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7-08-25 11:32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30172&ar_seq=2
도시에서 온 촌놈, 우프 매력에 빠지다 | |
[프랑스 우프(WWOOF) 체험기]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또 다른 방식' | |
이현준(lhjoon) 기자 |
▲ 세계우프협회 웹사이트 |
ⓒ http://www.wwoof.org |
그래서 이번 여름에 계획한 여행의 테마는 유럽국가에서의 농촌체험으로 정하고, 열심히 팜스테이(Farmstay) 정보를 찾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팜스테이 정보는 호텔보다 저렴한 숙박료를 내고 시골에서 잠을 자는 숙박정보였다.
유럽에서의 'Farmstay'라는 용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농촌체험과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던 중 '우프(WWOOF)'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7월 초 프랑스의 한 농가에서 보낸 나의 우프 체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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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게 된 프랑스에는 우프협회가 없는 나라이다. 이런 경우에는 세계우프협회 홈페이지의 'WWOOF Independents' 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면 우프협회가 있는 회원국 이외의 56개 국가의 농가 목록을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다.
'우프 농가'와의 첫 만남
나의 농가 선정은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농가 목록에서 5개 농가를 선정하여 각각 나의 소개와 농가에서 경험하고 싶은 일, 체류 희망기간 등을 적어 이메일을 보낸 다음날 두 곳에서 회신이 왔다.
한 곳은 현재 농가 주인이 해외에 있으니 전화연락을 해보라는 내용이었고, 한 곳은 자신의 농가와 유기농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소개하는 글과 함께 자신의 농장 운영방식이 마음에 든다면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농가에 바로 우퍼(WWOOFer)로서의 참가의사를 밝히고 3일 뒤 파리로 향했다(참고로 나는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농가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베르나이(Bernay)라는 곳에 있었다. 프랑스로 출발하기 전 내가 파리에서 탈 기차 시간을 미리 알려 약속을 해두었고, 도착시각에 맞추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온 농장주 가브리엘씨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의 농장은 그곳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에 있었다. 우리의 읍내와 같은 성격인 베르나이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도 없고, 가까이 구멍가게도 없으며, 자전거를 타고 몇 분은 가야 옆집이 나오는, 매우 고요해 보이는 곳이었다.
▲ 내가 생활한 농가 주변의 모습. 아릅다움과 함께 적막함이 느껴지기도... |
ⓒ 이현준 |
아무래도 첫 만남에는 어색함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같이 밥 먹고, 같은 데서 자고, 같이 일하니 그러한 어색함이 사라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 중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대부분 영어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
미국인 친구인 패트릭의 영어는 역시 본토발음(?)이라서 그런지 수험영어에만 익숙한 나에게는 이해하기에 너무 빨랐지만, 다행히도 패트릭이 유창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에 역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나와 무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도시에서 온 촌놈
가브리엘씨의 농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채소와 잼을 만들기 위한 과일 등을 재배한다. 그리고 젓소 5마리를 키우는데, 그 중 2마리는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우유를 생산해낸다. 이 우유는 일부는 마시고 나머지로는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든다. 그리고 추가로 개, 거위, 닭 등의 가축을 키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열매를 수확하는 일, 밭을 관리하는 일, 매일 짠 우유를 관리하는 일, 그리고 가축을 먹이는 일이었다.
▲ 매일 우리에게 신선한 우유를 공급해 주었던 고마운 젖소들 |
ⓒ 이현준 |
▲ 오전 8시 기상 후 어린 소에게 우유를 먹이고, 우유 짜는 일을 돕고, 밭에 나가 채소를 딴다.
▲ 오전 10시 아침식사
▲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날 지시받은 일을 한다.
▲ 오후 4시 점심 식사 후 저녁 7시 반까지 휴식
▲ 저녁 7시 반부터 두 번째 우유 짜는 일을 돕고, 낮에 하고 남은 일을 하거나 정리 작업을 한다.
▲ 밤 9시경 저녁식사를 하면 하루가 끝이 난다.
그날 해야 할 일은 주로 아침식사 때 가브리엘씨가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오늘의 할 일을 전달해 들었다. 우유를 짜고, 짠 우유를 통에 담아 보관하고, 새 요구르트 만드는 일을 돕고, 숙성과정의 치즈를 관리하는 등의 일은 매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며, 주로 아침식사 전과 저녁식사 전에 이루어졌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주로 밭을 새로 갈거나 잡초를 뽑고, 겨울에 소에게 먹일 건초를 준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오늘 어떤 일이 하고 싶으면 농장주에게 말을 해서 정할 수도 있다. 특별히 오늘 해야 할 일이 없는 날은 알아서 일을 찾아 하기도 한다. 제일 만만한 것이 잡초 뽑기이고, 농장 일 경험이 많은 친구는 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할 곳을 찾아 스스로 하기도 하고, 우퍼들의 숙소를 말끔히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나도 어느 날은 밭일이 너무 하기가 싫어, 아마 청소한 지 몇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우리 숙소의 욕실 및 화장실을 청소하기도 하였다.
▲ 오후 일과가 끝난 후 다른 우퍼들이 숙소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
ⓒ 이현준 |
반면에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일을 잘했다. 캐나다 친구는 원래 자기 집도 농업을 하는 농촌총각이었고, 다른 두 친구도 몸을 움직여 일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들이었다.
