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10-05-26 오후 4:33:5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526100344§ion=05
"MB는 말만 요란…美, 안보리 초안 공동작성 결론 안 내려"
[인터뷰] 박선원 전 靑 비서관 "北 소행이라면 왜 '김정일' 명시 안 했나"
천안함이 침몰한지 정확히 2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은 천안함과 함께 46명의 수병을 수색하고 두 동강 난 함미와 함수를 인양하는 국면, 끌어올린 선체를 분석하고 조사하는 국면을 항해해 왔고 이제 조사결과 발표, 대북 대응 조치 발표를 지나 북한을 향한 대결 국면에 섰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천안함의 침몰 원인 규명에 대해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은 침묵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군에 대한 문책 인사는 생략된 채 남북간의 긴장은 높아만 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조치 발표' 이전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결정적인 물증인 가스터빈에 대한 조사도 생략하고 국회 천안함 특별위원회의 결론도 안 나온 상태에서 합조단만의 결론을 가지고 대북 조치를 내놓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미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은 "천안함 조사 결과는 재검증이 필요하고, 대응 조치는 군 통수권자답지 못하다"라고 비판한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까지 당하며 싸우고 있는 박선원 전 비서관에게 마치 한국의 9.11처럼 되어버린 5월 24일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해 물었다.
프레시안 : 천안함 침몰에 대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박선원 : 정부가 제시한 자료 내에서만 의문점을 말하겠다. 나는 그것을 검증하고 싶을 뿐이다. 외부의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먼저 24일 국회 천안함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바와 같이 천안함 침몰이 언제 어디서 발생했느냐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관련기사 : 이정희 "100m 물기둥 못 봤다?" vs 김태영 "물기둥 집착은 그 정도로")
▲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24일 공개한 천안함의 KNTDS 소멸 당시 좌표. 군이 발표한 천안함 침몰 좌표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져 있다. ⓒ 박영선 의원실 |
군은 초기에 사고 발생시점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었고 최종적으로 3월 26일 오후 9시 22분에 발생한 걸로 '낙착' 됐다. 그 이유는 지진파 때문이었다. 사고 당일 백령도 근해에서 포착한 리히터 규모 1.5의 지진파가 감지된 시간이 오후 9시 21분 58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영선 의원이 받은 KNTDS 좌표를 보면 천안함의 최종 운항 시간이 9시 25분이라고 나와 있다. 지진파가 감지된 시간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특위 관계자는 "(KNTDS에서) 천안함의 좌표가 9시 22분부터 25분까지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군은 지금까지 "배가 사라져도 위성과의 교신 문제 등에 의해서 실제로 3분 후까지도 배가 움직이는 것처럼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4일 특위에서는 이러한 '3분 지체' 현상이 없다면서 KNTDS 상에 실시간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천안함이 합조단 발표대로 22분에 침몰했다면 침수가 되면서 3분 동안 움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버블제트로 배가 두 동강이 났다면 배는 절대로 그렇게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KNTDS에 나온 이동 방향을 보면 배는 25분까지 북서쪽으로 1km 움직였다고 하는데 함수가 이동한 방향과 정반대다. KNTDS가 아무 것도 개입이 안 되는 기계적인 기록임을 고려해 보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이게 사실이라면 근본적으로 침몰 시간과 장소를 재확인하고 침몰 사건 전체를 재구성해봐야 할 중요한 변수다.
해군 좌표와 KNTDS 좌표를 연결하면 (배의 이동 방향은) 굉장히 얕은 바다로 이어진다. 정확한 항적 기록을 봐야 배가 어디로 향하던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24일 이 문제에 대해 "좌표가 틀렸으면 시정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말이 되나. 그냥 항적자료, 교신기록, TOD 영상, 생존자 진술 이거 네 개만 모두 공개하면 되는 일이다.
둘째, 어뢰가 비접촉 수중폭발을 일으켜 버블제트 현상이 발생해서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증거로 당시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물기둥이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은 말 그대로 그냥 시험해보는 거다.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 때 스스로 인정했듯 시뮬레이션은 "제한 시간 내 결과를 얻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배 전체에 대한 전문 모델링이 아니라 해석 영역을 축소해 데이터를 도입해 얻어낸 결과다. 사건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 사후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봤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증거는 물기둥이 나타났다는 네 가지 정황으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백령도 초병이 해상에서 높이 약 100m, 폭 20~30m의 하얀 섬광 기둥을 발견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런데 24일 특위에서 좀 더 자세히 나온 얘기는 이 백령도 초병이 '꽝'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100m 섬광 기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침몰 지점이 아무리 가까워도 백령도에서 2.5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리가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7.5초가 걸린다. 초병은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진 뒤 최소 7.5초 뒤에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것이다.
버블제트 현상과 '꽝'소리, 그리고 물기둥은 거의 찰나적으로 이뤄지고 합조단의 윤덕용 공동단장이 말했듯이 물기둥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에는 3초가 걸린다. 음속보다 빛의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을 고려할 때 초병이 눈을 돌렸을 때는 이미 물기둥이 사라지고 난 뒤다. 이건 (합조단이) 그저 새로운 걸 하나 갖다 붙이려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증거는 기각된다.
