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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준(인권의학연구소 연구팀장) |
‘무상급식 포퓰리즘’ ‘교육 포퓰리즘’ ‘세종시, 감세 포퓰리즘’ ‘사형집행 포퓰리즘’…. 정치권, 언론, 학계에서 ‘포퓰리즘’이 유행이다. 진보개혁 세력은 ‘우파 포퓰리즘’을, 보수 세력은 ‘좌파 포퓰리즘’을 내세워 상대의 주장‧정책을 ‘oo 포퓰리즘’이라는 단 한마디 말로 포장하고 있다. 시민대중 역시 ‘포퓰리즘’으로 모든 정치행위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대중적 용어가 되었다.
이러한 호칭의 배후에는 다음의 전제가 있다. ‘포퓰리즘’은 ‘건강한’(?) 민주 정치와 대비되는 것으로, 정치인의 인기 혹은 시민대중의 지지와 표를 얻기 위한 권모술수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것’,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요소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현실에서는 특정 정치세력을 민주주의와 무관한 세력으로 ‘낙인’찍는 매우 유효하게 사용되는 역설을 포함하고 있다. 그게 좌익이건 보수이건 진보이건 상관없다.
이렇게 포퓰리즘이 정치적 후진성을 표현한다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말의 등장은 있어서는 안 될 ‘사실’이어야 한다. 그런데,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 잡은 21세기 한국에서 갑자기 한국 정치를 특징짓는 용어로 포퓰리즘이 등장했다. 권모술수가 판칠 만큼 대중의 미성숙 때문인가? 아니면 대중의 미성숙을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선거전략 때문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인가?
정치는 갈등과 대립, 따라서 억압과 배제를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정치세력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유지하고, 확장하려고 한다. 특히 제도화된 민주주의에서 대표를 교체하는 선거 국면은 권력을 획득할 것인가, 아니면 상실할 것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포퓰리즘이 회자되는 이유는 자신의 적을 낙인찍음으로써 그 동안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의 지지를 유지하고 상대의 지지 세력을 뺏어오기 위해서라고도 볼 수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선거승리를 위해 ‘포퓰리즘’이라는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진지를 구축하려는 다분히 ‘정치적’ 담론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포퓰리즘을 이해하고 사용하게 되면 시민대중은 정치 외부에 있게 된다. 즉 정치 영역은 여전히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공간에 불과하고, 시민대중은 정치의 객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인, 전문가, 관료에 의해 ‘의식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반포퓰리즘 세력’에 의한 비민주주의적 행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포퓰리즘의 등장 그 근저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 ‘정치의 위기’, ‘대표의 위기’가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의 한 가지는 ‘인민주권’, 즉 권력은 주권자인 시민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행위를 넘어 시민대중의 요구가 정치과정에서 표출되고,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한 대표가 자신의 요구를 대표하고 실현하지 않을 때 시민대중은 선거를 통해서간 아니면 시위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건 저항하고, 반역하는 것, 결국 대표를 변경하려고 시도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들에게 이것보다 더 ‘공포’를 유발하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대중의 이러한 저항과 반역을 비합리적,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정치는 사라져야 할 것이고, 전문가의 공정성, 합리성에 근거한 관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선거권을 포함한 정치의 소멸.
이 지점에서 on Populist Reason(근간)을 쓴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재구성한다. 포퓰리즘은 바로 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때, 즉 시민대중의 요구를 지배체제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혹은 하지 않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도자(대표자)가 대중(대표되는 자)의 요구를 대표함으로써, 시민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듯이 시민대중을 현혹하는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시민대중의 ‘반역’을 출발점으로, 그들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고, 만들어지면서 정치영역을 새로운 ‘민주적 체제’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바로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이 회자되고 사용하는 것이야 말로 한편으로는 정치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소위 ‘대표하는 자’들의 위기감, 바로 주권자인 시민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때로는 할 의지도 없는 자신들의 행태를 상대에게 전가하는 ‘정치의 위기’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저항과 반역’, 민주주의 문제가 등장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상징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 ‘포퓰리즘’이 회자되는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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