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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제40호 1998년 5-6월호    

http://www.greenreview.co.kr/

 

 

레츠 - 상호부양의 교환체계

   길 세이팡 / 콜린 윌리엄스

 

 

  편집자의 말

  레츠시스템(LETS =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은 원래 1980년대 초 높은 실업률로 침체되어 있던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코목스라는 곳에서 마이클 린턴(Michael Linton)에 의해 시작된 지역교환체계로서 이미 그동안 녹색평론에서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 바 있다(통권 제27호 및 제30호). 레츠시스템은 지금 경제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기업식민주의의 가공할 압력밑에서 궁핍화와 착취를 강요당하는 풀뿌리 공동체들의 자기방어와 회생을 위한 주목할 만한 수단으로 세계 곳곳에서 ― 특히 만성적인 고실업률로 고통당하고 있는 지역 사회들에서 ― ‘들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지역통화운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의 아시아 경제위기의 문제에 관련하여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보더라도 이 위기는 본질적으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세계금융시장의 논리에 대한 맹목적 종속의 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IMF 구제금융으로 위급한 국가부도 사태는 넘겼다고는 하나 외채를 갚는 일의 고통은 고스란히 풀뿌리 민중에게로 전가되어 ― 그리하여 다시한번 공동체와 자연생태계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과 파괴를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라면, 풀뿌리 민중의 입장에서 이 위기를 정당하게 벗어나는 길의 하나는 달러가 지배하는 통화체제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단절을 결행하는 일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다시 종래의 낡은 경제성장 방식의 복구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자립적인 삶의 바탕을 확보하면서 비폭력주의의 원칙을 받아들여 소박한 생활패턴을 꾸려내는 노력이라고 할 때, 국제자본에 연결되지 않는 ‘지역통화’ 시스템이 어째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자명해진다. 임박한 미증유의 높은 실업사태에 직면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흔히 제시되는 처방들은 구태의연한 약육강식적 경쟁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현실적으로도 거의 실효성이 없는 실업자 대책이란 것을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호의 특집으로 본지가 또다시 소개하는 ‘지역통화운동’이 그 자체로 동아시아나 한국의 현실에서 바로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 한번 유심히 주목해봄으로써, 지금 우리를 깊게 짓누르고 있는 무력감과 방향상실의 분위기를 뚫고 인간다운 삶이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레츠시스템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서 다시한번 이것을 간단히 묘사하면, 이것은 국가나 은행이 발행한 돈(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주민들끼리 물품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연대에 기초한 자립적 생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 대 일의 관계로 교환하는 옛날의 바터시스템과는 달리, 지역공동체속에서 가입회원들 전체 사이에 교역이 이루어지는 체계이다. 회원들은 가입할 때 자기 앞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교환에 참여하게 되면, 회원들 사이의 거래관계를 일일이 보고받고 기록하는 사무소를 통해 전체 회원들 각자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나 물품에 관한 목록을 받게 되고, 각자의 계좌현황을 정기적으로 통보받게 된다. 지역통화체계라고 하지만 레츠에서는 실제로 돈은 사용되지 않고 다만 물품이나 서비스를 주고받은 내역이 기록될 뿐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는 사무소에서 발행한 목록(또는 신문)을 보고,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정해진 레츠 가격으로 거래를 성취한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 몫만큼 그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사람의 계좌에는 마이너스가 기록되고, 공급한 사람의 계좌에는 플러스가 기록된다. 이 때 무형의 통화를 마이클 린턴은 ‘녹색달러’라고 불렀지만, 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따라 지금까지 ‘조개껍질’ ‘도토리’ ‘돼지’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레츠시스템은 돈없이 사람이 생활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레츠시스템속에서는 현금이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작은 행동 ― 예를 들어, 아기나 환자를 돌본다든지 텃밭가꾸기를 대신한다든지 ― 을 함으로써(또는 약속함으로써), 그 대가로 그는 공동체내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서비스나 물건을 얻을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환시스템에 참여해온 사람들의 증언으로서 가장 주목할 것은 사람 누구에게나 잠재된 기술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현금 경제 밑에서 궁핍화를 강요당하고 소외되어왔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쓸모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공동체가 활기를 띠고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삶에 필요한 온갖 것들이 ― 심지어 가장 근원적인 사랑하고 돌보는 일까지 ― 슈퍼마켓에서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웃끼리의 상호의존적인 연대만으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레츠를 비롯한 지역통화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궁핍한 시대의 임시적 생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지역통화 문제에 관한 어떤 이론가의 말처럼, 이것은 어쩌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레츠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발상에서 출발하면서도, 무형의 통화체계가 갖는 복잡함 ― 예컨대, 사무소에 보고를 해야 한다든지하는 번거로움과 중앙통제에 필요한 경비와 인력문제 등등 ― 때문에 아예 지역의 화폐를 독자적으로 발행하여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미국 뉴욕주 이사카의 유명한 ‘이사카 아워’라는 지역통화운동이다.

