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사상 이야기/종교

[스크랩] 6)종자와 과보의 동질성

by 마리산인1324 2006. 12. 30.
3. 종자(種子)의 성질과 육의(六義)


종자는 곧 업력의 뜻이며 업력은 인간의 행위를 비롯하여 중생의 행동에 의하여 조성된다는 것을 위에서 말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조성된 종자는 미래의 과보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데 그 종자의 내용에는 여섯 가지 의미가 있다.

그 여섯 가지 의미는

첫째로 종자는 찰나찰나 생멸을 반복할 수 있는 성질을 가져야 한다.
둘째, 종자는 미래의 결과를 발생하면서 그 결과와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종자는 항상 지속적이면서 발전적이어야 한다.
넷째, 종자는 선악의 성질이 분명하여야 한다.
다섯째, 종자는 여러 인연을 기다렸다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한다.
여섯째, 종자는 자신의 성질과 꼭 같은 성질의 결과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종자는 여섯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종자육의(種子六義)라고 한다. 이들 종자육의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찰나 생명의 성질[刹那生滅義]


종자는 찰나에 생멸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윤회의 법과 그리고 유위(有爲)의 법은 찰나에 생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유식학에서는 찰나생멸(刹那生滅)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종자는 무상하게 변화하는 사바세계와 중생의 선과 악 또는 고통과 안락 그리고 생과 사 등의 현상계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찰나찰나 생과 멸을 되풀이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생멸의 법을 창조하는 만법의 종자는 그 자체도 생멸이어야 한다는 것이 유식학의 주장이다. 만약 생멸이 불가능한 종자라면 찰나에 생멸하는 만법을 발생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찰나에 생멸하는 종자만이 만법을 연기(緣起)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진여법(眞如法)과 무위법(無爲法) 등 상주하는 불생불멸의 진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주불변의 무위법은 무루종자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동시의 인과[果俱有義]


인과가 동시에 존재하여야 한다. 이것을 유식학에서는 과구유(果俱有)라고 한다. 아라야식 내의 종자는 인간의 정신계와 육체의 행동을 능동적으로 발생하는 능생(能生)의 원인이다. 능생의 원인에 의하여 발생되는 결과도 동시에 발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자는 현재의 행동과 현상을 발생하는 종자임과 동시에 그로부터 나타나는 행동과 현상은 바로 결과가 되며, 이 결과는 또 다시 종자가 되어 아라야식 안에 보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은 아라야식 안에 있는 종자에 대해서 결과가 되며, 동시에 업력이며 종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인과 동시의 연기법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를 과구유라 한다.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만약 앞에 훈습된 종자가 시간의 간격이 있게 되면, 그 종자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비진리적인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과는 동시에 성립되는 것이어야 하며 그리고 전후가 없는 현재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3) 동일한 성질의 유지[恒隨轉義]


종자는 반드시 그 성질이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 보존되어야 한다. 이를 항수전(恒隨轉)이라고 한다. 항수전은 앞과 뒤의 변화가 없이 항상 그 성질을 유지시켜 가면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러한 지속성이 없다면 인과의 도리에서 벗어나 원인없는 결과(無因有果)를 초래하는 인과의 무질서를 가져올 우려가 있게 된다. 그리고 원인은 있어도 결과가 없는 유인무과(有因無果)의 잘못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종자는 제8아라야식 안에서 영원히 그 성질이 변하지 않고 불과(佛果)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라야식은 그 종자를 잘 보존하는 지종(持種)의 뜻을 살려 지속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여러 식 가운데 오직 아라야식만이 가능하다고 하며 다른 식들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령 제7말나식은 최고의 수행위인 금강심위(金剛心位)에 오르면 염오식(染汚識)으로서 자격을 상실하고 전5식(前五識)은 항속(恒續)의 의미가 없어지며, 제6의식은 오위무심(五位無心)의 경우에 단절되는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말식(枝末識)은 종자를 지속시키지 못하는 흠이 있게 된다.

