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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10-01-01 오전 1:45:1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31141050§ion=03

 

 

"모기가 무쇠를 뚫을 때까지 묻고 또 묻자"

[인터뷰] 지율 스님과 낙동강을 걷다

 

 

지율 스님.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을 반대하며 총 다섯 차례에 걸쳐서 단식을 진행했다. 그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터널은 예정대로 뚫렸고, 경부고속철도는 2010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은 그를 잊었다. 가끔씩 보수 언론이 "밥 굻고 1년 이상 국책 사업을 중단시킨 요승(妖僧)"으로 기억할 뿐이었다.

그러던 참에 지난 9월 다시 언론에 지율 스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들을 상대로 '정정 보도' 결정을 받아낸 데 이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로부터는 법원의 결정으로 명예 훼손 배상금까지 받아 낸 것이다.

법원은 이들 언론에서 수년간 400회 이상 기사화되었던 "지율 스님의 단식으로 2조5000억 원 손해가 났다"는 내용이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다. 지율 스님은 이 소송에 3년이나 매달려 결국 내로라하는 보수 언론을 굴복시켰다. 이미 2006년 2월 대법원의 결정으로 터널이 뚫리게 된 마당에, 그는 남모르게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이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지율 스님은 낙동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통령이 앞장서 추진하는 4대강을 파괴하는 사업이 천성산 터널의 쌍둥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수없이 낙동강을 오르내렸다. 안동부터 부산까지 낙동강 전체를 완주한 것이 몇 차례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8개월간 그는 끊임없이 낙동강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 11월 중순, 지율 스님은 경상북도 상주의 낙동강 변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1박 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를 진행 중이다. 1박 2일 동안 상주부터 안동까지 그와 함께 낙동강을 따라 걷는 이 순례에 현재까지 약 500명이 참석했다. 이 순례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는 계속 이렇게 걸을 예정이다.

지율 스님이 절을 떠나서 세상 속으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낙동강을 수없이 따라서 걸으며 무엇을 보았을까? 유난히 날씨가 추웠던 지난 26일 상주부터 안동까지 낙동강을 따라서 그와 함께 걸었다. 그는 상주보 예정지가 눈앞에 보이는 청룡사로 기자를 안내했다.


▲ 지율 스님. ⓒ프레시안
 

"내가 낙동강에서 본 것을 다른 사람도 본다면…"

- 남모르게 낙동강을 셀 수 없이 둘러본 다음에 상주에 터를 잡았다. 왜 하필 상주인가?

낙동강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실히 깨달았다. 새벽 강가에 하얗게 오르는 물안개, 아침에 흐르는 강물에 반사돼 눈앞에서 부서지는 햇살, 어둠에 잠기기 직전 강가에 물드는 보랏빛 낙조, 강물에 떨어지는 달빛…. 이런 아름다움에 취해 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것을 더 많은 사람이 본다면….'

그러다 안동에서 상주에 이르는 낙동강 상류가 눈에 들어왔다. 낙동강 700리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상주보 주변은 널리 알려진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쓰였을 정도로 비경이다. 소백산에서 흘러와 낙동강과 만나는 내성천은 낙동강 전체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손길을 덜 탄 곳이다.

선방에서 하는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모기가 무쇠를 뚫는다.' 모기가 무쇠를 뚫으려면 가장 약한 곳를 찾아야 한다. 내가 보기엔 낙동강에서 가장 사람 손이 덜 탄 아름다운 이곳이야말로 그 무쇠의 약한 곳이었다. 일단 나부터 이곳에 터를 잡기로 했다. 지난 11월 중순에 폐가 한 곳을 임대해 들어왔다.


얘기를 나누면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상주보 인근이었다. 이곳은 수년 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상도>, <태양인 이제마>, <다모> 등의 촬영지였다. 상주보가 만들어지면 이곳의 상당수는 수몰된다. 얼마 후면 이곳은 영원히 사라지고, 옛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만 볼 수 있다.

▲ 상주보 인근 청룡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이곳은 수년 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상도>, <태양인 이제마>, <다모> 등의 촬영지였다. 상주보가 만들어지면 이곳의 상당수는 수몰된다. ⓒ프레시안

-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하는 강을 파괴하는 사업을 놓고 환경단체가 주도하는 많은 반대 운동이 있었다. 또 가장 권위 있는 교수들이 나서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정교한 반대 논리를 내놓았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의 3분의 2가 강을 파괴하는 이 사업에 선뜻 동조하지 않는다.

