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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또 하나의 의혹 스크루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했다”/한겨레21

by 마리산인1324 2010. 7. 19.

<한겨레21> [2010.07.16 제819호]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749.html

 

 

 

또 하나의 의혹 스크루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했다”

[특집] 천안함 합조단에 참여한 노인식 교수, 재조사 필요성 제기…

실제와 정반대 결과 나온 시뮬레이션은 설계도도 없이 진행한 것으로 드러나

 

 

» 국회 천안함 진상규명 특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천안함 스크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속 스크루 변형 방향은 천안함 합조단 시뮬레이션 결과와는 정반대로 휘어 있다. 스크루의 상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힐 중요한 단서이지만 합조단은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천안함은 종교가 아니다. 천안함 침몰의 범인을 북한 어뢰로 지목한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발표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 발생 초기 이명박 대통령도 강조했듯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만이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다. 천안함은 과학이어야 한다. 그런데 합조단이 발표한 ‘결정적 증거’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제 ‘의혹’ 수준을 넘어섰다. 과학과 상식에 의해 부정당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묘하게 꼬인 스크루처럼 꼬리를 무는 의혹들

 

천안함 및 어뢰 흡착물질에 대한 과학적 문제 제기가 나오자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애초 발표 내용을 번복한 데 이어, 이번엔 괴상하게 묘하게 휘어진 천안함 스크루에 대한 신빙성 높은 의혹 제기가 나왔다.

 

천안함의 스크루는 뱃머리를 향해 오그라든 모양으로 휘어 있다. 합조단의 결론대로 천안함 왼쪽 아랫부분에서 북한 어뢰가 폭발했고 그 물리적 힘이 스크루에 가해졌다면 스크루는 배꼬리 쪽으로 휘어야 한다. 이에 대해 군은 함미가 가라앉으면서 바닥에 부딪혀 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6월7일 “날개 파손이나 표면에 긁힌 흔적이 없는 점으로 보아 좌초 등 충돌로 인한 변형은 아니며 고속으로 회전하는 스크루가 급격한 정지시 날개 면에 작용하는 회전 관성력에 의해 변형 발생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군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동일한 변형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6월27일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조 등 언론 3단체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를 대상으로 연 설명회에서 이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시연하기도 했다.

 

» 자료1. 스크루 실제 변형 시뮬레이션 결과와 비교하면 천안함 스크루 날개가 실제로는 관성력과 반대 방향으로 휘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 3단체 검증위 제공

그런데 언론 3단체 검증위는 문제의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수차례 돌려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스크루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갑자기 정지할 경우 관성력도 시계 방향으로 작용해 그 방향으로 휨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시뮬레이션에서는 관성력 방향, 그러니까 시계 방향으로 날개가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천안함 스크루 날개의 실제 변형 방향과 정반대다(자료1 참조). 검증위는 합조단에 해명을 요구했다. 결국 시뮬레이션을 진행해온 합조단의 한 민간위원은 “현재의 시뮬레이션으로 현 상태의 스크루 변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고 노종면 검증위 책임검증위원(전 YTN 노조위원장)은 밝혔다. 즉, “시뮬레이션 결과 동일한 변형이 발생했다”는 국방부의 설명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천안함의 진실이 한 꺼풀 또 벗겨졌다.

 

합조단 참여한 노인식 교수 ”스크루는 미스터리”

 

<한겨레21>의 취재 결과, 합조단의 스크루 조사가 수박 겉핥기식이었다는 정황이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선박 전문가로 합조단에 참여했던 노인식 충남대 교수(???학)는 7월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촉박해 스크루의 표면이나 날 끝의 흠집 부분은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날개 파손이나 표면에 긁힌 흔적이 없는 점으로 보아 좌초 등 충돌로 인한 변형은 아니다”라는 군의 설명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또 그는 스크루의 휨 현상에 대해 “미스터리”라며 “재조사가 이뤄진다면 과학적으로 입증해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결정적 증거’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부정당하는 상황이다.

