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7-12-21 오전 8:10:34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220184625
[밥&돈·22] 이명박 정부의 경제기조 전망
이번 주 <밥&돈> 칼럼의 주제는 '대선'이다. 우석훈 박사(경제학)는 이번 칼럼에서 17대 대선 결과의 경제적 의미를 '양아치의 시대가 저물고 괴물의 시대가 왔다'는, 번뜩이지만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우 박사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건설자본으로의 집중'과 이를 축으로 한 '친(親)재벌적 규제 완화' 그리고 '금융 중심 민영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후, 이번 대선 결과는 바로 이 같은 "건설자본 중심의 자유화(liberalization)"를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국민들 대다수가 부여해준 포괄적인 동의권과 다름없다고 해석한다.
우 박사는 이대로라면 새 정부는 "국민 성공시대"는 커녕 괴물의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과 함께, 이를 막기 위해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 '국민경제 총책'이라는 자신의 새 위치에 걸맞게 성장률뿐 아니라 성장 패턴까지 헤아리는 혜안을 발휘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는 또 새 대통령 곁에서 국민들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좋든 싫든, 이번 '선택'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 주>
국민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투표를 했다. 이 당선자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몇 가지 이야기들과 대선 막판까지 따라붙었던 BBK 사건을 보면서, 이 당선자가 깨끗하고 고결하다고 믿었을 국민들이 그렇게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투표 결과로 나온 국민의 뜻은 자명했다. 그만큼 '지긋지긋하게 노무현 정부가 싫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성격은 사회적 논쟁과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황우석 사태, '디 워' 사태, '붉은 악마' 현상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과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양아치'의 시대를 접고...
우리가 지나온 지난 5년은 분명히 '양아치'의 시대였다. 노무현 정권은 자기들끼리만 밀실에 모여 중대사를 결정했고, "동지들의 등에 칼을 꼽지 말라!"면서 황우석을 띄웠고, 한미 FTA 체결을 향해 질주했고, 농업을 포기했고, 20대들에게 '비정규직의 일반화'를 안겨주었다.
그 과정에는 '참여'는 고사하고 변변한 '논쟁'도 없었다. "지역감정은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우리보다 나았겠느냐" 라는 두 가지 말만 고장 난 축음기처럼 반복하는 것을 집권세력은 '논쟁'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점잖게 이야기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5년은 -김대중 대통령의 '완화된 신자유주의'에 대비해- '강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역사적 평가는 '김영삼 정권보다도 해놓은 게 없는 정권'이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들은 "설마 IMF 경제위기를 맞았던 김영삼 정권보다도 우리가 못했을라고?" 라면서 억울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사람들이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김영삼 시대부터 지난 15년은 한국이 '개혁'을 목표로 움직였던 기간이었다. 스스로를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김영삼 정부는 정부를 꾸리자마자 하나회를 청산할 준비를 하고,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추진했다.)
물론 우리는 아직 궁극적인 답을 모른다. 다만 국민들은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집단을 '양아치' 집단으로 보는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 중 약 65%가 이명박 당선자와 이회창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런 양아치들로 구성된 정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과 같다. 바꿔 말해, 이번 대선 결과는 '국민들이 양아치를 버리고 경제 집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보는 것은 대통령 한 명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후방세력들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자식 위장취업'을 비롯한 도덕적 흠결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선자를 둘러싸고 있는 후방세력이 더 믿음직해 보인다는 것이, 이번 투표 결과의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를 '선택'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그 선택이 '거룩한' 것이고 '신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이 '준엄한'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이 선택에 따라 이제 역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바로 이 선택에 따라 앞으로 5년간 국가가 운영될 것이고, 바로 이 선택 안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면서 최선 또는 차선이 모색될 것이다.
2. '괴물'의 시대가 열리는가?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민 중 절반 이상이 '경제성장'과 함께 '강력한 추진력'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문국현이 이명박의 경제성장률 7%보다 1%포인트 더 높은 8%를 제시하고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은 문국현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책 집단이 추진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개인이 이 시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한국에서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는 이명박 자신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집권 세력, 그리고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을 열망하는 대중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이 꺼내든 미래의 청사진은 '시장 제일주의'와 '강력한 추진력'이라는 두 가지 표현으로 모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반대편에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공약에도 복지 공약이 들어가 있고, 보육을 포함한 여성 공약이 들어가 있다. 다른 후보자들과의 차이점은 이런 공약들이 시장 장치에 의해 움직이도록 디자인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디자인 여부에 따라 이런 장치들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국민들은 이런 장치들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체제는 토론과 반대의견을 용납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대통령과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세워 종합적인 디자인을 하고,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은 단기적인 부작용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지지를 보내는 상황, 바로 이것이 이명박 체제의 작동원리가 될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박정희 시대의 복원'이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독재자로서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명박 시대에도 이런 종합성이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문제의 초점이 놓여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종합성 없이 국민경제 전체를 끌고 간다면, 이 시스템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에게 굳건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준 경부운하 사업은, 그 사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변환을 상징하는 것이라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던 시절의 한국은 GDP 중 건설자본의 비중이 10%가 채 넘지 않았으며, 그래서 건설 부문이 커져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노무현 정부가 지난 5년 간 '한국형 뉴딜'을 통해 건설자본의 비중을 20% 가깝게 높여놓은 결과 건설업의 연착륙이 어려워진 때이며, 따라서 이 시점에서 지나치게 건설 중심으로 국민경제의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괴물 탄생'을 예고하는 음울한 전주곡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3. 정책 기조는 변하고, 한국도 질적으로 변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남아있던 많은 규제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린벨트가 그렇고, 수도권 규제에 관한 대체적인 틀도 국토종합계획을 처음 입안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토지공개념'의 기본 틀은 노태우 시절과 김영삼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는데, 노 대통령이 한 일은 임기 거의 마지막 순간에 보유세 개념을 더한 정도이다.
