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7-08-26 14:50
|
||||||
안개가 채 걷히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고요한 정적을 깨면서 웬 마차들의 행렬이 즐비하나 했다. 마을 전통 축제가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신성한 노동으로 일구어진 푸른 옥수수밭과 콩밭, 고단한 일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양의 널린 빨래들, 그리고 마차 안에 선글라스로 가린 무표정한 얼굴의 어른과 천진난만한 익살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이들. 하지만 어디에도 축제나 행사 따위를 진행하는 특별한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로 도로를 밀어내는 내 앞뒤로 계속해서 말 한 필이 이끄는 소형 마차인 버기(buggy)들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이젠 리컴번트 자전거까지 몰고 다니는 청교도풍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범상찮은 이 마을의 정체가 궁금하기만 하다. 인디애나 주 브라이튼(Brighton) 지역은 그렇게 18세기 미국의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또 다른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낯선 사내를 보았다. 난 젊은 시인의 고뇌가 담긴 눈빛으로 그에게 오래도록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역시 경계심을 거두고 나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와 나는 서로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어느 새 코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 축제는 없어요. 여기 사람들 다들 그래요. 우린 대대로 전통을 지켜가거든요." 왠지 중후해 보이는 동그란 안경, 영국 신사에게나 더 어울릴 법한 중절모 같은 모자, 게다가 가지런히 정돈된 수염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메이플라워 시대의 옷차림. 그는 자신의 집에 마차가 있는데 식사도 할 겸 한 번 타보지 않겠느냐며 즉석에서 초대를 해 왔다. 분명하고 확실하고 안전한 세계를 떠나 내 결정을 정당화하거나 미래를 보장할 어떤 합리적 설명도 없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를 적나라한 신뢰의 실체로 인정 할 수밖에…. 시카고까지의 일정을 생각해 손사래를 칠까 하다 색다른 분위기에 빠져 보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제안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무소유의 평화주의 공동체 복장에서 풍겨져 나온 이미지가 근본주의 청교도가 아닐까 했던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미시(Amish). 무소유의 평화주의 공동체, 친환경 신앙단체 등으로도 불리는 아미시는 발전된 현대 문명의 기술을 거부하고 그들의 신앙관에 의거해 고집스레 옛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원래 스위스 재침례파 운동에서 시작되어 국가 교회 위주의 종교개혁에 불만을 품은 알사스 지방의 재침례파 목사인 야톱 암만(Jacob Amman)을 따르는 이들이 아미시란 이름을 붙였는데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살다가 심한 종교적 박해를 받고 1737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정착한 것이 이주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소그룹 공동체로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을 이 낯선 동네에 초대된 느낌이 야릇하다. 마치 동일한 판에 찍어 낸듯이 그와 똑같은 복장을 한 몇몇 사람들을 지나쳐 도착한 그의 집에서 부인과 아이들을 만났다. 집 안에서도 보닛 모자를 쓰고 케이프와 숄을 어깨에 걸친 부인은 밝은 미소와 특히 매력적인 눈이 인상 깊었으나 목수의 손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칠고 뭉툭한 손과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도 건장한 체구는 인사를 나누는 잠시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눈빛에 '와!', 악수에 '오!' 그들의 독특한 외양은 겸허한 신앙의 삶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는 상징이다. 아미시가 특이한 용모와 검소한 옷차림으로 일반인들과 확연히 구별된 통일된 모습을 갖추는 데는 바깥 세상과의 의도적 분리와 공동체 내 일체감 조성, 그리고 신앙에 대한 순응적 삶의 표출 등에 그 목적이 있다. 아미시 성인 남성의 외모상 특징의 하나는 바로 관자놀이부터 턱을 완전히 감싸는 턱수염을 기르며 콧수염은 기르지 않는다는 점인데 턱수염을 기르는 데는 '이사야 50장 6절'을 근거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수염을 길렀음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반대로 콧수염을 기르지 않는 이유로는 콧수염이 종교개혁 당시 아미시를 포함한 재세례파 교도들을 탄압하는데 앞장 선 경찰관이나 그들이 거부하는 전쟁에 나서는 군인들의 보편적인 외모로 위엄과 권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은 일을 할 때라든지 다른 의복을 보호하거나 위생을 위해 앞치마를 착용하지만 아미시들에게 있어 앞치마는 복부 부위를 가리어, 가슴부위를 가리는 케이프와 함께 겸손과 조신함을 겉으로 나타내는 상징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가정에는 네 명의 자녀가 있는데 처음 보는 동양인에 대해 쪽박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남자애들은 적극적인 모션을 취하는 반면 알프스의 소녀 못지않은 귀여운 전통 복장을 한 여자애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재롱을 피워댄다. 이들은 일찍 결혼을 하는데다가 신앙적인 신념 때문에 당연히 낙태를 거부하기에 자녀가 꽤나 많다. 어찌보면 효율성을 중시하는 핵가족화에 전면 대비되는 가족계획이지만 이런 방식은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아무 문제점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현대 사회에서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단지 한 가정으로 아미시의 모든 삶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의 가정을 통해 본 아미시의 삶을 집약하자면 '친환경 평화주의 신앙공동체'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여전히 재봉틀로 옷감과 침대커버를 수선하고, 땔감으로 연료를 공급한다. 집 뒤로는 넓은 밭이 펼쳐 있어서 식탁의 음식들을 제공하는 식량의 보고가 된다. 또 여러 음료들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직접 만들어 먹거나 팔기도 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그럭저럭 괜찮다. 공립학교 등교 거부...자체 교육제도 시행
