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식탁과 함께 집도 병이 든 시대입니다. 콘크리트와 각종 화학약품으로 지어 진 집에서 보온 때문에 환기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가스레인지와 냉장고가 내 보내는 유해 가스들을 밤 낮 들이키고 사는 형편입니다. 예전에 SBS에서 방영한 환경의 역습이라는 프로를 보고 나니 집 문제도 건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네요.
저는 이러한 때 흙집을 시작합니다. 혹 귀농하여 손수 흙집을 지을 계획이 있는 분들을 위해 집 짓는 과정과 일 하는 모습을 차례대로 올릴 예정이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문의하실 것이나 주문하실 일이 있으면 토담농가 홈페이지에 올려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혼자 하는 일이라 좀 더디었지만 될 수 있으면 친 환경적인 소재를 쓰고 단순한 모양으로 지었습니다(이 집은 2004년 2월부터 지었습니다).
첫 번째 터 잡기
집 짓는데 터 잡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방향이 좋아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경제적인 집을 지을 수가 있지요. 옛말에 남향집에 동쪽 대문은 3대가 적선을 해야 지을 수 있다고 할 만큼 남쪽 방향을 바라 보고 지으면 겨울에 얼마나 따뜻한지요.
방안까지 햇볕이 충분히 들어오도록 설계하면 아주 좋습니다. 다음은 배수입니다. 어쩌면 방향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겠지요. 습한 기운이 많은 땅은 아무리 방향이 좋아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맥이 강하게 지나는 곳도 피해야 하구요.
저희는 지금 사는 집 앞에 터를 정했습니다. 완성이 되면 본채 시야가 좀 가려서 서운하기는 하지만 흙집에서 바로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습한 기운이 없는지라 결정을 했습니다. 방향은 동남향이라 아침 해가 방안까지 들어오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입니다.
두 번째 나무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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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집을 짓는데 쓰일 나무들
나무와 흙의 적당한 어울림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흙집에서 살면 그 아름다움을 누리는 기쁨이 무척 큽니다. 굳이 칠하지 않아도 세월 흐름에 따라 추하지 않게 바뀌는 자연의 색, 연륜이 깊어 갈수록 깊은 향 솔솔 풍겨 주는 고마움, 바깥과 안을 나누는 벽마저 숨을 쉬니 이 또한 즐거움입니다.
나무는 뭐니 해도 우리나라 소나무가 으뜸입니다. 색이나 향이나 모양마저 우리 땅 우리 소나무가 으뜸이지요. 뒤틀림과 갈라짐이 있다한들 사람도 늙으면 나이든 품새 나는데 세월 따라 뒤틀린다고 추하다고 멀리 할 까닭이 없지요.
우리 소나무는 물이 땅으로 내린 겨울에 베어야 벌레가 먹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면 겨울에 벤 소나무를 껍질을 벗겨서 그늘에서(빈 창고 같은 곳) 한 2-3년 자연 건조를 시키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숲 가꾸기 사업으로 솎아베기를 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이사 할 곳의 산림조합이나 제재소에 알아보면 좋은 소나무를 싸게 구할 수 있지요. 집 지을 계획이 있으면 미리 준비 해 두는 것이 좋겠지요.
세 번째, 기둥 세우기
블록으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보와 도리를 얹으니 집 형태가 보이네요. 즐겁게 나무 다듬으며 그 안에서 행복해 할 좋은 분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네 번째, 대들보 얹기
기둥을 세우고 보와 도리 우에 대들보를 얹었습니다. 상투 촉을 만들어 끼워 넣었지요. 집에서 차지하는 대들보의 위치란 참 중요하지요. 서까래를 얹고 그 위에 지붕재 모두를 떠 받쳐야 하는 중압감. 서 보지도 못 하고 모로 누워 일생을 힘든 고역에 시달리는 대들보한테 미안해서 저희는 향이 좋은 편백나무를 켜서 방안에 누워서도 보이도록 드러나게 했습니다. 아래 누운 사람이나 천장에 달린 나무나 모두가 하나임을 두고두고 고마워하면서 단잠을 자렵니다.
다섯 번째, 서까래 걸기
대들보와 도리 우에 서까래를 걸었습니다. 본디는 흙집에 둥근 서까래를 얹어야 어울리는데 도리와 보 그리고 대들보를 각재로 쓰다 보니 서까래도 각재를 썼습니다. 어쩌면 둥긂과 각짐이 어울리는 멋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보면서.
52개 서까래가 고정되면서 비로소 집은 서로 연결되어 유기적인 힘이 나누어집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나누어져 함께 보듬고 받쳐주고 안아주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보는 즐거움. 우리 한옥이 갖는 좋은 점이지요.
