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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촛불1년]촛불과 사회정책(김철웅, 경향신문090430)

by 마리산인1324 2009. 5. 1.

 

<경향신문> 2009-04-30 14:42:2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301442271&code=940100&s_code=as028

 

 

[제1부 촛불의 성찰과 평가]촛불과 사회정책

 

사회정책의 시장화와 위기: 의료와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김철웅(건양대학교 교수, 예방의학)

1. 들어가며 - 사회정책의 위기와 촛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촉발되어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발전하였다. 최근 IMF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였다. 올해 세계 주요 선진국은 -2에서 -4% 성장을 할 것으로 예견되는데, 우리나라는 더 나쁜 상황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 작은 정부를 국정원리의 핵심으로 삼는 사조로서 통화관리의 엄격성, 법인세와 소득세 등의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등을 통하여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라는 시장만능의 원리는 경제정책뿐 아니라, 사회정책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회정책이라 함은 사회구성원이 실업, 고령, 질병, 사고와 같이 생활의 위험에 빠졌을 때 사회적으로 대응하는 공적인 조치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과 의료, 보육, 교육, 노인돌봄과 같은 사회서비스정책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기에는 사회보험, 사회수당, 공공부조와 같은 ①현금급여 프로그램과 다양한 종류의 ②사회서비스 프로그램을 포함한다. 사회서비스는 보통 의료와 교육, 그리고 직접적인 돌봄과 관련되는 사회복지서비스로 구성되며, 사회복지서비스는 개인과 가족에 대한 돌봄과 노인 및 장애인을 위한 간호와 돌봄을 포함한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30년 간 전 세계의 경제사회를 휩쓸면서 스웨덴 등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와 독일과 같은 보수적 조합주의 국가모델의 사회정책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즉, 이들 복지국가의 사회서비스 제공에서 경쟁의 원리를 중시하고, 사회정책의 일부에서 민영화 추세가 나타났으며, 사회서비스 이용 시 본인부담금을 늘리고 급여를 줄였다. 특히, 상병수당의 수령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영국 국영의료제도(National Health Services, 이하 NHS)의 사례를 보자. 1980년에 대처정부는 NHS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조직을 축소하였고 급여범위를 줄였으며, 지역 간 의료서비스 이용의 형평성을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23년 후 NHS는 민간부문에 의해 많이 점령당했다. 민간부문이 ‘실패한’ NHS 병원들의 운영권을 넘겨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정부는 병원서비스를 포함한 거의 모든 NHS 서비스를 독립 법인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와 더불어 민간보험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대처정부는 모든 공공조직은 낭비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정부지출의 14%를 차지하고 있는 NHS에 대한 대처정부의 인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에 대처정부는 종합관리제도의 도입, 병원 비진료분야의 외주화, NHS의 급여범위 축소 등을 단행하였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도 사회정책이 신자유주의의 원리에 따라 재정체계 또는 사회서비스 제공체계에서 시장의 역할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정책은 이들 선진국들과 다소 다른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중반 들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한 결과, 한 편에서 강력하게 신자유주의(시장주의) 사회정책이 추진되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사회복지의 제도화와 더불어 사회복지분야의 확대가 나타났다. 사회복지의 제도화에 대한 두 개의 사례를 들면, 하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한 것이고, 둘째는 4대 사회보험을 기본으로 복지국가의 제도적 틀을 완비함으로써 보편적 복지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4대 사회보험 중 건강보험의 경우, 2000년 들어 통합의료보험체제인 ‘국민건강보험’을 성취하였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꾸준히 확대해 나갔다. 외환위기 직전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48%였는데, 2007년에는 64%까지 상승하여 16%포인트가 증가하였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외풍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민주적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이 쏟아 부은 국가복지의 확충과 제도화를 위한 지난한 정치사회적 노력의 큰 성과이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의료민영화가 논의되고 추진이 시도되었으나, 실천된 것은 거의 없었다. 내국인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허용은 참여정부 시기에는 시도되지 않았었고 2005년에 생명보험회사들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보험업법이 개정되었으나, 실제로 관련 상품이 출시되지는 못했다. 의료공급체계와 의료재정체계 모두에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본격적인 진출은 일부 시도가 있었으나 제도화되거나 실천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건강보험 의료체계는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자마자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는 국민건강보험의 축소 내지는 무력화의 의도를 드러냈고, 내국인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그리고 교육 분야에도 시장과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도입하였고, 영리학교를 도입하려 하였다.