두 번째, 천안함 좌현 견시병이 폭발과 동시에 넘어진 상태에서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고 진술했다. 바다는 늘 물방울이 튀는 곳이고, 첫 번째 진술처럼 100m 짜리 물기둥이었다면 물방울이 아니라 물벼락을 맞았어야 정상이다. 이 증거도 기각된다.
세 번째, 생존자들이 천안함을 탈출할 때 좌현 외벽 부분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물이 고여서 발목이 빠졌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전혀 의미 없는 진술이다. 이미 좌현 외벽이 90도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물이 있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증거도 유효하지 않다.
네 번째는 폭약이 폭발해서 발생한 잔재들이 선체 전반적인 부분에서 발견됐다고 하는데, 그나마 설명이 되는 증거라면 이거 하나다. 이에 대해서는 흡착물 시료를 채취해 어뢰 프로펠러에 묻어있다는 흡착물과 같은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 ⓒ프레시안 |
이 외에도 궁금증은 여럿 있다. 먼저 프로펠러에 묻어있다는 흡착물이 왜 추진체에는 없나. 분명히 어뢰가 이동 방향으로 가면서 폭약이 터지면 버블이 응축될 때 추진체에도 묻었을 텐데, 배에도 묻을 정돈데 추진체에는 왜 안 묻었을까?
또 왜 다도해함, 무인잠수정 해미래호가 다 동원되었던 4월에는 겨우 3mm짜리 알루미늄 조각만 발견했다고 하더니 5월 15일이 되어서야 길이 2m에 무게 200kg는 될 정도로 큰 어뢰 추진체를 찾을 수 있었던 건가.
어떻게 어느 지점에서 인양작업을 했는지, 해미래호나 다도해함이 동원됐을 땐 왜 못 찾았던 건지, 쌍끌이 어선이 작업한 해역과 해군 함정들이 작업을 벌인 해역은 어떻게 다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해역이 같았다면 왜 해군은 못 찾았는지도 앞으로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김태영 국방장관이 "(좌표가) 틀렸으면 시정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아직 요구한 데이터도 안 내놓은 상황인데 발표를 했다. 뒤늦게 인양됐다고 밝혀진 가스터빈 확인도 아직 안 됐다. 가스터빈은 합조단의 발표대로라면 버블제트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부분 아닌가?
김태영 국방장관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게 20일 아침 9시에 결과 발표 내용을 보고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합조단 최종 발표 1시간 전에 보고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 대표가 그 연락을 받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18일 주한 외국 대사들에게 먼저 설명했다. 정 대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면서 김 장관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정 대표가 왜 이렇게 늦게 보고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김 장관이 "계속해서 자료를 만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답했다. 이럴 걸 보면 급조해서 발표를 했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선거가 없었더라면 과연 이렇게 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김태영 장관은 완벽한 증거가 나왔는데도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어서 곤혹스럽다고 했던데 의심점들이 나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통해 실제로 많이 제기되고, 제1야당 대표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곤혹스러울 게 없다.
프레시안 : 어쨌든 정부는 천안함 진상 규명 작업이 끝났다면서 북한에 대한 대응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박선원 :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는 '김정일'을 명시하지 않았다. 왜 김정일이 했다고 못하나? 적의 공격을 받았다면 우리 군 통수권자가 적의 군 통수권자에게 대놓고 경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그림'이 나오게 하려고 전쟁기념관에서 담화를 발표했다. 국내 지지자들을 향한 정치 캠페인,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당당하게 김정일이라고 하고, 당장 구축함을 현장에 배치했어야 했다. 그런 계획 하나 없이 발표 한 것 아닌가. "앞으로 북이 도발하면 즉각 대응하겠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통일·국방·외교부 장관들은 남북관계를 종결짓는 조치들을 내놨다. 그런데 남북관계라는 것은 적을 아프게 하는 만큼 우리도 아픈 게 분명히 있는데 그만큼 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
북한의 어뢰 공격이 확실하다면 개성공단은 과감하게 닫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이 전략적 요충지이자 남침로인 개성을 우리에게 내준 것은 북이 우리에게 일부 인질이 된 측면이 있고, 우리가 개성에 투자해서 국민을 보냈으니 우리가 부분적으로 인질이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서로 협력하고 잘 키워 낸다면 우리 미래를 만들어내는 장소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은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바로 개성에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걱정했다. 그래서 개성공단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만들어 놨다.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공격했다면, 우리가 휴전 상황임을 고려할 때 정규전 형태로 간 것 아닌가. 합조단 발표대로라면 연어급 잠수정만의 단독 행동이 모선까지 동원해 수일 걸리는 작전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왜 개성공단은 그대로 두는가?
나는 지난 4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나가 "북의 공격이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사적 대응을 위한 준비를 하려면 일단 조사를 하고, 작전계획을 다 세워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공격이라는 증거 찾았다고 발표하기 전까지는 사고로 보이도록 하면서 동시에 개성에 있는 우리 국민들을 다 데려와야 한다.
