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체(心體)와 심작용(心作用)과의 관계
이제까지 안식으로부터 의식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왔다. 그 다음의 순서는 제7말나식을 살펴야 할 차례다. 그러나 여기서 말나식을 설명하기 전에 마음의 작용에 해당하는 심소(心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위에서 6종의 심식을 이미 설명하였는데 이들 심식에는 수많은 작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용들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심식의 내용도 완전히 알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체성과 작용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의 체성과 작용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마음의 체성을 흔히 심왕(心王)이라고 한다. 그것은 마음의 체성이 마치 국왕이 명령을 내리면 그 밑에서 근무하는 신하들은 무조건 복종하는 바와 같은 비유를 들어 명칭한 이름이다. 즉 심왕은 마음의 체성이고, 심소(心所)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신하가 국왕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듯 마음의 체성에 의하여 나타나는 작용도 그러하다.
다시 말하면 심식(心識)은 국왕에 비유할 수 있고, 심소는 신하가 국왕에 소속되어 수족처럼 역할을 하듯이 심왕의 소유물로서 심왕이 하라는 대로 심부름을 다하는 작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심소라는 뜻은 심왕이 소유한다는 뜻에서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고 한 명칭을 줄인 이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심왕과 심소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불가분의 관계를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성유식론(成唯識論)] 권5에 의하면, "첫째, 심소는 항상 심왕에 의지하여 작용을 야기한다(恒依心起故). 둘째, 심소는 항상 심왕과 더불어 상응하면서 활동한다(與心相應). 셋째, 심소는 항상 심왕에 소속하고 계속된다(繫屬於心)"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심소는 심왕에 소속하여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심소는 심왕의 소유물로서 아소(我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깊은 관계가 있는 마음의 체성과 마음의 작용은 거의 행동을 같이 한다. 그 행동을 같이하는 관계를 상응(相應)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4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그 4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음(心王)과 마음의 작용(心所)은 행동을 야기할 때 그 시간이 동일하고,
둘째,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의지하는 장소(所依根)가 동일하며,
셋째,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그 인식의 대상(所緣境)이 같고,
넷째,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동일한 일(事)만을 한다.
이상과 같이 마음의 체성과 마음의 작용은 행동하는 시간(時)과 의지할 곳(所依根)과 인식의 대상(所緣境)과 활동하는 일 등이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그 대상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내용만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같이 나타나 어떠한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의 체성인 심왕은 그 대상에 대한 전체의 모습(總相)을 인식하고 또 마음의 작용에 해당하는 심소는 그 대상의 전체는 물론, 그 대상 안에 지니고 있는 낱낱의 모습(別相)을 일일이 인식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러한 활동들을 행상(行相)이라고 하는데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인식하는 행동의 모습을 뜻한다. 이들 심왕과 심소의 행상관계를 예를 들어보면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가 하나의 화폭에 전체의 본을 그려 놓으면 그 제자가 화폭의 구석구석을 그려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 즉 심왕과 심소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활동하며 동시에 모든 대상을 인식한다. 그런데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따로 분리시켜 말할 수 없는 것이 정신세계이기는 하나,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들의 성격을 분명히 따로 작용(心所)만을 분리하여 그 성질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심소론(心所論)이라고 한다. 즉 심소만을 가지고 논술하는 학문인 것이다.
이러한 심소론에 의하면 마음의 작용은 51종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또 이들 51종을 각각 성질별로 구별하여 다시 육위(六位)의 분야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 6위 51종의 심소(六位 五十一心所)라고 한다. 물론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무한한 작용들이 있으며 또 원시불교에서 소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마음(心王)의 작용(心所)설을 해설한 것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유식학에서는 종래에 설명되어 왔던 심소설들을 엄밀하게 취사선택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에 필히 없어서는 안 되는 심적 작용만을 재조직하였다. 이들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위에서 심체와 심작용에 대하여 그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제 육위(六位)의 심작용을 간추려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심소의 육위를 보면, 1) 변행심소(邊行心所), 2) 별경심소(別境心所), 3) 선심소(善心所), 4) 번뇌심소(煩惱心所), 5)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6) 부정심소(不定心所) 등으로 분류된 심소를 말한다. 이들 육위의 심소들은 마음의 작용에 나타나는 그 기능과 성질별로 구별한 것이다. 이들 육위심소에 대해서 하나하나의 뜻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변행심소(遍行心所)
변행심소는 어떤 심식이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반드시 일어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심식에 두루 나타나면서 그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을 뜻한다. 여기에는 5종의 심소가 있는바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 등을 말한다.
촉의 심소는 팔식(八識) 가운데 한 식(識)이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최초로 그 심식의 작용이 대상에 닿는 것을 촉(觸)이라 한다. 예를 들면 눈의 시선(眼識)이 보고자 하는 대상물(色境)에 닿거나 귀로 듣는 마음(耳識)이 어떤 소리에 닿았을 때의 찰나를 촉이라 한다. 이는 오관을 통하여 객관계의 대상물에 마음이 닿는 순간을 뜻한다. 이와 같이 촉이 성립되면 그 즉시에 마음 안에는 경각심(警覺心)이 나타난다. 이를 작의심소(作意心所)라고 한다. 이 작의심소는 갑자기 큰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는 등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보통은 자연스럽게 작용하니까 작의심소의 작용을 알 수 없지만 불의의 사건을 접할 때는 능히 알 수 있는 작용이다.
그 다음에는 수심소(受心所)가 야기한다. 이는 작의심소가 앞에 무엇이 나타났다고 경종을 울려주면 그 대상의 내용을 영접하여 사실 그대로 안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만약 그 대상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苦受) 또 마음에 알맞으면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게(樂受) 된다. 그리고 대상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으며 그저 그런 대로 좋고 나쁜 생각 없이 무심히 받아들이게(捨受) 된다.
그 다음 상(想)은 밖을 통하여 어떤 대상이 마음 안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대상의 모습을 구별(取像)하는 작용을 야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심소(思心所)는 마음으로 하여금 그 대상의 모습에 대하여 선(善)이다, 악(惡)이다 하는 선악의 결정을 내려주는 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 심소를 오변행 심소라고 하는데 이들 작용은 어떤 심식에서든지 반드시 나타나 그 대상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주는 정신작용인 것이다.
2) 별경심소(別境心所)
별경심소는 위에서 말한 변행심소와 같이 모든 대상(境)에 다 같이 두루두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인식의 대상 위에 나타나 특성 있게 인식활동을 한다. 그 종류는 욕(慾), 승해(勝解), 염(念), 정(定), 혜(慧) 등 다섯 가지이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 욕(慾)은 인식의 대상에 나아가고자 하며 항상 희망을 갖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 희망은 마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마음이 지혜로우면 선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고, 마음이 무지하여 번뇌가 많으면 악에 대한 희망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누구나 욕심(慾心)을 갖고 있는데 선욕(善慾)을 갖느냐 아니면 악욕(惡慾)을 갖느냐에 따라 그 행위도 선행 또는 악행으로 나타나게 된다.
* 승해(勝解)는 어떤 경지를 결정적으로 이해하고 정(正)과 사(邪)를 분명히 아는 심리작용 이다. 이러한 것은 선정(禪定)의 수행과 여러 수행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청정하여져서 모든 사물과 사리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해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 염(念)은 일찍이 마음에 암기하고 익혔거나 있었던 일들을 마음속에 분명히 기억해 두는 심리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이 염은 다른 생각과는 달라서 안정된 마음에 의지(定依)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받아서 기억할 때 그 내용을 마음속에 분명하게 기록(明記)하여 두는 심소이다.
