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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청문회 스타’ 이정희를 주목하는 이유 (유창선)

by 마리산인1324 2009. 9. 23.

 

<유창선의 시선> 2009/09/23 09:00

http://blog.ohmynews.com/yuchangseon/

 

 

'청문회 스타' 이정희를 주목하는 이유

 

- 유 창선 -

 

"보기 드물게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다. 후원금을 보내겠다." 얼마전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이해찬 전 총리가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를 가리켜 했던 말이다.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이정희’라는 국회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18대 국회 시작할 무렵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이름이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첫발을 딛기까지 그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 서울대 총여학생회장, 사시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의 이력이 말해주듯이 그녀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일찍 눈뜬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이정희 의원은 한동안 인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여당 의원들이 법안을 힘으로 강행처리 하는 본회의장에서는 사력을 다해 저지하다가 쓰러지고, 서울광장에서는 경찰과 충돌하다가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쌍용차사태 때에도 경찰버스에 올라타 연행된 보좌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온순해 보이는 얼굴의 그녀는 누구보다 열렬한 투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이정희 의원 ⓒ 남소연


 

그러나 사람들이 이정희 의원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단순히 난폭한 권력에 맞서는 여성 투사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 정운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의원은 속칭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아들 국적에 대한 정 후보자의 답변이 거짓이었음을 추궁하여 죄송하다는 답을 받아냈고, 'YES 24' 고문을 맡은 것이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시인을 받아냈다. 용산참사의 원인을 화염병 투척에 돌렸던 정 후보자는 이정희 의원의 추궁에 결국 총리로 취임하면 유가족들을 찾겠다는 답을 했다.


 

이정희 의원은 정 후보자 ‘킬러’로 등장했고, 정 후보자는 까마득한 후배의 추궁 앞에서 내내 쩔절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 의원이 내용없이 목소리나 높이는 식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후보자에게 예의를 갖추며 조곤조곤 대화하듯이 말했다. 그대신 사실적,법률적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후보자를 몰아갔다. 후보자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 그녀는 살아있는 눈빛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마치 청문회 질의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임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그는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였다.


 

내 기억으로는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당시 노무현 의원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싶다.


 

18대 국회에서 이 의원의 전방위적 활동을 소개하자면 끝이 없다. 바로 얼마 전에는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의혹을 폭로하여 정보기관의 사찰에 대한 경각심을 사회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정치인으로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대한문 앞에서 계속하기도 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한 초선 의원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우울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정희 의원의 활약이 부각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실이 후퇴하였다는 의미도 되고, 다른 야당 의원들의 활동이 저조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정희 의원은 이번 청문회에서 국회의원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의미있는 성과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18대 국회에서 더 많은 ‘이정희’가 생겨나기를 고대한다. 오늘 야당에 ‘이정희’가 10명만 있었어도 민주주의가 이렇게 후퇴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이정희 의원의 건투를 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 성원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오늘의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 바란다. 내가 감히 평가한다면, 18대 국회가 낳은 최고의 국회의원은 이정희 의원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