이런 규제들이 생겨난 이유는 시장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분배를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좌파 정책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런 규제들은 이전의 정부들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특히, 많은 규제들은 국민경제의 여러 자본 중 건설자본, 특히 수도권의 건설자본에 너무 많은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번 대선 결과는 이런 규제를 없애고 건설자본에 힘을 집중시키자는데 국민들이 포괄적으로 동의해 준 것과 다름없다. 국민들 대다수가 동의해 준 이런 상황을 막아낼 힘을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다시 찾기 힘들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자신의 앞가림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민주노동당은 붕괴되다시피 했다. 한나라당의 '건설자본 중심의 포괄적 자유화'는 그야말로 대세다.
이 같은 건설자본 중심으로의 경제 개편에서 '금산분리의 폐지'는 삼성그룹에게 주는 보너스에 해당한다. 쓰는 김에 조금 더 써서, 이명박 정부는 '국책은행 민영화'로 지금껏 지연됐던 민영화 절차를 재가동할 것이다. (이걸 중소기업 지원방안이라는 이 당선자의 주장이 엉뚱하기는 하다. 민영화된 은행들이 고사 위기에 있는 중소기업에게 왜 자금을 지원하겠는가?)
이명박 정권의 주요 경제기조를 전체적으로 전망해 보면, 새 정권은 건설자본을 전면에 내세워 '경제 살리기'에 힘쓰고, '지금껏 숨통이 막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재벌들의 숙원을 몇 개 들어주고, 금융(은행) 중심의 민영화를 훨씬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4. 새로운 시대, 최선을 다합시다!
이렇게 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청년들의 고용과 실업 문제가 해결되고, '양아치 정부' 시절의 경제적 폐해가 사라져 모두 즐겁게 춤출 수 있는 선진경제가 달성될까?
시장은 효율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시장이 가지고 있는 폐해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 잘 운용하지 않으면, 거시경제는 '시장 실패'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건설자본 중심의 경기부양책이 당장 의도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노동자의 건설업 진출이다. 이미 건설 현장에서는 60% 이상의 노동력이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져 있는 상황에서, 건설자본 중심으로 경기를 부양해봐야 정작 우리 국민들에게는 안정적인 정규직은 고사하고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출된 자금 중 50% 이상이, 국내 경제에 투입돼 내수를 진작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송금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수없이 많은 토목공사를 일으켜 임기 5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하면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이명박 당선자에게는 현대건설 근무 시절과 서울 시장 재임 시절에 하고 싶었지만 정부 규제로 못해본 아쉬운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숙원을 풀겠다고 시스템을 전부 건설자본 위주로 바꾸어버리면, 지금으로부터 5년 후에는 65% 이상의 국민들이 지금 이 순간을 '괴물'이 탄생했던 때로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항간에는 이명박 정부가 '경부운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환경부를 건설교통부에 통폐합시킬 것'이라거나 '규제철폐라는 이름으로 산업자원부를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이런 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정부 개혁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 같은 일대 사건이다. 환경영향평가나 건설사업 타당성평가와 같은 제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다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건설사업 하는데 귀찮다고 이런 제도를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담당 부처까지 없애거나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국민경제 내 건설 부문의 비중은 노무현 정부 시절을 거치며 충분히 높아진 상태다.
분명한 것은 이명박 당선자는 지금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된 것이 아니라, 국민 5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고 국민경제의 총 지휘권을 가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된 이상, 경제를 너무 이데올로기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건설자본 위주로 사유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경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간섭을 최소화하고, 다만 제도에 장애가 있을 때 이를 개선해 주는 것이라고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이 당선자가, 건교부 장관이 아니라 국민경제 지휘관으로서, 건설자본에 2개의 혜택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을 과감히 접고 그 중 1개는 기타 자본이나 국민들의 복지로 돌리는 '작은 지혜'를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 이 당선자가, 경기순환을 거스른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그 부작용에 대한 뒷수습을 하느라 경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성장에는 '성장률'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성장 패턴'도 중요하다는 게 현대 경제학이 주는 가르침이다. 일자리에 목마른 국민들,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국민들, 그들을 위해서 좋은 경제성장 패턴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대선은 끝났다. 이 새로운 정부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집권세력은 물론이고, 야당과 시민단체들, 나아가 국민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본의 90년대 거품공황을 우리가 반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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