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가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틈에서 오랜 시간 기다려야한다는 소식에 아무래도 건강에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며 국민장이나 끝나면 가려니 했는데 마침 1주일 전 후배인 신교수가 함께 가기를 권했다. 신교수 부인은 갑작스러운 일로 빠지고 송사장 부부, 우리 부부가 일행이 되어 7일(일요일) 아침 9시 30분, 광주를 출발하여 진영읍에 도착하니 12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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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 가는 길 아직도 못다한 말이 있는 것인지 젊은이들이 그들의 추모 글을 매달고 있었다. |
ⓒ 홍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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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서 봉하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추모의식은 시작되고 있었다. 길가에 끝없이 걸린 추모 현수막, 들고나는 사람들로 기나긴 행렬, 읍에서 마을까지 이어진 차량들…. 그런 전경을 보면서 순례자가 된 느낌으로 걷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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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 가는 길 논둑을 가로 질러 오는 시민들. 누가 그 길을 가라했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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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연찬회에서 어떤 인간은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전체 국민 중 극히 소수요 또 겹치기라고 폄하하고, 어떤 여당의원은 조문 열기를 '광풍(狂風)이라고 몰아붙였다던가. 만약 그들이 그 길을 봤다면 또 무슨 말을 했을까? 혹시 그런 인간들은 봉하 가는 길을 메운 사람들이 돈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우기고 싶지나 않을까?
분향소에 이르니 또 기다림 끝에 고인의 영전에 술을 올리고, 봉하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정토암 가는 길에 올랐다. 시간은 이미 오후 2시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시장기조차 잊은 듯아무도 배고픔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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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향소 분향소 앞의 추모객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40분을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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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풀석이는 산길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취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가버린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일이던가! 그가 사이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을 때 저만치 비켜서서 지켜보았던 일, 그가 검찰에 끌려가던 날 그를 혼자 가게 했던 일들이 내 잘못인양 가슴을 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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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바위 나라를 움직이던 권력도 한갖 바위를 이기지 못하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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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로 가는 길목은 막혀 있었다. 저승의 길목이 되어버린 그곳을 보며 울컥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그가 우리 국민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의 죽음이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 같은 촌노인이 파고 들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그의 죽음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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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바위 가는 길 그의 말대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인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던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보고있는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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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커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간 못하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수모인줄을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 수치심이 없기에 절망도 모르고, 내일이 있음을 모르기에 희망도 없는 인간들도 많다. 오직 물질에 대한 욕망을 선으로 여기며 가진 돈을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 민족도 안중에 없고 역사도 모르면서 이 나라의 지식인이요, 지도자인 체 하는 인간들, 염치없이 살면서도 그것을 꿋꿋한 삶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를 지지했다가 돌아섰던 많은 사람들이 했던 말처럼 나에게도 그는 애증이 엇갈리는 대통령이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도 그랬지만 어째서 대통령이 국민이 부여한 권력조차도 소신대로 행사를 못하는지 하는 불만도 컸다. 언론에 끌려 다니는 것도 그랬고 여당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보기관, 검찰 같은 권력 기관도 손아귀에 쥐고 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문자 그대로 대통령이 '정의의 사자'가 되어 우리 민족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비 보수들을 무찌르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진보세력은 좌파로 몰렸고 정부는 좌파정부로 매도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의 한 자락도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 마추어 정부라고 등을 돌렸다. 그 사람들 가운데 내가 있었다.
국민으로 받은 민주 권력의 정도(正道)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새로운 권력의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했음에도 나는 그를 알기는커녕 이해조차 못했던 것이다.
최소한의 사회 상식에서 벗어나 대통령을 조롱하고 그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내리찍는 언론조차도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며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소신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력 기관을 떡 주무르듯 해서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의 본심을 못 읽은 채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사이비 언론이나 권력의 주구 노릇에 익숙한 검찰 그리고 한나라당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다른지 못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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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향소 어른 아이가 따로 없었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숫자를 가지고 말하지기 전에 그곳을 찾아 헌화라도 했으면 바란다. |
ⓒ 홍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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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안하고 후회스러워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대연정을 제안했던 그의 의도가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했던 고육지책이었음을 이해하고, 그의 가족이 받았다는 돈이 퇴임 송별금이었구나 하고 접어 생각한들 그의 육신을 다시 세울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가 그의 전임자들처럼 권력기관의 힘으로 그의 정적들을 감시하고 사찰했더라면…,
만약 그가 물에 빠진 개는 몽둥이로 후려치듯 숨을 죽이고 있던 민족의 공적들을 찾아 죄과를 확실하게 물었더라면….
끝없는 만약의 상념에서 틀을 벗어날 수 없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의 유서를 다시 읽는다.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유서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간결한 유서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읽는다.
권력의 정도를 보여주고 작은 농촌 마을로 귀향한 전임 대통령을 권력의 개밖에 될 수 없는 검찰과 사이비 보수 언론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었던 권력에 대해 연합하여 비열하게 뒤에서 난도질을 했다.
측근은 줄줄이 잡혀가고, 가까웠던 사람들의 계좌는 물론 그가 생전에 찾았던 식당마저 권력의 촉수가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보통사람도 그 모멸감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방궁", "논고랑으로 사라진 1억짜리 시계" 등의 근거 없는 말을 여과 없이 흘리고 그것을 사실인양 보도하는 언론의 작태가 자신과 관계있다면 보통사람들도 절망감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배후에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운운했던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죽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길에서 그는 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 말대로 "꿋꿋하게" 사는 것이 더 구차하기만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유서에 남긴 "운명이다"라는 대목을 읽으며 그의 절망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그의 영정 앞에 따르는 술 한 잔으로 그에 대한 미안함을 씻을 수 없음을 안다. 유서를 읽고 또 읽으며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깊은 이면을 헤아린들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의 삶을 극적으로 마감하도록 몰아간 실체, 그가 원망하지 말라고 했던 원망의 실체를 모르지 않지만 개인들이 응징할 수 없는 노릇임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시대에 삽질이나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묻고 또 묻는다. 과연 당신은 전임 대통령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당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대통령의 참회를 촉구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을 한 사람의 국민으로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성 없는 대통령, 말로만 쇄신을 앞세우는 한나라당, 정당성을 강변하는 검찰, 교활한 사이비 언론 모두가 결국 국민의 힘 앞에 공멸하고 말 것이다.
대학교수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촛불을 밝히고자 한다. 선거 때면 국민들을 투표기 정도로 취급하는 현 정부를 끝내고 싶다. 그 끝을 앞당기기 위해 봉하의 영정 앞에 켜진 촛불을 광장으로 옮긴다면 촌 노인도 뒤에서 촛불을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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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암 대통령의 유골이 안치된 곳. 민주주의 위기에 공감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 곳에 한 번 서보기를 권한다. 그곳은 작은 암자가 아니었다. |
ⓒ 홍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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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아직 봉하 마을을 가지 못한 국민들에게 봉하 마을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제 봉하는 작은 마을이 아니다. 죽음으로 진정한 민주주의 이상을 세우려 했던 전임 대통령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법치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민주주의가 독재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더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봉하가는 길은 서울 광장처럼 아직 막히지 않았음을 알려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