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술번역서 리스트 맨 앞에 놓인 이름은 누구의 것일까. 슬라보예 지젝이다. 지젝 열풍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번역계에는 확실히 그가 ‘잘 팔리는’ 아이콘이다. 문제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평가받는 지젝, 과연 그가 지식사회에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젝을 읽는 데는 이런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하나의 유령이 우리의 인문학 동네를 떠돌고 있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무관심에서부터 이웃집 닭한테 잡아먹힐 걱정을 하는 남자에 관한 조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절대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그 유령의 이름이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 ‘괴물’ 철학자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통해서 영어권 지식사회에 등장했을 때,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문제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되리라고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일원으로 지젝을 처음 소개하면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조차도 “포스트 마르크시즘적 시대에 사회 민주주의적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가 되리라고 데뷔작의 의의를 한정했었다. 하지만 지젝은 이듬해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열정적인 ‘이론투쟁’을 개시한다. 그 결과 영어로는 이미 60권에 육박하는 단행본을 출간했고,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만 해도 30종이 넘는다. 가히 ‘지젝 현상’이라고도 할 만한 이러한 현황의 이면에는 그의 부지런한 다산성 못지않게 그의 이론적 사유에 대한 지식사회의 수요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MTV 철학자’라는 일부의 비아냥거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론-실천 잇는 지적 다산성과 사유의 매력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 대한 이러한 열광을 낳는 것일까. 개인적으론 그를 통해서 비로소 헤겔의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에 대해 진지한 흥미를 갖게 됐다는 걸로 이유를 대신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부터 지젝이 목표로 한 바이기도 하다. 그는 이데올로기 이론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 외에 라캉 정신분석의 기본개념에 대한 개설을 제공하는 것과 ‘헤겔로의 회귀’를 목표로 내세웠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헤겔을 구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라캉을 경유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라캉적 독법과 헤겔의 유산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민주주의는 모든 가능한 체제들 중에서 최악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도 그보다 낫진 않다는 것이다”라는 처칠의 주장을 반복하던 초기의 입장은 곧 철회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색은 그가 줄곧 견지하고 있는 과제다.
흔히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지젝의 사유에는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작업에 대해서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분열돼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가해진다.
하지만 라캉을 따라서 ‘메타언어’는 없다고 주장하며 고상한 담론과 범속한 담론의 이분법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지젝은 그러한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의 헤겔 독법에 유보할 지점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헤겔에 대한 새로운 독해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라고 응수한다. 굳이 그러한 철학적 기여가 아니더라도 지난 20년간 현 세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슈에 대해 지속적인 철학적 성찰과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철학자가 지젝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분명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가 아닌가!
대체 지젝은 어떤 사유와 이론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인가. 철학적 이슈와 정치적 쟁점을 종횡무진하는 지젝의 행보와 재담을 모두 따라가는 건 지젝의 애독자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주저를 몇 권 꼽아놓은 적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외에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그리고 『시차적 관점』까지 네 권의 책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차적 관점』은 “철학이란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란 그의 주장에 충실한 책으로 지젝의 이론적 사유를 따라가거나 그와 대결하기 위해서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지젝이 말하는 ‘시차’란 과학용어로 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위치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각각 한쪽씩 가리고 보았을 때 나타나는 약간의 차이가 시차다. 서로 다른 시각(관점)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시차라고 하면, 이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양자물리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신경생물학에서 의식현상과 회백질 더미, 철학에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 정신분석학에서 욕망과 충동 사이의 간극, 그리고 성적 삽입의 대상이면서 출산의 기관이기도 한 질(바기나)의 시차 등등. 지젝은 이러한 두 층위 사이에 어떠한 공통 언어나 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증법적으로 매개·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시차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철학과 과학,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양식에 나타는 시차적 간극에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시차적 관점’이라는 아이디어는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에서 얻어오는데, 이미 『이라크』(2004)에서도 ‘시차’란 개념을 사용해 이라크전쟁의 ‘진리’를 설명한 바 있다. 곧 “민주주의는 인류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는 부시의 말이 집약해주고 있는 대로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이 이 전쟁의 첫 번째 이유이고(상상계),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주장하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라면(상징계),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세 번째 이유(실재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어느 하나가 나머지의 ‘진리’라는 게 아니라, ‘진리’란 관점의 이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말하자면 시차적 관점에서의 진리다.
이러한 시차적 관점의 도입을 통해서 지젝은 궁극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건하고자 한다. 그가 보기에 시차란 개념은 변증법적 사유의 장애물이 아니라 그 전복적인 핵심을 간파하도록 해주는 열쇠다. 이 열쇠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가령 ‘저항’의 교착상태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젝은 알랭 바디우를 따라서 시스템이 더욱 부드럽게 작동하게끔 만들어주는 국지적 행동에 참여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진정한 위협은 수동성이 아니라 유사-행동이며, ‘능동적’이고 ‘참여적’이 되려는 이 충동은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視差’ 개념 통해 변증법적 유물론 재건 시도
예컨대, 사람들은 언제나 개입해 ‘뭔가’를 하고, 학자들은 무의미한 ‘논쟁’에 참여한다. 가령 자유주의적 좌파 또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도 혁명을 말하지만, 그들은 혁명을 위해 치러야 할 실제적 대가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자신의 학술적 특권이 전혀 위협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거나 급진적인 담론을 쏟아내는 데 열중하는 ‘강단좌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는 발언 위치, 곧 물적 토대와 시스템 자체는 결코 건드리지 않으며 위험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유사-행동에 대해 지젝은 비판적인 참여와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쥔 자들과 ‘대화’에 나서기보다는 ‘불길한 수동성’으로 퇴각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달리 제국주의, 식민주의, 세계대전이라는 1914년의 파국적 조건 속에서 혁명의 기획을 재창조하려고 했던 레닌의 제스처를 오늘날 반복해야 한다는 그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전례 없는 패배의 국면이었던 1914년에 레닌은 좌절하지도, 그렇다고 즉각적인 정치적 해답을 내놓지도 않았다. 대신에 스위스 베른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이듬해 5월까지 헤겔의 『논리학』 연구에 매진했다. 알다시피, 그가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게 되는 것은 불과 그 2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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