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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씨알’이란 단어였고, 지금도 그 단어가 좋아 가끔 애용하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왜 그때 ‘씨알’이란 낱말이 그리 좋았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 의미며 어감이며 모든 게 마음에 들었었다. 원래 씨알이란 말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신 다석 유영모 선생이 창안한 글자인데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대중화시킨 사람이 함석헌 선생이다. 그럼 함석헌 선생이 생각하는 씨알이란 무엇인가? 씨알이란 말은 민(people)이란 뜻인데, 우리 자신을 역사적 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 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새로운 창조를 위해 자격을 닦아 내는 것’ 그렇다면 씨알이란 스스로 땅에 떨어져 스스로의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꽃피우는 존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선생은 스스로를 '나는 넝마주이다. 나는 씨알이다'라고 하셨다 한다. 스스로 씨알이 되어 부패하고 타락하여 자유와 민주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게 우렁찬 고함을 질렀다. 함석헌 선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하얗게 센 머리털에 흰 수염, 그리고 횐 고무신을 신은 우리 할아버지다. 산에서 보면 선풍 도골의 모습이요, 시골에서 보면 농사짓는 모습이요, 강단에 서면 민족을 향해 포효하는 백호의 모습이시다. 내 기억 속에 각인 되어 있는 선생의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 선생은 내 뇌리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을 다시 만난다는 기쁨,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선생의 삶이 담긴 책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봄나무)>을 받아들자마자 곧바로 읽어버렸다. 그러나 뭔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아니 허전함이 있었다. 한 때 이 땅의 씨알들을 위해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 너무나 쉽게 잊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함석헌> 평전을 쓴 저자 김성수씨로부터 함석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79년 10.26 후에 김동길 선생님 강연을 처음 듣고 그때 함석헌 이란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분의 책을 계속 읽다가 80년 대 초반 연세대에서 함석헌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연대 학생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강의를 몰래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종교 문제에 몰두했던 시절인데 함석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죠." - 함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의 느낌이나 마음은 어떠했습니가? "80이 넘은 나이에 흰머리와 흰 수염, 흰 저고리의 할아버지가 영어를 자유자재로 말하시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때 제가 아는 동네할아버지들은 그렇게 인텔리가 없었는데... 참으로 순수, 진실, 겸손한 분이라는 것을 느꼈고 그 때 전두환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과 분노를 보이셔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선생님은 제 삶의 화두이면서 스승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 10년 동안 함석헌 선생님을 만나고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당시 저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함 선생님의 이야길 들으면서 현실의 모습에 눈을 돌리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조국의 정치사회 현실, 세계의 미래, 역사, 포용성 있는 종교, 국가주의, 합리적인 과학 등 80년대 20대 보통 청년이 고민한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 함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 곧바로 다니던 직장(철도기관사)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함 선생을 연구하였는데 그렇게 결심하게 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숨이 막혀서 못 살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영국 학교를 알아보던 중 영국퀘이커 연구소에서 장학금 제의가 오기도 했고요." 그는 영국에서 함석헌과 종교학에 대해 함께 공부했던 로렌스 여사를 만났고, 그녀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영국 유학 중에 만난 영국 여성과 결혼하여 현재 두 아이를 두고 있다. 그에게 로렌스 여사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 함석헌이란 분은 어떤 분인가요? "평화를 사랑한 사람, 자유의 길·사랑의 길을 걸어간 사람, 진실한 사람, 순수한 사람, 종교인의 이상적인 사회참여의 길을 보여준 사람, 속이 탁 트인 사람, 통 큰 사람, 이상주의자,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 위대한 영혼을 가진 스승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면 7살 먹은 제 딸아이도 '아빠 선생님이 누구지?' 하고 물어보면 '함석헌 할아버지'라고 대답하고,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지'라고 묻으면 '함석헌 할아버지 같이'라고 답변합니다. 저에게 있어 함석헌은 이제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이기 전에 내 삶, 아니 우리 가족의 삶이고 스승이고 할아버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지칠 줄 몰랐다. 젊은 날 자신의 인생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린 분. 아직도 그는 그분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씨알 사상 연구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또 매 달 함석헌 선생의 사상과 삶에 대한 세미나를 연다며 초대하기도 한다. 함석헌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이이기를 하자 많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요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 함석헌이란 인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해방 이후 이 나라의 지성인과 민중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발언들을 쏟아 부으며 희망이었던 함석헌, 독재와 투쟁하며 이 나라의 민주와 자유를 위해 싸우다 가신 평화주의자 함석헌, 점차 이 나라의 민중들에게 잊혀져 가는 그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 요즘 대학생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함석헌이란 이름을 잘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가슴이 아프지요. 그분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공로로 조국이 이나마 민주화가 되었는데... 모 대학교 총학생회가 한총련을 탈퇴했다 라는 소식은 대학생들의 사회·역사의식의 큰 결여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역사의식이 없으니까 독도문제, 고구려사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학생은 취직 걱정 보다 사회정의 이런데 관심을 더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대학 다닐 때 '씨알의 소리'를 읽고 흥분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함 선생님의 '씨알 사상'이란 구체적으로 무언지요? "‘씨알’이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어우르는 ‘생명’이라 할 수 있죠. ‘국민’이란 말이 국가주의 산물이고, ‘백성’이란 말이 사람을 경시하는 의미를 내포한 것에 비해 ‘씨알’은 살아있는 것의 근본 생명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씨알'은 더 이상 벙어리가 안 되고 자기 생각과 의견, 느낌을 자유롭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이지요, 지금의 '한류' 를 저는 씨알 사상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영어로 2권, 한국어로 2권 냈는데 앞으로 가능하다면 함석헌의 대중화 작업을 위해서 '함석헌 만화(저자의 아버지 김기율씨는 현 대한매일신보(전 서울신문)에 시사만화를 연재했던 분)'를 출판할 예정이며 가능하다면 '함석헌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란 책이 청소년용 평전 형식인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거나 바라고 싶은 말은. "함석헌 선생님처럼 자기의 자유뿐 아니라 남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다른 나라 사람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를 쓴 저자 김성수는 평전을 쓰면서 ‘영웅’이 아닌 ‘사람’ 함석헌을 쓰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스무 살 때 만났던 그때의 감동과 설렘을 이렇게 말했다. “길을 걸어도, 밥을 먹어도 오로지 그분 생각뿐이었다. 그분은 나의 열망이자 힘이었으며, 결국 나의 모든 것이었다.” 온 몸으로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 고난받은 민중의 편에 서서 부정한 권력과 싸운 성난 사자 같은 함석헌을 많은 독자들이 만나 그의 삶과 사상, 신념과 '씨알'을 사랑하는 그의 정신을 배우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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