* 정(定)은 첫째로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여 모든 잡념을 없애며 동시에 심식이 대상을 인식할 때 동요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관(觀)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 정심(定心)은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마음속의 지혜를 나타나게 하여 활동하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심이 나타나면 반드시 지혜가 나타나게 되며 그 지혜는 인식대상의 모습(相)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질(性)까지도 관찰하여 그 대상이 지닌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러한 지혜를 결택지(決擇智)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 사리(事理)를 분명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력(智力)이 있기 때문이다.
* 혜(慧)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관찰하는 대상(所觀境)에 대하여 옳고 그름(是非)을 분명하게 선별하여 주는 마음이다. 이 혜는 간택(簡擇)함을 성(性)으로 하고 또 모든 의심을 끊고 확신을 갖게 하는 인식능력으로서 단의(斷疑)를 업(業)으로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오종의 별경심소는 여러 심소 가운데 하나하나 나타나서 비록 번뇌심이지만 지혜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작용들이다. 다시 말하면 오변행심소는 어느 심식에나 자주 나타나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반면에 오별경심소는 모든 객관계의 대상을 올바로 인식하고 내면의 정신계를 안정시키며 지혜롭고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심리작용들이다.
이들 심소들은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번뇌가 감소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정화하여 바람직한 심소가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불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다. 수행은 곧 정(定)과 혜(慧)를 나타내는 촉진제가 되는 것이며 동시에 행복과 안락을 가져다 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마음의 체성(心體)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마음의 작용(心所) 가운데서 변행심소와 별경심소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마음의 작용 가운데는 그 성질이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선의 심소(善心所)와 악의 심소(惡心所)를 말한다. 이들 두 심소는 마음의 체성(心王)에서 나타나는 작용들로서 그 성질이 상대적이며 내면세계는 물론 객관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대조적이다.
다시 말하면 착한 행동은 선의 심소에서 나타나며, 악한 행동은 악의 심소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심소의 행위에 따라 선업(善業) 또는 악업(惡業)이 조성된다. 동시에 이들 업력에 의하여 우리 자신의 정신계와 객관세계의 고락(苦樂)을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들 선업과 악업은 사망할 때 선도(善道)로 이끌어 주고 또 악도(惡道)로 이끌어 주는 핵심역할을 한다. 이제 선심소(善心所)와 악심소(惡心所)의 종류와 내용이 무엇인지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3) 선심소(善心所)
유식론에 의하면 선의 심소는 11가지가 있다. 그 종류를 보면, 신(信), 참(慙),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痴), 근(勤),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 등 11종(種)을 말한다. 이들 선심소 살펴보기로 한다.
* 신(信)은 신심(信心)을 뜻한다. 불교에서 선을 논할 때 신심이 가장 으뜸이라고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볼 때 여러 선행의 종류를 얼마든지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종교적으로 선(善)을 논할 때는 먼저 부처님의 진리를 확신하지 않고서는 불교적 선행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선행 가운데서도 신앙심이 으뜸이 되며 이 신앙심 여하에 따라 선행의 결과도 좌우된다는 것이다.
유식학에서 말하는 신앙은 첫째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신(信)을 수정주(水淨珠)에다 비교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정주는 아무리 혼탁한 물이라 할지라도 이 수정주만 혼탁한 물 속에 넣으면 즉각 맑아지게 되며 모든 것이 밝게 비칠 만큼 청정하게 하는 기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갖는 신심도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데 있어 수정주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서는 신앙의 대상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진리의 실성(實性)을 확신하는 것이다. 진리의 실성은 곧 우리 자신이 보존하고 있는 본성이며 넓은 뜻으로 보면 진여성(眞如性)이며 불성(佛性)을 뜻한다. 이는 절대의 진리로서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실성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무한한 지혜와 가능성을 나타내 주며 온 세상을 극락세계로 환원하여 진리로운 세계를 구현해 주는 본질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 대한 덕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불타의 덕성을 확신하며 불법을 신앙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신앙한 만큼 불타의 가호가 내리며 항상 보살펴 주신다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인과(因果)의 공능(功能)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즉 세간적인 선업과 출세간적인 선업은 반드시 능력과 세력이 있어 세속적인 행복은 물론 출세간적인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또 창조할 수 있으며 무한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공능(功能)을 확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행을 하면 반드시 선과가 성취되고 악행을 하면 악과를 초래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확신하는 것은 신앙의 중요사상인 것이다. 동시에 삼라만상의 실체에도 각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능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신앙은 진리를 확신하고 불타를 비롯한 삼보(三寶)에 대한 신앙과 인과응보의 확신을 포함하여 종합적인 신앙관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앙심은 마음의 작용인 심소(心所)에 속한다.
* 참(慙)은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즉각 반성하고 어질고 착한 것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이는 특히 마음속으로 어떤 잘못을 범했으면 곧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동시에 반성하며 다시는 악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 괴(愧)는 세속에서 정해 놓은 규칙과 윤리 도덕을 위반했을 때 곧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와 더불어 악법을 멀리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며 이미 착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앞으로 윤리와 도덕에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하는 정신작용이다.
* 무탐(無貪)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아니하며 자기 소유의 재산도 극단적인 탐심을 내지 않는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을 버리고 정당한 노력에 의하여 진리롭게 자신과 재산을 유지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리고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 무진(無瞋)은 모든 사람과 심지어는 사물에 이르기까지 성내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고통스러움이 있어도 이를 참고 자비롭게 대하는 마음이다. 춥고 더우며 갈증이 나고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일체 짜증을 내지 않고 참고 견디며 여유 있는 마음으로 대하는 정신작용이다.
* 무치(無痴)는 모든 진리와 사물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무지(無知)를 야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즉 일상생활을 통하여 항상 지혜롭게 살며 자신의 심성(心性)과 객관계의 사물을 옳게 관찰하여 행동에 있어서도 선행만을 하는 정신작용이다.
* 근(勤)은 곧 정진을 뜻하며 선행에 근면함을 뜻한다. 평소 악을 정화하고 자신과 사회를 정화하는데 근면하고 진리를 실현함에 있어 모든 게으름을 퇴치하며 용감하게 추진해 나가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 경안(輕安)은 여러 가지 번뇌에 의하여 몸과 마음이 무거운 것을 떨쳐버리고 수행력으로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평안함을 뜻한다. 그리고 혼탁하게 하고 침체시키는 이른바 혼침(昏沈)을 정화하고 또 마음을 동요케 하는 도거(掉擧)를 제거하는 선정의 마음으로 일체의 산란심이 없는 정신상태를 뜻한다.
* 불방일(不放逸)은 모든 생활에서 방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방탕하는 것을 방지하고 뚜렷한 수행관과 생활관을 갖고 목적을 향하여 꾸준히 정진해가는 것을 뜻한다.
* 행사(行捨)는 마음의 동요를 없애고 항상 평등하게 유지하는 마음이다. 즉 사(捨)는 마음의 침체와 혼탁함에 끌리지 않고 또 동요(掉擧)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등한 마음으로서 매사에 꾸준하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정신작용이다.
* 불해(不害)는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해를 끼치지 않고 아껴주는 자비심을 말한다.
이상으로 선심소(善心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선의 정신작용은 심체(心體)에 의하여 그때 그 때 나타나게 된다. 이 내용으로 봐서 선의 심소는 마음과 육체의 정화는 물론 사회의 건설을 위한 정신작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선의 심소만을 잘 수용하며 생활한다면 참으로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회도상에 있는 우리 인간의 심성은 후천적으로 선과 악의 양대정신으로 나누어져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선의 정신작용과는 달리 악의 정신작용도 수시로 야기하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번뇌라고 한다.
