생명이고 한이었던 저 들판을 거대한 뚝길로 묻어버리거나 철골 콘크리트로 다리발을 박아 끝도 없이 이어가는 길 닦기이다.
서울 공화국은 수도권 공화국으로 팽창하다 마침내 폭발하여 전국토를 도로 공화국으로, 아니 전 국토가 한국도로공사의 공화국으로 완전하게 점령 파괴당하고 만 것이다. 어쩌다가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저 들판의 농사가 아니라 들판을 파괴하는 자동차와 그 도로가 되었다. 자동차 수출해서 그 돈으로 쌀 사먹고, 아파트와 공단과 도로에 편입된 농토값을 보상받아 땅 투기하고 빌딩지어야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토지투기와 파괴를 합법화해 줄 농지법 개악
이 정권의 땅과 바다의 파괴정책은 마침내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 유권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한 헌법 제121조 1항의 경자유전과 소작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쪽으로 농지법의 근간까지 바꾸어 농업의 완전 포기로 나가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해(2004) 6월에 농업기반공사의 영농 규모화 사업 담당 기관이나 새로 설립을 검토 중인 농지 은행을 통해 농지를 농업 생산자에게 5년 이상 임대하는 조건으로 도시자본의 농지 소유를 전면적이고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농지법 개정 법률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아직은 개정이 보류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라지만 6월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는 농림부가 기어이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농지법 개정의 핵심은 농지은행 설립과 그 은행을 통해 5년 이상으로 농민에게 임대하는 조건 등의 외피를 쓰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헌법상의 경자유전에 반하여 도시자본의 농지 잠식과 독식을 허용하는데 있다. 농지법이 이렇게 개악될 경우 도시 자본의 농지 독점과 그에 따른 봉건적 소작제의 부활도 크게 우려할 일이지만 그보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도시 자본에 의한 농지 파괴의 전면적 합법화 문제다.
농산물의 전면적 수입개방으로 언제나 낮은 농산물 가격 구조를 유지해가는 개방 농정 시대에 농업 임대 소득을 위해 농지를 사는 멍청한 도시 자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구입할 수 없는 경자유전 원칙의 농지법 아래서도 가족의 위장 전입 등을 통한 불법적 농지 구입으로 이 땅의 고위 공직자들이 임용 검증 과정에서 또는 재직 중에 줄줄이 낙마하여 창피를 당하는 예에서 보듯이 마음만 먹으면 도시인도 농지를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실제로 돈 될 만한 농지의 대부분은 이미 도시인에게 다 넘어가 있다. 그러나 도시인이 소유한 그 땅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고 모두 알다시피 언젠가 불어 닥칠 개발이나 투기바람에 대비해서다. 그러므로 도시 자본의 전면적 농지 소유의 허용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농지법 개정은 우리 농토를 지키고 농업을 살리는 것과는 반대로 대한민국의 온 농토를 모두 투기장화 시키고 그 파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농림당국은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비 농업인이 구입한 농지에 대해서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부담금을 물리는 전용 부담금제를 실시하고 농지 개발 때 각종 세금을 통해 개발 이익을 환수 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렇게 훌륭한 투기억제 장치가 작동되고 있는데도 왜 투기꾼들은 여전히 설쳐대고 심지어 고위직 공직자들까지 끼어들었다가 낙마의 불명예를 연출하고 있는가?
개발 이익의 환수가 말처럼 실현될 리도 없겠지만 만일 제대로 실현되어 도시 자본이 농지 구매에서 얻는 이익이 쥐꼬리만한 농업 임대 소득뿐이라면 어떤 도시인이 우리 농업과 농지를 지키기 위해 그 엄청난 목돈을 투자 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농지 제도 개정은 법의 본뜻이 제대로 실현될 경우에는 이미 농촌에 왔던 도시 자본도 곧 떠나버릴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도시 투기 자본의 배만 불리고 우리 농업과 농토의 피폐만 더 가속화시킬 뿐이다.
