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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박성준

비폭력평화연대 대표 박성준 선생 /주간기독교1509호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4.

<주간기독교> 1509호

http://www.cnews.or.kr/

 

 

이 사람의 평화

 

                “속삭이고 싶어요”

                               비폭력평화연대 대표 박성준 선생



“우리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고 할 때 이미 폭력이 동원되기 시작하는 걸 일상에서 늘 느낍니다. 평화는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는 시도와 시행착오를 견뎌내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말해주세요.”

정 중앙 강사 자리를 마다하고 사람들 틈에 앉은 박성준(63) 선생은 아직 이른 아침, 창가에서 은밀하게 쏟아지는 오월 햇살을 휘장삼아 가만 가만히 낮은 목소리로 사람들과 마음을 섞고 있었다. 박 선생과 모 신문사 직원들 사이에서 막 생겨난 학교 하나가 하는 수업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섞다? 한손에 흙을 알아보는 도공처럼 그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섞는 데는 그다지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없다. 우선 붙은 조건 하나는 그가 강사 자리에 앉지 않는 것, 그리고 직장의 조직 상하 구별없이 ‘둥그렇게 둘러 앉자’는 것이었다. 이런 주문에 얼결에 신문사 대표는 문지기가 되다시피 했어도 늘 그랬왔던듯 화기로운 풍경이었다. 얼마만인지 얼굴을 마주한 직원들은 그 낯간지러운 자신들의 장점이나 혹은 편안한 속내를 스스럼없이 내보였다.

“우리는 대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10~30초 동안 시계 방향으로 장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오늘 아침 저희 집에 ‘백두산 바람양귀비’가 피었습니다.” “저는 말이 참 많아요,” “푼수끼가 있는 저는 잘난 데가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 오면 그냥 한번 씩 웃어 줍니다.” “저는 진짜 여잡니다.”
이렇게 앉아보기가 처음이라며 마음을 연 이들, 소통이 뚫어 놓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왁자한 웃음과 진지, 재치와 위트가 진솔하게 쏟아졌다. 신문 만화를 그리는 기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제 외국인 노동자와 친하게 지내겠습니다”하고, 신참내기 기자도 “처음으로 신문사에서 다정한 얘기를 들었습니다”라는 진심어린 말을 곡사포처럼 뱉어냈다.


사장실 겸 회의실인 그 장소에는 분명 사람을 긴장시키는 네모난 탁자가 있었다. 박 선생은 거기에 그저 둥그런 원 하나를 그어 그 딱딱한 구조에 갇힌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모았다. 그가 제안한 둥그런 원은 “역할이 다르면서 인격적으로 완전히 대등한 구조”인 평화의 모형이었다. 그 모형은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응시하게 했고, 거기 모인 이들을 신문사의 일원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듣게 해 주었다.

“민중신학을 했던 적이 있어요. 민중으로 서구의 개인주의를 극복해보려고 저항하고 비판하며 우리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의지였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는데 바로 개인의 소중함이었어요. 공동체 안에서도 분명 ‘나’라는 개인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올바른 의미의 ‘나’가 제대로 의식되지 않았거든요. 이 학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입니다.”


수업 시간 막바지 즈음에 박 선생의 순서가 돌아오자, 자신은 지나온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며 “기독교인, 맑시스트, 퀘이커, 불교에 막 눈을 뜬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그 살아온 내력으로 사람들과 소곤소곤한 만남을 갖고 싶어 마이크를 쓰는 모임, 인터뷰, 텔레비전 출연은 가급적 사양한다. 그리고 이 속삭거림으로 그 험악한 노사분쟁의 현장을 찾아가기도 한다. 움직이는 학교는 작은 모임을 필두에 내세우지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과 반목의 정서를 끊어내는 화해자의 역할을 이 사회 전체에 퍼트리는 큰 바람이다.


움직이는 학교

3년 전 미국 퀘이커의 ‘펜들 힐’에서 돌아와 만든 학교는 5~10명 정도가 아무데서나 ‘둘러’ 앉을 수 있으면 시작된다. 그는 ‘움직인다’는 말에 건물, 장소 등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또 이런 데다 돈을 쓰지 말자,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자는 의미를 담아가고 있었다.


“우리 사회 구조는 항상 필요한 사람이 선생을 찾아가거나 학교를 찾아가는 방식이었으나 이런 구조를 뒤집어서 학교가 혹은 선생이 찾아가는 겁니다. 교육 내용도 장소 만큼이나 자유롭습니다.”

