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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머스> 2012/05/14 02:29

http://blog.ohmynews.com/litmus/177135

 

 

당권파의 5.13 쿠데타

 

- 진중권 -

 

이정희가 운영위 모두 발언을 통해 조사위의 결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장면은 그 동안 통합진보당을 지지해왔던 지지자들에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운영위 본회의에서도 그녀는 의장으로서 필리버스터를 하는 세계정당사에 전무후무할 엽기행각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어제의 ‘아이돌’은 오늘의 ‘처키’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경기동부연합을 위해 그 동안 애써 가꿔온 이미지를 초개처럼 내버렸을 때, 알만 한 사람들은 이미 당권파가 ‘분당’을 각오하고 당을 장악할 결심을 굳혔다고 짐작했을 것이다.


중앙위 해산 작전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오마이뉴스>의 보도대로, 당권파의 속셈은, “지속적 회의 방해로 당 중앙위를 무산시킨 뒤 지도부 공백사태가 발생하면 당권파인 장원섭 사무총장 체제로 임시 지도부를 구성하고, 내달 1일 국회가 개원하면 원내대표를 선출해 원내대표가 사실상 당을 운영하는 체제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장원섭 사무총장이 중앙위는 해산되고 당 대표들은 해임됐다고 생뚱맞은 주장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벌써부터 “임시 지도부” 행세를 하고 있다. 그들의 수순을 정리해 보자.


(1) 중앙위 무산

(2) 임시지도부

(3) 원내대표 중심체제


결국 중앙위를 무산시키는 것은 애초에 그들의 계획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중앙위를 무산시켜야 했기에 그들은 나름 치밀하게 꼼수를 마련해 왔다. 바로 참여당 측 중앙위원들의 자격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참여당 측 중앙위원이 과거 참여당 시절의 명단과 비교해 50여명 가량 ‘교체’됐다고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각 주체의 중앙위원은 중앙위가 열리기 24시간 전에 임명되었기에 ‘교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는 참여당 측의 반박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이제 그들은 참여당에서 중앙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이 무원칙적이라 비난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주장은 중앙위원회의 성립 자체와는 아무 관계없는 트집 잡기에 불과했다. 이 지적 역시 “합당 시에 대표단에서 중앙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은 합당 3주체에 각각 일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는 반박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만약 이정희 대표가 의장단석에 앉아 있었다면, 현장에서 그 합의의 사실을 확인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녀가 중앙위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사퇴를 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논리적’ 방식으로 중앙위를 무산시킬 수 없게 되자, 그들에게 남은 것은 중앙위를 방해할 ‘물리적’ 방식 밖에 없었다. 결국 첫 번째 안건이 표결에 붙여지고 통과되는 순간, 당권파 중앙위원과 당권파 참관인들은 무슨 일제히 앞으로 몰려나가 단상을 점거하고는 의장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이는 물론 대학생들 몇 명이 일으킨 우발적 사건이라 볼 수 없다. 중앙위 무산은 그들이 세운 모든 계획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운동권 물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이 가공할 수준의 폭력이 명령이나 지침 없이 이루어졌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장원섭의 하극상


이 사실은 현장에서 그들이 외치던 구호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 귀에 “불법 티머니 계산하라!”, “불닭 두 마리 계산하라!”로 들렸던 구호는 실은 “불법중앙위 해산하라!”였다. 한 마디로, 그들은 애초부터 중앙위 자체를 해산시키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그들의 폭력으로 결국 중앙위는 ‘무기 연기’되었다. 장원섭은 중앙위의 무기연기가 “당헌을 위배”한 것이라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중앙위 자체가 무산됐다고 우겨야 대표단의 임기도 끝났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위는 종회된 게 아니라 정회된 것에 불과하다. 그 정회도 당권파 자신들의 폭력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렇게 자기들이 폭력으로 중앙위를 중단시켜 놓고는, 그것이 ‘무산’ 혹은 ‘종회’되었기에 대표단의 임기도 이미 끝났다고 우기는 것이다. 물론 그래야 거사의 2단계, 즉 ‘임시지도부’ 체제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권파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 거사는 2단계로 접어들었다. 장원섭이 주제넘게 통진당의 계엄사령관처럼 구는 것은 자기가 이미 ‘임시지도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원섭은 기자회견을 갖고 “심 공동대표가 중앙위 정회 선포 당시(12일), 속개 시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당헌·당규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중앙위의 전자투표 개최에 대해서는 “가담한 당직자들은 당규에 따라 엄격히 처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단과 중앙위가 당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며, 중앙위 전자회의를 “사적행위”라고 규정했다, 한 마디로 공동대표의 결정을 뒤집는 ‘하극상’을 벌인 것이다. 어떤 알 수 없는 권한에 의거하여 그는 자신을 통합진보당의 ‘임시지도부’로 임명했다.


미래의 지도부


이제 남은 것은 통합진보당의 새로운 지도부다. 그것은 당연히 당선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비례대표 후보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퇴를 하지 않고 버텨야 한다. 언론에서 뭐라 하든, 진보진영에서 뭐라 하든, 유권자들이 뭐라 하든, 5월 30일까지만 버티면, 당권파 비례대표 후보들은 법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의원’이 된다. 거기에 지역구에서 당선된 당권파 의원 4명을 합치면, 의원단 내에서도 2/3가 넘는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그 경우 원내대표는 당권파 의원, 가령 김선동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미 지난 5월 9일 김선동, 이상규, 김미희, 오병윤 등 당권파 당선자들은 조준호 대표의 보고서를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예단을 앞세워 개인적 실책을 집단으로 넘긴 정치조작 보고서"로 규정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어제도 이들은 성명을 내어 "중앙위원회에서 불법 성원 문제가 불거졌고, (...) 교체 과정에서 절차 무시, 시행규정 무시 등의 사례가 무더기로 확인” 됐다며 중앙위 자체를 “원천 무효"로 선언했다. 나아가 "심상정 당선자는 이미 공동대표직에서 사퇴하였으므로 중앙위 의장 권한 또한 상실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장원섭 생뚱맞은 쿠데타 놀이는 그저 장원섭 개인의 일탈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장원섭의 하극상은 그 자체가 이석기를 포함한 당권파 당선인들을 주축으로 한 당권장악 플랜의 한 부분인 셈이다. 실세라는 이석기가 ‘전두환’이라면, 당권파 당선인들이 ‘하나회’이고, 장원섭은 ‘장세동’이라 할 수 있다. 운영위도 인정하지 않고, 중앙위도 인정하지 않고, 당 대표마저 인정하지 않는 등, 이들은 통합진보당 내에서 무소불위의 쿠데타군으로 행세하고 있다. 이게 이정희라는 메이크업 뒤에 숨어 있던 당권파의 민낯이다.


 

이들이 범국민적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역으로 그들이 지금 느끼는 위기의식의 가공할 규모를 보여준다. 그들은 당장은 궤멸적 타격을 입어도 잠시만 버티면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을, 아니 믿고 싶을 게다.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객관적’ 위기는 그들이 느끼는 ‘주관적’ 위기 이상으로 험악할 것이다. 이미 사회는 그들을 민주주의를 위해 도려내야 할 암세포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어떤 식으로든 실천으로 이어질 기회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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