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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06년06월08일 제613호
 
‘스타일 여행’ 떠나볼까요?

‘세계를 간다’와 ‘론리 플래닛’에서 <‘I♡NY>까지 여행 안내서의 진화…일상에서 탈출을 꿈꾸며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여행보다 즐거워라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떠나기 전의 여행 준비는 여행 자체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여행은 피곤하지 않은가. 그보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시간이 어떤 의미에선 더욱 즐겁다. 여행안내서는 그런 시간을 함께해줄 유일한 친구다.
 

국내에서는 홀대받은 ‘론리 플래닛’

외국에서는 이미 여행안내서가 출판시장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지난해에 1200만 권이 팔렸다. 한국에 본격적인 여행안내서의 시대가 도래한 건 1980년대 후반, 중앙일보사가 펴낸 45권짜리 ‘세계를 간다’ 시리즈가 나오고 나서였다.

△ 여행안내서는 실용적인 용도에서 심미적인 용도로, 수동적에서 참여적으로 진화한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처 이전에 출판돼 당시로선 ‘오지’였던 스리랑카까지 시리즈에 담았으니 대단했지요.” 정해숙 랜덤하우스중앙 편집장은 ‘세계를 간다’ 시리즈가 비록 일본 책을 번역해 냈지만 한국 여행안내서의 ‘원조’ 격으로 대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경제 호황의 말미에 취해진 해외여행 자유화는, 어른들을 동남아·유럽 패키지여행에, 대학생들을 유럽·인도 배낭여행의 대열로 이끌었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여행안내서는 부쩍 늘기 시작한다.
최민정(31)씨가 처음 여행안내서를 집어든 건, 1997년 유럽 배낭여행을 가려고 맘먹은 즈음이었다. 1990년대 초반 1세대 배낭여행가들이 돌아와 펴낸 여행안내서와 PC통신 동호회에서 뽑은 정보를 들고 유럽에 갔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한 나라 여행이 끝날 때마다 해당 부분을 찢어버렸다. “막상 유럽에 가보니, 외국의 배낭여행객들은 모두 파란색 ‘론리 플래닛’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저건 뭔가 다르구나 싶었죠.”
2000년대 초반까지 여행안내서 시장은 랜덤하우스중앙(옛 중앙일보사)의 ‘세계를 간다’와 ‘100배 즐기기’, 그리고 삼성출판사의 ‘자신만만 세계여행’ 시리즈가 주름잡았다.
2003년 여행안내서 시장은 새로운 도전을 받는다. ‘배낭여행의 바이블’이라는 ‘론리 플래닛’이 안그라픽스와 독점계약을 맺고 상륙한 것이다. ‘론리 플래닛’은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필수적으로 구비한다고 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여행안내서다. 방대한 정보량뿐만 아니라 게이·레즈비언,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정보도 실어 진보적인 노마드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다.

△ 네티즌과 업체가 함께 만드는 인터넷 가이드북도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론리 플래닛’은 예상과 달리 교보문고 집계 취미·실용서 순위 1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안그라픽스의 김지연 편집자는 그 이유를 한국과 서양의 문화 차이로 해석했다.
“여행 문화의 차이가 크죠. 한국은 패키지 중심의 단기 여행을 주로 하는데, ‘론리 플래닛’은 장기 여행에 강점이 있죠. 하지만 마니아층은 꾸준히 존재합니다.”
외국에서는 본인이 직접 계획을 세워 떠나는 자기 설계 여행이 보편적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여행상품을 사는 패키지가 일반적이다. 한두 달 배낭여행에도 주요 포인트만 들러 사진 찍고 떠나는 ‘찍고 가기’ 문화 때문에 방대한 정보량을 가진 여행서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원과 업체가 함께 만드는 ‘아쿠아’

