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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통합진보당 사태에 관하여 (1) 당권파+(2) 이른바 '종파' /진중권

by 마리산인1324 2012. 5. 7.

<리트머스> 2012/05/06 16:12

http://blog.ohmynews.com/litmus/177034

 

 

통합진보당 사태에 관하여

(1) 당권파+(2) 이른바 '종파'

 

- 진중권 -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진보신당에서 통합진보당 합류를 거절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사실 통합진보당 자체가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바탕으로 화학적으로 융합한 당이라기보다는 생존의 위기에 몰린 세 당이 살아남기 위해 물리적으로 봉합해 만든 콜라주 정당에 가까웠다. 지난 번 지방선거 이후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은 독자적 존립이 불투명했다. 그래서 세 당이 이념과 정책, 조직문화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배에 올랐던 것이다. 일종의 ‘오월동주’라고 할까?

 

사건의 전조들

 

배에 올라타기 거부한 진보신당은 결국 이번 총선에서 ‘해산’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 당의 합당은 생존을 위해서는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일단은 이미 오래 전에 유시민 공동대표의 당무거부를 통해 부분적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시작은 19대 총선 후보 조정에서부터 시작됐다. (...) 대표적인 곳이 서울 성북갑, 성북을, 구로갑, 울산동구 네 지역이다. (...) 중앙당 후보조정위원회가 이들 지역에 각각의 상황에 맞는 경선 규칙 등을 권고했지만 옛 민주노동당 출신 후보들이 모두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공동대표단의 권고 수용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유 대표는 "어떤 분들은 '특정 정파의 횡포'를 거론하지만 저는 이런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통합진보당 안팎에서는 "통합 이전부터 예상됐던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당의 핵심 이유가 됐던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가 다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2012/02/01 유시민 "무력감 느낀다" 당무 거부 '파업')

 

당권파 패권주의의 또 다른 면모는 ‘관악을’에서 벌어진 여론조사 문자 해프닝을 통해 드러났다. 이 문제는 다행히(?) 이정희 공동대표가 여론을 받아들여 신속히 사퇴함으로써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 조사발표를 보건대, 그 사건은 그저 우발적으로 벌어진 단발적 해프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이 당권파가 계파의 차원에서 행한 조직적 선거부정의 일부였다면, 관악을 사건이야말로 이번 조사로 뒤늦게 드러난 전국적 선거부정의 ‘전조’가 된 셈이다.

 

당권파의 논리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인은 '백분토론'에서 시민논객의 질문에 “부정선거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퇴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경선과정에서 총체적인 부실,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조사위의 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그녀는 끝내 사퇴하지 않았다. 어떤 (이상한 ) 의미에서 그녀는 말을 바꾼 게 아닌지도 모른다. 왜? 당권파의 논리에 따르면, 선거 부정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말했듯이, 그들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아니라고 발뺌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수사권도 없이 당 차원의 내부감사 따위로 부정의 전모를 세세히 밝히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당권파는 당 밖으로는 ‘공안탄압’ 코스프레를 하며 당 안으로는 ‘동지를 검찰에 팔아먹느냐’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할 것이다. 실제로 운영위 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정희는 “민노당 시절엔 당직자가 구속이 되면서까지 당원정보를 지켰다.”고 말한 바 있다. 한 마디로, 검찰수사 없이는 부정선거의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잡아뗄 것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적에게 동지를 내주는 배신자로 낙인찍겠다는 얘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선거부정의 확실한 증거가 아니다. 설사 검찰이 부정선거의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고, 그 증거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사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분당을 부른 '간첩' 사건 때 이른바 '자주파' 당원들은 피의자가 법정에서 인정한 혐의사실마저 부정했다. 어떻게 적들의 검찰, 적들의 법원에서 행해진 진술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게 그들의 논리다. "동지의 말을 믿어야지, 왜 적의 말을 믿느냐?" 이게 그들의 멘탈리티다.  