오직 아라야식만이 종자를 보존할 수 있고, 또 그 종자는 선의 내용과 악의 내용 등 자체의 성질을 변함없이 지속시키는 이른바 일류상속(一流相續)의 성질을 갖도록 하는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4) 성질의 분명성[性決定義]


종자는 아라야식 가운데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그 성질이 잡란(雜亂)치 않고 일정해야 한다. 이를 성결정(性決定)이라고 하며 종자는 성질이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전7식이 활동하고 현행(現行)하는 내용이 선행(善行)이라면, 이 선행의 업력이 아라야식 안에 보존될 때도 선성(善性)의 종자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동의 성질과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훈습되어지는 종자도 선성과 악성, 그리고 무기성 등 삼성(三性)의 성질 가운데 어떤 성질을 갖고 있던 간에 그 성질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어야 함을 뜻한다.


5) 조연의 기대[待衆緣義]


종자는 위에서 말한 찰나멸(刹那滅), 과구유(果俱有), 항수전(恒隨轉), 성결정(性決定) 등 네 가지 뜻을 구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종자에 대한 조연(助緣)이 없으면 결과를 발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종자든지 아라야식에 보존되어 있으면서 연(緣)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유식학에서는 대중연(待衆緣)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인(因)은 연(緣)을 만나야 과보를 발생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그 연은 바로 만날 수도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 만나기도 하여 그 연이 도래할 때까지의 그 인의 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과 연이 화합하여야 과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를 발생하는 데는 인만이 단독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도 과에 대해서 인 못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관찰할 때 인(因)과 연(緣)은 과(果)에 대해서 평등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연의 내용을 보면 안으로는 여러 심식을 비롯하여 경각심(警覺心) 등 작의(作意)의 정신작용(心所)과 심식의 의지처인 근(所依根)과 그리고 인식의 대상이며 객관세계에 해당하는 육경(六境) 등이 모두 연에 해당한다. 이들 연은 아라야식 내에서 종자들끼리 서로 연이 되어 생동하고 있는데, 이들 인을 상대로 하여 결과를 발생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연은 인에게 조력하여 과보를 받도록 하는 역할을 하며, 그리고 연은 인과 과와의 관계를 매우 밀접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타종교에서 오직 하나만의 원인(原因)이 다른 연의 도움없이 즉흥적으로 결과를 발생한다는 이론을 배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발생적인 창조설을 부인하고 유일신(唯一神)적인 창조설에 해당하는 일원론(一元論)을 배격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6) 종자와 과보의 동질성[引自果義]


종자에는 각각 선성과 악성 그리고 무기성 등 여러 성질의 종자가 있다. 이러한 종자의 성질에 따라 결과의 성질도 동일하게 정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말하여 인자과(因自果)라고 한다. 인자과라는 말은 선의 종자는 선의 과보를 받도록 하고 악의 종자는 악의 과보를 받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성격의 결과를 초인(招引)함을 인자과라 한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은 여러 가지 성질의 종자에 의하여 여러 가지 현상계의 모습과 개체를 조성하고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종자는 만유(萬有)의 제법을 창조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유일한 원인이 만물을 창조한다는 외도(外道)들의 삿된 사상을 배격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불교 이외의 종교와 사상을 외도라고 하는데, 이 외도들은 우주 안에는 유일신이 삼라만상을 창조하였다는 학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 편 하나의 원리(一因)가 다양한 만물을 창조하였다는 것을 배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 안에 있는 삼라만상이 유일신에 의하여 창조되었거나, 또는 유일한 원리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한다면, 일인(一因)이 많은 결과(一因多果)를 창조하게 되는 비진리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인다과설을 배격하고 다인다과설(多因多果說)을 주장하는 것이 곧 불교의 인과설이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종자의 성질은 다양한 것이며 동시에 다양한 결과를 발생시키고 또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자는 반드시 위에서 설명한 여섯 가지 의미(種子六義)를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 한손에 연꽃을 들어보이며
글쓴이 : [應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