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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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좌절감과 회의"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1) - 마이클 알버트를 만나다
홍실이 / 2005년05월08일 23시09분
코너를 시작하며
조중동은 물론이요,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도 해외 통신원들의 기사들이 차고 넘친다. 그 주제들 또한 심오한 정치경제 분석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듯 고수들이 암약하는 무림에 변변한 절기 하나 갖추지 못하고 홀연히 나타난 것은 “잘 한다”는 부추김에 헤~ 하며 넘어간 나의 순진함 탓이다.
필자는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후 단지 관련 전공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에 일자리를 갖게 되었으며, 현재는 미국 동부의 한 대학에서 박사 후 연수 과정 중에 있다. 전공 분야는 공중 보건 (혹자는 예방의학이라고도 부름)이며 특히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건강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런 본인의 이력 상, 미국 사회를 정교하게 분석하는 일이야 어차피 미션 임파서블.
어느 날 갑자기 제국 중심으로 날아든 변두리 지식 노동자의 눈에 비친 기이하고 새로운 생활의 풍경, 학문의 풍경을 소개하고 독자들과 나누어보자는 것이 소박한 기획 의도라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의 교훈을 찾는 것은 100% 독자들의 몫이 되겠다.
마이클 알버트를 만나다
여기 미국에 도착한 것이 작년 8월 말, 한창 미국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구 제국 신민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선거, 어찌 궁금하지 않을쏘냐. 허나, 텔레비전 뉴스는 알아듣지 못하겠고 (ㅡ.ㅡ), 신문 기사들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온라인을 쏘다니던 중 자주 들르던 곳이 ZNet 이었다. 이 곳은 진보 의제와 관련된 각종 뉴스, 칼럼, 분석 논문, 블로그, 토론방 등이 모여 있는 일종의 포탈로서, 한국의 진보넷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 이름도 유명한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아룬다티 로이, 반디나 사바 등이 고정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촘스키 할배의 블로그도 여기 있음). 장문 독해가 가능한 영어 실력을 갖춘 이라면, 기꺼이 방문하여 미국, 중동,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숨겨진 의미, 투쟁 소식들을 점검할 수 있는 추천 사이트!
그리하여, 참세상 창간에 맞춰 '특별' 기사로 여기를 한 번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사실, 그 사무실이 여기 매사추세츠의 남부, 경치 좋은 해안 근처에 있기에 인터뷰를 빙자하여 나들이나 한 번 가볼까 했는데,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만나려고 했던 알버트의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집에서 꼼짝달싹할 수가 없단다. 할 수 없이 이메일로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 굳이 “해외”통신원의 기사라고 이름 붙이기는 좀 어색하게 되었다. 어쨌든, 미국 안에서 진보적 의제들을 위해 싸우는 미디어 운동, 그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나 한 번 들어보자.
인터뷰를 진행한 마이클 알버트(Michael Albert, 58세)는 오랜 경력의 활동가로서 ZNet의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번역 출판된 『ParEcon: Life after Capitalism (파레콘: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의 저자이며, 참여경제학 (Participatory Economics; ParEcon) 개념을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선 한국 독자들에게 ZNet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주세요. (사실 존대말로 물어보진 않았는데.. 그래도 번역은 동방예의지국 형식으로)
ZNet은 일종의 웹 사이트(www.zmag.org)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방대하고 아주 다양한... 우리는 사회, 경제, 정치 분야의 모든 측면들을 다룹니다. 비록 둥지는 미국 내에 틀고 있지만, 활동 영역은 세계로 뻗어있지요. 또한 오프라인 월간지 (Z Magazine) 출판과 미디어 활동가를 위한 여름학교 (Z Media Institute), 영상 프로젝트 (Z Video) 등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여름학교는 무척 인기가 좋은가보다. 찾아보니 올해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신청이 마감되었단다. 하긴, 촘스키 할배가 직접 강의를 한다니...)
“Z"라는 이름이 코스타 가브라스(Cost Gavras) 감독의 영화 ”Z"에서 비롯된 거 같은데 맞나요? ZNet을 세우게 된 특별한 배경이라면?
맞습니다. 그 영화 제목에서 따 온 거죠. 그 투쟁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ZNet은 1995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당시 미국에 계기가 될만한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미국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막강 자본주의 국가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막가파 제국 아니겠습니까?
ZNet에 올라온 대부분의 글이 속보성 뉴스라기보다는 분석 기사에 가깝던데, 글쓰기에 특별한 원칙이 있는 건가요?
사실에 입각한 속보와 분석 기사 모두 필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독립 매체 사이트들과 The NewStandard (http://newstandardnews.net/) 같은 곳은 속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교훈을 전달하고, 개념, 전략, 비전을 제공하는데 좀더 관심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걸 묻는 게 실례가 안 된다면 ZNet의 재정 상태를 좀...
현재로서 재정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후원 사업(Sustainer Program)을 통해 모든 지출을 다 감당하고도 충분해서 ZNet은 물론, Z Print, Z Video, Z Media Institute 의 재정까지 도움을 주고 있지요.