교보문고에서 몇 년째 수위를 달리고 있는 여행안내서는 ‘100배 즐기기’ 시리즈다. 유럽편은 1997년 펴낸 뒤, 20만 부 이상 팔렸다. 업계에서는 ‘100배 즐기기’ 시리즈를 “한국 독자층의 요구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여행안내서가 직접 나서 일정을 짜주고, 다양한 쇼핑 정보를 제공해주는 등 한국인의 여행 패턴을 잘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박힌 역사·문화·교양·실용 대백과사전이 아닌 길 찾고, 보고, 소비하는 실용서 목적 자체에 충실하다.
최근에는 스타일 여행 책이 붐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데, 2004년 출판된 이 장르의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을 꿈꿔온 어학연수생이 덜컥 배출한 이 책은 기존의 여행안내서와 다르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흥분하는 건 뜨내기 관광객의 촌스러운 짓, 대신 여름엔 스파게티 슬리브리스를 걸치고, 아래는 짧은 트레이닝팬츠에 샌들을 신고 뉴욕 거리를 쏘다니라고 알려준다.
이 책은 여행안내서의 진화를 보여준다. 이제 여행안내서는 대중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변용한다. 는 20~30대 직장 여성이 열광하는 <섹스 앤 더 시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뉴요커들의 스타일에 집중하는, 말하자면 ‘뉴요커 따라하기’ 여행안내서다. 이 책의 성공을 앞뒤로, 뉴욕의 매력과 스타일을 칭송하는 체험서가 쏟아졌다. 2005년 9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방송되기 전부터 프라하에 관한 여행 책이 줄줄이 나온 것도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제 여행자들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하지 않는다. 뉴욕에 가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되고, 프라하에 가면 전도연이 되고 싶어한다. 여행안내서는 그렇게 되는 법을 알려준다.

△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여행안내서는 연중 고른 판매를 유지한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의 여행서적 코너.




여행안내서는 인터넷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지역별로 특성화된 여행정보 커뮤니티 사이트는 실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네티즌들이 직접 올린 숙소·교통 정보는, 세상의 변화 속도에 뒤처져 틀리기 일쑤인 두꺼운 여행안내서보다 빠르다. 말하자면 만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안내서인 셈이다. 하지만 게시판에 오르는 체험기 형태의 글은 일목요연하지 않다.
여행정보 사이트를 여행안내서 형식으로 꾸민 아쿠아(http://aq.co.kr)는 이런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2001년 문을 연 뒤, 2만2천원의 연회비를 내는 회원이 2500명에 이르렀는데, 회원과 업체가 함께 만드는 정보의 정확성과 다양성은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아쿠아는 동남아 휴양지의 여행정보를 인터넷에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이를 모아 라는 책을 내고 있다. 다른 여행안내서도 이러한 온·오프 시스템을 지녔지만, 독자 제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왕영호 대표는 아쿠아가 회원과 업체가 함께 만드는 ‘인터넷 가이드북’이라고 말한다.
 

실용서에서 심미적인 용도로

“1년에 7~8차례 취재여행을 떠납니다. 회원들이 올린 정보를 검증하고 새로운 곳을 발굴합니다. 유료제이니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죠.”
유료제의 장점은 콘텐츠가 독립적이라는 데 있다. 왕 대표는 대부분의 일간지·잡지의 취재여행이 호텔·항공사 등의 협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여행자보다는 협찬사를 위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여행과 여행 책을 주제로 한 카페도 생기고 있다. 여행정보 사이트 ‘아쿠아’가 운영 중인 카페 전경.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주인공은 평상시 여행안내서를 읽는 게 취미다. 여행안내서가 팍팍한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 뒤에도 여행안내서를 붙잡고 있는 사람은 지루한 사람이다. 그때는 현실로 화한 꿈에 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여행안내서는 거친 물살이 흐르는 낯선 환경에서 붙들어매야 하는 구명보트와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여행안내서는 실용적인 용도에서 심미적인 용도로, 수동적에서 참여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몰바니아를 아시나요