사회정책분야에 자본 주도의 시장논리를 확산하려는 정부의 정책 의도는 심각한 국민 불안을 야기하였다. 국민입장에서는 ‘더이상 국가가 나와 내 가족의 생활상의 위험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자본시장에 맡기려고 하는구나!’, ‘나와 내 가족의 생활상의 위험을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민간보험을 구매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정책 중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OECD 국가 중 OECD 회원국 30개국 중 29위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2003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의 GDP 대비율은 5.7%로 가장 높은 복지비 지출을 하는 스웨덴의 1/6 수준, 그리고 선진국 중에서는 상당히 낮은 복지비를 지출하는 미국, 일본의 1/3 수준에 미달하고 있다. 대처 정부 이후 복지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영국도 GDP의 20.6% 정도를 사회복지에 지출하였으며 북유럽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의 지출은 31.3%에 달한다.

국민은 현재의 생활상의 사회적 위험을 국가가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현재 세계화된 경제질서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위험을 개인과 가족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국민들의 삶은 아직 가난하고 불안하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10권으로 발전하였다. 실제로 2007년 GDP규모는 1조2018억달러로 30개 OECD 회원국 중 10위를 지켜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09년 4월 6일 발표한 ‘2009년 통계연보’를 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5개국 중 21위였고 평균 가처분소득은 30개국 중 24위에 그쳤다.

전체 인구 중 불평등한 경제구조에서 허덕이는 비중도 선진국 중 상위권에 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 정도도 매우 심각하다. 빈곤율(소득이 중위 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층의 비율)은 우리나라가 14.6%(2006년)로 30개 회원국 가운데 6번째로 높았다. 소득수준이 빈곤선에서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빈곤갭은 36.03%로 5위를 나타냈다. 최하위층의 평균소득은 30개국 중 24위로 바닥권에 들어가 있다.

현재 자신의 삶에 높은 만족을 보이는 사람의 비율은 39%로 24위였고, 향후 만족감이 나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61%로 35개국 중 25위였다.

지난 하루 중 6개의 긍정적인 경험(충분한 휴식, 존중받고 있는 느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부심, 재미있는 일을 하였거나 배웠음, 즐겼음,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선택하였음) 중 5개 이상을 느낀 사람의 비율은 23.1%로 OECD 평균인 54.3%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또한 지난 하루 중 6개의 부정적인 경험(고통, 불안, 슬픔, 지루함, 우울, 분노) 중 5개 이상을 느낀 사람의 비율은 61.5%로 OECD 평균인 35.6%보다 26%포인트 더 높았다.

자살률은 10만명당 18.7명으로 OECD평균 11.88명에 비해 크게 높아 30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

헝가리(22.2명), 일본(19.1명) 다음으로 높았다. 성별로는 남성이 10만명당 28.1명(OECD 평균 19명), 여성이 11.1명(OECD 평균 5.4명)이었으며, 특히 여성 자살률은 OECD 30개 회원국들 중 가장 높았다.

2008년에 촛불의 저항이 시작된 것은 생활상의 위협을 개인과 가족이 자본을 상대로 구매하도록 방치하려 한 국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파고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민주적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사회적 노력의 성과로서 제도화되었던 보편적 복지의 맹아적 사회정책들이 해체되고 자본 주도의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회정책분야 중 의료분야에서 2008년 촛불의 저항이 시작되었던 이유를 살펴보고, 촛불 이후 의료민영화가 저지된 경과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향후 의료와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우리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이 무엇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2.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촛불의 저항