이런 데도 정부가 추진하는 강 파괴 사업을 막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한 가지 답을 찾았다. 만약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강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토록 무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시민들이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줄 필요성을 느꼈다.


-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가 그 계기인가?

그렇다. 입소문만으로 벌써 500명 가까이 다녀갔다. 크리스마스 연휴 순례는 언론에 좀 알려진 탓인지 한 번에 200명이 참여했다. 같이 낙동강을 걸어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우리 강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며칠 전에는 영국인 한 사람과 같이 낙동강을 걸었다.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의 강은 정말로 아름답다. 이런 강을 파괴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손실이다.' 한국과 전혀 연고가 없는 외국인의 반응이 이 정도인데 시민의 반응이야 오죽하겠나. 이렇게 낙동강을 찾는 사람이 수만 명,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된다면 어떤 정부가 이 강을 함부로 파헤칠 수 있겠는가?

이런 걸 반대 운동이라고 한다면 내가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주민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어떤 운동도 성공 못해"

ⓒ프레시안
26일 지율 스님과 따라서 낙동강을 걷는 이들은 서울, 상주, 충청북도 괴산 등에서 온 이들이다. 몇몇은 각 지역에서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는 환경단체 관계자였다. 그러나 손팻말, 현수막 하나 펼치는 이들이 없었다. 지율 스님이 순례를 참여하는 이들에게 그런 것을 준비하지 말라, 이렇게 권고한 탓이다. 그 이유를 물었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댐 건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마을을 찾았다. 환경단체에서 파견한 변호사가 댐 건설의 문제를 언급하니까, 주민들이 핏대를 세우면서 이렇게 외치더라. '그런 건 필요 없어. 보상금을 많이 받을 방법이나 내놓아봐.'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정말로 고향을 떠나고 싶어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고향을 떠나기 싫다. 그런데 댐 건설을 막을 방도가 없지 않나.' 그래서 호통을 쳐줬다. '그런 정신머리로는 단 돈 10원도 보상금을 올려 받을 수 없다. 여러분이 마을을 지키겠다, 마을에 남겠다, 이런 태도가 절실해야, 설사 댐 건설을 못 막더라도 보상금이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그 다음부터는 내 말을 귀담아 듣더라. 주민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어떤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 대대로 수백 년간 살아온 고향을 수장하고 타지로 떠날 처지에 놓인 주민의 마음이야 편하겠는가? 불안하니까 정부가 제시하는 장밋빛 전망을 더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진실을 알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그래도 지방 도시의 작은 강마을에 지율 스님이 나타난 것은 대사건이다. 더구나 4대강 사업의 개시를 앞둔 시점 아닌가? 면사무소 등은 지율 스님에게 세를 준 집 주인에게 수시로 전화를 한다. 나름의 동향 파악이다. 주인을 포함해서 마을 주민 대다수는 4대강 사업을 찬성한다. 마음고생이 심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골치 아픈 사람에게 세를 줬다고 주인도 이곳저곳에서 타박을 받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주인이 보통사람이 아니다. 나한테 이렇게 말하더라. '스님, 나는 4대강 사업을 찬성합니다. 그런데 새는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날지 않습니까?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나는 신경 안 쓸 테니까. 뜻한 대로 하십시오.' 얘기를 듣고 한참 웃었다.

▲ 낙동강 상류 내성천 입구의 회룡포. ⓒ프레시안

 

 

"온몸으로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자"

얘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점심이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골재 채취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바닥에서 모래를 퍼 올리는 흉한 현장은 앞으로 3년간 낙동강, 영산강, 한강 등의 곳곳에서 보게 될 모습을 예고했다. 지율 스님은 강을 파괴하는 사업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확신하는 것일까?

세상일이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강을 파헤쳐서 이윤을 얻으려는 기업과, 권력으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정부가 한 몸이 된 상황에서 앞으로 훨씬 더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까지 멈추면 안 된다. 우리가 질문하기를 그친다면 세상은 더욱더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갈 것이다.

나는 낙동강을 따라서 걸으면서 온몸으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사 최악의 상황이 되어서 강을 파헤치는 이 사업이 온전하게 기업·정부의 뜻대로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본 파괴의 현장을 끊임없이 기록할 것이다. 그래서 훗날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가 어떤 힘에 의해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그 책임을 따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율 스님은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천성산, 낙동강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 덕분에 그의 사진은 전문가 뺨친다. 그가 혼자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며 등에 메는 가방 속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담겼다. 그는 사진기, 노트북으로 이미 낙동강 700리 사계절 풍경을 담아둔 상태다. 이제 그 풍경이 파괴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을 예정이다.

