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happyvil/happyvil_news04/103893.html
사제도 없다… 설교도 없다… 오직 침묵뿐 |
2만여 평의 푸른 잔디밭과 오랜 연륜을 나타내는 회향나무, 그리고 숲에 둘러싸인 호수. 이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마하트마 간디와 함석헌 선생이 비폭력 평화운동의 영감을 얻었다. 영국 버밍엄의 퀘이커공동체 우드부룩에 이번엔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이 왔다.
지난 6일부터 인도의 불교 성지 순례를 마치고 13일 영국에 도착해 곧바로 우드부룩에서 1박2일간 머문 가톨릭과 성공회 수녀, 불교 비구니 스님, 원불교 교무 등 16명의 삼소회 회원들은 퀘이커들과 대화하고, 퀘이커와 함께 침묵 명상에 잠겼다. 13일 밤 7시45분 ‘침묵의 방’. 일체 어떤 의식도 없는 퀘이커들의 기도는 침묵으로 시작된다.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대신 ‘친우회’ 모임만을 갖는 퀘이커들은 사제나 목사도 없고 설교도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빛이 있다고 믿는 퀘이커들은 침묵을 통해 각자가 그 빛에 도달하도록 한다. 각자는 함께 모여 침묵하며, 침묵 도중 영감을 받은 사람이 가끔 그대로 표현할 뿐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전통 아래서 탄생했지만, 불자퀘이커, 무슬림퀘이들로 있을 정도로 기독교 외 다른 종교들도 퀘이커의 침묵에서 깊은 영성을 체험한다.
“당신 신앙은 무엇이오” 묻지 않고
한국에서 온 수도자처럼 여성인 제니퍼 학장은 “퀘이커들은 상대방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 지 묻지 않는다”며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퀘이커의 삶으로 단순함, 융화를 위한 진리 추구, 평등, 어떤 정의라는 이름으로도 살상과 폭력을 허용치 않는 평화 등의 가치를 설명했다.
제니퍼가 강조한 퀘이커는 다름과 차이를 배제한다는 것. 다름과 차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각자의 구실만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퀘이커에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금기’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퀘이커 친구가 도박을 한다면 “넌 도박을 하기 때문에 퀘이커를 할 수 없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스스로 옳은 것을 선택하도록 자연스럽게 돕는다는 것이다. 1650년 퀘이커를 창설한 영국의 조지 폭스에게도 늘 칼을 차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폭스는 “다른 사람이 위협을 느끼니 그렇게 하지 마라”또는 “칼을 버려라”고 말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지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그 뒤 친구가 “이 칼을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폭스에게 물었을 때, 폭스는 “네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고 제니퍼는 설명했다.
뭔가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내면의 신성과 불성을 존중하며, 스스로 빛을 찾도록 돕는 사람들. 삼소회원들은 기차와 비행기 안에서 이틀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여독에도 퀘이커의 침묵 속에서 남다른 평화와 화해를 경험했다.
이 곳의 정식 명칭은 우드부룩연구센터다. 1870년 퀘이커 교도인 조지 케드베리라는 거부가 살던 집을 퀘이커 교단에 기증했다. 이곳 도서관은 10만여종의 자료와 3만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한국인으로 팔당에서 유기농을 하는 김병수씨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홍보국장 황필규 목사 등이 머무는 등 꾸준히 한국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버밍엄/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기사등록 : 2006-02-21 오후 06:04:23기사수정 : 2006-02-22 오전 02: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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