의료정책분야에 자본 주도의 시장논리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정부 차원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1월 27일에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하여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개설과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의료보험 민영화’나 ‘건강보험 민영화’라는 표현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8년 초부터였다. 2007년 연말 대선을 전후로 해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겠다는 당선자 측의 입장이 알려지고, 2008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이 인터넷을 통해 ‘의료보험 민영화’나 ‘건강보험 민영화’라는 표현을 통해 불안을 표현하였다. 당시 국민들은 ‘시코 Sicko‘라는 영화를 통해서 이명박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에서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국민들이 마음 놓고 병원을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불안해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통해 모든 병원들이 건강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진료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건강권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이 위축되고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그래서 병원이 지금보다 훨씬 더 영리적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영화 ‘식코’를 보면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안을 표현했던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08년 5월 20일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건강보험 민영화(또는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하여 정부가 이를 검토한 바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해명하였다. 게다가 정부는 이 보도자료에서 ‘인터넷을 통해 .... 과장˙왜곡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건강보험 민영화를 검토한 적도 없고, 추진할 생각도 없는데 인터넷에서 아무 근거 없이 이런 이야기가 떠도는 것은 ‘괴담’이라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하여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요약되는 ‘의료민영화’ 정책 때문이라며,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에 대하여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하지 않은 채, 틈만 나면 ‘건강보험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을 되풀이해서 해명하였는데, 이 일은 역설적이게도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가 ‘건강보험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이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즉 의료민영화는 추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의료민영화 반대운동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고, 5월을 넘어 6월과 7월까지 이어졌던 시민들의 촛불집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위에서 정부가 해명한 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민간에 넘기는 건강보험민영화를 검토한 바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만일 정부가 진짜로 ‘국민건강보험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면 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는 것은 물론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던 사건이 될 것이다. 정부가 하고자 했던 것은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지금의 수준에서 꽁꽁 묶어 놓고, 의료재정분야의 나머지 부분을 시장의 영역으로 돌려 자본의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제주도를 시험지역으로 삼아 영리법인 병원 정책을 추진할 계획을 세웠다. 2008년 6월 3일 국무총리실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제3단계 제도 개선안’이라는 문서를 배포하였다. 이 문서 3쪽에서는 제주도를 ‘의료개방, 선진화의 테스트 베드’로 삼겠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는 제주도를 의료서비스의 시장화, 민영화의 전면적인 시험대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제주도민의 건강 및 의료이용에 대한 권리 보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이를 악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제주도에 국내외 자본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 병원을 설립하고, 이들이 주류를 장악하게 될 경우 제주도민의 의료비 부담은 상당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은 어려워지고, 의료의 양극화가 나타나게 된다. 한마디로 영화 ‘식코’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제주도가 의료민영화의 천국이 될 경우 민간보험 회사들은 이에 맞는 의료보험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주도민에게는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하여 민간의료보험 가입은 필수적 상황이 될 것이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상당한 의료비 가계 부담과 함께 의료이용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이에 제주대학교 교수 49명 일동은 2008년 7월 7일 제주에서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제주의 시민사회는 영리법인 병원 설립 허용을 반대하는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반대활동을 펼쳤다.

제주도는 이러한 움직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관제 여론몰이를 시작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나서서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홍보를 하고, 도의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관제 반상회를 열고, 도내 전 지역으로 공무원들을 보내 찬성 홍보를 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19세 이상 제주도민의 약 25%에 해당하는 10만 명에게 영리법인 병원 찬성 홍보를 수행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내 관변단체들과 자생단체, 기관단체, 그리고 심지어는 기업들에게도 영리법인 병원 찬성 광고를 내도록 도 당국이 요구했다고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집중적인 찬성 관제 여론몰이가 최고조에 달했던, 여론조사 전 10여 일 동안 제주도내 일간지들은 영리법인 병원 찬성 광고들로 넘쳐났다.

그럼에도 제주도 당국은 어처구니없게도 여론조사에서 패배하였다.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여론조사의 결과는 영리법인 병원 허용 찬성 38.2%, 반대 39.9%로 나왔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2008년 7월 28일 여론조사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단은 도민의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자신의 소신은 변함이 없으며, 역사가 평가할 것이란 말도 남겼다. 더불어 여건이 성숙되면 도민의 의견을 물어 다시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설립 허용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도지사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더라도, 의료민영화 추진세력들이 얼마나 강고하게 영리법인 병원 추진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촛불의 저항으로 의료민영화의 추진이 잠시 보류되었다.

