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2.05.23 21:58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34401.html
미·일선 법원이 “시민단체 명부압수는 위헌…탄압” 제동 |
외국선 어떻게 처리했나
1958년 미 유색인종단체 재판
대법 “기본권 침해” 판결
2000년 일 시민단체 회원도
결국 압수자료 돌려받아
검찰의 통합진보당 당원명부 압수수색은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꽤 오래전 당국이 시민단체의 명부를 압수하거나 제출을 압박한 적이 있었으나, 모두 법원이 이를 좌절시켰다.
2000년 12월 일본 경시청(서울경찰청에 해당) 공안부는 ‘희망 21세기’라는 시민단체 회원이던 오사카부 가도마시 시의원 도다 히사요시의 집 등 20곳을 압수수색해 도다가 속한 시민단체의 회원명부 등을 가져갔다. 그해 오사카에서 숨어 지내다 붙잡힌 반국가단체인 ‘일본적군’의 최고지도자 시게노부 후사코의 사문서 위조 및 행사, 여권법 위반과 관련한 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희망 21세기가 적군파의 하부 대중조직이라는, 경찰이 흘린 말들은 언론에 별다른 검증 없이 보도됐다.
압수수색 직후 도다 시의원은 “경찰은 피의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을 압수해 갔다”며 “영장이 포괄적으로 압수를 허용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영장주의를 무력화한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고, 도쿄 지방법원에 준항고를 낸 끝에 경찰로부터 압수자료들을 돌려받게 됐다.
하지만 시게노부 사건을 빌미로 사민당 및 혁신계 지방의원 집과 출판사 압수수색 등이 계속되자 일본 소비자연맹, 그린피스 일본 등 시민단체들은 12월25일 공동성명을 냈다. 성명은 “경찰이 회원명부를 압수하는 것은 여권법 위반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도저히 볼 수 없다. 필요한 증거수집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일반적인 공안정보의 수집”이라고 비판하며 “시민활동 그 자체와, 시민활동과 연결된 사민당 등의 혁신적 정치활동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설사 회원 중 용의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런 회원이 있다는 이유로 단체 구성원을 일망타진하려는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항의했다.
195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일어나던 미국의 사례는 미 인권분야에서 기념비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1956년 앨라배마주는 전미유색인종협의회(NAACP)에 대해 회원명부 제출을 요구했다. 당시 앨라배마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등 기관은 세금 부과 등에 필요하기 때문에 앨라배마주에도 등록해야 한다는 주법을 준수하라는 게 명목상 이유였다. 전미유색인종협의회는 뉴욕에 등록돼 있었지만,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1914년부터 활동했다. 그런데 등록을 하려면 이름과 주소가 적힌 회원 명부를 제출해야 했다. 전미유색인종협의회가 이를 거부하자, 주정부는 지방법원에 고소했고, 지방법원은 10만달러의 벌금과 회원명부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2년 뒤 대법원까지 갔는데, 대법원은 익명성을 필요로 하는 인권단체의 회원명부 제출은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 헌법 14조의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주정부의 요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 판사 9명은 모두 백인 남자였고, 이 중 일부는 남부 출신이었으나 판사 9명이 모두 ‘위헌’ 의견을 냈다. 이 판결은 이후 단체의 회원 익명성 보장이 폭넓게 인정되는 출발선이 되었다.
당원명부 압수와 관련해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에서 불법인 나치주의당을 단속하기 위해 명부를 압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으나,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치당은 불법단체여서 통합진보당 사례와 비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도 “반국가단체가 아닌 이상, 당 내부 문제로 수사기관에서 당원명부를 가져가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도쿄/권태호 정남구 특파원, 김지훈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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