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7-07-30 18:39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5426&ar_se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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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교도들의 역사는 박해와 이주의 역사이다. 이들의 선조들은 종교개혁 때부터 국가 교회와 전쟁을 반대하고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였다. 유럽에서 심한 박해를 받던 중 에카테리나 여제의 초대로 러시아로 갔다. 이들은 건조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던 우크라이나의 스텝지대를 밀 곡창 지대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에카테리나 여제가 죽고 나서 그들에게 허용되던 군 복무 면제와 신앙의 자유가 위협을 받게 되자 다시 미국의 펜실베니아 지역으로 건너오게 된다. 당시에 미국의 펜실베니아 지역은,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이 영국 왕 찰스 2세로부터 아버지의 빚 대신 받았던 땅으로서 펜은 그 지역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여 아미쉬와 같은 종교적 소수자들의 새로운 정착지로 안성마춤이었다. 아미쉬 교도들은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의 랭카스터에 처음 정착하였으나 이후 오하이오 주, 인디애나 주, 캔자스 주와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등으로 이주하였다. 현재 아미쉬 교도들은 오하이오 주의 홈즈 카운티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첫 주에 아이들의 봄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홈즈 카운티에 있는 밀러스버그, 왈넛 크릭, 벌린 등의 도시들을 돌아보았다.
아미쉬들은 미국에 이주해 온 지가 수백년이 지났어도 스위스식 독일어를 쓰고 있다. 이들은 아미쉬가 아닌 사람들을 '영국인'(English)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라 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미쉬 성인 남자들은 콧수염을 깎는 대신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모자를 쓰며 검은색 옷을 입는다. 여자들은 소박한 색깔의 블라우스와 발목 길이의 치마를 입고 머리를 감싸는 두건(커버링)을 쓴다. 이들은 한눈에 '다른 사람들'로 보인다. 아미쉬 가운데 일부가 관광업이나 가구나 퀼트 제조업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마을에서 서너 마리의 말에 쟁기를 걸고 땅을 갈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풍차라든가 외부에 있는 화장실 등 미국의 농촌에서조차 흔히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나타났다. 간혹 전봇대와 전깃줄이 보이는 집들이 있었는데 아미쉬 교도들이 아닌 사람들 중에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을 인근에 들어와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균 잡아 일곱 명의 아이들을 낳는 아미쉬 여인들이 가족들의 빨래를 손으로 일일이 빨아 널고 있는 모습에서 이들의 육체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삶은 그 대가로 과다한 노동을 요구한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육체노동은 아미쉬 교도들이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라는 것은 인터뷰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마을을 돌아다 보는 동안에 이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원룸 스쿨' 두 곳을 보게 되었다. 대부분 아미쉬 교도들은 일반 학교가 아니라 자신들이 세운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외부인들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아서 밖에서 들여다 보는 정도로 그쳤지만 정부 지원이 없어서 그런지 학교 시설들이 낡아 보여 넉넉하지 않은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아미쉬 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 홈즈 카운티의 중심 도시는 벌린(Berlin)이다. 독일어 발음으로 하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인 셈이다. 이곳에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들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만든 아미쉬 메노나이트 헤리티지 센터가 있다. 이 센터의 핵심은 아미쉬와 메노나이트들이 박해를 당한 역사를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곳인 '비홀트'(Behalt, '기억하라'는 뜻)라는 이름의 역사 공간이다. 하인쯔 가우겔(Heinz Gaugel)이라는 화가가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교도들의 역사를 벽그림으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마침 '비홀트'에 관람하러 온 사람이 없었던 탓에 자원 봉사자인 아미쉬 가이드의 설명을 혼자서 들으며 30분으로 제한되어 있는 안내 시간을 넘기고 한 시간가량 관람할 수 있었다. 벽그림은 예수의 부활과 초대 교회의 성립부터 시작되며,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국가 교회와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잔혹한 고문 속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처참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문과 죽임당함을 마다 하지 않았던 아미쉬 교도들의 역사는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답을 던져주는 듯하다. 또한 아미쉬 교도들이 자신들의 순수한 종교적 열정을 지키고자 한 대가로 치른 희생의 역사는 진리와 자유라는 것이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제단에 바쳐진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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