선거부정을 부인하는 또 다른 방식은 사태를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치부하는 것, 즉 선거부정의 적발이 당권파를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우기는 것이다. 선거부정은 과거에도 다양하게 일어났으나, 그때마다 사건은 ‘NL/PD의 해묵은 이권싸움’으로 계열화되고, 그로써 사태의 본질은 간단히 증발하고 말았다. 이번에 유시민 공동대표가 후보직을 사퇴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경선으로 뽑힌 14명의 후보를 사퇴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를 승계한다면, 당권파 측에서는 당장 이 사건을 ‘유시민의 음모’로 몰아갈 것이다.


이정희 너마저도

 

이번에 대중을 가장 경악시킨 것은 이정희 대표의 표변한 얼굴일 것이다. 사실 ‘NL’이라 불리는 세력의 문제는 대중친화적인 인물이 없다는 데에 있다. NL이라는 이념 자체가 이미 시대착오가 되었고, NL의 낡은 조직문화는 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형 소통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인물난’ 속에서 이정희는 NL과 대중을 연결하는 유일한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했고, 그 역할은 꽤 성공적이었다.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인은 당권파 측에서 이 성공에 고무되어 ‘제2의 이정희로’ 키우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얼굴마담’이라 해도 상대적 자율성은 있는 법. 이정희의 대중적 친화력은 바로 이 상대적 자율성에서 나온다. 그가 경기동부연합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면, 그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것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딴지일보 기사를 시발로 언론의 보도로 ‘경기동부연합’과의 고리가 드러났을 때, 그녀는 예상을 뒤엎고 사퇴의 결단을 내렸다. 몇몇 매체는 그녀의 사퇴 결심이 조직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거리’가 대중정치인으로서 그녀의 이미지를 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예 부정선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녀는 방송을 지켜보던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녀의 표변한 얼굴은 공포영화 ‘링’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회의의 진행을 지연시켰고, 회의장에 난입해 소란을 피우는 당권파 당원들을 퇴장시켜달라는 요청조차 “당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이렇게 애써 가꿔온 대중정치인의 이미지를 스스로 내던져버리며 특정계파를 옹위하는 결사대로 나선 모습은 솔직히 소름이 끼쳤다.

 

정당 속의 정당

 

NL이라는 세력에는 매우 비판적이지만 이정희이라는 정치인만은 아끼고 싶었다. 그녀에게서 내가 바라는 NL의 미래, 혹은 NL의 진화한 형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버젓이 “국민들 눈높이에 맞출 것이 아니라, 당원들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이야 뭐라 하든, 자신의 계파, 즉 당권파의 뜻에 따르겠다는 얘기다. 자신이 대표를 맡은 공당에 대한 책임보다는 자신이 속한 계파에 대한 의무가 중요했던 모양이다. 계파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초개같이 내던졌다.

 

민노당 시절 강기갑 대표도 그 세력과 종종 갈등을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젠가 ‘칼라 TV'로 울산북구의 경선 과정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그를 만나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는 흔쾌히 요청에 응했으나, 잠시 후 어느 이름 모를 당직자가 다가와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 "대표께 직접 허락을 받았다.”며 항의하면서 강기갑 대표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그 분은 난감한 표정으로 먼 산만 쳐다보신다. 공당의 대표가 이상한 계파의 허락 없이는 인터뷰마저 마음대로 못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당 속의 정당이라는 현상, 즉 공적으로 위임받은 공당 ‘대표’의 권한을 넘어서는 더 큰 비공식적 권력이 있다는 짜증나는 현실이다. 2008년 총선에서 분당으로 위기에 몰린 민주노동당은 이수호 비대위 체제 아래 자주파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강기갑-이정희의 투톱을 내세워 5석을 확보했다. 그 후 강기갑 대표가 ‘사무총장에 치인다’는 말이 들리더니, 결국 사령탑이 이정희로 교체되었다. (프레시안, 2012/05/04 반성없는 당권파 '패악질'…통합진보, 어쩌다 이 지경 됐나?)