(헉... “very good”이라니) 정말 놀라운데 좀 자세히 설명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요? 후원 회원으로 등록하면 몇 가지 혜택 (이를테면 매일 평론 제공, Z Magazine 온라인 구독 등)이 있던데 이런 서비스에 대한 회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현재 회원 수는 약 6천 명 정도 됩니다. 이들로부터 후원받는 금액이 한 달에 3만 5천불 (=약 3천 8백만 원)... 뭐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후원자들은 서비스를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매주 약 30만 명의 사용자들이 우리 사이트를 방문하고, 후원은 주로 웹 사이트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본다면, 사용자 중 겨우 2%만이 후원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한 지점. 여기는 기부 문화가 진짜 발달해 있어서 NGO 들이 수백만 달러씩 모금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따라서 ZNet의 후원자들이 특별히 헌신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움. 어쨌든 기업 배너 광고 없이도 넉넉히 생계를 꾸려갈 수 있으니 참세상 운영진들에게는 매우 부러워할만한 대목)
ZNet에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주요 독자층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요 필진의 명단은 웹 사이트에 올라 있습니다. 방문 독자는 일주에 약 30만 명 쯤 되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우리도 정확히 알 방법이 없죠. 하지만 물론 대부분이 좌파일 것으로 짐작되고, 약 2/3은 미국 국내에서, 나머지 1/3은 해외에서 접속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 질문은... 필진 이름이 뭐냐가 아니라 (나도 영어 읽을 줄 아는데..), 그들의 성격을 무어라 규정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뭉뚱그려서 학계 인사들이라고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물론 일부는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죠.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성격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Z 필진의 성격은 단연코(!) 정치적으로 정의됩니다. 일부는 강단에 있고, 일부는 저널리스트이지만, 모두 활동가이며 그 중 일부는 전업 활동가로 일하고 있지요.
ZNet의 필진과 Znet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필자들은 독립적인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기고만 하는지, 아니면 Z의 설립이나 운영에 실제로 관여도 하고 있는지...
많은 이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내부 운영에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있다 해도 소수만이 그런 일들에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뿐이죠. 이유는 간단한데, 사실 그들은 너무 바빠요.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으며 우리도 그들이 누구인지는 개인적으로 전혀 모릅니다.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거든요.
ZNet은 현장 노조나 민중 운동 단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우리의 글들이 널리 활용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투쟁으로부터 배운다는 의미에서만 관련이 있죠. 우리는 어떤 다른 조직과도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으며 정당이나 노조의 기관지도 아닙니다.
미국의 독립 매체들 현황을 좀 소개해주신다면?
“독립 매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텐데... 미국에는 매우 많은 독립 매체들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규모의 정기 간행물, 라디오, 비디오, 웹 사이트 등등. 일부는 매우 협소한 특정 주제에 집중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좀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다소 진보적이고, 어떤 곳은 좀더 급진적이고, 또 일부는 진짜 혁명적이죠. 우리 ZNet처럼. 말 그대로 이들은 모두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독립 매체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편으로는, 진정한 뉴스와 분석 결과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비전과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안(alternative institution)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그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겠지요.
이건 좀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미국이란 곳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자 제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데... 저는 외국인으로서 가끔씩 이 제국이 너무나 강해서 도저히 바뀌거나 물리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한국의 적지 않은 이들이 미국에 진보 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활동가들을 무력감에 빠뜨리거나 좌절시킬 법도 한데... 활동가로서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사회에서 상당한 수준의 개혁은 물론, 근본적인 사회 구조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당신이 이야기한 좌절감과 회의라고 할 수 있죠. 좌파들은 우리가 이러한 정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저는 많은 글들을 써왔어요. (미국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그들의 낙관에 깜짝 놀라고는 한다. 아마도 현장과는 동떨어진 상아탑 안의 이방인 신분으로, 비관적인 통계 수치들만을 가지고 이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하긴, 낙관과 전망 없이 어떻게 활동을 하겠나)
미국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일반 대중이나 진보 진영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지난 35년간 미국 사회와 문화는, 믿거나 말거나, 매우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고 때로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진보 진영과 좌파 운동이 매우 제한된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엘리트주의적 관점, 친근하지 못한 방법과 전달방식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하긴, 일전에 만났던 뉴욕의 이민자 운동단체의 활동가는 먼쓸리 리뷰나, 촘스키 할배 글 같은 건 들여다보지도 않는다고 하더라. 아마도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할거라는 이야기까지... ㅡ.ㅡ )
마지막으로, 비슷한 길을 가는 동료로서 참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건투를 기원합니다. 언젠가 꼭 한 번 한국에 방문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책『파레콘: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에서 제시한 비전이 한국에서도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작은 조언이 있다면, 권위 있는 힘과 전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정과 연대, 그리고 비전과 전략으로 절망과 좌절에 맞서도록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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