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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925호(2011 05/17)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05111703391&code=117

 

 

[표지이야기]근본주의 이슬람 테러 종식될까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다.
이슬람 근본주의든 기독교 근본주의든, 종교적 근본주의는 정치적 갈등을 분쟁으로 몰아붙이는 탄환 구실을 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의 갈등에서 한 축을 담당하던 빈 라덴의 죽음으로 근본주의 성향의 이슬람 테러는 종식될 수 있을까.



지난 5월 1일(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 사살된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AP연합뉴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다. 알 카에다의 창설자이자 지난 10년 동안 테러리즘의 상징이던 빈 라덴은 지난 2일 새벽(현지시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 100㎞ 지점 아보타바드의 2층짜리 주택에서 미 해군 특전지원단 병사들의 총에 맞아 사살됐다. 미국은 10년 만에 9·11 테러 주모자에 대한 응징을 완료했다.

2001년 9월 11일, 납치당한 4대의 민간항공기가 미국 본토를 직격했다. 뉴욕 심장부에 자리잡은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완전히 붕괴했고, 미국 국방부 건물마저 파손됐다. 미국의 경제 중심과 군사 중심이 동시에 타격당했다. 9·11은 1812년 미·영 전쟁 이후 미국 본토가 처음으로 공격받은 사건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빈 라덴 사살 직후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9·11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오늘은 미국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의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보낸 날”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빈 라덴에게도 9·11은 ‘정의’가 실현된 사건이었다. 빈 라덴은 9·11 한 달 후인 2001년 10월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비디오테이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은총과 감사를. 미국은 북에서 남까지, 동에서 서까지 공포에 가득 질려 있다. 하나님께 감사를.” 그 하나님은 이슬람의 유일신 알라다.

빈 라덴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다. 그의 근본주의적 성향은 사우디 킹 압둘 아지즈 대학에서 만난 은사 압둘라 아잠과 연관이 있다. 압둘라 아잠은 20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의 수원지인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이념을 추종한 인물로, 성전을 통해 무슬림 세계 전체를 단일한 순수 이슬람 국가로 통합해야 한다고 믿었다. 무슬림 형제단에 사상적 영향을 준 사이드 쿠트브는 20세기 이슬람 사회가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아 자힐리야(이슬람 이전의 무지의 시대)에 잠식당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타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내놓은 것이 소수의 신실한 자들로 구성된 단체가 수행하는 성전이다. 

이후 빈 라덴은 아잠과 결별하고 보다 급진적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노선을 추종했다. 알자와히리는 이집트의 근본주의 단체 알지하드 그룹의 리더로, 알지하드는 1981년 당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암살사건의 배후다.

미국에 빈 라덴 사살이 9·11에 대한 보복이었듯, 이슬람 근본주의자 빈 라덴에게도 9·11은 미국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는 비디오테이프 연설에서 “미국이 지금 맛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맛본 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며 “우리 이슬람 국가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와 똑같은 수치와 불명예를 맛보았다. 우리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피가 뿌려졌으며, 이슬람의 성소들이 유린당했다”고 말했다.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다.

‘빈 라덴에게 9·11은 미국에 대한 보복’
9·11 테러에는 종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테러범들은 ‘신의 이름’으로 테러를 감행했다. 문건이 있다. 테러 직후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은 9·11 테러 주모자인 모하메드 아타의 가방에서 테러 행동지침이 담긴 문건 하나를 발견했다. 이 사실은 9월 28일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행동지침은 모하메드 아타의 가방에 유언장과 함께 들어 있었고, 다른 두 납치범들의 소지품에서도 동일한 문건의 사본이 발견됐다.

신에게 바치는 기도로 시작하는 이 지침서는 구체적인 행동지령이라기보다는 테러 수행자들에게 내리는 영적인 훈령에 가깝다. 지침서에 따르면 테러 감행 하루 전날인 ‘마지막 밤’에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비행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목표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도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전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테러는 테러범들 개인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지침서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2006년 9월 6일 조시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유가족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01년 10월 7일,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방송 연설을 통해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빈 라덴의 비디오테이프 연설도 이날 공개됐다. 두 사람의 연설을 비교 분석한 미국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은 두 연설이 또렷하게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고 봤다(<거룩한 테러>, 돌베개).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중립지대가 존재할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빈 라덴은 “나는 저들에게 이번 일(9·11)이 세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고 말한다. 바로 신실한 자의 진영과 불신자의 진영”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모든 국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싸움에는 중립지대란 없다. 그 어떤 정부든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자들을 지원한다면 그들 스스로 범법자요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은 외로운 길을 가면서 스스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지난 1000년 동안 라이벌
빈 라덴과 달리 부시 대통령은 종교적인 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세계 전역에서 이슬람 신앙을 실천하는 10억 무슬림들의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브루스 링컨은 부시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외로운 길을 가면서 스스로 위험에 처하게 될 것”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자들” 등 기독교 성서를 연상하게 하는 문구들을 사용하면서 “정치적 연설을 종교적 담론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해석했다.