농지법 개선은 필요하다
원인이야 당국의 개방 농정ㆍ농업 포기 정책에 있지만 현실적으로 농사를 계속 지을 젊은 영농 후계자가 거의 없고 도시 자본의 농지 구입이나 상속 등으로 이미 상당히 많은 부재 지주들의 농지 임대차의 관행화로 헌법상의 경자유전과 소작 금지가 이미 사문화 된 마당에서 현실에 맞는 농지법의 개정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그 개정의 방향과 목표는 아무도 짓지 않으려는 농사를 계속 짓게 하고 농지의 전용과 파괴를 부추기는 대신 그것을 보전하고 지켜가는 방향으로의 개선이라야 한다.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 줄 농지법의 개선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나는 농산물의 수입 개방과 그에 대응한다는 전업농 또는 기업농의 육성 지원 정책은 말이 좋아 농업 정책이지 사실은 농업 포기 정책의 다른 표현이라고 앞에서도 말했다. 우리 농민이 아무리 영농 규모를 키워봤자 개발과 투기로 계속 올라가고 있는 농지 값과 농기계 값, 그리고 인건비 등으로 땅값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싼 미국과 사회주의 국가로 땅값은 없고 낮은 소작료(임대료)만 있는 중국이나 기타 인건비가 싼 나라들과의 규모면에서의 경쟁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농정이 우리농업의 규모화로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은 그냥 손놓고 있으면서 예산을 따먹을 수는 없으니까 무엇인가 하는 시늉으로 살아남겠다는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비난과 오해로부터 벗어나길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의 농지법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시장개방에 의한 저농산물 가격구조 밑에서 농사만 지어 이미 개발과 투기의 대상이 되고만 고가의 농지를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당국이 장기 저리의 농지 구입 자금을 빌려줘서 땅을 사게 해도 그 땅 값이 오른 뒤 그 땅을 팔아서 그 농지 구입 자금을 상환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순전히 농사 소득으로 그것을 갚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농업 여건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농을 육성하는 방법은 농지 구입 자금의 집중적 지원으로 농지를 대규모로 사유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돈으로 농지 은행 등과 같은 농업 기구를 통해 농지를 구입해서 그 농지를 아주 낮은 임대료로 임대해주거나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방법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건비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싸고 농산물 원가에서 농지 값의 비중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조금인 중국 쌀과 우리 쌀의 가격 격차를 줄일 방법이 달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농사를 모두가 기피하는 이런 풍토에서도 드물게나마 자신의 체질적 적합성과 생태적 신념에 따라 귀농을 뜻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젊은이들이 자기 뜻을 현실화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다. 농사 기술도 필요하고 농기계나 농업 시설 등의 구입을 위한 영농 자금도 만만치 않지만, 가장 높은 장벽은 농지 구입비다. 물론 도시 자본들이 이미 구입해서 방치한 묵은 농지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런 농지를 임차하여 장기적인 영농계획을 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이런 처지의 땅 없는 귀농자를 위해서도 땅을 많이 필요로 하는 기업농을 위해서도 농지은행 제도의 도입은 오히려 만시지탄이다. 하지만 그 농지은행의 농지 구입 자금을 5년이상 농민에게 임대한 이후에는 매매와 이용을 자유화하겠다는 유인 조건으로 도시의 개인 자본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은 앞서 지적처럼 우리 농업과 농지의 파괴만 오히려 가속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우리 농업과 농지를 지키고 살리기를 위한 농지은행제도라면 그 운용 자금을 정부재정으로 충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럴 경우 그런 재정 확보의 어려움을 내세우겠지만, 글쎄 진정으로 우리 농업과 농지를 지킬 마음만 있다면 그런 재정 확보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당국자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지 재정이 없는 정부는 없다.
농업기반공사에서 65세 이상의 농민의 우량 농지를 양도할 경우 이양 보조금을 주거나 기타 부재지주의 우량농지도 장기 임대할 경우 임대료를 미리 목돈으로 주는 제도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제도보다는 정부 재정으로 운용하는 농지은행을 통해 고령으로 은퇴하는 농민의 농지에 정당한 값을 치러 주고 (빚만 지고 떠나는 농민들의 유일한 재산이자 퇴직금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입하여 기업농과 귀농자에게 저율 임대 또는 무상 임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 될 것이다.