 


  레츠는 풀뿌리공동체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 창시자 마이클 린턴이 최초의 레츠를 고안하였던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실업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쓸모있는 기술과 시간을 가지고 있고, 또 사람의 손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많이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돈이 부족한 탓에 그러한 자원이 쓸모없이 방치되고, 사람들은 일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상호 거래 ·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레츠를 창시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의 추산으로는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 적어도 1,000개의 레츠시스템이 운영중에 있고, 십만명 이상의 회원이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 그들은 다양한 이름 ― 캐나다와 뉴질랜드의 ‘녹색달러’, 영국의 ‘조개껍질’, ‘도토리’, ‘참나무’, ‘솔렌트’, 오스트레일리아의 ‘자패(紫貝)’, ‘에코’, ‘파도’, ‘새앙쥐’ 등 ― 밑에서 자신들의 지역통화로 활발한 거래활동을 하고 있다.

 

  레츠는 그와 비슷한 시스템인 ‘타임달러’나 ‘아워’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통화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나란히 쓰도록 의도된 것이다. 지역통화는 지역경제에 있어서의 자립을 촉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변덕스러운 국가적 경기불황과 외부세계에의 경제적 의존성에 대하여 지역경제를 보호한다. 지역통화는 또한 탐욕과 소비주의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일하는 데서 오는 공동체적 감각과 그것이 주는 기쁨을 강조함으로써 좀더 녹색화된 생활방식을 부추긴다. 사람들이 레츠에 참여함으로써 발견하는 우정과 상호부조의 관계는 화폐지향적인 상업주의 세계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후련한 해방감을 베풀어준다. 레츠는 스트레스로 꽉찬 인생행로로부터의 전환을 꾀하여, 좀더 큰 충만감과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

 

  마이클 린턴은 1985년에 ‘새로운 경제학’을 시도하는 사상가들의 국제적 모임인〈또하나의 경제정상모임(TOES)〉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그 모임에서 ‘레츠’라는 개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은 그 아이디어를 곧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열띤 의욕을 가지고 각자의 고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영국, 뉴질랜드 및 오스트레일리아로 레츠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레츠가 실제로 확립되기는 1990년대로 들어서서였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1992년에 다섯개의 레츠가 있었을 뿐이지만 1994년 말에는 275개로 늘었고, 현재는 350개가 넘는 레츠가 영국 전역에 걸쳐 점점이 분포되어 있다. 그와 비슷하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그 숫자가 1990년에 34개이던 것이 오늘날 200여개가 되었다.

 

  이러한 레츠시스템들을 설립한 개척자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공동체를 재건하고, 상호부양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며, 가난한 사람들과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는 비젼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이 시스템들이 지역경제를 강화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영국의 한 레츠시스템 창시자는 이렇게 문제를 요약하였다.

 

