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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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구적 근대성 모델을 모색하는 두 목소리의 反響 | |||||||||
[이택광의 세계사상지도 읽기] <6>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사유방식의 출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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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언제나 서양사상은 ‘첨단의 노래’였다. 김수영이「서시」에서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이라고 썼을 때부터, 서양사상의 수입에 대한 반성은 진지하게 제기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론은 보편적인 것이고, 근대적 세계관을 특징화하는 과학적 사유는 동서양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편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실천의 구체성이고, 들뢰즈의 말처럼, ‘영토’라는 터전이다.
하이데거가 서양철학을 일러 ‘백인 남성의 것’이라고 지칭했을 때, 인류사를 형성해온 사상의 지평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논리에 근거해서, 바타이유처럼, 동양은 자신의 내적 경험을 기술할 수 있는 현대적 언어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말하더라도, 이런 발언에서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른 ‘내재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구도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결국 서양사상의 언어가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서 동양이라는 ‘타자’를 설득시키지 않는 한, 서양사상은 ‘전 지구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동양과 서양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체제적 양분에 따른 역사적 경험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여줬고, 이 와중에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서양사상을 떠받치고 있는 가치체계와 다른 가치들에 대한 관심들이 중요한 인문학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하겠다. 얼마 전에 타개한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7.16~2009.6.18)의 작업들은 자본주의의 소내로서 중국의 사회주의를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다른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서양의 타자’에서 발견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사의 ‘전 지구화’에 대한 도전 『트랜스크리틱』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세계사상의 지도에 보탠 가라타니 고진의 행보는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기점들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한때 한국 사상계에서 감춰진 기원이었던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와 연계해서 마르크스를 읽어내는 독특한 시각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 읽기는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내에서 붐을 이뤘던 탈근대이론의 수입에 상당히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마르크스와 칸트를 일본의 문맥에 맞춰서 새롭게 읽는 작업을 수행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아시아 나라들을 무시하고 사죄에 응하는 정치가를 규탄하는 신문일수록 부모의 책임을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애당초 이 사람들에게 ‘책임’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이 물음에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로 복귀한다. 선악의 기준을 부여할 사회가 부재할 때, 아니 설령 사회가 있더라도, 그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의 기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어떻게 윤리가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도덕성을 ‘자유’로 간주한’ 칸트이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도덕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부의 도덕이 곧 외부의 자유를 보증해주는 것이 될 수 있는 경우를 가라타니 고진은 비서구의 근대화에 필요한 윤리라고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론 생산에 실패한 한국, 대안은 1990년대 이후 왕후이는 신좌파의 대표주자로서 중국 내에서 끊임없이 근대성과 관련한 문제제기를 해온 것으로 명성을 쌓았다. 중국 지식계에서 그의 존재는 이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데, 얼마 전에 그동안 집필한 글들을 모아서 『혁명의 종언: 중국과 근대성의 한계』라는 책을 영국의 버소에서 영문판으로 출간함으로써 서구사상사에 대한 개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물론 그의 주저는 중국에서 나온 『중국근대사상의 기원』이고, 이 작업에서 왕후이는 유럽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자본주의에 가장 근접한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자본주의적 근대를 달성하지 못한 원인에 대한 서구학자들의 의문점들을 해소시킬 야심찬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이다.
이택광 /경희대·영미문화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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