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교수 홈피>
http://cba.chonnam.ac.kr/~yykim/essay74.htm
자본주의적 세계화 막고자 창안한 '치명적 자만'
서평 <파레콘(PARECON):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앨버트(Michael Albert)는 경제 체제를 평가하는 가치로서 공평성, 자율관리, 다양성, 연대, 그리고 효율성을 들고 있으며, '파레콘(참여경제: participatory economics)은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경제 체제라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등과 더불어 미국 좌파 지식인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회주의 멸망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개발해 온 것으로 역자는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좌파 서적은 인간의 원시본능을 강하게 자극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심정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좌파적 이념이 논리적으로 치명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실현불가능성이 실증적으로 여실히 증명된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가슴에 여전히 뜨겁게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원시본능을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읽어보고자 노력해도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앞뒤가 맞지 않은 억지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한 마디로 반자본주의적이며 반시장적 심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반시장적 심리의 또다른 표현
저자는 재산의 많고 적음과 타고난 재능 여하에 따라 소득분배가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노동에 따른 노고와 희생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져야만 보편적 가치가 실현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장 교환은 구매자와 모두에게 거의 언제나 이득을 주지만, 이는 단기적 현상에 불과하고 공평성이나 효율성은 물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평성을 악화시키고 비효율성을 초래하여 인간관계를 왜곡하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경멸하며, 권리를 박탈하고 굶주림을 동반하기 때문에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노동자 평의회와 소비자 평의회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한 자원배분을 통해 이들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미국이 아니라 이상세계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출발하여 결국 가난으로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도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이에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성의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회주의자가 되려는 성향이 강하게 존재한다"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파레콘에 대한 비판은 끝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지면의 제약상 중요한 몇 가지 사항만 기술하고자 한다.
보편적 가치 무너뜨리는 오류
첫째, 저자는 파레콘이야말로 공평성, 자율관리, 다양성, 연대,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경제 체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파레콘은 인간의 이성으로써 또 다른 이상세계를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지적오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즉, 저자는 합리적 구성주의를 신봉하고 있으나, 그러한 사상의 끝에는 전체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파레콘은 '민주'라는 이름 아래 자원배분을 노동자 평의회와 소비자 평의회라는 집단이 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획일적인 사회를 구현할 수밖에 없어 저자가 내세우는 보편적 가치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지한 존재다. 무지한 만큼 인간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는 한, 인류는 저자가 말하는 보편적 가치에 접근할 수 있는 길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우울한 결과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자산시장 없어 사회주의 실패
둘째,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더라도 우리가 생산에 활용하는 수단, 특히 자본은 언제나 필요한 양만큼 공급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노동자 평의회가 사용하고자 하는 자본재는 언제나 동원 가능할 만큼 스스로 고유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사회주의 실험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미세스는 사회주의 경제에는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과 같은 자산시장이 없기 때문에 자본재에 대한 시장정보(자본재의 화폐가격)가 없어 멸망하였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리고 자산시장이 없는 이유는 바로 사적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노동자 평의회가 저자가 말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균형적 직군을 설정하여 생산활동을 계획한다고 하더라도 시장가격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생산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결국 '지시가격' 개념을 창조하여 오스카 랑게가 제안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레콘을 중앙집권적 사회주의로부터 탈피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스스로 무력화하고 있다. 결국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체제 우월성을 증명한 것은 바로 사적 재산권 여부에 있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노고와 희생의 모호한 평가
셋째, 노동에 대한 보상은 노력과 희생, 즉, 노고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균형적 직군에 의해 바람직한 작업과 바람직하지 못한 작업, 그리고 기계적인 작업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공평하게 분담한다면 공평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작업성과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보상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요소는 개인의 노고이기 때문에 작업에 필요한 도구등을 배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있다고 전제한다면,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효율성은 얼마든지 증대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노동에 따르는 노고와 희생은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리고 여러 업무를 등급화하여 균형적 직군을 누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노동자 평의회가 적절한 정보 제공과 선호표출 수단 및 정책결정 과정을 가능한 한 최대한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정책 결정에 의해 받게될 영향에 비례해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적 방식에 의해 이러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라는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틀렸다. 