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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100만 민란, 문성근이 간다 /한겨레21

by 마리산인1324 2010. 9. 5.

<한겨레21>  [2010.09.03 제826호]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8069.html

 

 

 

100만 민란, 문성근이 간다

2012년 민주·진보 정권을 목표로 ‘국민의 명령’ 홈페이지 열고
야권 단일정당 건설운동에 나선 시민 문성근

 

 

노변 카페에 비가 들이쳤다. 덩달아 바람 한 줄기, 흰 머리카락을 흔든다. 그도 머지않아 환갑이다. “야, 비, 참 좋게 내리네.” 허공을 향하던 시선에 다시 초점을 잡으며 말을 덧붙인다.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지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기지 말자는 거죠.”

 

문성근(58)은 2003년 4월 노사모를 탈퇴했다. 이듬해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그는 나서 발언하지 않았다. 영화 관련 인터뷰 때마다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물경 6년여 만에 정치·시민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어떤 이는 “마침내 돌아왔다” 할 것이고 다른 이는 “결국 떠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 참여는 민주공화국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그에겐 오고 감이 따로 없는 본디 자리다. 그는 언제나 배우였고 시민이었다. 당분간 배우의 대사를 미루고 시민의 발언에 더 힘주겠다는 결심이 새로 생겼을 뿐이다.

 

8월26일 밤 12시, 그는 새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www.powertothepeople.co.kr). 최초 가입 회원은 문성근.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 대문글과 함께 오른손을 치켜든 문성근의 사진이 큼지막하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8월25일 오후 경기 고양시 카페에서 문성근을 만났다. 여균동 영화감독,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가 동석했다.

 

» 문성근.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민란이라니, 무슨 말인가.

= 나는 지금 광장에 방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2012년에 민주·진보 정부를 세우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일종의 민란이자, 시민혁명을 하자는 대자보를 거리에 써붙이고 있다.

 

- ‘국민의 명령’ 홈페이지에 “제3지대에서 모두 만나 백지 상태에서 새 그림을 그리는 야권 단일정당을 건설하자”고 밝혔다. 왜 제3지대 야권 단일정당인가.

= 후보 단일화를 통해 6월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경남·강원·충청에서 당선됐다. 그런데 그건 지역 통합 정당을 추구했던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목숨값이다. 같은 방식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은가? 너 하나 양보하고, 나 하나 양보하는 방식의 조정이 (2012년 총선·대선 때) 정당 사이에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2011년 가을까지 한나라당과 조·중·동 연합으로 대표되는 극우 정파를 제외한 나머지 정치세력이 기존 정당의 틀을 벗고, 정당의 기득권을 벗고, 새로운 단일정당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 왜 2011년 가을인가.

= 2012년 대선은 그해 봄에 치를 총선에서 결판난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 다수당 대선후보가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나를 찍어달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총선 전에 한나라당과 맞붙을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 정치권도 비슷한 논의를 하고 있다.

= 그들의 협상을 기다려서는 해결책이 없다. 1987년 양김(김대중·김영삼) 분열 때 어땠나. 국민은 “제발 합쳐주세요” 하며 정당과 정치인만 쳐다봤지만 시쳇말로 개떡이 됐다. 이후 20여 년 동안 그 고통을 치르고 있다. 과거에는 김대중·노무현 등 주요 정치인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이미 인물 중심의 시대가 지났다. 현재 구도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대 다수인데, 아무도 정당의 테두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 틀을 만들 테니 합류하라는 것이다. 정치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나서 강제해야 한다.

 

- 어떻게 강제하나.

= 당원에 기초한 민주주의 정당이 새로 만들어지면 그 정당에 가입하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일종의 ‘서약 당원’을 모으겠다. 100만 명까지 모을 계획이다.

 

- 어떻게 100만 명을 모으나.

= 홈페이지를 통해 원하는 사람 누구나 가입하도록 하겠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거리에 나가 제안서를 돌리겠다. 정당인도 환영한다. 그들이야말로 적극적 시민이다. 1만 명이 모이면 새 정당의 공개적 발기대회를 열겠다. 이들이 활발하게 논의하면서 기존 정당과 정치인을 압박하는 방법을 내놓을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당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계속 연다든지.

 

- 유력 정치인들도 참여할 수 있나.

= 야권의 주요 정당인에게 제안서를 보냈다. 적극 참여하겠다는 분도 있다.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이라면, 진정한 민주주의 정당을 만들 생각조차 없이 무엇을 이룰 수 있겠나.

 

곁에 있던 여균동 감독은 “우리는 지금 홈페이지 하나 달랑 들고 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1만 명의 문성근을 원한다. 그리 되면 혁명적 상황이 될 테고, 이후 역동적 과정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여 감독은 말했다.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때, 노사모 회원 7천여 명이 70만 명의 선거인단을 모았다. 대선 직후엔 노사모 회원만 최고 9만여 명까지 늘었다. 1만 명을 먼저 모으고, 이를 발판으로 100만 명까지 넓히겠다는 발상에는 이런 ‘숫자의 역사’가 있다.

 

- 과거 노사모 탄생이 연상된다.

= 목표의식이 뚜렷한 조직된 시민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노사모를 통해 경험했다. 소중한 운동 경험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겠다. 그러나 이번 운동은 노사모의 연장이 아니고, 노사모와 차원도 다르다. 노사모는 노무현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젠 ‘상징 인물’이 없다. 지금 나는 ‘국민이 명령하는’ 국민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 결과적으론 노사모가 다시 집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까.

