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1854 Socialist Worker(영국) June 7, 2003
자본주의 이후의 삶(2)
아래로부터의 변화
John Molyneux가 《사회주의 노동자》의 새 연재물 <자본주의 이후의 삶>의 기고자가 되어주었다. John은 팸플릿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 The Future Socialist Society》의 저자로 《사회주의 노동자》의 정기 기고자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당원이다.
지난주에 발행된 《사회주의 노동자》에서 마이클 알버트(Michael Albert)가 참여 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라고 부른 것은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자본주의 이후의 삶에 관한 우리의 비전에서 노동자들이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과정이 중심에 놓이면 된다.
현 체제 하에서 우리가 쟁취한 모든 민주적 권리들--투표권, 언론의 자유 등등--은 세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히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에 의해 궁극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료들도 들고 난다. 새 정부가 선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권력은 한결같은 세력의 수중에 놓여 있다. 은행과 대기업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말이다.
작업장 민주주의는 조직하기가 아주 쉽다. 그러나 그 효과는 가히 혁명적이다.
사적 소유자와 이사회가 경영진을 임명하는 대신 작업장 회의에서 경영자를 선출하고 그들이 회의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액수의 봉급과 배당금과 주식을 받을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을 받으면 된다.
이를 통해 현 사회의 가치를 손상하는 참혹한 불평등을 제거할 수 있다. 아울러 마이클 알버트가 주장한 것처럼, 부를 생산하는 자들과 그것을 통제하는 자들 사이의 분열, 명령을 내리는 자들과 고된 노역을 감내해야 하는 자들 사이의 분열, 다시 말해 계급 분열 구조의 심장부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장 민주주의는 최대 이윤을 뽑아내는 재화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우리가 생산하도록 보장해 주는 핵심적인 기제가 될 것이다. 부자들만 이용하는 초호화판 호텔이나 삐까뻔쩍한 자동차가 아니라 대중에게 충분한 주택을 제공하고 제3세계에 트랙터를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작업장 민주주의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누리고 있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관료적·일방적 통제를 제거할 것이다. 학교와 병원(선출된 교사·학생, 의사·간호사·지원 인력 등이 운영하는)은, 정부가 부과하는 목표나 경쟁이 아니라 학생과 환자들의 진정한 필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업장 민주주의는 노동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에 대한 기본적 경험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지루하고 소외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던 처지에서 벗어나 우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마이클 알버트가 이것이 “유토피아적”이라는 공격을 거부한 것은 옳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사물과 사태를 이해하고 운영할 만큼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업장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도록 강요받고 있다.
실제에 있어 노동자들--특히 집단을 구성하고 있을 때--은 실질적 과업을 달성하는 방법과 관련해 사장이나 최고 경영자보다 훨씬 더 풍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사장들이 진정으로 “전문가”인 분야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대중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방법이다.
전문적인 기술·과학 지식이 필요하면 전문가들이 선출된 노동자 경영진과 협력하면 될 것이다. 지금처럼 선출되지 않은 사장들을 위해 봉사하는 형태가 아니라 말이다.
그러나 작업장 민주주의는 한가지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마이클 알버트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국가가 바로 그것이다.
국가는 제도들의 네트워크이다. 그 제도들은 군대·경찰·감옥·법정·행정부서 등등으로 사회 위에 군림하며 사실상 독점적인 법률적 강제력을 행사한다.
의회 제도라는 무화과 잎사귀를 떼어내면 국가 기구가 사회의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더 권위적이고 위계적이며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게다가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장군과 판사들, 최고위 공무원들 따위가 아닌가. 이 자들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들과 동일한 계급의 일부로,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노동자 계급 출신 가운데 소수가 이런 지위를 얻기도 하는데, 이런 일은 그들이 지배 계급의 전망과 이익을 채택할 때뿐이다.
이런 국가는 광범위한 작업장 민주주의와 단 한 순간도 공존할 수 없다. 국가는 자신의 물리력을 동원해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것조차 막으려고 발악할 것이다.
알버트가 말했듯이, “나무에게 날아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진정 유토피아적이다. 지배 계급의 자비를 바라는 것은 무망한 일인 것이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생존하려면 기성의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기성 국가의 분쇄는 선택적 소수의 쿠데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백만의 근로 인민이 수행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총파업과 공장 점거의 형태를 띨 것이다.
기성 국가의 분쇄는, 군대 그리고 가능하다면 경찰의 기층을 민중의 편으로 가담시켜 운동을 탄압하려는 기도를 무력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의회(workers' councils)가 투쟁으로부터 유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1차대전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 1956년 헝가리, 1972년 칠레, 1979년 이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사례는 과거 노동자 투쟁의 역사에서 줄곧 반복되었다.
노동자 의회가, 이론적 청사진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투쟁을 조율해야 한다는 대중의 실질적 필요에 부응하기 때문에 탄생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노동자 의회는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생산하지 말아야 할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어떤 서비스는 폐지해야 할지, 파업 연대 행위를 대중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과 결합하는 방법, 그리고 운동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할 것이다.
노동자 의회가 일단 이런 기능들을 수행하기 시작하면 우선은 국가에 도전하는 형태를 취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국가를 폐절하는 권력의 대안적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노동자 의회를 국회나 지방의회보다 훨씬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공동체 선출(election from collectives)과 소환의 원리이다. 공장·사무실·학교·병원 등의 공동체에서 대표를 선출한다는 것은 선택과 결정이 민주적 토론의 기반 위에서 내려질 수 있으며 대표들이 자신의 약속을 어길 경우 소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 체제에서 선거구의 유권자들이 국회의원을 소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의회라면 대표를 소환하거나 파면하는 모든 행위와 절차가 작업장의 대중 집회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일부는 이런 체제가 작업장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연금 생활자, 실업자 등)을 배제해 버릴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쉽게 단체를 구성해 대표를 파견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의 초기 단계에서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반동과 파시스트에 대항한 무장 자위대가 필요하다. 반사회적 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조치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 군대와 경찰은 사회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다수 대중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노동자 의회와 더불어 노동자 민병대(workers' militia)가 탄생할 것이다. 대중은 노동자 민병대에 순번을 정해 복무할 것이다. 여기서도 당연히 민주적 장교 선출의 원리가 적용된다.
일부 사람들은 스탈린주의 러시아·동유럽·중국의 비극적 경험 때문에 노동자 권력에 대한 나의 구상과 언급을 읽으면서 획일적이고 자유가 없는 일당 독재 국가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다양한 정당과 단체들이 대중의 지지 비율에 따라 노동자 의회에서 활동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는 열정적으로 토론될 것이다. 기층의 의견이 바뀌면 지도부가 한 정당이나 단체에서 다른 정당이나 단체로 매달 바뀔 수도 있다.
현재 우리는 맥도널드(McDonald's)와 맥도넬-더글러스(McDonnell-Douglas),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와 제너럴 프랭크스(General Franks)의 연합체가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또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두개의 전선에서 민주적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생산 통제, 노동자 의회를 통한 노동자 계급의 정치 권력이 그 대안이다.
★政明爲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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