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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없는 역사는 논하지 말라! | ||||||||||||||||||||||||||||||||||||
- 씨알 사상의 아버지 함석헌(1901~1989) | ||||||||||||||||||||||||||||||||||||
최두현 기자 dooboo435@naver.com | ||||||||||||||||||||||||||||||||||||
“함 선생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행동하는 양심’ 이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함석헌 선생님과 같은 큰 어른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드린다.” - 법정 스님 참여정부의 등장과 인터넷이라는 쌍방향적 매체의 발전으로 손쉽게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을 쉽게 알 수 있으며 그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국민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일도 함부로 진행될 수 없다. 70년대 독재정권에서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노력과 용기를 쏟아왔다. 그 중 민주화의 상징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언론인이자 대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이다. 그가 주장한 민중을 중시하는 씨알사상은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의 간극 속에 씨알사상은 묻히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일생과 그가 꽃피운 씨알사상을 살펴보며 우리 자유의 기반을 탄탄히 해보자. 민중을 배우고 민중과 함께 한 삶
함석헌 선생은 평북 용천의 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근대교육을 하는 소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함석헌 선생은 20살이 되던 해인 1919년, 3.1만세사건에 적극 참여한 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감격을 경험한다. 그 후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남강 이승훈, 다석 유영모를 스승으로 모시고 기독교신앙과 민족정신을 배우며 민족과 역사에 눈뜨게 된다. 이후 1928년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교사로 강단에 섰으며 1933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집필한다.
해방 후, 1947년 남하하게 된 함석헌 선생은 6.25전쟁을 겪으며 민족의 고통을 몸소 느끼게 된다. 군사정부시기에 민중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을 정립해 가며 민주주의 운동, 인권운동 측면에서 시민운동을 벌인다. 1970년, 그는 정권의 가혹한 검열과 탄압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월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그의 독특한 ‘씨알사상’을 내보인다. 씨알=민중 , 씨알 사상 70대 군사정부시절, 독재와 폭력에 맞서 싸운 함석헌 선생이 주창한 씨알사상의 핵심은 ‘스스로 함’이었다. 씨알사상의 핵심은 특권을 누리지 않는 보통 사람, 민중에 있었다. 씨알사상은 풀뿌리 민주 철학이다. 민중의 함석헌식 표현인 씨알은 나라와 역사의 주체이다. 함석헌 선생은 “민중의 본바탕을 밝혀내기만 하면 큰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모든 정치가와 종교지도자는 모든 것을 민중을 통해 배우고 행해야 하며, 민중이 없는 정치는 반드시 타락하고 민중을 떠난 종교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민중의 고난의 역사를 종교적 관점에서의 십자가의 고난에 비유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민중에게 적용시킨 것. 함석헌 선생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함으로써 인류의 죄를 씻고 화해와 구원을 가져왔듯이 고통 받는 민중은 세상을 화해와 평화의 세계로 이끈다고 보았다. 씨알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민중적 사고를 보여준 것이다. 씨알 하나하나의 삶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함석헌 선생은 씨알들이 ‘스스로 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 “죽어서도 생각은 계속 해야 한다”. 동시에 씨알의 삶은 자연, 역사, 신앙 등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씨알 삶 속 조화로움은 곧 역사의 평화를 낳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역전,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상고시대*로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한국 역사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고찰한다. 더불어 현재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되새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답은 우리가 걸어온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역사란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지금의 삶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과거와 지금의 삶이 고통뿐이라면, 우리 역사는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진정한 고난의 의미로 답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 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 함석헌 선생은 고난을 통해 비로소 진리에 이른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깨달음 속에서 역사의 뜻을 찾으려 했다. 그는 참된 빛은 가장 깊은 어둠에서 도래하는 듯이 고난의 역사야말로 새로운 빛을 가져올 값진 역사라고 생각했다. 함석헌 선생은 강자의 힘에 의해 무시되어왔던 약자, 패자의 역사도 세계사 발전에 큰 공헌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일제치하에 억눌렸던 한국민족이 정신적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자 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생각은 전 세계의 약자와 씨알에게 그들의 사명과 비전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었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50년대 이승만 독재 정권과 60-70년대 박정희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해 치열한 저항을 계속했다. 민중들의 자유와 행복을 주장하며 민주화를 외쳤다. 함석헌 선생의 글은 씨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한국의 민주화 촉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저항하고 싸우며 비폭력 평화주의를 외친 함석헌 선생. 민중 없이 아무것도 제대로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한 그는 민중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진정한 역사라고 정의했다. 세상이 어지러워 살림살이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 함석헌 선생이 말했듯이 지금의 고통이 미래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 스스로 참된 씨알이 되는 그 언젠가를 위해서 말이다. * 상고시대 : 문헌이 있는 한도에서 가장 오래 된 옛날, 다시 말해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근거해서 가장 앞의 시대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는 대개 삼한 때를 지칭한다. | ||||||||||||||||||||||||||||||||||||
2005년 09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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