여섯 번째, 지붕에 송판 깔기
52개 서까래 위에 송판을 깔았습니다. 향 좋은 편백을 1.2cm 두께에 너비18cm로 켜서 제재소 사장님 말씀은 편백으로 방안에 마감을 하면 모기나 해충이 달라 들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편백숲에 휴양림이 많은가 봅니다.
일곱 번째, 지붕단열
송판위에 10cm두께로 왕겨를 깔았습니다. 본디는 대나무를 쪼개서 엮고 그 위에 흙을 얹어야 하지만 저희는 왕겨를 얹었지요. 오래전 볼링장을 신축하는데 그 벽에 왕겨를 채워서 단열 방음을 하는 것을 보고 괜찮겠다 싶어 실험하는 마음으로 해 봤습니다. 단열이 잘 되면 앞으로 짓는 집 지붕 단열은 왕겨로 할 생각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사람이 만들어 내는 사상과 역사는 때로 껍데기만 충실하고, 속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자연은 이렇듯 껍데기까지 여러모로 사람에게 쓰일 곳 찾아가니 고마울 뿐이지요.
여덟 번째, 지붕에 강판 깔기
왕겨로 단열을 하고 은박 매트로 왕겨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덮은 다음 강판으로 지붕을 했습니다. 강판 위에 다시 수누대나 억새를 엮어서 얹을 생각이고요. 판만 했을 때는 소나기가 내리면 너무 시끄럽고 더운 날 습기가 안으로 흘러 내려 왕겨에 떨어 질 수 있어서, 강판 없이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얹으려고 했으나 해마다 갈아 이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생각을 바꾸었지요.
우리 어릴 때는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나면 짚으로 날개를 엮어 지붕을 이는 게 집안의 큰 행사였습니다. 특별히 지붕일을 잘 하는 어른들은 기술자 대접을 받았지요. 이집 저집 지붕에 이엉을 얹는 날은 따뜻한 점심으로 이웃 잔치가 되고, 노란 볏짚이 빚어내는 유년의 추억 한 조각이 그 시절을 그리워 하지만 볏짚으로 초가를 얹기엔 우린 너무 바쁜 세상을 사는가 봅니다.
아홉 번째, 황토반죽
고령토로 유명한 옥종면에 가서 질 좋은 황토를 구했습니다. 얼마나 찰진지 빵반죽하는 밀가루 같네요. 짚을 썰어서 넣고 발로 이갠 다음에 다시 손수레에 퍼 얹어 대나무로 찌르고 쳐서 입자 곱게 반죽을 했습니다. 포클레인으로 하면 한두 시간이면 다 할 일을 굳이 발과 손으로 고생하는 까닭은 포클레인으로 비비면 섞이는 정도로 그치지만 손과 발로 치대면 빵반죽처럼 부드러워집니다, 먹고 싶을 만큼.
두 사람이 꼬박 이틀을 반죽에 매달려 힘들었지만 만지고 두드릴수록 부드러워지는 흙의 질감이 좋습니다. 흙장난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던가요?
황토가 어째서 몸에 좋은지 학술적으로 설명할 지식은 없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하룻밤 자고 나면 날아갈 듯 개운한 몸. 산에서 15년 살면서 경험으로는 압니다. 또 바다가 적조로 몸살을 앓으면 황토를 뿌려 회복시키는 것을 보고 아, 역시 황토구나, 가슴 가득 놀라움으로 땅을 봅니다.
열 번째, 황토 잠재우기
발로 밟고 대나무로 쳐서 한결 부드러워진 황토를 비닐로 덮어서 잠재워 두었습니다. 마음 같아서야 바로 벽에 바르고 싶지만 아직 거친 기운이 다 삭지 않아 그대로 바르면 많이 갈라집니다. 옛 어른들은 이것을 흙 숨 죽인다 하셨지요. 이삼일에서 일주일 정도 잠재우면 섞은 짚도 삭고 흙도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열한 번째, 벽에 심살대 엮기
기둥에 가로지른 통나무 사이를 황토로 막기 위해 심살대를 엮었습니다. 먼저 세로로 나무를 세 개 세우고 거기에다 대나무를 쪼개서 엮었지요. 대나무 사이에 흙이 안과 밖으로 맞물려 벽이 됩니다. 먼저 바르는 흙을 초벽 바른다고 하고 2-3일 지나서 다른 편 흙을 바르는 것을 맞벽 친다고 합니다.
본디 기둥을 세우고 하방 중방 도리 세 개의 나무를 가로 질러 짓는 옛날 우리 시골집을 심벽집이라 부르지요. 가장 흔했던 정겨운 우리 옛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둥을 세우지 않고 통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쌓아서 그 사이를 흙으로 바르는 집을 귀틀집 또는 윤판집이라 부릅니다.