4) 근본번뇌(根本煩惱)
악의 작용은 곧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오히려 앞에서 말한 선(善)의 작용을 방해하고 교란시키며 무지의 세계로 빠뜨리는 작용을 뜻한다. 그러므로 번뇌의 뜻은 다양하며 대소(大小)의 번뇌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번뇌는 항상 내심(內心)을 요란시키고 혼탁(混濁)케 하며 안정된 마음을 전환시켜 여러 유정(有情)들을 복잡하게 하고 흐리게 만든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번뇌는 안정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고뇌케 하며 지혜로운 마음을 덮어 버리고 장애하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 부장(覆藏) 또는 장애(障碍)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그리고 번뇌는 인간의 내심에서 여러 가지 잡념을 야기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정신을 방해하며 스스로 고민하고 불안하게 하고 정신적으로 구속된 생활을 하게 한다고 해서 계박(繫縛) 또는 결박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번뇌는 작용이 다양하며 별명도 많다. 그러므로 번뇌를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하고 또 팔만사천번뇌(八萬四千煩惱)라고도 한다. 마음의 작용이 한이 없음과 같이 번뇌의 작용도 한이 없다. 그러나 유식학에서는 번뇌의 근본이 되는 근본번뇌(根本煩惱)가 여섯이고 근본번뇌에서 파생된 수번뇌(隨煩惱)가 20종류가 있다고 하며 이들 번뇌는 수많은 번뇌 가운데서 극히 제한된 수만을 엄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근본번뇌라고 하는 것은 번뇌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를 말하고 이와 같이 뿌리 역할을 하는 근본번뇌에서 다시 파생하여 가지처럼 뻗어나는 번뇌를 수번뇌, 또는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 한다. 즉 수번뇌는 근본번뇌에 따라서 나타나는 번뇌라는 뜻으로 사실상 우리 현실에서 번뇌로 작용하는 마음은 거의 수번뇌이다. 그러나 근본번뇌의 작용은 제7말나식의 미망(迷妄)으로 인하여 최초에 나타나는 탐(貪), 진(瞋) 치(痴) 등 근본번뇌에 의하여 작동하게 된다. 이와 같이 탐, 진, 치 등 번뇌를 근본번뇌라고 하는데 이는 원시불교에서도 가장 중요시하였고,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에 와서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그것은 치심(痴心) 때문이다. 치심은 무명(無明)을 의미하며 무명은 무아(無我)에 대한 망각으로 말미암아 아집(我執)을 야기하게 하고 더불어 물질계의 법칙까지도 망각하여 법집(法執)을 야기하는 무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 가운데서 치심이 으뜸이라고 한다. 이러한 치심을 유식학에서는 심리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결국 제7말나식의 치심(痴心)이 진여성에 해당하는 무아(無我)를 최초로 망각하여 나타나는 번뇌를 아치(我痴)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아치의 번뇌에 의하여 지혜로운 본성이 가려지고 망심들이 부각하여 범부심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이를 아견(我見)이라고 이름한다. 즉, 자아에 대한 망견(妄見)을 뜻하는 것이며 이들을 전도심(顚倒心)이라고도 한다. 전도된 마음에 나타나는 정신작용이 올바르게 나타날리 없으며 이들 잘못된 정신작용을 내용별로 나누어 근본번뇌 또는 수번뇌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이들 번뇌들은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죄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관적인 죄악인 것이며 이들 주관적인 죄악에서 객관화한 것이 육체적인 행동의 죄악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앞에서 살펴본 선의 심소(善心所)에 대하여 번뇌들을 악의 심소(惡心所)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작용(心所)에 의하여 선행(善行), 또는 악행(惡行)으로 나타나며 선행과 악행은 곧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되며 이 선업과 악업은 다음의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를 가져올 인과응보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제 악의 작용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유식학에 있어서도 악은 곧 번뇌를 뜻한다. 번뇌는 마음에서 발생하여 마음을 다시 어지럽히고 어둡게 하는 작용을 뜻한다. 즉, 마음의 진실성(眞如性)을 망각하고 아집을 야기하며 또 법집을 야기하는 것을 비롯하여 온갖 무지의 작용을 일으킨다.
아집(我執)이라는 말은 인간의 본성이 공(空)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집합체인 자아에 대해서 실로 고정적인 자기가 있는 양 집착하는 번뇌를 말한다. 그래서 이 아집을 없애려면 내가 공했다고 관찰하는 아공관(我空觀)을 닦아야 한다. 또 법집(法執)이란 모든 사물이 법칙을 망각하여 마치 그 사물들이 영원히 존재하는 양 착각하여 집착을 야기한 번뇌를 말한다. 이러한 법집을 없애려면 만법(萬法)이 공하였음을 철저히 관찰하는 법공관(法空觀)을 수행하여야 한다. 아무튼 아집과 법집으로 말미암아 온갖 번뇌를 야기하게 되는데 이에 의하여 이른바 근본번뇌가 야기하고 이 근본번뇌에 의하여 다시 지말적인 수번뇌가 발생한다.
근본번뇌는 번뇌의 뿌리 역할을 하고 지말번뇌는 가지 역할을 하는 번뇌이다. 그 종류를 보면 근본번뇌에는 육종(六種)이 있고, 지말번뇌에는 20종의 번뇌가 있다. 이를 따로따로 설명해 보기로 한다.
근본번뇌는 번뇌의 근본이라는 뜻에서 본혹(本惑)이라고도 칭한다. 혹(惑)이라는 말은 번뇌와 통하는 말로서 진리에 미혹했다는 뜻이 있다. 여기에는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 등 육종의 번뇌가 있는데 이들은 극히 근원적인 번뇌들이다. 차례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탐(貪)은 자신에 대한 탐심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이를 아집(我執)이라 한다. 또 사물에 대한 탐심이 있는데 이는 법집(法執)이 기본적이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한 탐심으로 말미암아 이기심이 마음속에 있는 한 악행이 그치지 않고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미래에 나쁜 과보를 받을 업인이 되며 윤회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이기심이 되는 아집을 앞세우는 탐심은 금물이며 항상 진리로운 정진(精進)에 의하여 정당하게 재산을 모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 진(瞋)은 성내는 마음을 뜻한다. 성내는 것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모두 진심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와 상대에서 마음에 거슬리면 성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좁은 생각이다. 유식학에서는 우리 오관을 통한 모든 인식의 대상물이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며, 그리고 내면세계의 불만족도 마찬가지로 본다. 이는 자비를 방해하는 심리작용이며 심리적 불안과 마음과 몸에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작용을 야기하게 된다.
* 치(痴)는 번뇌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로서 연기(緣起)의 도리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진리를 망각한 것을 의미하며 이를 무명(無明)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치는 모든 진리에 어리석다는 뜻이며 어리석다는 것은 곧 무지를 뜻하기 때문에 무명이라고도 한다. 이는 모든 사리(事理)에 대하여 망각한 것을 뜻하며 정상적인 마음이 비정상적으로 전화되었다는 뜻으로 전도심(顚倒心)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이 치심은 모든 번뇌의 의지처가 된다. 그 이유는 진리를 망각하여 모든 번뇌를 야기하게 되는 것은 치심이기 때문이다. 치심에 반대되는 것을 지혜라 하며 지혜를 항상 방해하기 때문에 번뇌 중 치심이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 만(慢)은 치심으로 말미암아 아집 등 이기심이 나타나 나라는 것을 확고하게 맹신하고, 자기 이외의 사람들은 하찮케 생각한 데서 나타난 거만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 때문에 남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추태를 부린다. 그리하여 자신의 덕성을 상실하고 천한 태도만을 보이는 심리작용이다.