어디에도 없는 나라를 찾아가는 실험적인 3세대 여행의 세계

몰바니아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몰디브와 알바니아 사이에 있을 것 같은 이 나라에 대한 유일한 여행안내서 <우리는 지금 몰바니아로 간다>(이하 몰바니아)는 몰바니아가 불가리아의 북쪽,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곳에 있다고 말한다. 몰바니아 곳곳에는 스틀론코 부시부시의 동상이 서 있다. 1930년대 총리였던 부시부시는 트랙터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도입하고, 알파벳을 33자로 줄인 근대 몰바니아의 아버지다. 이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 회화라도 배워서 들어갈 생각은 접어두는 편이 낫다. 일상에서 종종 삼중부정이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몰바니아인들은 ‘이 물을 마셔도 되나요?’라는 말을 ‘이 물이 못 마시는 물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몰바니아는 세상에 없는 나라다. <몰바니아>는 ‘론리 플래닛’의 형식과 문체를 패러디해 자본주의와 여행 문화를 꼬집고 있다. 이 책은 2004년 ‘론니 플래닛’의 본고장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판돼 12만 부가 팔렸고, 미국·캐나다·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소개됐다. 지난해 이 책의 저자 산토 실로로 등은 붐파트붐파가 수도인 동남아시아의 숨겨진 진주 <파익탄>을 후속편으로 펴냈다.
<몰바니아>는 가짜 여행안내서의 계보를 잇고 있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지만, 부조리하고 변덕스런 도시를 풍자한 <손에 없는 파리: 고집불퉁 가이드>, 갈 수 없는 곳 화성에 대한 <화성 여행안내서> 등이 <몰바니아>의 선친들이다. 직접 떠나지는 않지만, 가상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론니플래닛도 2005년 6월 <실험적 여행>이라는 책을 펴냈다. 프랑스 예술가 조엘 헨리가 쓴 이 책은 아방가르드적인 몇 가지 여행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해가 진 뒤 도착해서 철야로 도시를 탐험하고 해 뜨기 전에 떠나기, 길에 나타나는 모든 소방서 앞에서 사진 찍기, 그것도 아니면 집에 머무르기 등. 개중 하나는 도서관에서 즐기는 ‘책 여행’도 있다.
①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나라 이름이 나올 때까지 읽는다.
② 책 읽기를 중단하고 그 나라에 대한 다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③ 다른 나라가 나올 때마다 그 책으로 이동한다.
④ 이런 식으로 여정을 기록하고, 출발국에 돌아오거나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싶으면 여행은 끝이다.
여행은 소비적인 패키지 여행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자유여행으로 진화한다. 제3세대 여행은 이런 ‘실험적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여행 따라 길라잡이 골라보자

짧은 일정에는 인터넷 사이트, 도시 하나를 둘러본다면 ‘디키’ 시리즈

동남아의 강호를 평정한 여행안내서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짧은 일정에 패키지 비율이 높아 굳이 여행안내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쿠아·트래블게릴라(http://travelgue.com)·태사랑(http://thailove.net)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훌륭한 정보들이 모여 있다.
한 달짜리 유럽 배낭여행객에게는 ‘100배 즐기기’ ‘이지유럽’ ‘자신만만 세계여행’ 등이 잘 팔린다. 인터넷에서는 쁘리띠님의 떠나볼까(http://prettynim.com)를 참고하라.
‘론리 플래닛’은 유럽, 인도, 베트남 등 20여 권이 번역됐다. 노마드 스타일의 젊은 배낭여행객이 자주 가는 타이, 인도 등에서 강하다. 영문판은 대형서점의 외서 코너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고교 수준의 영어 실력이면 볼 수 있다.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체 때문에 영문판을 선호하는 마니아도 많다.
런던이나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유서 깊은 도시 하나를 깊이 둘러보려면 ‘디키’ 시리즈를 추천한다. 세계적인 여행안내서로 문화유적 도해가 강점이다. 서울문화사가 번역해 펴낸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내는 여행안내서는 인문·지리·자연 교양서로 훌륭하다. 실용정보는 빈약한 편이어서 떠나기 전에 교양 삼아 읽기에 좋다. 각국 관광청에서 여행안내서를 무료로 받아볼 수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내려받거나 국제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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