곰이 받아도 끄떡없다는 집이지요. 저희는 이를테면 심벽집과 귀틀집을 섞어서 짓는 새로운 모양인 셈입니다. 처음엔 귀틀집을 지으려 했으나 나무가 너무 굵어서 혼자 하기에는 무리고 심벽집은 벽이 얇아 외풍이 너무 많고 나무향이 덜해 둘을 섞어서 지었습니다. 너르게는 우주(한자로 집우자에 집주자를 쓰니)가 우리 집이요. 내 몸 또한 정신을 살게 하는 흙집이 아니던가요.
열두 번째, 황토벽 바르기
뭇 생명을 품어 주던 흙이 며칠 잠잔 뒤 이젠 안과밖 방과 방 사이를 나누는 벽으로 섭니다. 너른 우주에 선 하나 긋고 내 땅이라고 말하는 일이 우습듯 한 지붕 아래 잠자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두면 우리만의 공간으로 남으니 또한 즐거운 일이네요.
보이는 것은 막히되 숨 쉬는 것은 막히지 않는 흙벽처럼 사람끼리의 벽도 나만의 즐거움을 누리되 또한 다른 사람과 막힘없는 교통이 이루어진다면 자연과 사람이 다를 게 없겠지요.
황토를 한 줌씩 뭉쳐서 심살대 엮은 곳에 던지면 대나무 사이로 흙이 삐져 들어갑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문질러 면을 고르게 해 주고요. 이것을 초벽 바른다고 하지요. 나머지 한쪽을 맞벽 친다고 말합니다. 초벽을 바른 뒤 2-3일 지나 맞벽을 치면 됩니다. 그리고 굳기 전에 날마다 붓이나 손바닥으로 문질러 금 가는 것을 메워야 합니다.
열세 번째, 구들 놓기
황토방에서 구들을 잘 놓는 것은 참 중요하지요. 집을 잘 짓는 목수도 구들 만큼은 전문가한테 맡깁니다. 불 땔 때마다 연기가 앞으로 나오거나 방이 따뜻하지 않으면 원망을 가장 많이 듣는 부분이거든요. 요즘이야 강제 배출기가 있어 별 문제가 되지 않아 아무라도 구들을 놓지만.
저희도 악양에 사시는 한 아주머니의 자문을 받아 직접 구들을 놓았습니다. 방통을 메우지 않고 편편한 바닥에 굇돌을 놓고 구들을 얹는 강원도식으로 놓았습니다. 불이 많이 닿는 함실 우에는 두꺼운 돌을, 나머지는 헌집 뜯은 슬레이트를 얹고 그 우에 콘크리트를 5cm 정도 쳤습니다. 가능하면 콘크리트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평소에는 차를 말리는 곳으로 쓸 생각이라 혹시라도 연기가 올라 올까봐 얇게 쳤습니다.
콘크리트가 다 마른 뒤 자갈과 숯 그리고 소금을 섞어서 바닥에 깔고 그 우에 다시 황토를 10cm정도 다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모래2 황토1 비율로 한천이라고 하는 해초 삶은 물에 반죽하고 거기에 수사라고 하는 가는 실 조각과 풀을 섞어서 바닥 마감 미장을 하였네요.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여러 과정을 거쳐 에너지로 바뀌고 그 열량으로 힘을 얻어서 사는 우리네 삶. 잘 먹고 잘 태우고(소화) 잘 배설하면 건강한 삶이 듯 온돌방 또한 불 잘 들고 연기 잘 빠지면 방 따뜻하기 마련 불 잘 드는 아궁이엔 약간 젖은 나무라도 잘 타는 법.
우리네 몸도 항상 속이 따뜻하다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거침없이 타겠지요. 태워야 힘을 얻는 우리네 몸이나 온돌방, 닮은 데가 많네요.
드디어 흙집 완성입니다. 나무와 흙으로 집짓기 세 번째, 지난 15년을 지낸 농장에 있는 황토집을 짓고 나서 다시는 황토집을 짓지 않으리라 다짐 했는데 올 봄에 겁 없이 또 시작을 헀습니다. 시멘트 집이야 조금만 더 애쓰면 수월하게 지을 수 있지만, 흙집이란 그렇지가 않네요.
기다림 없이 쌓고 바르면 끝나는 시멘트와는 달리 나무와 흙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자꾸만 벌어지는 틈새를 메워야 하고 몇 번씩 거듭 되는 흙바름을 통해 떠나 살 수 없는 정을 키우는가 봅니다
이런 애정으로 지은 집이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구별된 공간으로 남겨 두고 싶습니다. 일상의 번잡함이 내려 누를지라도 쑥물 들인 헐렁한 옷 걸치고 이 방에 들어서면 우수사려 다 떠나가고 건너 산비둘기 우는 소리에도 감격하는 소년이 되고 싶습니다.
여덟 달을 주무르던 황토방에서 첫 날밤을 맞던 날,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네요. 감사하는 마음을 방안 가득 채웠네요.
텅 빈 충만을 맛보는 즐거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공산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