우선 노고와 희생이라는 용어가 모호하기 그지없고, 이를 노동에 따르는 비효용(disutility)을 고려한 것이라고 해석하더라도 그 노동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의 가치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노고와 희생을 동반하는 특정 노동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느냐는 시장 평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노동자 평의회에서 합의에 의해 노고의 정도를 산정하여 보상을 결정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자의적인 것에 불과하며,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성과 양립할 수 없다. 또한 시장 평가가 배제된 공평성은 수평적 공평성일 뿐, 재능과 이러한 재능을 어떻게 계발할 것인가라는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수직적 평등은 아니다. 따라서 참여경제에서도 생산성 하락이 위협받지 않고 효율성이 증가하여 물적 번영과 정신적 풍요를 약속할 수 있다는 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 또한 나의 소비는 다른 사람들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소비자 평의회에 소비청구서를 제출하여 극히 불합리한 이유가 없는 한, 소비청구가 거부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열심히 일할 것이므로 효율성은 물론 사회적 연대가 달성된다는 주장 또한 억지이기는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부정하는 참여경제
넷째, 위의 이유에서 자명하게 밝혀지는 것처럼, 참여경제는 자본주의와 시장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경멸하며, 권리를 박탈하고 굶주림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경제는 상대방의 손해를 나의 이익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협동과 신뢰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파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전혀 그러한 속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제체제 하에서도 이러한 부정적인 속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다른 어떤 경제체제보다는 인류의 삶을 물질적·정신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훨씬 더 기여하였다. 또한 저자는 시장 경쟁을 제로섬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경쟁은 결코 제로섬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게임이다. 저자는 참여경제 하에서 다양성과 자율, 연대가 보장된다고 하나 노동자 평의회나 소비자 평의회는 그 단위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결국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이다.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은 개인 차원의 의사결정보다 더 획일적이고타율적이며, 연대도 이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각 개인들이 자신의 선호와 예산제약등에 따라 타인의 동의 여부를 물을 필요 없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자율적이며 다양성을 보장하며,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익명의 경제주체들을 협동으로 인도하므로 연대 또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레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균형된 직군에 따라 노동에 참여하므로 저자는 공평성의 가치가 해결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공평성은 개인의 선호와 특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계산할 수 없으면 시스템 붕괴
다섯째, 파레콘이 참여경제를 의미한다면 파레콘에서 말하는 참여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파레콘의 참여계획은 이렇다. "참여계획의 수립 과정에는 노동자와 소비자 평의회들 및 계획촉진위원회(IFB)들이 참여한다. IFB는 모든 재화, 자원, 노동범주, 자본에 대해 우리가 '지시가격'이라는 것을 공표한다. 소비자 평의회들은 그 지시가격을 재화와 서비스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추정치로 간주하여 소비 계획안을 작성한다. 노동자 평의회들 역시 지시가격을 산출의 사회적 편익과 투입의 진정한 기회비용을 나타내는 추정치로 간주하여, 생산 가능한 산출물들과 이에 필요한 투입물들의 목록이 담긴 생산 계획안을 작성한다. 그러면 IFB는 각 재화들의 수요 또는 공급의 과잉 여부를 계산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식에 따라 각 재화들의 지시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조정 작업을 한다. 소비자와 노동자 평의회들은 이 새로운 지시 가격을 이용해 자체의 계획안을 수정한 다음 제출한다."(254쪽에서 인용). 저자는 이러한 과정이 시장경제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의 역할을 이용하기 때문에 파레콘 역시 시장경제 체제라는 반론에 대해 저자는 파레콘에는 시장이 없고, 참여계획에서는 상대방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구매자와 판매자도 없으며, 가격이 경쟁을 통해 결정되지도 않기 때문에 시장경제 체제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촉진위원회는 하나의 직장이고, 여기에서 수행되는 직무들 또한 균형적 직군의 한 부분일 뿐이며, 모든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들이 하는 일에 언제든지 제동을 걸 수 있으므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와도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결국 사회주의 계산논쟁에서 미세스가 비판한 랑게처럼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적 재산권이 없으면 시장이 있을 수 없고, 시장이 없으면 가격 정보가 있을 수 없으며, 시장 가격 정보가 없으면 소비자나 노동자 평의회들은 아무런 계산을 할 수 없어 결국 시스템의 붕괴에 이르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자신의 선호와 능력을 바탕으로 가격 신호를 등대 삼아 경제 활동에 참여하므로 자율성의 확보는 물론 암묵적 연대와 효율성 증대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다른 어떤 경제 체제보다도 공평성의 문제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형평 추구하면 자유·형평 모두 상실
요약컨대, 파레콘은 일단의 좌파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막고자 창안해 낸 '치명적 자만'의 산물이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암묵적 지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인간 세계에서 이성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일의 범주는 극히 제한될 뿐이다. 그런 만큼 인간에게는 자유가 고귀한 것이며, 자유의 가치를 배제한 공상 사회는 결국 그들이 이룩하고자 하는 세상은커녕 모든 사람들에게 억압과 가난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은 자명하다. 프리드만의 지적처럼 자유를 추구하면 자유와 형평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지만, 형평을 추구하면 자유와 형평을 모두 잃는 비극에 도달하게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도전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요즈음, 자본주의 시장경제야말로 우리의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도구라는 사실을 더욱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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