그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신앙심 고취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덕목을 갖추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을 학교 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일반 공립학교의 등교를 거부한 채 자체 교육제도 하에 사립학교 형태의 아미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심에 충만한 삶을 영유하며 그들의 공동체 내에 올바른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미시 학교에서는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지식의 무장이나 능력의 개발보다는 아미시로서 생활 규범을 준수하고 가정과 공동체 내에서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공동체 일원이 되도록 준비해 나가는 참교육의 실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브라이튼 지역의 학교는 아주 작은 규모였는데 2명의 선생님에게 51명의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는단다. 그들은 성경과 수학 등 기초 과목을 중심으로 정규과정인 12학년까지가 아닌 8학년까지 받는다. 그럼에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어차피 졸업하고 다시 그들을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아미시 공동체로 재편입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바깥 세상 경험하게 해 물론 모든 아미시가 다시 그들의 터전으로 100%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아미시들은 자녀들이 16세가 되면 그들의 언어(독일어 방언)로 'running around time(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기간)'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럼스프린가(rumspringa)'의 기간을 준다. 아미시 청소년들에게는 가정과 공동체로부터 바깥세상으로 나가 속세의 삶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며, 이는 아미시들에게 있어 일생을 통해 단 한차례 주어지는 인정받은 합법적인 탈선의 기회이자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기도 한데 이 때 공동체로의 귀환 혹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전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의 외부도 아담했지만 내부는 더욱 좁아보였다. 재미있는 건 이들 역시 야구를 좋아해서 미국의 여느 학교처럼 경기를 펼칠만한 필드나 그라운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러브와 방망이들은 잔뜩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학교에서는 적은 학생 수임에도 야구를 비롯한, 농구와 탁구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기구를 설치해 장려하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스포츠의 경우 그들의 신앙이나 삶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차 한 번 타 볼래요? 마을 한 번 둘러보게." 그가 제의해 왔지만 오래도록 머무를 수 없었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마차는 주로 가족들이 이동할 때 쓰이지만 택시 용도로도 쓰인다고 한다. 5000달러 정도면 마차를 구입할 수 있고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두지만 한 번 운행하는데 많게는 80달러 정도라니 비싼 감이 없지 않다. 아미시의 대표적인 공동체 지역으로 알려진 펜실베니아 쪽이 아닌 가끔 이 곳 인디애나로 지나치는 관광객들과 흥정하며 정해진 가격으로 생각된다. 자동차는 빨리 그리고 멀리 갈 수 있어 'NO'
내가 마차 타는 것을 거절하자 그는 갑자기 보여줄 게 있다며 집 안으로 들어가 선반을 뒤져 한 움큼의 사진을 펼쳐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 사진. 엄밀히 말해 횡단은 아니고 두 달 동안 중부 지역에서 서부 지역까지 일주한 여정들을 남겨놓은 아날로그 사진첩이었던 것이다. 10년 전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비롯해 옐로스톤과 그랜드 캐넌 등을 둘러본 그의 자전거 여행 사진을 보자니 그들이 꼭 구속된 삶을 산다고만 생각되지는 않았다(그가 사진 한 장을 꺼내 그의 이름과 집 주소를 적어 선물했는데 안타깝게도 잃어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 여행 때의 경험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려주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과장되게 맞장구를 쳐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설명은 더욱 더 열정적이 되었다. 이렇듯 가끔은 지나친 관심이 피곤함을 불러 오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인격과 상관없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왔다는 뿌리 깊은 사명감에 결코 부담스런 내색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전깃줄은 외부세계와의 연결