  내가 레츠시스템을 설립한 것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은 공동체적 기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은 사람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줍니다. 이 시스템으로 공동체가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 속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교환 · 거래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 예컨대 장애인들이 쉽게 교환 네트워크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레츠시스템은 또한 지역의 창발적인 노력들이 꽃피게 하고, 식품 수송거리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츠시스템은 더이상 본래의 아이디어만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시스템이 성장 · 확대됨에 따라 그 비젼도 진화하였고, 거기 따라 레츠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유형도 상당히 변화해왔다. 우리가 발견한 바에 의하면, 레츠는 초기에는 ‘녹색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보다 최근에 설립된 레츠 조직은 지역사회의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한 구성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모가 기성의 레츠 안에서도 조직의 성숙에 따라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서부 노포크 레츠 조직의 한 회원은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좀더 녹색적이고, 좀더 자비로운 생활스타일을 추구하는 중산계급적 이상으로부터 출발하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 다가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레츠를 ‘환경문제에 민감한 중산층’의 취미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풍자도 있었지만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먼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레츠 시스템의 압도적 구성원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레츠 조직 구성원들의 대략 3분의 1은 실업자들이며, 뉴질랜드의 경우는 레츠 회원 중 실업자의 비율이 40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레츠가 성장하면서 그 구성원의 기반을 넓혀감에 따라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레츠를 주목하기 시작하고 있다. 언론, 지방정부 그리고 심지어 정당들조차도 레츠를 심각하게 주목하고 있다. 하릴없이 놀고 있는 기술과 자원에 접근함으로써 곤경에 처한 지역공동체의 살림살이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되살려놓는 수단으로서의 레츠의 역할을 그들은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지방정부들은 그들의 경제발전계획과 지역사회발전 목표, 그리고 아젠다21 지역전략 같은 곳에 레츠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최근에 유럽연합의 한 위원회는 유럽 단일통화 문제를 논의하는 다른 한편에서, 프래드포드 시위원회에 시 전역에 걸쳐 통용될 수 있는 지역통화 ― 실제로 ‘레츠’라고 불리는 ― 를 개발하도록 5만5천파운드를 수여하였다. 간단히 말하여,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된 경제의 부정적 영향에 맞서서 공동체와 지역경제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레츠의 혜택을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의 차원에서 이것은 현실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의 레츠 조직의 현황에 대한 우리들의 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지난해에 운영중에 있던 350여개 레츠 조직들의 회원은 대략 3만명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교환 · 거래 활동은 연간 210만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관행 경제학자에게는 이것은 보잘것없는 숫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레츠를 통해 사람들이 획득하는 물품과 서비스가 진실로 삶을 고양시키는 것임을 발견하였다. 

 

  레츠가 성장 · 성숙해감에 따라 레츠의 목록표에 올라있는 물품과 서비스의 내역도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폭넓은 것이 되었고, 또 사람들이 꼭 필요한 서비스와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실질적으로 넓어졌다. 영국의 서부 요크셔에 있는 ‘칼더데일 레츠’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의 범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중 69퍼센트는 레츠를 통하여 가사 서비스를 ― 아기 돌보기, 청소, 정원 가꾸기에서 수도관 수리, 지붕일, 타일작업에 이르는 ― 얻었고, 43퍼센트는 물품을 ― 대개 식품과 헌옷 ― 마련하였고, 24퍼센트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더 공부하는 데 ― 자동차 보수, 페인팅 작업, 빵만들기, 음악 등등 ― 필요한 교습을 받았으며, 17퍼센트는 워드 프로세싱과 같은 사무일에 관계된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또 17퍼센트는 도구를(자작도구나 잔디 깎는 기계, 또는 컴퓨터) 빌려서 썼다. 이런 패턴은 우리들이 조사해본 세 나라 레츠 조직들에서도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나 있다.

 

  그 결과로, 레츠는 사람들이, 특히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레츠가 아니었더라면 접근할 수 없었던 물건과 서비스를 레츠를 통하여 어떻게 얻을 수 있었던가에 대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되풀이하여 들었다. 예를 들어, 칼더데일에서 어느 실업상태의 여성은 지난해에 실제로 피부로 느낄 만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레츠를 통하여 옷을 사입고, 자작도구를 빌려 썼고, 난로를 수리하고, 집에 페인트칠을 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실업상태의 남자는 레츠를 통하여 전기일과 건설일을 할 수 있었다. 두 경우에 모두 그들은 그러한 서비스에 필요한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레츠가 베풀어주는 혜택은 수행되는 일의 가치를 훨씬 넘어선다. 레츠는 또한 우리의 지역사회에 공동체 감각을 재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의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중 4분의 3이 레츠는 사회적 네트워크와 상호부양적 우정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특별한 모임에 선물을 보내거나 노인회원의 쇼핑을 돕거나 하는 일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종류의 부조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서비스는 보다 많은 것을 의미하고, “서로 나누고, 돌보는 정겨운 공동체를 창조한다.” 한 회원은 “레츠로 말미암아 나는 고립감을 더이상 느끼지 않습니다. 레츠는 언제나 내가 기댈 수 있는 그 무엇이지요” 라고 말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레츠는 기꺼이 서로 돕고자 하는 새로운 친구들의 서클을 열어주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레츠에 참가하고 있는 또다른 한 여성은 ― 그녀는 장애인 친척 한 사람을 돌보면서 저소득으로 살고 있는데 ― 너무나 분주하고 스트레스에 찬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그 여자에게 레츠를 통한 교환행위는 사람을 사귀는 큰 기회가 되었고, 그 결과로 그것은 그녀에게 몹시 필요한 긴장이완 요법을 베풀어준 셈이 되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정원에서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일하는 것이 공식적인 휴식시간보다 훨씬 더 좋더군요!” 하고 말하였다.

