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843
'보복'은 대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분석]연평도 사태 이후, 이중트랙을 달려야 한다
2010년 11월 24일 (수) 17:34:57 김완 기자 ssamwan@gmail.com
한국군이 대규모로 호국훈련을 한 것은 맞다. 북쪽을 향한 사격 훈련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공격적인 것이었다고 한들, 국경을 침입하진 않았다면 북한이 자위권을 행사할 요건은 성립되지 않는다. 북한의 공격은 위법한 것이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포격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은 연평도 공격의 이유를 밝히며, 한국군이 북한의 영해에 먼저 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사격훈련을 했을 뿐, 북의 영해에 포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자의 말 모두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다시피 한국과 북한은 서해에 대한 영해 개념이 다르다. 한국은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영해를 따지고, 북한은 지난 99년부터 ‘인민군 해상 군사 통제수역’을 기준으로 영해를 따지고 있다.
북방한계선은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30일 UN군 사령관 클라크(M. Clark)가 결정한 것이다. 일방적 결정이긴 했지만, 99년까지 근 50여 년간 영해의 기준으로 기능해왔다. 99년이 되어서야 북한은 ‘인민군 해상 군사 통제수역’을 주장하며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분쟁화했다. 참여정부 내내 이 문제로 시끄러웠다.
북은 북방한계선이 일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인민군 해상 군사 통제수역' 주장이 더 일방적이다. 북방한계선은 비록 그 선언이 일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북 역시 그 선언을 50여 년간 지켜왔으므로, 관습적 규범의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북이 이 부분의 개정을 원한다면, 협상을 했어야 한다.
북한의 무력 사용은 UN헌장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정전협정과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도 위반한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공격을 인정하고 있는 한 국제적 비난과 고립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23일 저녁 군의 대응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연합뉴스
영토의 피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애초 '확전을 방지하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졌다. 놀랍도록 합리적인 상황인식이었다. 국제법은 자위권의 적법한 행사를 매우 까다롭게 규정한다. 자위권의 행사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무력공격에 비례하는 수준의 대응조치'여야 한다. 그 이상이 될 경우 상대방도 역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남북 간의 특수한 상황과 지리적 인접성을 감안할 때, 확전을 선택했다면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보수 언론까지 합세하여 '보복'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강력한 보복을 보여주어야만 도발에 대한 억지력이 발생한다는 논리이다.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 같은 이는 확전 방지를 택한 이들을 향해 '개자식들'이란 막말까지 하고 있다.
그럴 순 없다. 보복은 안 된다. 일련의 보복적 조치들이 단행되는 순간, 엄청난 피해를 감내하고 확보한 국제적 지위를 내어주게 된다. 강제력과 구속력의 의문이 제기되긴 하지만 UN은 2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값비싼 경험을 통해 인류가 합의한 이성의 논리이다. 북한이 이성적이지 못한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도 비이성적인 앙갚음을 하자는 것은 야만적 행위이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매파들의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이 '몇 십 배의 보복'을 운운하는 것은 국내 여론을 위한 대증적 요법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문제의 본질을 혼탁하게 만들 수 있다. 자제되어야 한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수습이 필요하다. 이중트랙(twin track)을 달려야 한다. 전술적 사고가 필요하다. 북한의 행위를 압박할, 도발을 심판할 국제적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북한의 행위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결론으로 맺어야 한다. UN을 활용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북한을 제외한 5자 회담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1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온 서해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북한의 포기를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사태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서해의 경우 국제 해양법이 정한 영해의 기준인 해안선으로부터 24km를 적용할 수 없는 지역이다. 국제법은 그럴 경우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나, 이마저도 남북 간의 특수한 관계로 합의하기 어렵다. 결국, 북한의 도발은 서해상 영해의 애매한 법적 공백에서 발생하는 상황인 셈이다.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이 부분에 대해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실질적 피해를 감내했고, 국제적 위상 역시 북한과 비할 바 아닌 한국이 훨씬 유리하다.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국제적 압박과 공조를 통해 서해 영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과 함께 국내적으로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압축된다. 내적으론 김정은 세습 체제의 공고화이고, 외적으론 북미 간 직접 대화 요구이다. 얼마 전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화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자, '전쟁이냐 평화냐의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내외적 요구가 합쳐진다.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체제 보장'이다. 어떻게, 어떤 것이 됐건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
당장에 평화를 위해 대북 지원을 재개하라, 이런 요구가 아니다. 국내 여론의 반발을 무시하란 말도 아니다. 다만, 북한이 던지는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 메시지 가운데 우리가 응할 수 있는 대답이 '평화' 뿐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공개적이건 비공개적이건 모종의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매개자가 되지 못할 경우 피해는 전적으로 한국의 몫이 된다. 연평도 사태처럼 말이다.
천안함 때와는 상황이 또 다르다. 이 순간 음모론은 생산적이지 않아 보인다. 모든 것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때문이었다는 비판도 절름발이 인식일 수 있다. 군사 훈련은 언제나 있었고, 이명박 정부도 이제 3년 차이다. 한때나마 유행했던, 실용의 자세가 절실하다. 긴박한 상황이다. 국내 정치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정권의 치적으로 삼으려던 G20 효과가 한 방에 날아갔다. 분단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서해 영해 문제를 해결하고, 북미 간 직접 대화의 채널을 열어 준다면 놀라운 성과로 남을 것이다.
* 글에서 언급한 국제법상의 조항과 내용들은 진보넷 블로거(blog.jinbo.net/kimpoo88/) '연평도 사태의 법적 쟁점'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세상 이야기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北 연평도 포격/軍대응 적절했나 (한국일보101124) (0) | 2010.11.24 |
---|---|
연평도 사태와 관련된 법적 쟁점 /Que Sera Sera (0) | 2010.11.24 |
'이명박정부 안보' 믿음이 흔들린다 /미디어오늘101124 (0) | 2010.11.24 |
DJ와 MB의 상반된 '교전지침' /노컷뉴스101124 (0) | 2010.11.24 |
분노는 이해한다. 그러나 전쟁은 안 된다 /정욱식 (0) | 2010.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