3. 촛불의 열망: 시장이 아닌 국가 역할의 확대, 이윤이 아닌 사회권적 시민권의 보장

가. 의료제도에서 국가의 역할 확대

2008년에 촛불이 의료정책에서 원했던 것은 국민들이 아플 때 진료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였다.

의료 분야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시장의 작동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본래적으로 공공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시장에 의한 상품의 거래와 자원 배분은 경쟁의 대칭성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하다. 만약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은 비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보통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 한다. 시장실패는 경쟁의 불완전성, 공공재적인 재화의 성격, 외부효과, 수요예측의 불확실성,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의료 분야는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또한 건강과 의료는 시장의 영역에서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가 모든 국민들에게 보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국방, 경찰, 소방, 우편 등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건강과 교육은 모든 국민들에게는 자신을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기 위한 권리이며, 국가가 기본적으로 이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헌법 제1조인 ‘공화주의’의 기본정신이다. 결국, 건강 및 의료서비스는 사회권이라는 원칙 하에서 규범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는 것이 타당하며, 이러한 재화와 서비스를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사회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이들 사회서비스의 소비를 시장과 개인의 구매력에 맡겨 두는 것보다 사회 전체적 편익이 훨씬 크다.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의료체계를 통해 생산·전달되는 의료서비스의 거시적 효율성(macro-efficiency)이 높아야 한다. 둘째, 의료이용에서 형평성 수준이 높아야 한다. 셋째, 국가의료제도에 의한 보편적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가 높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국민건강보험 등 공적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여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다음으로는 재정 투입으로 공공병원과 공공병상을 확충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 규제를 합리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계적 경험으로는,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유럽형 의료제도)이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미국 의료제도)보다 압도적으로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 제고에 유리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정부의 이러한 중핵적인 역할과 책임을 국가에서 자본을 중심으로 한 민간으로, 이윤추구를 위한 시장으로 떠넘기는 ‘의료민영화’ 정책이었다.

국가의료제도는 의료제공체계와 의료재정체계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공공성 수준을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과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전체적인 공공성 수준을 가늠해보자. 의료제공체계는 의료 인력, 시설, 장비 등을 조직하여 의료서비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일련의 체계(주로 병원)를 말하고, 의료재정체계는 의료이용에 필요한 의료비를 마련하는 체계를 말하는데, 의료비를 공적으로 조달하는 데는 조세와 국민건강보험료가 있고, 사적으로 조달하는 데는 가계의 직접부담과 민간의료보험 등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 수준을 살펴보면, 병상의 90%를 민간이 소유하고 있어 극도로 민간의료 지배적인 소유구조를 갖고 있다(미국과 일본도 공공병상의 비율이 30%를 넘고, 유럽 주요 국가들은 50-95%에 달함). 민간의료기관의 이윤추구 동기가 강해 병원들이 주로 도시에 몰려있고, 치료 중심의 의료를 제공하고, 건강보험 비급여항목인 고가의료를 과잉 제공하는 경향이 크다.

대학병원 등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치료 병상이 과잉 공급(인구 천 명당 급성 병상 수: OECD 평균 4.1병상, 우리나라는 6.5병상)되고, 주요 고가의료장비의 보급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인구 백만 명당 MRI, CT 등 주요 고가장비 보유율은 미국, 일본 다음으로 높음). 이렇듯, 의료자원의 과잉공급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거시적 효율성을 낮추며, 값비싼 비급여 의료의 과도한 공급은 의료이용의 형평성을 저하시키고 있다. 또, 우리나라 병원체계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질적 양극화이다. 정부 역할의 미비와 이윤추구의 시장 경쟁으로, 지금 의사 등 의료 인력과 환자가 서울로, 서울의 유명병원으로 집중되는 ‘의료공급의 질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바, 이는 시장이 아닌 ‘정부의 역할 강화’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병원의 간호 인력은 주요 선진국의 30% 수준에도 못 미치며, 의사 수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기술적 의료수준은 세계적으로 높음에도 환자가 느끼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지 못한 것은 병원 인력의 부족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 의료제공체계는 유럽 선진국에 비해서는 공공성 수준이 낮은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 수준을 살펴보면, 2007년 OECD 건강자료에 의하면,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의 비중’이 OECD 국가들 평균은 72.1%였고, 우리나라는 53%, 영국과 스웨덴은 각각 87.1%와 84.6%였다.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 수준이 매우 낮은 ’민간의료보험 의료체계‘를 가진 미국의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의 비중’이 45.1%인 점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 수준이 상당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규모가 작아서다. 2008년 보험료 수입은 25조원으로 전체 국민의료비의 40%대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건강보험재정 규모가 작다보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낮고, 값비싼 비급여항목이 계속 존재하여 서민 가계의 의료비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는 미국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을 포함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은 국민의 14%인 노인과 장애인만을 포함하는 ‘메디케어’라는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다.