농지소유 상한제는 재도입되어야 한다
이런 농지은행제도와 함께 반드시 재도입되어야 할 토지 제도는 토지소유상한제이다. 이것은 앞에서 본대로 1949년 농지개혁이후 1996년까지 있던 제도이다. 영농의 면적규모화로 시장경쟁력을 높인다며 이 소유상한제를 폐지한지 올해로 10년째 접어들었지만 기대한대로 농산물의 시장경쟁력은 전혀 높아지지 않았고 농지의 소수인에게로 집중도는 확실히 높아졌다.
토지의 소수인 집중은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남발하는 각종 개발 정책에 따른 땅값 폭등으로 고위 공직자들의 과거행적 검증에서 드러났듯이 그 재산을 몇 십, 몇 백 억대로 불려주는 투기의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거 때마다 또는 정권 유지와 인기 차원에서 각종 개발 공약으로 토지 투기를 오히려 조장해 놓고 그 투기를 잡는다는 구실로 실거래가에 따른 부동산 보유세와 매매 때의 세금 등 각종 세수의 증대를 위한 구실만 새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고도 이 땅에 민주주의가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토지 소유 상한제를 반드시 재도입해야 한다. 소유 상한제 폐지는 이번에 개악을 시도중인 비농민 도시자본의 농지 소유 허용보다 더 반민주적인 개악이었다.
과거에는 토지에서 얻는 소득이 주로 농업 소득이었기 때문에 농지에만 소유상한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심지어 농민조차 농업 소득만을 위해 땅을 사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개발 이익이나 그 파급효과로 지가 상승을 기대하고 땅을 산다. 그러므로 지금의 토지소유 상한제는 산지를 포함한 모든 땅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내가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내 고향에 있는 수려한 준산들과 큰 산들의 대부분은 모 재벌의 소유라고 한다.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영덕군 병곡면의 아름다운 경치의 칠보산에다 개인 수목원을 조성하고 있는 사실로 보아 도시 자본의 토지 독점 소문은 아마 헛소문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공유된 아름다운 경치이지만, 그것이 개인이나 사기업에 독점되고 있는 한, 아니 국가에 독점되어있다 해도 지금과 같은 개발의 시대가 계속되는 한 그 산들도 언젠가는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괴되어 만인의 눈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빼앗아갈 것이고 우리 마음에는 정서적 상처를 남길 것이다.
우리의 농민 농업(소농)을 지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도 토지 파괴와 독점은 중단시켜야 한다. 그러나 생명 자원과 지속적-생태적으로 공존할 덕성을 가진 인간 공동체는 이미 철저히 붕괴되고 없다. 사유의 신성화 시대에서 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땅의 전면적 사유화보다는 농지의 일부나마 많은 사람들의 감시와 통제를 받을 수 있는 공공의 소유로 해두는 것밖에 더 좋은 농지 보존방법이 현재로서는 달리 없다.
영농의 규모화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면 1949년 당시의 3㏊보다 훨씬 높여 10㏊(3만평)로 높여서라도 상한제는 두어야한다. 설사 30㏊로 높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상한제도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국가 재정으로 비축한 농지은행의 농경지 임대료도 다음과 같이 차등화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1가구당 소유상한제가 10㏊로 제정될 경우 그 농지소유 상한을 다 채운 농민이 보다 대규모의 기업농을 경영하기 위해 농지를 임차할 경우에는 저율의 임대료를 받는다. 그러나 10㏊의 소유상한 농지면적에 미달하거나 농지가 없는 순 소작농일 경우에는 그 임대료를 소유상한 면적만큼 받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5㏊ 농지 소유 농민에게는 소유 상한 한도인 나머지 5㏊까지를, 농지가 하나도 없는 농민에게는 소유 상한 면적인 10㏊까지의 농지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중국 등의 저가 수입 농산물로부터 우리 농업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는 길이고 특히 소농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농민 농업 즉 소농은 시장 세계화 시대에 버리고 갈 쓰레기가 아니고 파국으로 직행중인 시장 세계화의 다음 시대를 기약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대안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다. 국가에게든 개인에게든 땅이 독점된 나라치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민주주의의 첫 걸음은 토지의 독점을 막는 제도로부터 출발한다. 비농민 도시자본의 전면적 농지소유로 토지의 투기와 파괴를 합법화해주는 농지법의 개악 행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천규석/농민ㆍ대구 한살림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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