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2012.05.0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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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상식 밖의 당권파
[기자칼럼] ‘부정’ 지적했더니 정치적 물타기...“이게 무슨 진보냐”
성지훈 기자
투표과정에는 ‘유권자의 의지’ 외에 어떤 요소도 작용해선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투표과정에 발생한 부정을 발견하면 그것이 크든 작든, 또 그 조사과정이 철저하든 그렇지 못하든 응당한 책임을 지는 것 또한 ‘상식’이다.
반면, 부정은 있었지만 조사과정이 부실했기 때문에 부정이 아니라는 말은 ‘몰상식’이다. 200만이 넘는 유권자에 대한 배신행위보다 당원들의 권익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몰상식’이다. 수틀리면 회의장을 봉쇄해버리는 방식이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정치의 상식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당권파의 상식 밖 ‘변명’
지난 주말을 뜨겁게 달궜던 통합진보당의 전국운영위원회는 그야말로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이었다.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조준호)의 조사결과는 명료했다. 온라인 투표에서 특정 아이피에서 동시에 많은 투표가 이뤄졌다. 대리서명이 발생한 곳에서 특정 후보에 몰표가 나왔다. 현장투표와 온라인 투표에 이중으로 투표한 사례도 발견됐다. 선관위원장의 동의도 없이 온라인 투표 소스코드가 열렸고 수정이 됐는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는 형상기록도 남지 않았다. 선관위원의 서명이 조작됐다는 정황도 있고, 비당원이 투표했다는 정황도 발견된다. ‘총체적 부정 부실 선거’ 로 결론 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당권파가 내놓는 반박은 상식과 거리가 있다. “잠결에 전화를 받아서 짜증나서 당원도 아니고 투표도 안했다고 대답했다”거나, “선관위원장이 장난기가 있어서 서명을 다른 이름으로 했다”는 대답을 상식선에서 납득하는 것은 무리다. 소스코드를 열었고 수정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있는 형상도 남지 않았지만 관행이니까 문제될 거 없다는 주장은 그대로 걸리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논리구조와 같다. 결론적으로 “선거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조사과정이 부실했기 때문에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못 하겠다”는 주장을 상식이라고 보긴 어렵다.
▲ 당권파의 방해로 회의는 파행을 겪었다 |
당권파의 상식 밖 ‘목적’
당권파는 전국운영위 내내 “확실하지 않은 조사로 수구보수 언론에 꼬투리를 준 해당행위”를 비판했다. 조준호 진조위원장이 “조사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발언을 꼬투리 잡은 것이다. 우위영 위원은 “(부실한) 보고서를 조준호 대표가 절차를 무시하고 언론 발표를 강행했다. 왜 그런 무모하고 비상식적이며, 당원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천안함 보고서 같은 누더기 문건을 검찰이 야당 정치인의 피의사실을 공표하듯이 언론에 유포하고 마녀사냥을 해서 해당행위를 한 자가 조준호 진상조사 위원장이다.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촉박한 시간 안에 급히 실시한 조사에서 이토록 부정이 발견됐다면 구체적인 조사로 더 많은 부정을 찾아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구나 생각 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순이다. 그러나 당권파는 조사의 한계에 집중한다. 당권파의 행동을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조사를 부정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밖엔 볼 수 없다. 그리고 당권파의 목적이 그것이라면 목적 그 자체가 몰상식이다.
공당이 당내 경선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자체보다 이 사실이 외부에 먼저 알려져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사실에 먼저 분노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은 기성 정치의 구태와 부패에 염증을 내는 대중들을 지지기반으로 한다. 김창현 위원은 “우리는 대통령선거 투표구에서 부정선거가 몇 개 발견되면 투표함을 덮치고 지켜서 선거 전체가 무효라고 하며 재투표를 외친다”고 말했다. 박상철 위원도 “진보정당의 최고의 가치는 도덕성”이라며 “새누리당이 이랬으면 우리가 난리 났을 거다. 우리는 이 진상보고서를 보고 엄청난 자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밝혀진 것만 해도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지경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게 무슨 진보당이냐고 난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부정 보다 당의 이미지를, 대중들에 대한 신의보다 당원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이 그토록 맹렬히 비난하던 구태의 기성정치다. ‘진보정당’에서 ‘진보’보다 ‘정당’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다.
당권파의 상식 밖 ‘대응’
당권파는 또 회의진행 내내 회의를 방해했다. 물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엄연히 정치적 행위의 허용범주에 든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64년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이 넘도록 진행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권파의 회의장 봉쇄는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적 문제다. 혹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이 ‘부당’하다고 밖에는.
당의 부정을 자성하자는 회의에서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이가 나서서 의사를 방해하는 것은 정당한 정치행위라 볼 수 없다.발언권이 없는 방청객들이 조사위원들을 향해 비속어 섞인 비난을 퍼부었다. 사회자인 이정희 대표는 질의응답은 그만하고 표결로 안건을 처리하자는 위원들의 계속된 건의에도 10 시간이 넘도록 질의응답을 이어가다, 오전 7시께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당권파는 정회된 사이 회의장 입구를 봉쇄해 회의를 파행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회의는 전자회의로 진행돼야했다.
조준호 위원장을 비롯한 조사위에 원색적인 비난이 계속된 것은 물론이다. 비당권파 계열의 한 운영위원은 “우리는 당권파들에게 권력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모두 함께 책임을 지고 함께 당을 세워나가자는 것”이라며 “당권파들이 저렇게 (실력행사로)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 지난 1월 3차 전국운영위가 끝난 후 운영위원들의 기념사진 |
책임마저 상식 밖이라면
전자회의를 통해 가결된 쇄신안은 “비례대표 선출과정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상실한 만큼 순위 경쟁 명부의 비례 당선자와 후보자 전원(14명)은 총 사퇴한다”고 결정했다. 전국운영위가 열리기 전 비례 1번 윤금순 당선자는 사퇴를 발표했다. 이영희, 나순자, 윤난실 후보도 사퇴를 발표했다. 유시민 대표도 “이번 사태에 제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당사자 중 한 명인데 비례대표를 승계 받는 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사퇴를 결정했다. 공당, 진보정당으로서 저지른 실수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제제기의 핵심에 서 있는 당권파 후보들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재연 당선자는 6일 오후 4시, 청년당원들의 명예를 위해 사퇴에 불응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체의 공동책임은 상식적이겠지만, 사건 당사자만 뺀 공동책임은 그야말로 몰상식이다. 상식대로라면 당헌과 당규대로 전국운영위가 결정한 권고사항을 따르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작금 통진당 부정선거 사태에서 당권파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매우 간단하고 명료한 상식이다. 당권파가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상식선에서 이번 사태에 임해야한다.
통합진보당 홈페이지에는 “부패를 일소할 개혁 정치를 해 나갈 것”이란 이정희 대표의 글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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