국민의료비 중 보험료와 정부의 지출을 더한 공공지출비중의 경우, 미국의 45%와 엇비슷한 53%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이 포함된 의료재정체계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지렛대 삼아 국가가 법정 ‘의료수가’와 각종 규제를 통해 ‘민간 중심의 의료제공체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 수준을 ‘시코’의 나라 미국이 아니라 유럽 선진국에 더 가깝도록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고, 유럽의 경험에서 장점을 취해 한국형의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유럽의 선례를 따라 국가의료제도의 공공성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하는데, 국고에서 연간 3-5조 원을 투입하고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여 전체적으로 연간 10조 원을 마련하면, 2008년도 현재 25조 원인 국민건강보험재정이 35조 원으로 확대되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수준을 유럽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 이 재원을 보장성 확충과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 많은 병원을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만들 수 있고, 간호사 등 병원서비스 인력을 2배로 늘릴 수 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최소 20만개 이상의 좋은 병원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상향평준화로 전국의 병원이 확 달라지고, 의료서비스가 눈에 띄게 좋아지며, 병원 고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확충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중증 질환자의 본인부담 진료비를 줄여주고, 차액병상과 선택진료 비용의 대부분을 보상해 줄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지출은 민간의료보험 지출을 줄이고, 가계의 의료불안을 해소하며, 서민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민생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자본에 의한 의료투자가 많은 미국 보다 정부에 의한 공적 의료투자가 지배적인 스웨덴이나 영국 등의 유럽 선진국들이 병원 고용의 양과 질에서 더 우함은 이미 입증된 것이다. 또, 우리가 깊이 명심할 것은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 등을 통해 한 번 ‘자본 주도의 시장주의 의료제도’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 이를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적 의료투자를 위해 우리 국민들이 추가로 부담하는 세금이나 보험료는 억울하게 빼앗기는 돈이 아니다. 현재에도 민간의료보험 가입으로, 법정본인부담과 비급여본인부담으로, 과잉진료의 비용 등으로 지출하고 있는 돈이다. 이 돈의 일부만으로 더 나은 의료제도를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국민들이 사적으로 지출하던 이 돈을 공적으로 지출하면,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실례로, 미국의 공적 노인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의 관리운영비는 2%에 불과한데, 민간의료보험의 관리운영비는 15%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관리운영비는 3%에 불과한데, 민간보험의 관리운영비는 30-40%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불어, 양질의 공공병원은 민간병원보다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더 효율적이고 값이 싸고 든든한 공공의료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한다.

나. 사회서비스의 공공성과 국가 역할의 확대

사회서비스의 제공에서 공공부문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으로 조세를 통해 사회서비스의 재정부담을 담당하고, 서비스 제공자의 선정 및 계약, 지원 역할과 민간의 복지서비스 운영을 관리 감독하는 규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 전반적으로 복지국가에서 정부는 서비스 공급자로서 교육, 보건, 대인서비스 등을 제공하는데, 가장 규모가 큰 고용자이며, 이들을 통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복지혼합의 구성과 역할분담이 중요한데, 이를 재원부담과 서비스 제공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재원부담자로는 조세와 사회보험(공공), 자선기부, 사적부담(개인 또는 민간보험), 기업 및 자원봉사 등이 있고, 서비스 제공자로는 공공부문, 비영리민간, 영리, 비공식부문이 있다.