* 의(疑)는 오관을 통하여 인식하는 상대를 잘 모르고 확신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작용이다. 이를 유예(猶豫)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진리에 대한 소신을 방해하는 것을 뜻한다.
* 악견(惡見)은 모든 진리에 대해서 망각하고 착각된 마음으로 추구하는 견해를 말한다. 그리하여 이는 번뇌에 가려서 진리를 잘못 판단하는 염혜(染慧)를 항상 야기하며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고 동시에 선견(善見)을 방해하고 장애하는 작용까지도 한다. 이 악견(惡見)은 유신견(有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더욱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이 통례이다.
첫째, 유신견(有身見)은 살가야견(薩迦耶見)을 번역한 말로서 살가야(Salkaya)는 유신(有身)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몸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등이 모여 임시로 구성된 것인데 이 오온(五蘊)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한 것이며 이를 유신견(有身見)이라고 하며 또한 위신견(僞身見)이라고도 한다.
둘째, 변견(邊見)은 자신의 몸에 집착한 유신견의 망견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 몸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말하며 이러한 견해를 상견(常見)이라고 한다. 또 이 몸은 사망 후에는 영원히 없어지게 될 것이며 단멸(斷滅)하게 될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데 이를 단견(斷見)이라고 한다. 진리는 항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갖는 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생각이기 때문에 이를 변견이라고 한다.
셋째, 사견(邪見)은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고 선악의 윤리적 사상을 부정하는 견해를 뜻한다.
넷째, 견취견(見取見)은 유신견과 같이 자신에 대한 집착을 야기하여 그것을 최고의 것이라고 집착하며 진리에 맞지 않는 견해를 나타내서 많은 비난을 받을 만한 견해를 말한다.
다섯째, 계금취견(戒禁取見)은 계금(戒禁)은 계법으로 금한 것을 말하며 취견(取見)은 그 계법에 집착하여 현실과 진리에 맞지 않는 계법을 강요하는 견해를 뜻한다. 이는 특히 외도(外道)들이 생천(生天)을 목적으로 나체로 있거나 머리를 뽑고 회가루를 바르며 불 속과 물 속에 투신하는 등 불필요하게 삿된 계율(邪戒)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어서 이러한 계법을 경계하는 뜻이 있다.
이상과 같은 오견(五見)을 합쳐서 악견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른 진리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육번뇌는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악(惡)을 논할 때 항상 이들 번뇌가 인용된다.
5) 수번뇌(隨煩惱)
이는 근본번뇌에 의하여 파생된 것이므로 지말번뇌(枝末煩惱)라 하며 본명은 수번뇌(隨煩惱)이다. 이는 수혹(隨惑)이라고도 호칭되는데 혹(惑)은 곧 번뇌의 뜻과 같다. 이 수번뇌에는 분(忿). 한(恨). 부(覆). 뇌(惱). 질(嫉). 간(아낄). 광(속일). 첨(諂). 해(害). 교(교만할). 무참(無慙). 무괴(無愧). 도거(掉擧). 혼침(昏沈).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 등 20종의 번뇌가 있다. 이들 20종의 수번뇌를 소. 중. 대로 나누어 소수혹(小隨惑), 중수혹(中隨惑), 대수혹(大隨惑)이라고 한다. 이들 수번뇌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가) 소수혹(小隨惑)
* 분(忿)은 자기 이익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성내는 것을 말하며 이는 진심(瞋心)보다는 약한 작용이다. 이러한 분에 의하여 포악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 한(恨)은 위에서 말한 분심을 앞세워 항상 악을 품고 원수로 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마음에는 항상 원한이 있고 고통(熱惱)이 있게 된다.
* 부(覆)는 자신의 죄를 덮어놓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만약 자신의 죄업이 널리 알려지면 명예와 이익이 손실될까 두려워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는 번뇌이다.
* 뇌(惱)는 분함과 한탄함을 갖고 항상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는 번뇌이다.
* 질(嫉)은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이 잘 살고 출세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말한다.
* 간(아낄)은 재산과 진리를 아끼기만 하고 남에게 물질을 베풀어주지 않고 진리를 설하여 지혜를 심어주지 않는 것을 뜻한다.
* 광(속일)은 명예와 이익을 위하여 남을 속이고 교만하고 부덕하면서도 덕이 있는 것처럼 남을 속이기만 하며 동시에 정직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 첨(諂)은 남에게 아첨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며 또한 본심을 속여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번뇌이다.
* 해(害)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에게 자비롭지 못한 마음으로 손해와 괴로움을 끼치는 행위를 말한다.
* 교(교만할)는 자신이 성공한 일이 있으면 교만을 부리거나 남을 멸시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상의 번뇌는 10가지 작은 번뇌라는 뜻에서 십소수혹(十小隨惑)이라고 한다.
나) 중수혹(中隨惑)
다음은 중수혹을 알아보기로 하는 바 여기에는 무참(無慙)과 무괴(無愧) 등 두 가지가 있다.
* 무참(無慙)는 잘못을 범하고도 마음속 깊이 부끄러운 생각을 갖지 않으며 동시에 현인과 선법(善法)을 경거망동하게 경멸히 여기는 행위를 뜻한다.
* 무괴(無愧)는 세상의 안정을 돌보지 않고 포악한 일에만 종사하면서 추호도 부끄러운 생각을 갖지 않고, 반성할 줄 모르는 악덕을 말한다.
이상 두 가지 번뇌를 중수혹이라 한다.
다) 대수혹(大隨惑)
다음 대수혹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도거(掉擧)는 마음이 요동하여 안정을 잃게 하는 번뇌이다. 그리하여 평등한 마음과 선정(奢摩他)를 방해하는 작용을 항상 한다.
* 혼침(昏沈)은 마음이 어떤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항상 혼미하게 하고 침체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경쾌하고 안정된 마음(輕安)과 지혜로운 선정(毘鉢舍那)을 방해하는 심리작용인 것이다. 이는 도거심소와 함께 선정을 방해하는 작용이라고 널리 알려져 오고 있다.
* 불신(不信)은 진리에 대한 소신이 없고 불타의 덕성과 인과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번뇌이다. 그러므로 게으름만 피고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만 하게 된다.
* 해태(懈怠)는 글자 그대로 게으름을 뜻한다. 이는 악을 끊고 선을 닦는 일에 태만하며 평소에 노력하지 않는 번뇌를 말한다.
* 방일(放逸)은 진리관을 뚜렷이 갖지 못하고 선업을 닦는 일에 방종하며 방탕함을 뜻한다.
* 실념(失念)은 진리로운 일을 명백하게 기억(明記)하지 못하고 동시에 산란한 마음에 의존하여 정념(正念)을 상실한 번뇌이다.
* 산란(散亂)은 정신을 밖으로만 향하여 달리게 하고 또 객관계의 대상(所緣境)에 대해서 나쁜 견해(惡慧)만을 유발하도록 한다.
* 부정지(不正知)는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항상 오해하도록 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는 능히 정당한 지식을 방해하고 선업을 닦지 못하게 하는 치심(痴心)의 일부분으로서 마음을 우매하게 작용하는 번뇌이다.
이상과 같은 8가지 번뇌를 8대수혹(八大隨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수번뇌 가운데서 가장 큰 작용을 가진 번뇌로서 정신을 혼란케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말한 수번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나타나는 번뇌들로서 정신수행에서 항상 경계해야 할 번뇌들이다.