= 지난 10년을 보면 내가 노사모로 보이겠지만, 지난 35년을 보면 나는 친DJ다. 애당초 나는 그런 분류에 관심이 없다. 대의민주주의는 시민 다수의 뜻을 대의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민의 뜻에 따르는 진정한 민주정당을 함께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친노’적 발상이라 비판한다면, 친노가 아닌 사람은 민주정당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노사모냐 아니냐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정당을 만들 것이냐 아니냐, 2012년 총선·대선에서 어떻게 이길 것이냐가 논의의 초점이다.

 

그가 내놓은 제안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을 겪으며 시간이 갈수록 ‘민주정부 10년’이 더욱 안타까워집니다. 아무리 IMF의 강요였다지만, 노동유연성을 왜 좀더 강하게 막아내지 못했을까? 복지 예산을 왜 좀더 과감하게 확충하지 못했을까? 한-미 FTA는 왜 그리 서둘렀을까?” 참여정부에 대한 성찰의 대목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물음이 충분치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은 이런 시도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겠다.

= 농담을 하자면, 진보정당은 유권자를 고문하는 것 같다. 선거 때마다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다 결국 후보는 민주당, 정당투표는 진보정당을 찍게 된다. 이게 과연 한국 사회를 진보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나. 진보정당이 의미 있는 역할을 했던 것은 존중한다. 그러나 지금 상태라면 왼쪽에 5명이 웅크리고 앉아 나머지 95명에게 “너희들 모두 보수야”라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정책이 채택돼 집행되는 성과를 누리려면 소수의 독자정당으로 계속 남을지, 야권 단일정당에 이은 집권당의 정파가 될지 선택해야 하지 않겠나.

 

- 2004년 어느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재 열린우리당엔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정치 개혁이라는 대의로 뭉친 다음에는 이념 성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분리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른가.

= 그건 기자의 질문을 빼고, 답변만 추려 적어서 생긴 오해다. 여러 정파가 열린우리당 안에 있지만, 한나라당과 맞서는 양당 구조로 가야 진보정치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을 채택한다면 그 이후에야 발전적 분화가 가능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지금은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 때다.

 

- 정강·정책을 어찌하자는 내용은 제안서에 많지 않다.

= 그걸 세밀하게 밝히는 것은 ‘다름’을 찾자는 것이다. (단일정당의) 큰 방향을 잡고, 세부 내용은 그 안에서 논의하자. 함께 못할 이유를 들자면 수만 가지일 수 있다. 모여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고 명백하다. 자유·정의·복지·생태·평화 등 큰 흐름은 이미 합의가 끝난 것 아닌가.

 

동석한 김두수 상임이사는 “당연히 정당은 정책에 기반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봉기형 운동’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2012년은 김대중·노무현을 넘어서는 한국 사회 변동의 큰 변화가 시작되는 때인데, 함께 모여 그런 시대 과제를 인식하면서 정강·정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운동의 논의에 참여한 이는 50명 정도다. 최민희 전 민언련 대표 등이 제안서에 연서명했지만, ‘명망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정책 전문가도 아직은 많지 않다.

 

»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홈페이지 초기 화면. 정식 개설 12시간 만에 2천여 명이 ‘서약 당원’으로 가입했다.

- 이런 구상을 언제부터 했나.

=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야권 단일후보’ 지원 운동을 했다. 그 개표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 최초 발상은 내가 했고, 지난 두 달여 동안 주변에 의견을 여쭈었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커졌다.

 

- 2004년 이후 정치에 엮이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은데, 왜 다시….

= (노무현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2001년에 이미 “선거 끝나면 본업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대의민주주의는 시민 참여가 핵심이다. 그런 참여를 했다는 이유로 내 직업에 치명적 상처가 생기면, “거봐, 시민 참여하면 망하지”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나. 배우로서 죽지 않으려고 그동안 발버둥을 쳤다.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많은 걸 생각했다. 그 양반은 몸을 던졌는데, 나는 왜 이렇게 배우만 하려고 애쓰지? 배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족쇄가 돼 있었던 거다. 그걸 털어내기로 했다.

 

- 앞으로 배우 일은 어찌하나.

= 배우는 원래 남이 날 선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웃음) 이미 출연 약속이 된 영화가 2편 있다. 그 촬영만 하고 당분간은 다른 일을 더 하지 않겠다. 이 일에만 집중할 것이다.

 

- 드라마도 안 찍을 건가.

= 드라마 하자는 사람은 아예 없는데? (웃음)

 

그는 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1987년, 재야단체인 민통련 의장이었던 문익환 목사가 양김 분열을 막지 못한 일이 “인생을 통틀어 별로 비판받을 일 없는 그분의 삶에서 유일한 예외”라고 말했다. “아들인 내가 그 일을 참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고 그는 말했다. 문성근은 2012년의 무게를 1987년의 그것과 비슷하게 여기는 듯했다. “이 시대에 사람이 행동한다는 일은 필경 정치에까지 얽히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가장 아름답고 뜨거운 순간 - 혁명은 예술가의 마음을 잡아 끈다”고 최인훈은 소설 <회색인>에 썼다. 2012년 민란의 꿈은 문성근을 다시 잡아 광장으로 끌어냈다.

 

 

※ 본래 기사에 있던 “소설가 고종석 … 등이 제안서에 연서명” 했다는 내용은 동명이인인 시민 고종석씨를 기자의 착오로 잘못 적은 것입니다. 소설가 고종석씨는 이번 논의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당사자와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