그 다음에 결정적인 증거를 찾으면 소리없이 군사적 보복을 신속하게 끝냈어야 한다. 그 전까지 북한에 의한 공격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적의 허를 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진정한 군 통수권자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 ⓒ프레시안 |
프레시안 : 정부의 대응 발표가 정치적 퍼포먼스에 가깝다면 미국은 왜 한국 발표에 지지를 표명했을까.
박선원 : 미국은 사건 발생 초기 '북한이 연루된 증거가 없다', '군사적 충돌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었다. 단지 실종자 구조 작업이 지연되고 46명 모두가 사망하면서 미국도 동맹국으로서의 심정적인 배려와 지원 의사를 밝혔을 뿐이었다.
그러던 미국의 입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때는 지난달 25일 합조단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비접촉 수중폭발'로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부터다. 미국은 물론 다수의 외국조사단원들도 그 결론에 대해선 동의한다고 했다. 내가 워싱턴에서 서울에 오기 전에 미국 관리한테 확인한 것이다.
비접촉 수중폭발이면 어뢰고 어뢰면 외부 공격인데, 따라서 동맹국인 미국은 4월 말부터 한미 연합 대응을 포함해 여러 가지 분야에서 협력 대상을 넓혀 갔다. 한미 협력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이 때부터다. 미국 관리를 만나서 들은 얘기다.
지난 5일 만난 미국 쪽 인사는 아직도 증거를 찾고는 있는데 확증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더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지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상 미국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으로 의심되는 어뢰 공격이라고 한다면 지방선거에서 보수층 결집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이후 또 다른 미국 측 관리를 19일에 다시 만났다. 그는 일단 자기들이 이번 조사에선 단순히 기술적 지원만 하고 있다면서 조사 결과 발표는 순전히 한국 정부만의 것이고, 합조단의 성격도 절대 다국적 국제 조사단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다만 자신들은 한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이것이 맞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역할, 그리고 한국 정부에 정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기술적인 지원이 정치적인 협력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도 내 눈에는 정치적 협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더니 그 쪽에서 '사실 합조단 발표 예정일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인 23일이었는데 그건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반대해서 20일이 된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한 걸 보면 한국 정부에 정치적 지원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말을 했다.
▲ ⓒ프레시안 |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 어디까지 협력할까. 한미동맹 차원의 협력, 한·미·일 간의 협력이 있겠고,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조치에 맞장구를 쳐 주는 것, 그리고 미국도 독자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천안함 문제를 한미 공동으로 결의안 초안을 작성해 유엔 안보리에 제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은 아직 안보리 결의안의 초안을 공동으로 작성하는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실 한 나라가 군사적인 공격을 받았다면 그 나라가 단독으로 초안을 작성하면 된다. 우리가 당한 피해, 범인을 북한으로 보는 이유 등을 초안으로 제출해 안보리에 회람시키면 나중에 정식으로 상정시켜 토론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이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꾸 국제협력을 언급하는 게 의아스럽다.
두 번째 남는 문제는 미국이 독자적인 제재로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느냐다. 그건 이미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미국의 입장이 나와 있다.
현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국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게 사리에도 맞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과 보호병력 파견,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조기 비준의 경우처럼 군사·경제적으로 미국이 추진코자 하는 바에 한국 정부가 협조적이었다. 그런 걸 보면 미국으로서도 충분히 '이명박 정부가 기특하다'고 느끼지 않겠나.
오바마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 걸어주고 백악관에서 성명 발표 해 주는 데에 무슨 돈이 드나. 또 일본에서 정권이 바뀌고 난 뒤 미일동맹이 삐걱거리고 있는데, 미국으로선 한미동맹이 일본을 다스리는 카드도 됐을 것이다. 후텐마 기지 오키나와 현내 이전이 천안함과 맞물려 간 것처럼.
프레시안 : 오바마 정권은 부시 정권만큼 북한에 적대적인 것 같다.
박선원 : 오바마는 처음부터 북한에 '쥐고 있는 주먹 풀어라, 악수하자'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을 코앞에 둔 2009년 1월 17일, 북한은 인민군 총참모부장 성명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대결태세를 운운했다. 그 성명이 나오자 곧 취임할 오바마를 겨냥한 메시지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건 거의 면전에 찬물과 소금을 뿌린 셈인데 처음부터 미국 입장으로서는 '이런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하겠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나.
이어 4월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장관, 스티븐 보즈워스 특별대표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5월에는 핵실험도 있다. 또 미국 여기자 두 명을 붙잡았다. 기자면 빨리 풀어줬어야지 그걸 억류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불러들이는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았나. 이런 과정에서 오바마 정권의 대북 혐오증이 심해졌다. 처음부터 신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때 미국 지도력이 받은 상처는 짐작할 만하다.
부시 정권이나 네오콘들은 원래부터 '북한=악'이라는 신념이 있었지만 오바마 정권은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북에 대한 어떤 압박적인 행위도 하기 전에 자신들의 선의가 완전히 뭉개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어떤 일을 경험해도 이 문제는 내 문제다, 나에 대한 모욕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북미간의 감정이 틀어졌고 가장 큰 문제가 된 것 같다. 지난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북, 원자바오 중국 총리 방북 등 북한을 바꾸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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