이제까지 안식으로부터 의식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왔다. 그 다음의 순서는 제7말나식을 살펴야 할 차례다. 그러나 여기서 말나식을 설명하기 전에 마음의 작용에 해당하는 심소(心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위에서 6종의 심식을 이미 설명하였는데 이들 심식에는 수많은 작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용들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심식의 내용도 완전히 알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체성과 작용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의 체성과 작용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마음의 체성을 흔히 심왕(心王)이라고 한다. 그것은 마음의 체성이 마치 국왕이 명령을 내리면 그 밑에서 근무하는 신하들은 무조건 복종하는 바와 같은 비유를 들어 명칭한 이름이다. 즉 심왕은 마음의 체성이고, 심소(心所)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신하가 국왕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듯 마음의 체성에 의하여 나타나는 작용도 그러하다.
다시 말하면 심식(心識)은 국왕에 비유할 수 있고, 심소는 신하가 국왕에 소속되어 수족처럼 역할을 하듯이 심왕의 소유물로서 심왕이 하라는 대로 심부름을 다하는 작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심소라는 뜻은 심왕이 소유한다는 뜻에서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고 한 명칭을 줄인 이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심왕과 심소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불가분의 관계를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성유식론(成唯識論)] 권5에 의하면, "첫째, 심소는 항상 심왕에 의지하여 작용을 야기한다(恒依心起故). 둘째, 심소는 항상 심왕과 더불어 상응하면서 활동한다(與心相應). 셋째, 심소는 항상 심왕에 소속하고 계속된다(繫屬於心)"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심소는 심왕에 소속하여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심소는 심왕의 소유물로서 아소(我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깊은 관계가 있는 마음의 체성과 마음의 작용은 거의 행동을 같이 한다. 그 행동을 같이하는 관계를 상응(相應)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4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그 4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음(心王)과 마음의 작용(心所)은 행동을 야기할 때 그 시간이 동일하고,
둘째,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의지하는 장소(所依根)가 동일하며,
셋째,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그 인식의 대상(所緣境)이 같고,
넷째,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동일한 일(事)만을 한다.
이상과 같이 마음의 체성과 마음의 작용은 행동하는 시간(時)과 의지할 곳(所依根)과 인식의 대상(所緣境)과 활동하는 일 등이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그 대상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내용만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같이 나타나 어떠한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의 체성인 심왕은 그 대상에 대한 전체의 모습(總相)을 인식하고 또 마음의 작용에 해당하는 심소는 그 대상의 전체는 물론, 그 대상 안에 지니고 있는 낱낱의 모습(別相)을 일일이 인식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러한 활동들을 행상(行相)이라고 하는데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인식하는 행동의 모습을 뜻한다. 이들 심왕과 심소의 행상관계를 예를 들어보면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가 하나의 화폭에 전체의 본을 그려 놓으면 그 제자가 화폭의 구석구석을 그려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 즉 심왕과 심소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활동하며 동시에 모든 대상을 인식한다. 그런데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따로 분리시켜 말할 수 없는 것이 정신세계이기는 하나,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들의 성격을 분명히 따로 작용(心所)만을 분리하여 그 성질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심소론(心所論)이라고 한다. 즉 심소만을 가지고 논술하는 학문인 것이다.
이러한 심소론에 의하면 마음의 작용은 51종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또 이들 51종을 각각 성질별로 구별하여 다시 육위(六位)의 분야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 6위 51종의 심소(六位 五十一心所)라고 한다. 물론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무한한 작용들이 있으며 또 원시불교에서 소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마음(心王)의 작용(心所)설을 해설한 것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유식학에서는 종래에 설명되어 왔던 심소설들을 엄밀하게 취사선택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에 필히 없어서는 안 되는 심적 작용만을 재조직하였다. 이들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위에서 심체와 심작용에 대하여 그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제 육위(六位)의 심작용을 간추려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심소의 육위를 보면, 1) 변행심소(邊行心所), 2) 별경심소(別境心所), 3) 선심소(善心所), 4) 번뇌심소(煩惱心所), 5)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6) 부정심소(不定心所) 등으로 분류된 심소를 말한다. 이들 육위의 심소들은 마음의 작용에 나타나는 그 기능과 성질별로 구별한 것이다. 이들 육위심소에 대해서 하나하나의 뜻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변행심소(遍行心所)
변행심소는 어떤 심식이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반드시 일어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심식에 두루 나타나면서 그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을 뜻한다. 여기에는 5종의 심소가 있는바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 등을 말한다.
촉의 심소는 팔식(八識) 가운데 한 식(識)이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최초로 그 심식의 작용이 대상에 닿는 것을 촉(觸)이라 한다. 예를 들면 눈의 시선(眼識)이 보고자 하는 대상물(色境)에 닿거나 귀로 듣는 마음(耳識)이 어떤 소리에 닿았을 때의 찰나를 촉이라 한다. 이는 오관을 통하여 객관계의 대상물에 마음이 닿는 순간을 뜻한다. 이와 같이 촉이 성립되면 그 즉시에 마음 안에는 경각심(警覺心)이 나타난다. 이를 작의심소(作意心所)라고 한다. 이 작의심소는 갑자기 큰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는 등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보통은 자연스럽게 작용하니까 작의심소의 작용을 알 수 없지만 불의의 사건을 접할 때는 능히 알 수 있는 작용이다.
그 다음에는 수심소(受心所)가 야기한다. 이는 작의심소가 앞에 무엇이 나타났다고 경종을 울려주면 그 대상의 내용을 영접하여 사실 그대로 안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만약 그 대상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苦受) 또 마음에 알맞으면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게(樂受) 된다. 그리고 대상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으며 그저 그런 대로 좋고 나쁜 생각 없이 무심히 받아들이게(捨受) 된다.
그 다음 상(想)은 밖을 통하여 어떤 대상이 마음 안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대상의 모습을 구별(取像)하는 작용을 야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심소(思心所)는 마음으로 하여금 그 대상의 모습에 대하여 선(善)이다, 악(惡)이다 하는 선악의 결정을 내려주는 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 심소를 오변행 심소라고 하는데 이들 작용은 어떤 심식에서든지 반드시 나타나 그 대상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주는 정신작용인 것이다.
2) 별경심소(別境心所)
별경심소는 위에서 말한 변행심소와 같이 모든 대상(境)에 다 같이 두루두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인식의 대상 위에 나타나 특성 있게 인식활동을 한다. 그 종류는 욕(慾), 승해(勝解), 염(念), 정(定), 혜(慧) 등 다섯 가지이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 욕(慾)은 인식의 대상에 나아가고자 하며 항상 희망을 갖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 희망은 마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마음이 지혜로우면 선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고, 마음이 무지하여 번뇌가 많으면 악에 대한 희망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누구나 욕심(慾心)을 갖고 있는데 선욕(善慾)을 갖느냐 아니면 악욕(惡慾)을 갖느냐에 따라 그 행위도 선행 또는 악행으로 나타나게 된다.
* 승해(勝解)는 어떤 경지를 결정적으로 이해하고 정(正)과 사(邪)를 분명히 아는 심리작용 이다. 이러한 것은 선정(禪定)의 수행과 여러 수행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청정하여져서 모든 사물과 사리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해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 염(念)은 일찍이 마음에 암기하고 익혔거나 있었던 일들을 마음속에 분명히 기억해 두는 심리작용이다. 다시 말하면 이 염은 다른 생각과는 달라서 안정된 마음에 의지(定依)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받아서 기억할 때 그 내용을 마음속에 분명하게 기록(明記)하여 두는 심소이다.
