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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소견서
- 최 진 -
나는 이 땅의 교사로서 군대를 거부합니다!
저는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길에서 세상을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왔습니다. 사람과 풀과 나무와 작은 새들, 별빛과 바람냄새와 물소리를 형제로 여기며 길을 걸었습니다. 그 여정 가운데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감추려했던 나의 모든 모습을 하느님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나는 나를 만나고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땅의 미움과 무관심으로 갈라진 관계를 걸음을 통해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하늘이 허락하는 한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병역거부에 대한 씨앗이 싹튼 계기는 55년 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문경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2003년이 시작되던 겨울, 제천에서 국어교사를 하고 있는 한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양민학살지인 단양의 곡계굴에서 문경의 석달마을까지 평화도보순례를 기획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레 6.25사변 전후에 있었던 양민학살의 역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석달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1949년 12월 24일 오후 2시 경, 국군 2개 소대는 문경의 주월산에 있는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석달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국방군이 와도 환영하지 않는 것을 보니 빨갱이 마을이다."라는 소대장의 불평과 더불어 24채의 집을 모조리 태우고 전 주민 127명 중 86명을 학살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13살 미만의 아이들이 27명이나 되었지요. 이때부터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던 군대에 대해, 우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보복전쟁을 선언하였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반 아이들과 함께 논의를 한 끝에 아이들은 피켓을 만들고 저는 문경 시내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하는 1인 시위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흘쯤 지나자 가슴엔 이라크에 있는 1500만 명의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가득 차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1시간 동안의 1인 시위는 온전히 기도하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스무 날 남짓 1인 시위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대통령께 편지를 쓰고 아침마다 이라크의 아이들을 위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각자가 믿는 신을 향해 기도 드렸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일어났고 대한민국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파병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소식을 접한 저와 아이들은 할 말을 잃고서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전쟁의 공포에 떨게 될 이라크 사람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며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서 가눌 수 없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솟아올랐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불리한 상황이 될까봐 이승만 정부는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을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대한민국은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상황과 이라크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겪는 상황은 저에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석달마을의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폭력이 이라크의 아이들에게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기는 듯 아팠습니다. 강한 나라와 큰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그 억울함은 덮여질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 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한 형제입니다. 국익을 이유로 파병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들에게 저 역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이 땅의 교사로서 전쟁에 반대합니다. 폭력에 반대합니다. 군대를 거부합니다. 이라크만의 문제가 아닌 제가 사는 이 세상의 현실이 폭력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안에서도 군사문화의 잔재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이들의 생명력 넘치는 자율과 교사의 기다림에 방종과 무능력의 낙인을 찍습니다. 더불어 존중하며 삶의 원칙을 세우고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은 불신의 장막에 짙게 가리워 있습니다. 졸업식 날 상장 받는 연습을 하며 미리 정한 순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아이들에게 호통치는 교사의 모습을 보며 군사문화의 허상이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깊게 현실로 자리함을 봅니다. 군대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대로의 아름다운 삶을 지킬 수 없습니다. 군대의 본질이 폭력이기에 사람에게 폭력의 씨앗을 심고 키웁니다. 지배당하던 삶은 또 다른 지배를 낳을 뿐입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길들여진 학교는 서로의 자유를 속박합니다. 하늘이 주신 진정한 감사의 나눔과 섬김을 한낱 이상으로 치부하게 만듭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나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잊고서 사는 일상입니다. 비단 학교만의 모습이 아니라 이 사회의 깊게 병든 모습입니다.
"한 개인을 업신여김은 그의 거룩한 능력들을 업신여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몸만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온 세계를 해하는 것이다."
간디의 이 말에 저의 모든 삶으로 동의합니다. 간디가 우리에게 남긴 정신은 폭력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나약한 비폭력이 아닙니다. 일상이 비폭력이어야 하며 상대가 누구이든지 그 안의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간디의 비폭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병역거부는 군대만을, 전쟁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의 폭력과 사회의 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하느님이 처음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회복의 실천이 '비폭력 직접행동'입니다. 저는 비폭력 직접행동으로써 군대거부를 선언합니다. 저는 그것을 아이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가난해지더라도 공평함을 기뻐하는 아이들은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아이들은 저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며 비폭력 직접행동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일상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기에 믿고 붙드는 것입니다. 거짓 없이 정직하게 살자고 나누었던 아이들과의 약속을 이제는 지킬 때가 왔습니다.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상에 평화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폭력으로 척박해진 이 세상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합니다. 하늘이 비폭력 직접행동을 더불어 실천할 길동무들을 저에게 보내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의 어린 스승들에게, 한 명 한 명의 가슴속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작은 소망으로 군대와 전쟁과 이 땅의 모든 폭력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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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5 병역거부선언
2004.05.18 입영날짜 병역거부
2004.06.25 구속영장실질심사, 구속확정
2004.06.28 구속적부심에서 불구속 최종확정
2004.11.04 상주법원에서 재판,
대체복무입법 국회논의 후로 재판 연기
2005.02.17 1심 선고공판, 1년 6개월 실형.
부인이 아이 출산해서 불구속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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