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7-10-19 오후 08: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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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유효” | |
한승동 기자 신소영 기자 | |
인터뷰 /
‘안병무 평전’ 펴낸 소설가 김남일씨 일본 신학자 아라이 사사구에게 안병무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너와 나의 차이는 그거구나. 나는 한국 민중의 현실을 가지고 신학하는데 너는 그 ‘장’이 없구나.”
소설가 김남일(50)씨가 <안병무 평전>(사계절)에서 이 얘기를 떠올린 것은 다음과 같은 맥락 위에서다. “독일 대학에서는 신학과의 인기가 점점 떨어져서 전과나 폐과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한때 일본의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한국의 고단한 현실을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없는 ‘장(場)’이 우리에게는 넘치도록 흔한 터였으므로.” 안병무(1922~1996)의 머릿 속에 있던 장은 “1970년 이후 한국사회를 요동치게 만들었던 민중운동,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의 그것”이요, “가부장제, 식민지배, 망명, 빈곤, 독립운동, 공산당, 해방, 분단, 이데올로기 투쟁, 그리고 마침내 전쟁까지!” 그의 전생애에 걸쳐 넘치도록 흔한 것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안병무의 관심은 “처음부터 ‘신학’이나 ‘신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초지일관 역사의 예수를 제대로 알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것뿐이었다.” 평남 안주군에서 태어난 다음 해인 1923년 포대기에 싸여 부모와 함께 만주로 간 안병무가 기독교와 인연을 맺은 시발은 소학교 4학년 때 자격미달의 조선인 교장에 대한 스트라이커를 벌였다가 학교를 쫓겨난 뒤 옮겨간 투두거우라는 소읍에서 본 가톨릭교회 십자가에서 받은 충격이었다. 그때 그 정체에 관해 들은 얘기는 “누가 우리 대신 죽었다”는 것뿐. 그를 교회로 이끈 것은 그 충격과 ‘첩질’하면서 어머니를 사람취급 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었다. 총명한 전도사로 칭송받았고, 나중에 ‘민중신학’을 창도해 예수 연구에 ‘혁명적’인 차원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불트만, 몰트만 등과 함께 거론되는 세계적 신학자 반열에 오른 그가 신학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얘긴가?
그는 말했다. “난 성서에서 예수를 만났소. 그걸로 족해요. 내가 기도할 대상은 아니야요. 한 역사적 존재이지. 지금도 그는 내 심장을 뒤흔들고 나를 감격에 울게 해요.”
시대적 맥락 파악 위해 전기 아닌 평전으로
김남일씨는 이번 책을 “그냥 전기로 할까 생각하다 그래도 평전 쪽으로 갔다”며 “시대적 맥락을 짚어줘야겠다”는 게 그 이유라고 했다. “시대와 개인 안병무가 부딪치는 그 실존적 지점들을 짚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신론자인 그가 홍천에 칩거하면서 성서부터 다시 읽고 안병무의 책과 안병무에 관한 책을 거의 다 섭렵하고 관련자들을 만나고 상상력과 지식을 총동원해 쓰면서 그렇게 작심했다. 2년이나 걸렸다. 그 때문에 지난해 10주기에 맞춰 내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나온 <안병무- 시대와 민중의 증언자>(살림),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삼인) 등도 많이 참고했다며, 그들 책에 비해 자신의 책이 인간적인 면모, 전기적 사실을 좀더 많이 담았다고 했다.
김씨는 안병무가 공관복음서, 그 중에서도 마르코(마가) 복음에 주목한 사실에 주목했다. 안병무는 예수가 처형당하기까지의 ‘사건’ 목격자들은 정치적 압박 밑에 있었고, 사건의 진실은 묵살되거나 왜곡됐으며, 기득권층이 얼버무리고 덮어버린 진실을 위험을 무릅쓰고 유언비어 형태로나마 전달한 것은 민중이었다고 봤다. 예수 수난사 전승에는 바로 그들 약자, 타자화된 민중 곧 ‘오클로스’ 자신들의 실존적 상황이 반영돼 있었다. 특히 그런 상황을 가장 짙게 반영하고 있는 마르코복음의 필자 마르코의 “삶의 자리”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김씨가 이번 책을 전기가 아닌 평전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한 주요 모티브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개인이든 공동체든 로마제국에 나라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기 땅에서 추방되어 고향도 토지도 집도 빼앗기고 미래에 대한 아무 보장도 없는 이방의 땅을 거지떼처럼 방랑하는 현장이었다. 그는 이 점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을 그런 삶의 자리에서 파악한다. 이는 결국 예수를 둘러싼 모든 신화를 벗겨내고, 역사의 예수 그 자체로 다가서려는 시도였다.” 그 ‘현장’이 바로 책의 부제인 ‘성문 밖에서 예수를 말하다’의 ‘성문 밖’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제도화한 사도 바울 이후의 교회는 그 본래모습인 공동체를 파괴하고 권위의 덧칠을 입히면서 민중한테서 예수를 빼앗아가버렸으며, 우상에 대들고 저항한 예수를 우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거기에 반발해 가톨릭을 뛰쳐나왔던 개신교도 어느덧 꼭같은 길을 밟았다. 오늘의 한국교회도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장’을 잃어버린 한국교회도 이미 독일과 일본이 걸어온 신학과 교회의 쇠락 길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안병무는 그런 교회에 저항했다. “민중신학은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지금 오히려 더 유효하다”고 김씨는 생각한다.
김씨는 “평전이라 했지만 책의 목적은 무엇보다 ‘기억’에 있다”면서 서경식 교수가 얘기한 ‘기억의 싸움’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덜컥 떠맡은 것은 “순전히 무지 때문”이었지만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안병무한테서 “고집은 세지만 솔직하고 다정하며, 또 나약하면서도 끝없이 싸워나가는 인간의 초상”을 발견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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