* 정(定)은 첫째로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여 모든 잡념을 없애며 동시에 심식이 대상을 인식할 때 동요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관(觀)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 정심(定心)은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마음속의 지혜를 나타나게 하여 활동하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심이 나타나면 반드시 지혜가 나타나게 되며 그 지혜는 인식대상의 모습(相)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질(性)까지도 관찰하여 그 대상이 지닌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러한 지혜를 결택지(決擇智)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 사리(事理)를 분명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력(智力)이 있기 때문이다.
* 혜(慧)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관찰하는 대상(所觀境)에 대하여 옳고 그름(是非)을 분명하게 선별하여 주는 마음이다. 이 혜는 간택(簡擇)함을 성(性)으로 하고 또 모든 의심을 끊고 확신을 갖게 하는 인식능력으로서 단의(斷疑)를 업(業)으로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오종의 별경심소는 여러 심소 가운데 하나하나 나타나서 비록 번뇌심이지만 지혜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작용들이다. 다시 말하면 오변행심소는 어느 심식에나 자주 나타나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반면에 오별경심소는 모든 객관계의 대상을 올바로 인식하고 내면의 정신계를 안정시키며 지혜롭고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심리작용들이다.
이들 심소들은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번뇌가 감소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정화하여 바람직한 심소가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불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다. 수행은 곧 정(定)과 혜(慧)를 나타내는 촉진제가 되는 것이며 동시에 행복과 안락을 가져다 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마음의 체성(心體)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마음의 작용(心所) 가운데서 변행심소와 별경심소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마음의 작용 가운데는 그 성질이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선의 심소(善心所)와 악의 심소(惡心所)를 말한다. 이들 두 심소는 마음의 체성(心王)에서 나타나는 작용들로서 그 성질이 상대적이며 내면세계는 물론 객관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대조적이다.
다시 말하면 착한 행동은 선의 심소에서 나타나며, 악한 행동은 악의 심소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심소의 행위에 따라 선업(善業) 또는 악업(惡業)이 조성된다. 동시에 이들 업력에 의하여 우리 자신의 정신계와 객관세계의 고락(苦樂)을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들 선업과 악업은 사망할 때 선도(善道)로 이끌어 주고 또 악도(惡道)로 이끌어 주는 핵심역할을 한다. 이제 선심소(善心所)와 악심소(惡心所)의 종류와 내용이 무엇인지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3) 선심소(善心所)
유식론에 의하면 선의 심소는 11가지가 있다. 그 종류를 보면, 신(信), 참(慙),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痴), 근(勤),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 등 11종(種)을 말한다. 이들 선심소 살펴보기로 한다.
* 신(信)은 신심(信心)을 뜻한다. 불교에서 선을 논할 때 신심이 가장 으뜸이라고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볼 때 여러 선행의 종류를 얼마든지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종교적으로 선(善)을 논할 때는 먼저 부처님의 진리를 확신하지 않고서는 불교적 선행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선행 가운데서도 신앙심이 으뜸이 되며 이 신앙심 여하에 따라 선행의 결과도 좌우된다는 것이다.
유식학에서 말하는 신앙은 첫째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신(信)을 수정주(水淨珠)에다 비교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정주는 아무리 혼탁한 물이라 할지라도 이 수정주만 혼탁한 물 속에 넣으면 즉각 맑아지게 되며 모든 것이 밝게 비칠 만큼 청정하게 하는 기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갖는 신심도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데 있어 수정주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서는 신앙의 대상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진리의 실성(實性)을 확신하는 것이다. 진리의 실성은 곧 우리 자신이 보존하고 있는 본성이며 넓은 뜻으로 보면 진여성(眞如性)이며 불성(佛性)을 뜻한다. 이는 절대의 진리로서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실성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무한한 지혜와 가능성을 나타내 주며 온 세상을 극락세계로 환원하여 진리로운 세계를 구현해 주는 본질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 대한 덕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불타의 덕성을 확신하며 불법을 신앙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신앙한 만큼 불타의 가호가 내리며 항상 보살펴 주신다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인과(因果)의 공능(功能)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즉 세간적인 선업과 출세간적인 선업은 반드시 능력과 세력이 있어 세속적인 행복은 물론 출세간적인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또 창조할 수 있으며 무한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공능(功能)을 확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행을 하면 반드시 선과가 성취되고 악행을 하면 악과를 초래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확신하는 것은 신앙의 중요사상인 것이다. 동시에 삼라만상의 실체에도 각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능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신앙은 진리를 확신하고 불타를 비롯한 삼보(三寶)에 대한 신앙과 인과응보의 확신을 포함하여 종합적인 신앙관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앙심은 마음의 작용인 심소(心所)에 속한다.
* 참(慙)은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즉각 반성하고 어질고 착한 것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이는 특히 마음속으로 어떤 잘못을 범했으면 곧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동시에 반성하며 다시는 악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 괴(愧)는 세속에서 정해 놓은 규칙과 윤리 도덕을 위반했을 때 곧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와 더불어 악법을 멀리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며 이미 착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앞으로 윤리와 도덕에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하는 정신작용이다.
* 무탐(無貪)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아니하며 자기 소유의 재산도 극단적인 탐심을 내지 않는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을 버리고 정당한 노력에 의하여 진리롭게 자신과 재산을 유지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리고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 무진(無瞋)은 모든 사람과 심지어는 사물에 이르기까지 성내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고통스러움이 있어도 이를 참고 자비롭게 대하는 마음이다. 춥고 더우며 갈증이 나고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일체 짜증을 내지 않고 참고 견디며 여유 있는 마음으로 대하는 정신작용이다.
* 무치(無痴)는 모든 진리와 사물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무지(無知)를 야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즉 일상생활을 통하여 항상 지혜롭게 살며 자신의 심성(心性)과 객관계의 사물을 옳게 관찰하여 행동에 있어서도 선행만을 하는 정신작용이다.
* 근(勤)은 곧 정진을 뜻하며 선행에 근면함을 뜻한다. 평소 악을 정화하고 자신과 사회를 정화하는데 근면하고 진리를 실현함에 있어 모든 게으름을 퇴치하며 용감하게 추진해 나가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 경안(輕安)은 여러 가지 번뇌에 의하여 몸과 마음이 무거운 것을 떨쳐버리고 수행력으로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평안함을 뜻한다. 그리고 혼탁하게 하고 침체시키는 이른바 혼침(昏沈)을 정화하고 또 마음을 동요케 하는 도거(掉擧)를 제거하는 선정의 마음으로 일체의 산란심이 없는 정신상태를 뜻한다.
* 불방일(不放逸)은 모든 생활에서 방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방탕하는 것을 방지하고 뚜렷한 수행관과 생활관을 갖고 목적을 향하여 꾸준히 정진해가는 것을 뜻한다.
* 행사(行捨)는 마음의 동요를 없애고 항상 평등하게 유지하는 마음이다. 즉 사(捨)는 마음의 침체와 혼탁함에 끌리지 않고 또 동요(掉擧)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등한 마음으로서 매사에 꾸준하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정신작용이다.
* 불해(不害)는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해를 끼치지 않고 아껴주는 자비심을 말한다.
이상으로 선심소(善心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선의 정신작용은 심체(心體)에 의하여 그때 그 때 나타나게 된다. 이 내용으로 봐서 선의 심소는 마음과 육체의 정화는 물론 사회의 건설을 위한 정신작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선의 심소만을 잘 수용하며 생활한다면 참으로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회도상에 있는 우리 인간의 심성은 후천적으로 선과 악의 양대정신으로 나누어져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선의 정신작용과는 달리 악의 정신작용도 수시로 야기하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번뇌라고 한다.
