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8월 22일 마리선녀 씀 -
안 줄 때와 못 줄 때
살아가면서 가끔 이웃과 나누며 살 때가 있다.
천성으로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은, 있으나 없으나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 빌려서도 나눔을 행하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이는 미담이 되고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나눔을 말 할 때 흔히 어려운 가운데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이라고 한다. 이 의견에 있어 나는 그 어려움의 정도가 아주 중요하다. 즉 이만큼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나눔이란, 있고 없음을 떠나 마음의 문제에서 그 정의를 찾아야하지 않을까.
이러한 일들을 일상에서 평범하게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한 삶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서는 안 된다. 자기의 삶에 충실하여 이웃과 나누지 않는 삶이라 할지라도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상을 계기로 나눔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다.
나눔의 모양새는 여러가지가 있다.
물질의 나눔과 정신의 나눔, 그외 다양한 형태의 나눔이 세상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는데 우리는 간혹 물질의 나눔을 나눔의 전부로 또는 최 상위로 생각할 때가 많다. 사회적 다수의 분위기가 그러하다. 언제나 성금을 많이 내는 분들이 사회 전반에서 목소리를 높이는게 사실이고 보면 나눔에도 자본주의적 서열이 적용되고 있는가보다. 그러나 나눔에 있어서는 몸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등등의 보이지 않는 나눔이 훨씬많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또한 나눔은 연속적이어야 한다.
전 생애를 시간대에 놓고 길게 천천히 실천하는 것이 좋다. 한번하고 끝내는 일회성보다 긴 시간 조금씩 무리하지 않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더 많이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오랜 교류를 통해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나눔 이전에 사랑을 먼저 느끼는 호흡 긴 실천이 될 것 같다.
나눔의 대상은 폭넓어야 한다.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혈연주의적 나눔은 지극히 소극적이며 나눔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가족을 넘어, 관계가 없는 그 어떤 대상에 대하여도 측은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나눔은 자기 희생을 얼마간 전제하게 되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주노동자 등 장애 및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들 수 있다. 가까운 곳 부터 조건없이 대상을 선택하는 인간애적 나눔이어야 한다. 이러한 나눔은 태도가 일관성이 있고, 실천의 기준이 상황에 따라 이중적이지 않다. 또한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이 않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경외감을 시작으로 깊은 자기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나눔을 실천할 때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지 않고 즉흥적 감정에 충실하여 무리하게 되면 삶에 부담을 느껴 결국 나눔의 원래 목적을 이탈하게 되며 지속적일 수도 없게 된다. 즉 명분이나 관계 또는 체면이나 도리에 지나치게 치중할 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 스스로는 물론 주변에 까지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상황과 처지에 맞은 나눔은 실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끝으로 나눔에 있어 '안 주는 것'과 '못 주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안 주는 것'은 차고 넘치는데 나누지 않는 것을 욕심쟁이라고 하며 이 때 '안 준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못 줄 때'는 나눌것이 없어 나누지 못하는 것. 즉 나누고는 싶지만 나눌게 없을 때 '못 준다' 라고 표현한다.
이는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자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이 역시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므로 굳이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생각한 바가 이뤄지면 나눔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로 간혹 현실에 맞지 않게 없으면서 있는 척, 무리하게 나누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객기를 부리는 것이고 일시적 자기 만족을 위한 허세에 불과하며 결국 지속적이지도 못 할 뿐만 아니라 남는 것은 자기 파멸 뿐이다.
나눔은 자기 만족이 우선이긴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주는 입장보다 받는 입장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는 이도 주는 이에 대해 부담스럽지 않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거니와 주는 이 또한 나누면서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눔에 있어서 '있고 없음' 역시 진행형이고 보면 '지금' '없음'이 영원히 '없음'이 아니고, '지금' '있음'이 영원히 '있음' 또한 아님에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나눔의 진정한 기쁨을 알고만 있다면 스스로에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한 시기에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현명한 나눔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 주는 것'과 '못 주는 것'에 대한 차이를 생각하면서 우선은 스스로에 대하여 좀 더 너그러워야 할 것 같다. 내면의 알참이 자연스럽게 나눔의 실천으로 발전되지 않겠는가. 삶이 자유로울 때만이 모든 것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