이렇게 재정과 공급이라는 두 개의 변수가 적절하게 조합되어 국가마다 다양한 사회서비스 복지혼합 모형이 나타나게 된다. 어느 나라도 공공부문이 완전하게 사회서비스의 재정과 공급을 전담하는 경우도 없고, 그렇다고 이를 주로 시장에 맡기는 나라도 없다. 사회서비스가 공공성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나타나는 주요 특성에 따른 복지국가의 유형 분류를 보면, 공공서비스 모델, 보충주의 모델, 자산조사-시장의존 모델, 가족주의 모델이 있다(표 1). 복지혼합에서 ①공공우위를 보이고 있는 스웨덴과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는 서비스 공여원칙에서도 ②보편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조세의 비중이 높고 일과 가족이 양립 가능한 모델이다. 영미의 시장의존 모델은 선별주의와 영리우위의 복지혼합모형을 가지고 있다. 조세의 비중이 낮고 일-가족의 양립 가능성이 낮은 모델이다.

4개의 국가모델 중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것은 무엇일까? 성장률이나 실업률 등에서는 국가 모델들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공공서비스 모델이 다른 국가 모델에 비해 소득분배가 더 평등하고, 빈곤이 훨씬 더 적으며, 범죄도 훨씬 적었다. 또한 삶의 질과 건강수준에서도 가장 우수하였다. 우리나라는 ①공공성이 강하면서도 ②보편주의 제도를 채택한 공공서비스 모델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과가 좋은 복지국가모델의 첫 번째 조건인 ‘강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의 부담과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이를 통해 서비스 제공자의 혼합에서 민간공급자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와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정책조합을 구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소득보장제도 위주로 짜여진 우리나라의 사회정책은 저출산·고령화 그리고 가족구조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분야가 대폭적인 개편과 확대를 통해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즉 보육정책과 출산, 양육휴가 등의 복지정책이 대폭적으로 확대되어야 여성 노동력의 활용과 노인, 아동에 대한 케어 문제를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방향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 국민의 조세부담률과 공공사회지출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매우 낮은 편인데다 이명박 정부의 재정조세정책의 기조는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올해 세제개편 안, 내년도 예산안 그리고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안을 통해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재정조세정책의 기조는 예상했듯이 감세와 작은 정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조세정책의 기조는 지난 10년간의 소위 ‘좌파정부’ 하에서 사회복지지출의 증가로 조세부담률이 높아졌고 높은 조세부담이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켜 성장률 저하, 양극화 심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조세부담률(GDP 대비)은 현재 22% 수준에서 OECD 최저인 20% 수준으로 인하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복지지출 급증으로 인하여 조세부담률이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조세부담수준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낮은 편에 속한다.

2004년 우리나라의 총조세부담률은 GDP 대비 24.6%인데, 이는 30개국 중에서 29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상위국가군에 속하는 스웨덴은 50.4%, 중간국가군에 속하는 영국은 36%, 하위국가군에 속하는 미국, 일본은 각각 25.5%, 26.4%를 차지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기에 조세부담률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36% 정도인 OECD 평균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하위국가군에 속하는 미국, 일본과 주로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조세부담 수준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

이와 같이 낮은 조세부담률에 더하여 적은 재원을 주로 성장 위주로 집행하다보니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은 OECD 국가 중 여전히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복지지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른다면 우리나라는 현재보다 복지지출을 대폭 늘려야만 한다. 현재의 조세부담률, 복지수준에서 고려해 보았을 때, 감세와 작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사회복지 지출이 증가하게 되면 경기침체기에 저소득층의 삶이 안정될 뿐 아니라 이것이 자동적으로 경기안정화 역할을 함으로써 경기침체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있다.

한국의 사회보험은 보편주의 복지제도에 해당한다. 성과가 좋은 복지국가모델의 두 번째 조건인 ‘보편주의’ 사회정책의 채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은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므로 명목(형식)상으로는 보편주의이나 실제적으로는 보편주의에 미달하고 있다. 건강보장제도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지역가입자의 일부에서 사각지대가 있으나 밀린 보험료를 일부라도 납부하면 바로 급여 혜택을 보게 되므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음).