4) 근본번뇌(根本煩惱)
악의 작용은 곧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오히려 앞에서 말한 선(善)의 작용을 방해하고 교란시키며 무지의 세계로 빠뜨리는 작용을 뜻한다. 그러므로 번뇌의 뜻은 다양하며 대소(大小)의 번뇌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번뇌는 항상 내심(內心)을 요란시키고 혼탁(混濁)케 하며 안정된 마음을 전환시켜 여러 유정(有情)들을 복잡하게 하고 흐리게 만든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번뇌는 안정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고뇌케 하며 지혜로운 마음을 덮어 버리고 장애하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 부장(覆藏) 또는 장애(障碍)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그리고 번뇌는 인간의 내심에서 여러 가지 잡념을 야기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정신을 방해하며 스스로 고민하고 불안하게 하고 정신적으로 구속된 생활을 하게 한다고 해서 계박(繫縛) 또는 결박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번뇌는 작용이 다양하며 별명도 많다. 그러므로 번뇌를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하고 또 팔만사천번뇌(八萬四千煩惱)라고도 한다. 마음의 작용이 한이 없음과 같이 번뇌의 작용도 한이 없다. 그러나 유식학에서는 번뇌의 근본이 되는 근본번뇌(根本煩惱)가 여섯이고 근본번뇌에서 파생된 수번뇌(隨煩惱)가 20종류가 있다고 하며 이들 번뇌는 수많은 번뇌 가운데서 극히 제한된 수만을 엄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근본번뇌라고 하는 것은 번뇌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를 말하고 이와 같이 뿌리 역할을 하는 근본번뇌에서 다시 파생하여 가지처럼 뻗어나는 번뇌를 수번뇌, 또는 지말번뇌(枝末煩惱)라고 한다. 즉 수번뇌는 근본번뇌에 따라서 나타나는 번뇌라는 뜻으로 사실상 우리 현실에서 번뇌로 작용하는 마음은 거의 수번뇌이다. 그러나 근본번뇌의 작용은 제7말나식의 미망(迷妄)으로 인하여 최초에 나타나는 탐(貪), 진(瞋) 치(痴) 등 근본번뇌에 의하여 작동하게 된다. 이와 같이 탐, 진, 치 등 번뇌를 근본번뇌라고 하는데 이는 원시불교에서도 가장 중요시하였고,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에 와서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그것은 치심(痴心) 때문이다. 치심은 무명(無明)을 의미하며 무명은 무아(無我)에 대한 망각으로 말미암아 아집(我執)을 야기하게 하고 더불어 물질계의 법칙까지도 망각하여 법집(法執)을 야기하는 무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 가운데서 치심이 으뜸이라고 한다. 이러한 치심을 유식학에서는 심리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결국 제7말나식의 치심(痴心)이 진여성에 해당하는 무아(無我)를 최초로 망각하여 나타나는 번뇌를 아치(我痴)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아치의 번뇌에 의하여 지혜로운 본성이 가려지고 망심들이 부각하여 범부심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이를 아견(我見)이라고 이름한다. 즉, 자아에 대한 망견(妄見)을 뜻하는 것이며 이들을 전도심(顚倒心)이라고도 한다. 전도된 마음에 나타나는 정신작용이 올바르게 나타날리 없으며 이들 잘못된 정신작용을 내용별로 나누어 근본번뇌 또는 수번뇌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이들 번뇌들은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죄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관적인 죄악인 것이며 이들 주관적인 죄악에서 객관화한 것이 육체적인 행동의 죄악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앞에서 살펴본 선의 심소(善心所)에 대하여 번뇌들을 악의 심소(惡心所)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작용(心所)에 의하여 선행(善行), 또는 악행(惡行)으로 나타나며 선행과 악행은 곧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되며 이 선업과 악업은 다음의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를 가져올 인과응보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제 악의 작용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유식학에 있어서도 악은 곧 번뇌를 뜻한다. 번뇌는 마음에서 발생하여 마음을 다시 어지럽히고 어둡게 하는 작용을 뜻한다. 즉, 마음의 진실성(眞如性)을 망각하고 아집을 야기하며 또 법집을 야기하는 것을 비롯하여 온갖 무지의 작용을 일으킨다.
아집(我執)이라는 말은 인간의 본성이 공(空)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집합체인 자아에 대해서 실로 고정적인 자기가 있는 양 집착하는 번뇌를 말한다. 그래서 이 아집을 없애려면 내가 공했다고 관찰하는 아공관(我空觀)을 닦아야 한다. 또 법집(法執)이란 모든 사물이 법칙을 망각하여 마치 그 사물들이 영원히 존재하는 양 착각하여 집착을 야기한 번뇌를 말한다. 이러한 법집을 없애려면 만법(萬法)이 공하였음을 철저히 관찰하는 법공관(法空觀)을 수행하여야 한다. 아무튼 아집과 법집으로 말미암아 온갖 번뇌를 야기하게 되는데 이에 의하여 이른바 근본번뇌가 야기하고 이 근본번뇌에 의하여 다시 지말적인 수번뇌가 발생한다.
근본번뇌는 번뇌의 뿌리 역할을 하고 지말번뇌는 가지 역할을 하는 번뇌이다. 그 종류를 보면 근본번뇌에는 육종(六種)이 있고, 지말번뇌에는 20종의 번뇌가 있다. 이를 따로따로 설명해 보기로 한다.
근본번뇌는 번뇌의 근본이라는 뜻에서 본혹(本惑)이라고도 칭한다. 혹(惑)이라는 말은 번뇌와 통하는 말로서 진리에 미혹했다는 뜻이 있다. 여기에는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 등 육종의 번뇌가 있는데 이들은 극히 근원적인 번뇌들이다. 차례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탐(貪)은 자신에 대한 탐심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이를 아집(我執)이라 한다. 또 사물에 대한 탐심이 있는데 이는 법집(法執)이 기본적이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한 탐심으로 말미암아 이기심이 마음속에 있는 한 악행이 그치지 않고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미래에 나쁜 과보를 받을 업인이 되며 윤회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이기심이 되는 아집을 앞세우는 탐심은 금물이며 항상 진리로운 정진(精進)에 의하여 정당하게 재산을 모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 진(瞋)은 성내는 마음을 뜻한다. 성내는 것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모두 진심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와 상대에서 마음에 거슬리면 성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좁은 생각이다. 유식학에서는 우리 오관을 통한 모든 인식의 대상물이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며, 그리고 내면세계의 불만족도 마찬가지로 본다. 이는 자비를 방해하는 심리작용이며 심리적 불안과 마음과 몸에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작용을 야기하게 된다.
* 치(痴)는 번뇌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로서 연기(緣起)의 도리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진리를 망각한 것을 의미하며 이를 무명(無明)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치는 모든 진리에 어리석다는 뜻이며 어리석다는 것은 곧 무지를 뜻하기 때문에 무명이라고도 한다. 이는 모든 사리(事理)에 대하여 망각한 것을 뜻하며 정상적인 마음이 비정상적으로 전화되었다는 뜻으로 전도심(顚倒心)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이 치심은 모든 번뇌의 의지처가 된다. 그 이유는 진리를 망각하여 모든 번뇌를 야기하게 되는 것은 치심이기 때문이다. 치심에 반대되는 것을 지혜라 하며 지혜를 항상 방해하기 때문에 번뇌 중 치심이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 만(慢)은 치심으로 말미암아 아집 등 이기심이 나타나 나라는 것을 확고하게 맹신하고, 자기 이외의 사람들은 하찮케 생각한 데서 나타난 거만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 때문에 남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추태를 부린다. 그리하여 자신의 덕성을 상실하고 천한 태도만을 보이는 심리작용이다.