이를 한 종교학자의 과장된 해석이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지난 2009년 5월 미국 월간지 「GQ」는 ‘국방장관 세계정보 업데이트’라는 제목의 국방장관 정보보고 표지 11장을 입수해 폭로했다. 이 정보보고는 미국이 알카에다와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며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준비할 당시 작성된 것으로, 그 중 하나의 표지에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는 성경 에베소서의 구절이 찍혀 있었다. 배경에는 사막을 배경으로 진격을 준비 중인 탱크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 월간지가 보도한 다른 정보보고 표지들에도 성경 구절과 미군의 모습이 함께 등장했다.

이슬람 근본주의든 기독교 근본주의든, 종교적 근본주의는 대립하는 두 집단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분쟁으로 몰아붙이는 탄환 구실을 한다. 그 아래에는 종교를 명분으로 오랜 세월 누적돼온 두 진영의 역사적 유산이 자리잡고 있다. 장병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소장(이란어과 교수)은 “이슬람 근본주의는 20세기 들어 이슬람 지역을 장악한 서구제국주의에 맞서려면 이슬람 본연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며 “이슬람과 기독교는 지난 천 년 동안 라이벌 관계를 맺어왔다”고 말했다.

장 교수가 말하는 ‘천 년 동안의 라이벌 관계’의 시발점은 2세기 동안 지속된 십자군 원정이다. 교황 우르반 2세는 옛 서로마 지역의 가톨릭과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정교회로 분열된 기독교 세계를 통합하고 투르크족의 침입으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십자군 원정을 발의했다. 

십자군 원정은 1096년부터 1291년까지 모두 여덟 차례 시도됐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은 초기의 종교적 명분을 잃고 약탈 전쟁으로 변질했다. 십자군 원정의 결과 이슬람 세계의 기독교 세계에 대한 분노는 극점에 도달했다. 비잔틴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했다. 오스만 투르크는 발칸반도와 지중해 지역까지 진출했다. 이후 지중해 지역은 500년 동안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가 벌인 쟁탈전의 무대가 됐다. 지중해 쟁탈전의 마지막 종결점은 1571년 오스만 투르크와 기독교연합군이 맞붙은 레판토 해전이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을 받은 세계 무역센터 건물에서 잿빛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오스만 투르크군의 대패로 끝난 레판토 해전을 기점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오스만 투르크는 18세기 말 유럽의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침투로 인해 점차 세력이 약화되다가 1차대전 이후 제국의 영토 내 민족들이 독립하면서 1923년 최종적으로 해체됐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기독교 세계의 반감에는 오랫동안 이슬람과 전쟁을 벌이면서 비롯한 이슬람 포비아(공포감)가 자리잡고 있다”며 “그것이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편견과 혐오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편견과 혐오를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9·11 이틀 후인 2001년 9월 13일 <기독교방송네트워크>에서 방송된 미국 기독교 우파 운동의 두 거물 팻 로버트슨과 제리 팔웰의 대담을 보자. 대담에서 팔웰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이 과격한 테러리스트들, 이 극악무도한 중동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나라를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지중해로 내몰고,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교도들, 낙태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게이들과 레즈비언 등”이 9·11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로버트슨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던 보호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회의 저급한 세속화가 신의 분노를 산 탓에 9·11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급진적인 종교적 이념은 종종 우파 정치세력과 결합한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미국 공화당의 강력한 정치 기반이다. 로버트슨이 1989년 설립한 기독교연합은 1994년 선거에서 공화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공화당은 같은 해 선거에서 40년 만에 상·하원을 장악했다. 지난 2004년 미국 공영방송 PBS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백인의 약 70%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00년 대선과 2004년 대선에서 미국 보수 기독교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다수 무슬림이 원하는 것은 평화
빈 라덴의 죽음으로 근본주의 성향의 이슬람 테러는 종식될 수 있을까. 이희수 교수는 “대부분의 무슬림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의 부당한 중동정책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공분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대변해줬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가 일정한 정치적 지분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올해 초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기점으로 번져나간 아랍 민주화 혁명은 이슬람 사회에서 근본주의 세력이 차지해온 정치적 지분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랍 민주화 혁명은 근본주의 세력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라며 “아랍 민주화 혁명을 주도한 아랍 민중들은 보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기적인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 2일 온라인상에서 알카에다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아사드 알지하드 2’(온라인 필명)는 “이슬람은 수세기에 걸쳐 모든 측으로부터 공격당했고, 빈 라덴은 그들을 막는 둑이었다”고 평가하고, 이슬람 성전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논객 사이먼 젠킨스도 5월 2일자 칼럼에서 빈 라덴의 죽음이 곧 알카에다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격렬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서방국가들의 중동정책이다. 젠킨스는 “그들(무슬림)이 원하는 것은 평화다. 서방이 그들에게 안겨준 것은 전쟁뿐이다. 그들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며, 서방의 무기로는 결코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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