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2.05.22 19:29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34077.html
20만명 신상정보 통째로…검찰 ‘진보탄압’ 칼을 쥐다 |
사상초유 진보당 명부압수
검찰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수사를 내세워 20만명을 웃도는 전·현 당원들의 각종 개인정보가 담긴 당원명부를 통째로 압수한 것이 정당한가. 정치학자나 법학자 등 전문가들은 대부분 검찰의 성급한 정치개입이며,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민주주의 훼손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검찰은 22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검찰 입장’이라는 대검찰청 발표를 통해 ‘당내 각 정파의 첨예한 대립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상황’과 ‘국민적 공분’을 당원 명부 등을 압수수색한 명분으로 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검사는 “경선부정 여부를 확인하려면 선거인 명부와 당원 명부를 비교하고, 선거인으로 등재된 사람이 당원인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통합진보당이 검찰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에서 (압수수색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당의 자율성을 외면한 부당한 정치개입’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경선 부정 수사와 직접 관계도 없는 당원 명부까지 국가 소추기관인 검찰이 통째로 압수한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의사결정 과정에 복수의 정당이 경쟁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각 나라는 헌법에 정당 활동의 자유뿐 아니라 해산조항까지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렇게 헌법상 특별 지위로 존재하는 정당의 당원 명부 등을 압수한 것은 정당 탄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정 정당의 당원인지 여부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한 비밀이 보장돼야 하는 프라이버시이자 정치활동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포괄적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법원의 처사도 신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는 검찰이 압수한 당원명부를 얼마든지 진보진영 탄압의 도구로 악용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 1950년대에 민권운동단체 회원 명부를 입수하려던 주 정부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헌법 8조엔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라는 조항이 있다.
검찰의 섣부른 개입이 사태를 오히려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많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당이 반국가활동 등 체제 위협적일 경우에는 공권력이 나설 수 있지만, 이번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비례대표 경선이라는 정당 내부 절차에 관한 문제였다”며 “더구나 당내 혁신비대위의 해결방향이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검찰은 당이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기다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경선 부정은 민주주의 절차를 부정하는 중대한 문제”라면서도 “정치 영역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무시하고 검찰이 전격적으로 개입한 것은 사려깊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통합진보당은 혁신비대위(위원장 강기갑)를 중심으로 경선 부정과 관련해 비례대표 사퇴 시한을 21일로 못박고 거부한 이들에 대한 출당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검찰의 주장과 달리 내부 해법이 실행단계에 있었던 셈이다.
김종철 선임기자, 황춘화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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