 

표면적으로는 지도부의 세대교체처럼 보였으나, 이정희 대표체제는 결국 자신감을 얻은 자주파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는 신호탄으로 드러났다. ‘혁신’으로 보였던 이정희 체제가 사실은 ‘수구’의 복귀였다는 것. 이것이 지금 대중이 받는 충격의 정체다. 당의 대표로서 중재역을 하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노골적으로 계파의 이익을 대변했다. 이로써 대중정치인으로서 이정희의 생명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대표까지 버리는 카드로 사용하는 것을 보니 매우 다급했던 모양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당권 줄게, 지분 다오

 

통합진보당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나, 이석기 당선인이 유시민 대표를 찾아가 거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는 사실로 보인다. 이 당선인이 유 대표를 찾아간 것은 피차 인정하는 사실이고, 얼마 전 이정희 공동대표가 유 대표에게 당권을 맡아 일을 수습해달라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석기 당선인이 유 대표를 찾아가 내놓은 흥정은 ‘당권 줄게, 지분 다오’였다. 결국 이정희는 내쳐도 좋으니 자신은 인정해 달라는 얘기다. 여기서 ‘실세’가 누군지 분명해진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권파 측에서 비공식적으로 ‘비례대표 1번을 내놓겠다.’고 제안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다. 결국 당권파 측에서는 1번을 내침으로써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꼽히는 2번 이석기와, 그들이 ‘제2의 이정희’로 공을 들여왔다는 3번 김재연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1번 윤금순 당선인은 두루 신망을 얻은 인사로 NL 계열이나 경기동부연합 소속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6명의 비례대표 당선인 중 유일하게 자진 사퇴의 의사를 밝혔다.

 

사실 구 민노당에는 대중적 친화력을 갖춘 인물이 없었다. 분당 후에는 대중강연 하나 열기 힘들 정도로 인물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의 수장들 대신에 ‘얼굴’이나 ‘간판’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가령 그들이 지원했던 강기갑, 권영길과 같은 인물은 이념색이 엹고, 이정희도 한동안은 이념색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 합리적 자유주의 내지 진보주의의 인터페이스로 지지를 획득한 후, 조직투표나 부정선거로 그 성과를 자신들이 가로채는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실세’의 귀환은 암초를 만났다. 그들이 정당정치의 영역에 나오려면 두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자신의 이념을 당당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당권파의 ‘실세’들은 내용과 형식의 이 두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의 지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방식으로 공적 검증을 피해 데뷔를 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지하의 운동권 조직이 학생회와 같은 대중조직을 말아먹는 80년대의 방식은 21세기의 정당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가공할 시대착오다.

 

운영위 회의장에 몰려들어와 욕설을 퍼붓던 당권파 당원들의 행동 역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지영 작가의 말이다. “모두가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저 정도인데 안 보는 곳에서는 어떨까? 대체 지성이 무엇이고 자기 성찰은 무엇일까. 80년대 토론 중에서 남이 무슨 말을 하든 앵무새 같은 말을 반복하던 날들의 재방을 보는 것 같다. 30년 전이다. 오월이 부끄럽다." 추종자들이 ‘결사옹위’하는 것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광적인 행동은 외려 귀환하는 그 분이 ‘해리포터’의 볼드모트라는 인상만 줄 뿐이다. (to be continued)




통합진보당 사태에 관하여(II) - 이른바 '종파'


이른바 ‘연합’ 세력 내에서도 ‘경기동부연합+광주연합’ vs. ‘인천연합과 울산연합'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비례대표 1번 윤금순의 자진사퇴는 연합 내의 이견을 상징한다. 그나마 비당권파가 총사퇴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도 연합 세력의 일부가 비당권파에 동조한 덕분이다. 이렇듯 소위 ‘자주파’(NL) 세력들 사이에도 온도나 색깔의 차이는 있는 모양이다. 그 차이는 결국 ‘현실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충격적으로 확인했듯이, 경기동부연합+광주연합은 완전히 현실감을 상실했다.