또한 문명의 이기로 말미암아 외부 세계와의 단절된 삶이 유린되고 공동체의 영역이 무너지며, 이로써 가족의 구조와 공동체의 결속이 약화되면서 공동체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철저히 문명을 거부해 왔다. 바꾸어 말하면 아미시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진보와 발전'이 곧 '보다 좋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안락과 편의 그리고 레저를 멀리하는 생활을 소중히 하는 아미시들은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실용화될 때마다 그들의 신앙적 공동체 유지에 미칠 영향을 먼저 철저하게 따지고 이의 수용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문명의 이기들을 거부한다고 하여 그들의 생활자체를 퇴보적으로 남아있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통적 삶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필요불가결한 분야에 전기를 대신 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를 찾아 활용하는 등 문명의 이기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기나 전화 등 물질문명을 완강히 거부한다는 얘기는 선택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듯하다. 적어도 내가 방문한 그의 집 안엔 냉장고와 전화, 세탁기 그리고 농기계 등이 번듯하게 사용되니 말이다. 사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고, 또 가장 큰 불행으로 이끄는 유혹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라는 말이다. - 톨스토이 땅의 소유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 그들은 땅의 소유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을 신성시하고 함부로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아미시들은 말한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이 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우린 자녀들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명쾌한 말이다. 그들의 모든 관점은 신앙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그들 스스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매개를 영적인 것에 관련시킨다. 만일 거기에 부정한 것이 발견된다면 그들은 그것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친다. 굳이 신앙적인 관계를 따져보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화를 조금 더 들춰보면 현대 문명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어가는 환경이나 기타 여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많은 환경단체들이 아미시의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아미시가 보여준 삶의 현장이 건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들은 그들의 삶을 결코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핍박받았던 자신들의 아픔을 전가시키지 않으려는 본능이 발동한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철저한 소그룹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플레인(The Plain)>이란 잡지도 독자들의 관심에 따라 발행 부수를 더 늘리지 않고 적정선에서 조절한다고 하니 과연 그들의 고집스런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세금 납부하면서도 정부 혜택은 사양
이 뿐만 아니라 의료보험은 물론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 미래의 우발적 사고로 입게 될 손실의 보전이나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대비책으로 일반인들에게 필수화 되어있는 각종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만약 곤경에 처할 경우 우선적으로 그들이 이루고 있는 대가족 제도에서 부모, 형제자매, 자녀 등 가족 구성원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힘만으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공동체 내 교도들이 나서 서로 돕는다. 즉 외부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사전에 강구하지 않는 아미시들에게는 가족이 바로 '보험'이며, 공동체는 보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전해주는 '재보험'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재보험 재원 마련의 일환으로 공동체 내 각 가정으로부터 보험료 성격의 분담금을 추렴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아미시 공동체 자체적으로 매년 경매행사 등을 통하여 기금을 모으고, 마련된 재원으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한다. 정말 알면 알수록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물질문명에 취한 현대인에게 공명을 일으키는 공동체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하며 더 윤택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가슴 대 가슴으로 만나는 접촉점은 더 줄어들어 가고 있고, 수동적인 기계를 다루는 인간은 다시금 그 기계가 만들어 놓은 편안한 늪에 빠져 적극적인 수동성에 휘말려 가고 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자유의 물결을 타고 온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도리어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아 가버리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미시 공동체가 지향하는 것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게 할 만한 삶인 건 분명하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신의 현현함을 체험하는 그들의 삶이 마치 이상향이나 유토피아 되는 양 함부로 떠들진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필요하고 건강하게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 쯤 환기시켜 볼 꽤 매력적인 변곡점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뒤로 걸어 만난 듯한 그와 헤어지며 시카고로 가는 길. 그런데 여전히 나를 잡아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또 툭툭 튀어나온다. |
| |||||
|
'종교사상 이야기 >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선교사 토마스는 '침략자'로 죽었다 (오마이뉴스 070906) (0) | 2007.09.07 |
---|---|
바깥세상 외면 못하는 아미시 청년들(오마이뉴스 070830) (0) | 2007.08.30 |
이수영 목사, "하나님의 사람 건드리면 재앙 올 것" (뉴스앤조이 070827) (0) | 2007.08.30 |
전쟁을 거부한 평화주의자들, 아미쉬 (오마이뉴스 070730) (0) | 2007.08.27 |
분쟁 지역 선교, 중단하지 말자(뉴스앤조이 070730) (0) | 2007.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