‘틀이 굳어지면 내용도 굳으니까 끊임없이 흐르도록 하자. 참가자가 주인되게 참가자의 내적 열망이나 목마름, 필요를 중심에 놓고 그것에 맞춰서 커리큘럼과 내용을 채우자.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 학교의 중요한 모토다. ‘이 학교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구나’하고 가슴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커리큘럼 중에는 ‘살아온 이야기’ 나누기도 있다. 이것은 이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희망, 목마름, 갈망, 외로움, 아픔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다. 그러한 공부를 돕기 위해 책읽기도 중요한 과정이다. 이 방법 또한 강의나 발제가 아니라 한 권의 책에 담긴 ‘사실성’을 경청하는 것이다. 머리로 지식을 얻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며 책 속에 있는 세상과 만나자는 것이다.

“이 모임을 학교 혹은 교회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 이름마저도 자유롭습니다. 애칭일 뿐 이름마저도 움직이는, 크게 보면 평화를 위한 학교이지요. 평화가 깨지는 이유는 ‘내가 옳다, 많이 안다. 가르쳐줄 테니 배워라. 이쪽을 향해 오너라’ 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다 알았으니 그것을 너에게 전한다’가 아니라 알기 위해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과 아름다움, 즐거움, 슬픔, 괴로움에 대해 활짝 열고 진실을 찾아가자는 순례길에 있는 사람, 이걸 도반이라고 하지요. 이 학교의 핵으로 작용하는 본질은 바로 ‘평화’입니다.”

이 학교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리가 있다. 그것은 개개인 안에 있는 소중한 빛, 씨앗, 생명같은 존재와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방편인 ‘경청’(敬聽:공경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는다)이다. 경청은 각 사람에게 있는 빛, 생명을 찾아내는 원리이고 방법이다. 상대의 말을 듣고 있으나 사실은 내 속에 있는 진실을 보게 하는 눈으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본질과 화해하고 화합하는 과정, 그의 경청은 이 ‘과정의 눈뜸’이었다. 이런 과정은 우선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연습되어져 집단과 집단을 화해 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이런 진지한 대화 중에 뭔가 못내 아쉬웠던지 “이런 인터뷰는 움직이는 학교에는 영 딴지걸기”라며 기자의 속내를 들춰내 공감했던 바를 끝내 털어놓아야 했다.


“우리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고 할 때 이미 폭력이 동원되기 시작하는 걸 일상에서 늘 느낍니다. 평화는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는 시도와 시행착오를 견뎌내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 끝에 흐뭇해하는 그와 기자는 가장 깊은 평화를 느꼈던 장소에서 두 번에 걸쳐 경청하는 학교를 열 수 있었다.

우리가 진짜로 살고 있구나

통혁당 사건으로 13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던 그는 한때 자생적 맑스주의자로, 혹은 민중신학을 하면서 사회 운동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데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운동조차도 정말 운동의 힘이 한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나온다는 인식없이 살았다며 후회막급이라고 한다. 대개 운동하는 이들도 자기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고 느끼고 자기 속으로부터 ‘이것은 정말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라는 결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각과 이해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잎이 우거져 열매를 따게 될지 모르는 비효율적인 학교를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어쩔 때는 이 학교가 소꿉장난이나 뜬구름 잡는 일, 무지개를 쫓는 동심같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중한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내적인 생명력에 뿌리를 두고 해야 될 운동임을 다시 되새긴다. 움직이는 학교는 아직 하나의 시도에 불과해 실험성이 짙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운동이다.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아닌, 전쟁의 반대 개념만이 아닙니다. 한자로 ‘평화’의 화(和)자는 벼 화(禾) 자에 입 구(口) 즉, 밥이지요. 평화란 밥이 골고루 사람에게 나눠지는 세상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밥은 과거 절대 빈곤의 시대에는 경제문제였으나 (현대에도 밥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람이 먹는 밥만이 아니라, 사람을 깊이 사랑해서 다른 의견에 대해 귀기울이고 다르기에 더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 시대의 평화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들을 극복하는 것이고 진정한 이해와 사랑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에게 학교는 평화를 위한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 속에서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의 소리를 전혀 다른 목소리로 듣는 것 같다는 박 성준 선생. 수용, 털어 놓음의 여유로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살아온 내력을 자신의 다른 목소리와 색깔, 음색으로 생각한다.


모든 사람, 혹은 타인에게는 바로 내가 들어 있는 것일까. 한 사람과 눈을 마주할 수 있는 힘, 한 존재에게 온 존재로 들어갈 수 있는 그 고즈넉한 눈빛은 신비로운 평화라는 걸. 언제라도 움직이기 위해 항상 바퀴가 달린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 박성준 선생은 보이지 않으나 움직이는 학교를 찾아 순례하며 다시 또 말한다.


“이제, 어디 멀리 가서 평화를 찾아야겠다고 하지 마세요.”

정혜영 기자 pcweaver@c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