보편주의 원칙에서는, 포괄하는 인구의 보편성 측면(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해당 서비스의 보장성(질적 측면)도 대단히 중요한 기준이다. 가령,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의 급여를 받더라도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낮거나, 건강보험의 급여 보장성 수준이 낮으면, 형식적 보편주의에도 불구하고 보편주의 원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에는 보편주의 복지제도에 대한 서민과 중산층의 정치적 지지를 견고하게 묶어 놓기가 어려워진다.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의 보장성을 OECD 국가들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아동수당, 보육, 교육 등의 제도에서도 보편주의 원칙을 최대한 견지할 필요가 있으며, 여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육은 의료분야 보다 공공성 수준이 더 낮다. 대선 때 모든 후보가 무상보육을 공약하였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교육은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부담이 가계의 가장 큰 고통이다. 미래 경제성장의 동력인 인적자원을 제대로 육성하는 일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변화된 산업구조가 요구되는 지식과 창의성을 갖춘 노동에 대한 수요에 대비한다는 점에서 고용정책이자 인적자원정책이다.

보육과 교육은 재정분야에서 사실상의 무상에 근접한 개념으로 가야 한다. 서비스 제공자는 공공과 민간에 걸쳐 다양하게 하되, 이들 서비스의 성격상 기업적 성격을 띤 영리제공자의 진입은 사회적 부작용이 없을 만큼 일정한 조건이 무르익을 때까지는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외에 노인과 아동 등의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해서는 보편주의의 원칙에 따라 공공 재정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야 하며, 서비스 제공자로는 비영리제공자, 사회적 기업 등의 발굴과 육성이 이루어져서 공공의 직접 서비스 제공과 일정하게 경쟁하는 방식으로 좋은 시너지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공공서비스 모델과 보충주의 모델을 절충하는 형태가 적절할 것이다.

시장 영역에 주로 맡겨서 잘 될 일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으나,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될 일들도 참으로 많은데, 이는 정부와 사회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 일들을 방기하고, 무책임하게 시장에 맡겨버리면 많은 문제들의 발생과 함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불안과 고통이 심화된다. 이러한 철 지난 시장만능주의로는 우리의 국가발전과 미래를 열어갈 수 없는 시대를 경과하고 있으므로, 이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시기다.

4. 마치며 - 제2의 촛불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사회정책의 시장화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험업법을 통한 실손 민간보험의 활성화, 의료법 개정을 통한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 및 부대사업 확대를 통한 영리행위의 허용(MSO 포함), 병원과 보험회사와의 직접계약 허용, 의료기관 채권법을 통한 사실상의 간접적 영리병원 허용, 영리형 학교의 허용 등이 그것이다.

작년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려던 개인 질병정보의 민영보험사 제공이 국민들의 반대에 의해 좌절된 이후 올해는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영리법인 병원의 전면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는 2009년 1월 28일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을 재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지금 지난 20년에 걸쳐 국민적 지지 속에서 시민사회와 민주개혁진영이 성취해 놓은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획기적 재정 확충과 공공성 강화를 통해 더욱 발전시켜 나가느냐, 아니면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허용 등 의료민영화를 통해 미국식 시장주의 의료제도로 바뀌느냐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의료민영화는 우리의 길이 아니며, 우리는 더 많은 의료공공성과 공적 의료투자를 필요로 한다.

작년 촛불 항쟁이 시작되기 직전 아고라에서 단 며칠 만에 의료민영화 반대 청원이 10만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이에 놀라 정부는 4월 30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의 폐지는 없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5월 2일 촛불 항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작년 이맘 때 즈음의 정책을 똑같이 시도하고 있다. 대운하부터 공공부문의 민영화, 조중동에게 방송 넘기기, 입시지옥 교육, 의료민영화까지 모든 것이 촛불운동의 전야와 너무나 닮았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 경제위기까지 닥쳤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불안에 휩싸인 민생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 한다면, 구체적으로는 자본 주도의 의료민영화와 사회정책분야의 시장화를 계속해서 추진한다면, 장차 더 큰 제2의 촛불에 직면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