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1월 29일 마리선녀 씀 -
[뉴스분석] 노대통령 “임기 못마치는…” 발언에 담긴 세 시나리오
[한겨레] 노무현 대통령의 28일 당적 포기와 대통령 임기 관련 발언은 열린우리당엔 ‘탈당 카드’를, 한나라당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경고장을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탈당은 여야의 경계선을 허물고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를 부르는 것은 물론, 여권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대통령직 하야는 조기 대통령 선거와 연결된다. 노 대통령은 어떤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탈당하면 언제할까?=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탈당할 뜻을 내비쳤다. 그때마다 열린우리당에선 간곡히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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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대놓고 말은 못해도 탈당을 은근히 바라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란 분위기가 더 많다. 노 대통령이 먼저 탈당카드를 꺼내든 것은 여당의 이런 분위기를 읽고 압박에 밀려 쫓겨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의 당적 포기 발언은 단순한 ‘엄포용’이 아니라는 게 여당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당적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탈당해도 더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당을 결행할 의지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탈당 시기에 대해 청와대 쪽은 “당에서 빠져달라고 하면 언제든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당이 집단적 의사표시를 해 온다면 정기국회 중이라도 탈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정기국회 이후 탈당’을 내다보는 이가 많다. 예산안과 산적한 법안 처리를 앞둔 정기국회 도중에 대통령과 여당이 갈라서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렸다. 우윤근 의원은 “(정계개편이 본격화하는) 내년 1~2월께 대통령이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노 대통령은 탈당 이후 정치권에 초당적 국정 운영을 약속하며 협조를 요청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의 직접 대화를 강화하는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큰 화두를 붙들고 당을 초월해 국민을 상대로 일하다 임기를 마무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냉담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이 여당 당적을 유지하는 게 한나라당으로선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기 못 채우면? =노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상황을 거론한 것은 과거 ‘임기 단축’이나 ‘재신임’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 대통령직을 걸고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날 발언을 곧바로 대통령 임기 중단과 하야로 연결하는 건 비약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임기와 관련된 추가발언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노 직계’의 한 의원은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일대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도 “대통령이 단계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나갈 것”이라며 “대통령직 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정치권에 구체적인 시한과 요구사항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가 우정개혁이라는 단일한 이슈를 내세워 전선을 만들고 총선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분명한 전선을 형성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관련 발언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압박이 될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다. 헌법상 대통령 궐위 때엔 60일 이내에 후임자 선거를 하도록 돼있다. 잔여 임기만을 채우는 보궐선거가 아니라 임기 5년의 정상적 대선이다. 즉, 노 대통령이 사퇴를 선언하는 순간부터 60일 이내에 17대 대통령선거를 앞당겨 치러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는 셈이다.
‘중도 사퇴’ 시나리오가 ‘실제 상황’이 된다면 한나라당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대선을 앞당겨 치르려면 30일 안팎의 짧은 기간에 대선 후보를 확정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선 이게 제대로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다.
이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분석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극심한 레임덕(권력 누수)에 시달리고 있다. 15% 안팎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로 국민을 상대로 승부수를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재신임’ ‘대연정’ ‘임기 단축’ 등 대통령의 반복된 거취 관련 발언에 국민과 정치권이 이미 면역력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 대협상 타결?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대통령과 정치권이 일정한 지점에서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여당을 탈당한 상태에서 초당적 국정 운영을 약속하고, 여야가 국회 주요 법안 등 국정 현안에 협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은 국정을 원활히 운영할 수 있게 되고, 열린우리당은 새출발을 모색할 수 있다.
한나라당 또한 ‘발목잡기 정당’의 이미지를 씻고 수권정당의 면모를 과시하게 된다. 앞으로 전개될 국면은 결국 국민여론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호소가 국민적 설득력을 얻게 되면 정치권도 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솟구칠 경우, 레임덕을 가속화하면서 실제로 노 대통령의 거취에 이상 기류가 생기는 중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노대통령 발언 전문]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한마디 할까요”라고 말문을 열며 최근 정치 상황에 대한 심경을 솔직하게 밝혔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발언 전문이다.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입니다. 부당한 횡포죠.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습니다. 굴복한 거죠. 현실적으로 상황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대통령이 굴복했습니다. 이제 대통령 인사권에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렵더라도 해야겠죠.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가지뿐입니다.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으로 포기하는 네번째 대통령이 될 겁니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도록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임기 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 저런 타협과 굴복을 필요하면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상황에 너무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정기국회의 예산안과 법안 등이 걱정입니다. 걱정인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의안과 법안이 있을 수 있고, 개별적인 노력에 의해 극복해 갈 수 있는 그런 사안도 있을 것입니다. 정치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법안들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역량을 총동원해 최선을 다해 정기국회에서 좋은 마무리를 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노 대통령 발언 주요 요지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마디 할까요”라고 운을 떼며 머리 발언을 시작했다.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대통령은 당적 포기와 하야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폭탄성’ 발언을 쏟아냈다. 다음은 노 대통령 발언의 주요 내용이다.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입니다.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상황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대통령이 굴복했습니다. 이제 대통령 인사권에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 가지 뿐입니다.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으로 포기하는 네번째 대통령이 될 겁니다.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임기 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면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국무회의가 끝난 뒤 노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에게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하면서 언론의 문제 등을 거론했다. ) 언론도 사안에 대한 법적인 평가나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은 묻어두고, 편을 가르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데 급급한 상황이었으니 여론의 판단을 기다릴 수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논리적인 정치판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전효숙 헌재소장 지명자에게 인격적 수모를 계속 견디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후에라도 헌법질서가 정쟁에 휘말려 훼손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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