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리선녀 이야기/에코페미니즘

“부모 이혼 뒤 훨씬 더 행복해졌어요” /미디어 다음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2.

<미디어다음> 2006.09.12 18:42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060912184212236&cp=m_daum

 

 

“부모 이혼 뒤 훨씬 더 행복해졌어요”

 


 


프랑스의 ‘결손가정’ 출신 여성 프레데릭 바부.
예쁜 물건에 관심 많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프랑스 여성 프레데릭 바부(21·사진).

1년 전 집에서 독립해 현재 파리 4구에 있는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유년시절 ‘결손가정’의 아이였다. 일곱 살 때 부모가 이혼했던 것.

하지만 부모의 이혼에 대한 그의 기억은 다소 뜻밖이다. 그는 “부모가 이혼하기 전 4년 동안 끊임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봤다”며 이렇게 말한다.

“난 부모가 이혼한 뒤에 훨씬 더 행복해졌어요. 그 전에는 매일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항상 우울했거든요.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헤어진 뒤에는 안정을 되찾았죠. 엄마와 단둘이 지내면서 편안하기도 했고요.”

지난 주말(현지시간) 바부를 비롯해 이른바 ‘결손가정’에서 자랐거나 자라고 있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만났다. “부모의 이혼을 한 번도 나쁜 일이라고 여겨본 적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부모 이혼, 나쁜 일이라 여긴 적 없어요”
이복형제와는 친구처럼 ‘절친’…“오누이처럼 지내요”


바부는 외동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형제’들이 있다. 우선, 아버지가 이혼한 뒤 다시 결혼해 낳은 두 명의 이복형제들이 있다. 바부는 “동생들을 만나면 항상 즐겁다”며 “동생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바부에게는 또 다른 ‘형제’들도 있다. 바로, 그의 어머니와 동거하고 있는 ‘아저씨’ 니꼴라의 아들들이다. 모두 3명인 이들은 이복형제는 아니지만, 그만큼 가까운 사이다. 바부는 “이들과 친오누이처럼 지낸다”고 했다.


“친오누이처럼 지낸다”는 바부와 프레데릭(오른쪽). 프레데릭은 바부의 어머니와 동거하는 ‘아저씨’ 니꼴라의 아들이다.
바부는 특히 니꼴라 아저씨의 막내아들 프레데릭(17·사진)과 친하다. 이름도 같고 또래이기 때문에 친구처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바부는 다소 복잡해 보이기도 하는 프레데릭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정리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프레데릭의 아버지와 내 엄마가 함께 살고 있는 거죠. 프레데릭의 아빠, 엄마도 우리 아빠, 엄마처럼 이혼한 것이고요. 우리는 그런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아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거든요.”

프레데릭 역시 “그저 바부라는 누나가 생겨 좋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프레데릭은 이혼의 단점을 하나 꼽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이혼의 단점은 바로 ‘거리 문제’.

지난해까지 어머니와 지내다가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프레데릭은 주말마다 어머니를 보기 위해 왕복 3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유일하게 힘든 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을 나쁜 일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이혼 전에 아빠, 엄마가 매일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러면서도 같이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프레데릭의 말이다.

부모 이혼할 때의 여러 가지 ‘장점’들?
“거부감? 왜 가족사를 말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죠?”



줄리(왼쪽)와 이복동생 에브. 줄리는 부모가 이혼할 때의 여러 가지 장점들을 열거했다.
바부와 프레데릭의 사례처럼 프랑스에서는 부모의 이혼에 따라 새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새 형제자매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고등학생 줄리(18·사진)와 중학생 에브(11·사진)도 그런 경우다.

줄리와 에브는 이복자매다. 줄리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첫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뒤 프랑스로 건너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두 번째 결혼에서 줄리와 다른 한 명의 딸을 낳은 그의 아버지는 이후 세 번째 결혼을 하고는 에브를 낳았다. 줄리의 아버지는 요즘 유명잡지 편집장인 에브의 어머니와 다시 이혼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에브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튼 언니들이 생겨 즐겁다”며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반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이혼한 부모와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것.

줄리는 한술 더 뜬다. 그는 부모가 이혼할 때의 여러 가지 장점들을 열거했다. “우선, 내가 가서 지낼 수 있는 집이 세 채가 돼요. 엄마 집, 아빠 집, 에브 집. 용돈도 여러 군데서 받을 수 있지요. 또 가족이 많아지니 항상 든든해요”

에브의 엄마는 앞으로도 자신의 새엄마이고, 에브는 앞으로도 자신의 동생이라고 얘기하는 줄리는 “우린 언제나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가족사를 타인에게 말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거부감이요? 제 가족은 아주 평범한 프랑스의 한 가정일 뿐이에요. 약간 복잡할 뿐이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이혼과 재혼에 익숙했어요. 그리고 부모의 이혼이 나쁜 일도 아닌데 왜 가족사를 말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나요?”

이혼가정 자녀 겪을 경제적 어려움 정부가 해결
“안정되게 살 수 있다면, 이혼은 온 가족에 필요한 일”



유년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져 충격을 받았다는 다비드. 하지만 그는 “아빠가 이혼을 했다면, 충격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모의 이혼과 관련해 불행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현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다비드(21)가 바로 그런 경우. 그는 가정환경 때문에 유년시절에 불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의 이혼 때문은 아니다.

“여섯 살 때 여름휴가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사라졌어요. 큰 충격이었죠. 그 뒤 10년 만에 아버지가 나타났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당시에 애인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만약 아버지가 그때 이혼을 했다면, 그렇게 충격을 받진 않았을 거예요.”

이제 주말마다 아버지를 만나는 다비드는 여느 프랑스 젊은이들처럼 “이혼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싫다면 굳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빠가 사라졌기 때문이지, 아빠가 엄마와 헤어졌기 때문이 아니거든요.”

이같이 프랑스 젊은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부모 이혼에 별 충격을 받지 않는 데에는 자칫 이혼 가정의 자녀들이 겪을 수도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는 덕분이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뒤 스스로 자신의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는 바부는 “실업수당과 주택보조금 등을 받아 집세를 해결하는데, 만약 정부에서 주는 이런 혜택이 없었다면 감히 독립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줄리 역시 “부모 이혼 뒤에, 비록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안정적인 생활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끔 맥도널드 같은 곳에서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는 “부모 이혼 덕분에 독립심을 기를 수도 있었다”며 웃기도 했다.


부모의 이혼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프랑스 젊은이들. 왼쪽부터 바부, 줄리, 다비드, 신티아. 신티아는 “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면, 이혼이야말로 온 가족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고1 학생 신티아(16)의 말로 마무리됐다. “프랑스에서 세 번 이혼하고 세 번 재혼하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일”이라고 운을 뗀 신티아는 이같이 말했다.

“우리에게 부모의 이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고, 이혼 덕분에 부모와 자식이 모두 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면, 이혼이야말로 온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글, 사진=김미소 프랑스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