 

충격의 근원

 

대중의 충격은 이들의 행태가 도대체 상식을 초월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사회상식이라는 이해의 지형을 초월한 이들의 행태는 사이비 종교집단을 연상케 할 정도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대중을 ‘멘붕’시킨 그들의 독특한 멘탈리티를 알아야 한다. 비당권파에서 파국을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당권파는 ‘분당’도 불사할 태도를 보이고 있다.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버티는 것은, 이번 사태가 그들로서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어떤 부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들이 파국을 무릅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려나가던 상황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분당을 불사하고 ‘간첩’ 활동을 한 당직자를 징계하자는 안건을 부결시켰다. 한 마디로 문제를 일으킨 ‘한’ 명의 당원을 보호하느라 공당을 파괴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정신세계 속에서는 그 자를 내치는 것이 곧 북한과 자신들을 연결하는 정신적 탯줄을 끊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게다가 NL 계열은 독특한 지도자 중심의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가령 전대협 시절 의장‘님’을 ‘옹립’하고, 결사 ‘옹위’하던 문화를 생각해 보라. 오래 전 강철 김영환이 전향을 했을 때, 그를 따르던 수천 명의 조직원이 집단으로 전향한 바 있다. 개인숭배 문화의 희극적 절정이랄까? 이 독특한 조직문화의 사상적 기원을 언급하는 것은 남세스러운 일이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실세’를 보호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리라. 심지어 이정희마저도 자신을 초개처럼 내던지며 스스로 버린 카드를 자처했다.

 

경기동부연합의 딜레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저 독특한 이념과 조직의 문화가 그들에게는 운동을 하는 ‘이유’ 자체다. 여기서 어떤 ‘딜레마’가 발생한다. 경기동부연합이 저런 이념성향과 조직문화로 공개적으로 나설 수는 없다. 적어도 정당정치의 영역에 들어올 때에는 이념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모든 결정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연히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경우 자신들의 이념성향과 조직문화를 포기해야 한다. 한 마디로 그들이 운동을 하는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딜레마를 피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특유의 이념성향과 조직문화를 희석시켜 현대의 민주적 정당정치에 적응하는 길이다. 이것이 수많은 유권자들이 이정희에게 기대했다가 보기 좋게 배반당한 바로 그 길이다.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개혁/진보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후 그 지지를 나눠 먹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대중적 신뢰를 받는 정치적 ‘명망가’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세력의 ‘조직세’를 맞바꾸는 거래인 셈인데, 항상 그렇듯이 모든 거래에는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 거래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거래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른 연합세력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늘 파이를 독식하려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째, 자기들 몫으로 내놓은 후보가 공적인 무대에서 대중적 검증을 통과할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이 점에 관한 한 이제까지 큰 무리는 없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들이 이번엔 그 자리에 ‘실세’를 밀어 넣으려 했다는 데에 있다. 이석기 후보는 실체도 불분명한 조직(?)의 수장일 뿐, 주사파 활동하다가 구속된 것 외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종파의 문제

 

결국 그들의 딜레마는 ‘이념’을 고수하면 지지를 못 얻고, ‘조직’을 보위하면 대중을 못 얻는다는 데에 있다. 지지를 얻으려면 이념성향을 희석하고, NL의 조직문화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정희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 성공에 그들은 고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희가 노골적으로 조직, 즉 경기동부연합의 이해를 옹호하고 나서자 대중의 지지는 순식간에 증발하고 말았다. 김재연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한때의 호감은 더 큰 혐오감으로 전환하고 만다.

 

김진숙씨는 이를 ‘종파’라 불렀다. 사실 종파를 의미하는 ‘sect'는 정치와 종교에 두루 쓰이는 말이다. 가령 사이비종교의 문제는, 그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행하는 언행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는 데에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신앙공동체 안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 사회적으로는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종교와 달리 사이비종교는 신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고, 그 간극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 결과 내적 광신의 상태에서 현실감을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같은 세력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던 민주노총마저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경기동부연합의 행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감을 상실하다 보니, 백일하에 드러난 부정선거의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자신들이 받는 사회적 비난이 ‘노무현 대통령을 향하던 언론의 질타’(이정희)와 같다고 버젓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버젓이 카메라가 돌아가는데도 운영위 회의장에 몰려가 회의를 봉쇄하고 반대자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는 광기도 방송국으로 몰려간 사이비종교의 신도들을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