▲ 낙동강 상류 상주보 건설 현장. ⓒ프레시안
 

"힘들더라도 지역에 뿌리내린 운동만이 정답"

지율 스님과의 발길이 풍양면 삼강리를 지나 내성천에 이르렀다. 삼강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이다. 사실상 낙동강의 시작점이다. 이 중 내성천은 소백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다. 하천변을 따라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서 낙동강에 모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지율 스님은 낙동강 700리 전체 중 이곳 내성천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이날 두 번째로 이곳을 찾았다. 이미 아침에 한 번 다녀간 것이다. 그를 따라서 갈대를 헤치고 내성천 모래사장으로 들어섰다. 수달의 서식지이기도 한 모래톱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마치 처음 온 곳인양 사진기를 들이댔다.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내성천 지키기'에 몰두해볼 생각이다. 영주, 예천, 봉화 등 전국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된 곳의 주민이 개발주의·배금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생명·평화 운동에 나선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지율 스님은 이날 여러 차례에 거쳐서 '지역'을 강조했다. 2000년대 환경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의 자기반성은 준엄했다. 그가 지역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지난 수년간의 경험이 묻어 있다. 개발주의·배금주의가 낳은 욕망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지율 스님은 이명박 정부를 도깨비 보듯이 하는 일부의 시각에도 딴죽을 걸었다. 그는 최근 <녹색평론>(109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방식에 대해서 과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안의 욕망덩어리를 거울에 비춘 모습이 바로 이명박 정부라는 것.

지역에서 사람과 부대끼면서 서로 변하는 것만이 지율 스님이 길에서 찾은 유일한 해법이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서울 중심의 운동, 그러니까 중앙의 권력을 바꿔서 세상을 바꾸려는 기획은 이미 지난 10년간의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서 실패로 끝났다. 지역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중앙의 변화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힘들더라도, 더디더라도 지역에 뿌리를 내린 운동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의 성패도 이 지점에서 결정될 것이다.

▲ 해질 무렵의 내성천. ⓒ프레시안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여행은 계속된다"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숙소가 있는 안동시 풍천면 하회 마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차로 이동했다. 지율 스님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이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말을 한 탓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2006년 마지막 다섯 번째 단식을 중단하고 나서 제대로 된 요양 한 번 하지 않았다.

- 다섯 차례 단식으로 몸이 많이 상했다. 건강은 어떤가?

건강에 신경을 끊은 지 오래되었다. 절에서 나와서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부터, 그러니까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10년 가까이 돼 가지만 여전히 그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여행을 다니면서 건강을 어떻게 챙기나.

지율 스님의 얘기를 듣고 보니 지난 2006년 6월 그를 만나러 천성산을 찾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 때도 이날처럼 하루 종일 천성산을 같이 거닐며 인터뷰를 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 정도 되었을 때, 원효대사가 1000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강설한 화엄벌에 도착했다. 그는 마음을 정리할 때마다 이 화엄벌을 즐겨 찾았다.

잘 알다시피 원효대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가장 힘없는 사람과 부대끼면서 세상의 구원을 꾀했다. 지금 이 순간도 뚜벅뚜벅 낙동강을 따라 걷고 있을 지율 스님의 모습은 이런 원효대사의 것과 겹친다. 그의 말대로 과연 모기는 무쇠를 뚫을 수 있을까? 2010년, 그가 걷는 길에 좀 더 많은 사람이 같이 한다면 그런 기적은 현실이 되리라.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지금 나는 한 마리의 자벌레처럼 강가를 걷고 있을 뿐이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업이 공론화되고 재검토될 때까지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낙동 순례길 위에서', <녹색평론> 2009년 11~12월호(109호))

▲ 지금 이 순간도 뚜벅뚜벅 낙동강을 따라 걷고 있을 지율 스님의 모습은 원효대사와 닮았다. 그의 말대로 과연 모기는 무쇠를 뚫을 수 있을까? 2010년, 그가 걷는 길에 좀 더 많은 사람이 같이 한다면 그런 기적은 현실이 되리라. ⓒ프레시안

지율 스님의 '1박 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상주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제 시각에 상주터미널에 도착한다.

상주터미널에서 출발한 순례는 청룡사, 경천대, 삼강, 화룡포-내성천 등으로 이어진다. 이튿날은 낙동강 최상류를 걷다가 오후 3시에 끝난다. (☞
참가 신청 바로하기 / 문의 : 010-8969-5051(이국진), 019-299-0839(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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