염소우리 안에 염소 똥이 잔뜩 붙은 돌덩이들을 치울 때, 나는 장갑이 필요하겠다며 장갑을 찾는데, 자기가 그냥 옮기겠다며 묵묵히 돌덩이를 나르던 믿음직한 독일처자 도미니크, 멋들어진 레이번 선글라스를 쓰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 지루한 잡초 뽑기를 열심히도 하던 패트릭, 그들도 이곳이 오기 전에는 도시에서 살던 이들이지만 나처럼 육체노동을 대하며 어색해하거나 낯설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 나는 이 농장의 우퍼들 중 제일 일 못하고 게으름 피우는 우퍼였을지 모르겠다.
패트릭이 나에게 말했다. 농촌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덕분에 좋은 자연환경과 단순한 생활을 즐길 수 있어 자신에겐 휴식과 다름없다고. 농장에서 생활한 지 3∼4일쯤 되면서부터 똑같은 하루 일과의 반복에 벌써부터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나는 단순한 생활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도시생활에 중독되어 있었나 보다. 도시 촌놈이라는 말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아침도 빵·점심도 빵... 하지만 신선한 우유와 요구르트가 있기에
식사에 대한 부분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우선 위의 하루일과에서 말했듯이 식사 시간이 이상하다. 그리고 식사 메뉴 또한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 농가에서는 대부분 농장에서 생산된 것만을 재료로 하여 식사를 한다.
아침과 점심의 메뉴는 똑같다. 테이블 위에는 집에서 구운 빵과 쨈, 오트밀, 그리고 치즈가 항상 놓여있다. 식사시간이 되면 냉장고에서 우유와 요구르트, 버터를 꺼내오고, 차나 커피를 끓이면 식사준비 끝.
젖소에게서 막 짠 우유를 마실 때 느껴지는 그 진한 맛과 신선함은 이번 우프 경험에서 내가 가장 만족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빵과 치즈, 쨈, 버터를 몇 조각 먹고, 요구르트를 대접에 담아 오트밀이나 잼을 섞어 함께 먹으면 식사가 끝이 난다.
▲ 아침과 점심식사 때의 테이블 모습 |
ⓒ 이현준 |
저녁식사는 아침, 점심과는 다르게 메인 메뉴가 한 가지 나왔다. 우선 채소샐러드를 한 접시씩 먹은 뒤, 치즈와 여러 가지 채소를 함께 데워 접시에 담은 메뉴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김치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여행을 떠날 때 가져간 튜브 고추장을 식사가 끝난 뒤 손가락에 살짝 짜 먹는 것으로 입안의 허전함을 달랬다.
우프에서는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여 함께 먹는 것도 즐거운 시간일 수 있다. 함께 일하는 캐나다인이 채식주의자였기에 우리의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지 못했지만, 그가 떠난 후 내가 가지고 간 카레를 만들어 구운 김과 함께 먹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나는 이번에 알았는데, 인스턴트 카레의 성분을 보니 소고기가 들어가 있어 캐나다 친구가 있는 동안 내가 가지고 간 카레를 먹자고 하지 못했다고 가브리엘씨가 말했다).
▲ 저녁식사시간. 항상 농장에서 수확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
ⓒ 이현준 |
가브리엘씨의 유일한 소득은 토요일마다 베르나이(Bernay)시의 주차장과 거리에서 열리는 주말 장터에 나가 농가에서 재배하고 생산한 것을 판매하는 것이다. 장터에는 대부분 판매만을 주업으로 하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가브리엘씨는 유기농을 이용한 채소와 자연 치즈를 판매하기 때문에 규모는 영세하지만, 가브리엘씨의 농산물을 아는 사람들이 주로 들러 물건을 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농가에서 직접 만든 유제품을 특별한 상품화 과정 없이 어렵지 않게 내다 팔 수 있는 것 또한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애초에 소비가 거의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적은 수입에도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는 농가의 모습.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이번 우프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소중한 체험이라 생각한다.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는 우프 생활을 하면서 어떤 금단현상 같은 것이 있었다. 슈퍼마켓에 가서 무언가를 사 먹고 싶은 욕구가 끊임없이 일어나,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가야 나오는 옆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구멍가게를 찾아가 초콜릿과 맥주를 사먹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또 다른 방식
이렇게 나는 2주간의 프랑스 농가 우프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며칠간의 프랑스 여행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항공료와 농가를 찾아가기 위한 기차요금, 슈퍼마켓에서 사먹은 초콜릿, 맥줏값 이외에 우프기간 중 소요되는 비용은 따로 없었다(프랑스에 처음 도착한 날 파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나에게는 막대한 비용손실이 있긴 했지만).
양질의 신선한 먹을거리로 식사를 하고,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노동하며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우프 프로그램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배낭여행 일정 중간에도 한 번 추가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경우 어딜 가나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가능한 많은 곳을 찍고(?) 가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배낭여행 안내서에 소개된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문국가를 조금 줄이는 대신 내가 관심 있는 국가에서의 우프체험을 2∼3주 정도 끼워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일정량의 노동을 해야 하지만 이것 또한 도시인들에게는 좋은 휴식이 될 수 있으며, 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속속들이 함께 경험하고, 더불어 여러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돈 한 푼 안들이고 가질 수 있다면 분명 매력적인 프로그램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더불어 우프 프로그램을 돈 안 드는 대체 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외국어를 연습할 수 있다는 점은 우프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생활의 일부이지 이것을 주된 목적으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농가에서의 노동과 단순한 농촌의 생활이 한없이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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