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7.10.19 22:4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19/2007101901210.html
- ▲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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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47년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시작되었던 결사(結社)의 60주년 되는 해이다. 이 ‘봉암결사’가 지니는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조선불교는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왜색(倭色)에 많이 물들어 있었다. 이 왜색을 벗겨내고 한국불교 본래의 화두선풍(話頭禪風)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봉암결사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결사(結社)는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이 모인 수행모임’을 말한다. 대개는 불교쇄신의 취지하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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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명한 결사를 찾아보면 고려후기에 이루어졌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있다. 정혜결사는 정(定)과 혜(慧)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1188년 보조지눌(普照知訥)의 주도하에 시작된 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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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려불교는 세속화되면서 승려들이 도는 닦지 않고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흐름이 있었다. 여기에 염증을 느낀 보조지눌은 당시 승과(僧科)에 합격한 엘리트였지만, 사찰의 주지로 나가지 않는다. 제도권 편입을 거부하면서 재야로 나가 기존 불교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운동을 한 셈이다. 그래서 개성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으로 내려가 결사를 선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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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언문의 첫 내용이 “인인지이도자(人因地而到者·사람이 땅에서 넘어진 자는) 인지이기(因地而起·땅으로 인해서 일어서고), 이지구기(離地求起·땅을 떠나서 일어나기를 구하는 것은) 무유시처야(無有是處也·있을 수 없다).” 그 정혜결사 도량은 순천 송광사(松廣寺)였다. 송광사에서 이후로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배경에는 이 정혜결사의 저력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련결사는 염불수행을 강조한 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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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년 원묘요세(圓妙了世)의 주도하에 강진 만덕산 백련사(白蓮寺)에서 이루어졌다. 강진은 배가 드나드는 물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상인을 비롯한 많은 재가자들도 참여했던 불교결사였다. 고려 이후 조선조로 들어오면 불교는 억불정책의 영향으로 승려들이 도성출입도 할 수 없는 천민으로 500년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일제 36년이었다. ‘봉암결사’는 이 500년의 탄압과 일제 36년의 왜곡을 떨어내고, 본지풍광(本地風光)으로 되돌아가는 역사적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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