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11.4 마리선녀 씀 -
<경주에 있는 설천정을 다녀와서>
여행 하던 중 유독히 기억에 남았던 곳이라 그 느낌을 적었놨던 것이 있어 올려봅니다.
설천정
설천정의 자태는
옛 여인의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은장도 같습니다.
울창하다 싶은 대 숲을 가로질러 오솔길을 헤집고 내려간 곳,
그곳에 빚바랜 정자 하나 쓸쓸히 있습니다.
마당 하나가득 품에 안은 듯
알 수 없는 도도함이 속으로부터 흐르고
단아하고 은은한 외형은 사대부집 아낙 같습니다.
스스로 자연이 되어
세상 한편의 아귀다툼에도 아량 곳 하지 않고
산사의 스님처럼 여유로히 미소만 짓습니다.
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시간이 삼켜버린 세월의 흔적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쉬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오래된 우리의 것에서 알게 됩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서러운 속엣 말도
설천정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예술이 되었습니다.
가끔 풀섶 헤집고 찾아온 낯선이들의 숨겨진 담욕까지 드러내고마는
깨끗한 청수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