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2.05.10 10:56
[주장]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전략적 시각전환을 바란다
- 조 희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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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경선 문제로 거대한 내홍에 휩싸였다. 나는 이른바 '당권파'가 이 문제를 대응하는 데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비당권파와의 거리도 좁힐 수 있으며 이번 사건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한 국면전환도 가능하다.
진보가 도덕적 약점을 보일 때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위해서, 나는 먼저 수십 년 동안의 진보진영의 발전과정은 진보가 도덕적 약점을 보일 때 보수가 파죽지세로 공격해온, 지그재그식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학생운동 과정에서 경찰을 프락치로 오인해서 발생한 경찰 타살사건, 운동가의 성추행 시도 사건, 시민운동단체의 회계부정 등 무수한 사건들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때로 정치적 발전의 경로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사실 1987년 12월 대선과정에서의 '양김의 분열'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는, 보수가 양김을 거세게 비판하면서 그 도덕적 약점을 매개로 지역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반공주의나 개발주의와는 다른)로 무장해서 '낙동강 저지선'을 설정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각각의 성격은 다르다. 그러나 이번 통합진보당의 투표부정은 어느 모로 보나 의심할 바 없이 진보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심각한 도덕적 오류다. 진보정당의 도덕적 오류가 스스로의 조사를 통해 사실로 '공인'됨에 따라, 최근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를 연일 특종보도하듯이 폭넓게 다루고 있다. 당권파의 문제점을 다루는 데는 진보신문과 보수신문의 논조가 크게 다르지도 않을 정도다. 이번 투표 부정사건은 경우에 따라서는 향후의 대선에서의 정치적 발전의 경로를 왜곡시킬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나는 진보의 도덕적 오류는 (보수의 공세에 의해) 곧바로 진보 일반의 정치적 위기로 전환되는 것이, 박정희 시대, 아니 분단 이후 한국정치를 관통해온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서 어느 파벌이 부정행위를 더 많이 했다거나, 각각의 비례대표 당선자별로 얼마 정도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은 지극히 부차적이다. 현재와 같이 누가 보아도 명백히 문제가 있는 투표부정이 사실인 한, 통합진보당 전체의 위기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검찰수사 하듯 조사보고서에 세세하게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모두의 공멸로 이어진다. 진보가 도덕적 약점을 보이는 한, 파죽지세로 비판받고 밀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너무 억울하다. 가족이나 집안, 가까운 친구들을 대리해서 집단투표 하는 것은 우리만 행한 것이 아니다. 비당권파도 했다'라는 식으로 항변하는 것은 지극히 단견이다. 오히려 일부 항변의 여지가 있더라도, 심지어 일부 억울하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조속한 '국면전환'을 해야 한다.
디도스 공격도 명확히 그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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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디도스 공격'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때 새누리당이 항변하기를 '우리가 했다는 것이 안 밝혀졌다. 심지어 최구식 의원이 한 것조차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왜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는가'라고 응전했다면, 지금의 새누리당은 아주 작은 군소정당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발 빠르게 대처했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심지어 당명을 변경하기까지 하면서 국면을 전환했고, 결국 '위기는 기회'로 전환됐다. 이런 점에서도 당권파는 전략적 사고전환을 해야 한다.
둘째, 더 위력적인 정당이 될수록, 우리가 '적'에게 적용했던 가혹한 비판의 잣대가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보수의 성찰성'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보의 성찰성'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지구당 위원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주민등록지'를 이전한다거나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쉽게 획득가능한 주민등록 번호를 활용하여 집단 대리 투표를 하는 것이 진보정당, 특히 당권파 측에 많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주류적 질서에 전혀 위해가 되지 않는' 아주 주변적인 정당의 경우에는 이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위치를 갖는, 그래서 '대세에 영향을 주는' 정당에게는 결코 관용될 수 없다. 시민운동이건 민중운동이건 '주류의 중요한 보수정당'의 그런 행태에 대해서 가차없이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정치의 '도덕적 기준' 또한 높아져왔다. 이는 자주파를 포함한 민중운동의 진보적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당권파(자주파)를 비판하더라도, 자주파의 '정치적 시민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주파나 반미파가 현재의 국가보안법 구조하에서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강하게 인정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주파나 반미파의 '정치적 시민권'을 박멸하려는 식으로 나가는 보수언론에 대해서 나는 비판적이다.
또한 반미파나 자주파의 축소가 마치 진보의 발전이고 민주주의의 확장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진보진영 내부의 일부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급진적 민주주의'에서는 '주사파'를 포함한 어떤 정치세력도 '정치적 시민권'을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도덕적 오류, 그것을 넘어 심대한 부정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엄호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미시적 억울함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찰적 전환의 계기로
이런 의미에서 당권파가 '미시적 억울함'을 내세워서, 이 심대한 도덕적·정치적 위기상황을 우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큰 계기로 삼아 다른 집단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자신을 성찰적으로 변화시켜내는, 설령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당(公黨)'으로 자신을 혁신해내는 성찰적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 위기가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깊어지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가혹하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도덕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진보는 잘못에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보수와 달라야 한다고 난 굳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교협 공동대표이자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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