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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557.html

 

 

문제도 해법도 무주에 [2008.10.17 제731호]
[출판] 건축가 정기용이 10여 년간 단장한 30여 개 공공건축물의 특별한 사정 <감응의 건축>
구둘래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전북 무주에서는 공공 건축물들이 새로 지어지거나 단장을 했다. 마을회관, 면사무소, 공설운동장, 군청, 재래시장, 청소년수련관, 납골당, 요양원 등 30여 개 건축물이었다. 소문도 어지간히 나서 이들 공공 건축물은 건축학도의 순례지로 자리잡았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는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라 불리는 건축가 정기용. 이 유일무이한 도시 건축물의 증인인 그가 이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꾸몄다. <감응의 건축>(현실문화 펴냄)이다.

 

» 등나무 운동장은 무주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군수와 주민의 감응, 군수와 건축가의 감응, 건축가와 자연의 감응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무주 땅이여, 너 잘 만났다

1996년 무주는 꿈틀대고 있었다. 낙향의 꿈을 품은 사람들이 농촌을 점령하는 식으로 진군하는 한편으로 농촌에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려는 사람들의 소망도 한데 모여들고 있었다. 무주 청년들은 무주리조트의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예술인 마을’을 지으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무주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주’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기용과 무주의 찌릿한 만남에 있다.

 

첫 만남은 1996년 이루어졌다. 문화평론가 강내희, 지금은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 등과 함께 경북 구미∼안동∼무주를 거쳐 국토여행을 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겠지. 무주행은 애초 창원에 가기로 한 길을 되짚어서 가자고 하면서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무주 안성면에 도착한 정기용은 놀란다. 그만 털썩 주저앉을 뻔할 정도였다. “아니 한국 땅에 변치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 아직 남아 있다니!” “땅을 교감하는 능력을 키워온 사람들”인 건축가에게 그 땅은 ‘나 안성면이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땅인데 너 잘 만났다’ ‘유일하게 남은 나를 잘 키워다오’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큰 인연이 생기기까지는 우연이 더 쌓여야 했다. 서울에서 빈민을 위한 흙집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허병섭 목사가 낙향한 도시가 무주였고 그는 우연히 만난 정기용에게 흙집을 여기 지을 수 없겠느냐고 했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여 안성면 진도리 마을회관을 흙집으로 짓는다. 상량식 날 김세웅 당시 무주군수가 왔는데 그는 이런 말을 건넨다. “선생님께서 무주같이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건축 일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 군수는 안성면사무소 설계를 주문하면서 건축 프로그램 기획까지 제안한다.

 

큰일을 내려면 일을 맡은 사람들의 마음이 스며들어야 한다. 정기용은 공설운동장 프로젝트가 10년 동안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며 자신을 많이 가르쳤다고 한다. 1997년 김세웅 군수는 회의하러 내려온 정기용의 손을 잡고 공설운동장으로 이끈다. 그는 운동장 주변에 심어놓은 240여 그루의 등나무 앞으로 가서 사연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군내 행사에 사람들이 안 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 노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노인 왈. “군수만 본부석에서 비와 햇볕을 피해 앉아 있고 우린 땡볕에 서 있으라고 하는 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우리가 무슨 벌 받을 일 있나? 우린 안 가네.” 기존 시설의 권위주의적 배치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군수는 관중석에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 생각으로 등나무를 심었다. 1년도 안 돼 등나무는 얼른 등나무의 집을 세워줘야 할 만큼 자랐다. 군수의 아이디어는 놀라웠고 ‘군수가 건축을 다 해놓았다’는 겸손한 건축가의 손길은 섬세했다. “(등나무 지지대) 원호의 끝은 시선과 햇볕의 관계를 고려해 가장 적절한 위치에 꼭짓점을 정했다.”

 

감응이 겹으로 작동하여

» <감응의 건축>

“이런 일을 그렇게 순식간에 집중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감응이 겹으로 작동해서가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주군수가 주민들에게서 얻은 감응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허공을 허우적대는 등나무 순에서 얻은 감응이다.” 건축의 원칙은 ‘식물을 닮게 설계하자’였다. 그 뒤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은 식물이었다. 10년이 흐른 뒤 늦은 봄 등나무 운동장은 무주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부남면의 별 보는 집 또한 감응이 만들어낸 건축물이다. 기용설계소의 직원이 “예정에 없던 것을 만들려니 예산이 초과될 수밖에 없었던” 대표적인 건물로 꼽는, 첨성대를 닮은 천문대다. 면사무소 행정동과 복지관을 함께 개보수하자는 계약을 맺으러 현장에 간 정기용은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만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군)으로 불리는 오지인 무주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는 부남면이다. 건축가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건축가는 건물만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해 의미 있게 조직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자부심에 답하게, 금강 상류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정도가 가끔 찾던 이곳은 여름이면 학생들로 북적대곤 한다고 한다.

 

감응의 건축은 주민의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안성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면사무소에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정기용은 노인들이 봉고차를 빌려서 대전까지 나가 목욕탕에 가는 것을 보았고, 면사무소를 설계하면서 목욕탕을 집어넣었다. 짝수 날은 여탕, 홀수 날은 남탕이 가동된다. 지금은 진안군이나 장수군에서 ‘출장 목욕’을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농촌의) 현실적인 문제를 사실은 주민들이 다 알고 있다. 전문가들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주민들에게는 면사무소보다 더 필요한 것이 면 단위의 공중목욕탕이라는 것을 이른바 ‘공간의 전문가’들이란 사람들만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는 간단하고 해법은 명료하다. “내가 배운 점은 문제도 무주에 있고, 해법도 무주에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무주 주민 속에서, 무주의 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주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일본이나 덴마크에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무주에서 배운 게 그거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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