 

  이러한 여러 상황에서 레츠가 가져다주는 부양과 공동체 감각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회적 · 개인적 면이 레츠가 주는 혜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부 노포크 레츠의 회원인 한 부인의 말을 들어보자.

 

  레츠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쟁적 생활스타일에 대하여 대안이 됩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생활비용’ 문제에 온통 생각이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나는 좀더 나은, 좀더 충만감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다시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그밖의 다른 레츠 조직으로부터도 되풀이하여 들었다. 레츠로 인하여 사람들이 공동체나 지역적 삶에의 참여라는, 일찍이 잃어버렸던 개념을 되찾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레츠가 빈곤, 실업, 고립감 및 사회적 배제와 같은 오늘의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하여 선구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차원의 해결책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레츠가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기까지에는 장애물들도 있다.

 

  많은 레츠회원들이 (종종 유기농법으로 키운) 과일과 채소를 제공하려는 열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츠를 통하여 교환 · 거래되는 식품의 규모는 미미하다. 신선한 식품을 작고 불규칙한 양으로 거래해야 하는 불편은, 특히 중심적인 회합장소가 없는 경우에, 사는 사람에게나 파는 사람에게나 짜증나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분명한 해결책은 레츠조직이 가령 같은 뜻을 가진 유기농 조직들과 연계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지역 유기농들이 광범위한 규모로 지역통화를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유기농운동과 레츠운동을 공생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하나의 문제는 ― 특히 영국에서 ― 레츠에 대하여 중앙정부가 취하는 불분명하고 모순적인 태도이다. 세금문제에 관한 한 영국 국세청은 직업이 없는 사람들의 레츠관련 소득에 관해서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 ― 예컨대 실업자들 ― 은 레츠를 통해서 얻는 소득 때문에 사회보장 수혜대상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레츠에의 참여에 소극적일 수 있다. 자신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레츠를 가장 크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형벌에 가까운 고통을 주는 셈이다.

 

  뉴질랜드와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부는 좀더 협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레츠가 실업자들과 저소득자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공적으로 인정하였다. 1995년 호주의 사회보장법령은 레츠에 관련하여 얻은 소득을 사회보장 수혜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정하였고, 사회보장 담당관들은 지금 오히려 실업자들에게 레츠에 가입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사회보장 규칙이 이런 식으로 변한다면 레츠의 발전이 크게 촉진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실업자들이 생산적인 일에 참여하여, 국가에 계속 의존하기보다 자신들의 상황을 손수 개선하도록 부추길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우리의 연구결과는 레츠야말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공동체 재건의 도구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레츠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돕도록 힘을 주고, 지역공동체를 재건하며 놀고 있는 자원과 기술을 지역주민을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레츠가 초창기의 ‘녹색’ 프로젝트로부터 진화하여 이제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주류속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레츠는 우리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 ― 상호부양적 네트워크, 자조(自助), 그리고 창조적 해결을 위한 열정들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길 세이팡(Gill Seyfang) / 콜린 윌리엄스(Colin Williams) ― 영국의 리즈 메트로폴리탄 대학에 있는〈도시개발 및 환경관리센터〉의 연구원. 여기 소개하는 것은 영국 잡지 Kindred Spirit 1997년 가을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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