* 의(疑)는 오관을 통하여 인식하는 상대를 잘 모르고 확신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작용이다. 이를 유예(猶豫)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진리에 대한 소신을 방해하는 것을 뜻한다.
* 악견(惡見)은 모든 진리에 대해서 망각하고 착각된 마음으로 추구하는 견해를 말한다. 그리하여 이는 번뇌에 가려서 진리를 잘못 판단하는 염혜(染慧)를 항상 야기하며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고 동시에 선견(善見)을 방해하고 장애하는 작용까지도 한다. 이 악견(惡見)은 유신견(有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더욱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이 통례이다.
첫째, 유신견(有身見)은 살가야견(薩迦耶見)을 번역한 말로서 살가야(Salkaya)는 유신(有身)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몸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등이 모여 임시로 구성된 것인데 이 오온(五蘊)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한 것이며 이를 유신견(有身見)이라고 하며 또한 위신견(僞身見)이라고도 한다.
둘째, 변견(邊見)은 자신의 몸에 집착한 유신견의 망견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 몸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말하며 이러한 견해를 상견(常見)이라고 한다. 또 이 몸은 사망 후에는 영원히 없어지게 될 것이며 단멸(斷滅)하게 될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데 이를 단견(斷見)이라고 한다. 진리는 항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갖는 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생각이기 때문에 이를 변견이라고 한다.
셋째, 사견(邪見)은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고 선악의 윤리적 사상을 부정하는 견해를 뜻한다.
넷째, 견취견(見取見)은 유신견과 같이 자신에 대한 집착을 야기하여 그것을 최고의 것이라고 집착하며 진리에 맞지 않는 견해를 나타내서 많은 비난을 받을 만한 견해를 말한다.
다섯째, 계금취견(戒禁取見)은 계금(戒禁)은 계법으로 금한 것을 말하며 취견(取見)은 그 계법에 집착하여 현실과 진리에 맞지 않는 계법을 강요하는 견해를 뜻한다. 이는 특히 외도(外道)들이 생천(生天)을 목적으로 나체로 있거나 머리를 뽑고 회가루를 바르며 불 속과 물 속에 투신하는 등 불필요하게 삿된 계율(邪戒)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어서 이러한 계법을 경계하는 뜻이 있다.
이상과 같은 오견(五見)을 합쳐서 악견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른 진리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육번뇌는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악(惡)을 논할 때 항상 이들 번뇌가 인용된다.
5) 수번뇌(隨煩惱)
이는 근본번뇌에 의하여 파생된 것이므로 지말번뇌(枝末煩惱)라 하며 본명은 수번뇌(隨煩惱)이다. 이는 수혹(隨惑)이라고도 호칭되는데 혹(惑)은 곧 번뇌의 뜻과 같다. 이 수번뇌에는 분(忿). 한(恨). 부(覆). 뇌(惱). 질(嫉). 간(아낄). 광(속일). 첨(諂). 해(害). 교(교만할). 무참(無慙). 무괴(無愧). 도거(掉擧). 혼침(昏沈).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 등 20종의 번뇌가 있다. 이들 20종의 수번뇌를 소. 중. 대로 나누어 소수혹(小隨惑), 중수혹(中隨惑), 대수혹(大隨惑)이라고 한다. 이들 수번뇌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가) 소수혹(小隨惑)
* 분(忿)은 자기 이익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성내는 것을 말하며 이는 진심(瞋心)보다는 약한 작용이다. 이러한 분에 의하여 포악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 한(恨)은 위에서 말한 분심을 앞세워 항상 악을 품고 원수로 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마음에는 항상 원한이 있고 고통(熱惱)이 있게 된다.
* 부(覆)는 자신의 죄를 덮어놓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만약 자신의 죄업이 널리 알려지면 명예와 이익이 손실될까 두려워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는 번뇌이다.
* 뇌(惱)는 분함과 한탄함을 갖고 항상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는 번뇌이다.
* 질(嫉)은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이 잘 살고 출세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말한다.
* 간(아낄)은 재산과 진리를 아끼기만 하고 남에게 물질을 베풀어주지 않고 진리를 설하여 지혜를 심어주지 않는 것을 뜻한다.
* 광(속일)은 명예와 이익을 위하여 남을 속이고 교만하고 부덕하면서도 덕이 있는 것처럼 남을 속이기만 하며 동시에 정직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 첨(諂)은 남에게 아첨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며 또한 본심을 속여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번뇌이다.
* 해(害)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에게 자비롭지 못한 마음으로 손해와 괴로움을 끼치는 행위를 말한다.
* 교(교만할)는 자신이 성공한 일이 있으면 교만을 부리거나 남을 멸시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상의 번뇌는 10가지 작은 번뇌라는 뜻에서 십소수혹(十小隨惑)이라고 한다.
나) 중수혹(中隨惑)
다음은 중수혹을 알아보기로 하는 바 여기에는 무참(無慙)과 무괴(無愧) 등 두 가지가 있다.
* 무참(無慙)는 잘못을 범하고도 마음속 깊이 부끄러운 생각을 갖지 않으며 동시에 현인과 선법(善法)을 경거망동하게 경멸히 여기는 행위를 뜻한다.
* 무괴(無愧)는 세상의 안정을 돌보지 않고 포악한 일에만 종사하면서 추호도 부끄러운 생각을 갖지 않고, 반성할 줄 모르는 악덕을 말한다.
이상 두 가지 번뇌를 중수혹이라 한다.
다) 대수혹(大隨惑)
다음 대수혹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도거(掉擧)는 마음이 요동하여 안정을 잃게 하는 번뇌이다. 그리하여 평등한 마음과 선정(奢摩他)를 방해하는 작용을 항상 한다.
* 혼침(昏沈)은 마음이 어떤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항상 혼미하게 하고 침체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경쾌하고 안정된 마음(輕安)과 지혜로운 선정(毘鉢舍那)을 방해하는 심리작용인 것이다. 이는 도거심소와 함께 선정을 방해하는 작용이라고 널리 알려져 오고 있다.
* 불신(不信)은 진리에 대한 소신이 없고 불타의 덕성과 인과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번뇌이다. 그러므로 게으름만 피고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만 하게 된다.
* 해태(懈怠)는 글자 그대로 게으름을 뜻한다. 이는 악을 끊고 선을 닦는 일에 태만하며 평소에 노력하지 않는 번뇌를 말한다.
* 방일(放逸)은 진리관을 뚜렷이 갖지 못하고 선업을 닦는 일에 방종하며 방탕함을 뜻한다.
* 실념(失念)은 진리로운 일을 명백하게 기억(明記)하지 못하고 동시에 산란한 마음에 의존하여 정념(正念)을 상실한 번뇌이다.
* 산란(散亂)은 정신을 밖으로만 향하여 달리게 하고 또 객관계의 대상(所緣境)에 대해서 나쁜 견해(惡慧)만을 유발하도록 한다.
* 부정지(不正知)는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항상 오해하도록 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는 능히 정당한 지식을 방해하고 선업을 닦지 못하게 하는 치심(痴心)의 일부분으로서 마음을 우매하게 작용하는 번뇌이다.
이상과 같은 8가지 번뇌를 8대수혹(八大隨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수번뇌 가운데서 가장 큰 작용을 가진 번뇌로서 정신을 혼란케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말한 수번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나타나는 번뇌들로서 정신수행에서 항상 경계해야 할 번뇌들이다.
출처 : 한손에 연꽃을 들어보이며
글쓴이 : [應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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