 

=발표 당시에는 의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의심하다 보면 끝이 없다, 믿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합조단 조사와 발표에 한계가 있었다. 합조단이 내놓은 자료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분적인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전문가들도 풀기 힘든 세계 최초의 사례가 많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합조단에서 구조 전문가로서 스크루 변형 부분에 참여했다. 천안함 스크루의 휘어 있는 상태를 보면서 좌초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전체적인 변형 형상이 좌초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정황은 확실했기 때문에 스크루 표면이나 날 끝의 흠집 같은 것은 놓친 부분이 있다.

 

» 지난 5월31일 러시아 조사단이 김태영 국방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국방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

-전문가로서 스크루 휨 상태를 어떻게 보나.

 

=프로펠러가 왜 그렇게 휘었는지는 솔직히 미스터리다. 엔진이 멈추고 기어박스가 손상을 입는 과정에서 단순히 멈추는 힘만이 아니라, 뒤로 밀리는 힘과 다시 원상복귀하려는 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 천안함의 휨 상태를 정확히 재현하지는 못했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나 군이 중심이 된 합조단과는 다른 방식의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신 비용이 너무 크다. 사회적으로 불신이 쌓이면서 불필요하게 갈등하고 반목하는 과정에서 드는 소모적인 비용이 얼마나 큰가. 시간과 예산을 충분히 주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식의 재조사에는 동의한다. 각 분야의 대표선수들이 모여서 충분한 지원 속에 다시 한번 조사를 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내 경우엔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는 핵심 결론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프로펠러의 휨에 대한 의혹은 시간과 비용이 확보된다면 해결해보고 싶다.

 

-다시 조사가 이뤄진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나.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제대로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싶다. 내겐 숙제 같은 거다. 좌초설의 핵심이 스크루인 만큼 과학적으로 입증해 정리해봤으면 한다. 1번 어뢰의 실체나 폭발 물질에 대해서도 그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논의하면 될 것 아닌가.

 

스크루 전문가가 스크루의 표면이나 날 끝의 흠집 부분을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군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스크루 상태를 사실과 다르게 설명한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군은 그동안 “스크루 날개에 파손이나 국부적 손상, 표면에 긁힌 흔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으나, <한겨레21> 취재진이 직접 확인한 스크루는 날개 끝부분이 떨어져나간 것을 포함해 여러 형태의 손상이 있었다(자료2 참조).

 

» 자료2. 뒤늦게 밝혀진 스크루 날개의 손상들

러시아 조사단, ‘1번 의뢰’ 의혹 제기

 

합조단은 애초 스크루의 휨 현상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합조단에 참여했던 스웨덴 조사단은 스크루가 이런 식으로 변형된 유사한 사례가 없고 이해하기 힘든 변형이라며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고 제안했으나, 합조단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스웨덴 조사단이 제시한 비용은 5천달러 가량으로 알려졌다. 또 합조단은 천안함 스크루의 실제 설계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다. 군은 천안함과 ‘비슷한’ 스크루를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 제기가 더해졌다. 러시아 사정에 밝은 복수의 외교소식통은 “합조단 결과 발표 이후인 5월31일부터 6월7일까지 독자적인 조사단을 파견했던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의 스크루가 휘는 등 손상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으며 천안함이 함수와 함미로 분리되기 이전에 다른 원인으로 스크루가 먼저 훼손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북한 소행의 결정적 증거로 한국 정부가 제시한 ‘1번 어뢰’를 천안함 침몰의 범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보고서를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에 알렸다”며 “러시아 정부는 보고서에서 ‘1번 어뢰’의 페인트와 부식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어뢰가 물속에 있던 기간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보다는 암초나 뻘 등에 부딪쳐 좌초했을 가능성과 어뢰가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해 침몰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21>은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러시아 대사관을 수차례 접촉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외교적 파장 등을 고려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