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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문화지수 제로 정권'의 시인 도종환에 대한 폭력 /프레시안20120709

by 마리산인1324 2012. 7. 10.

<프레시안> 2012-07-09 오전 11:29:2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709110207§ion=01

 

 

'문화지수 제로 정권'의 시인 도종환에 대한 폭력

[김민웅 칼럼]<96> 너희가 파블로 네루다를 아느냐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어이없다

이명박 정권이 하는 짓이 매사가 이렇다. 문화지수 제로 상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산하기관 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중학교 국어 검정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의원의 작품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내린 것이다. 말은 "권고"지만, 수정보완이 미진할 경우 검정 교과서 합격 취소가 가능하다고 밝혀 실질적인 삭제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정치인의 작품이므로 교체 바람' '국회의원 당선자의 작품이므로 부적절함' '특정 인물에 대한 편파적 옹호임' 등이다. 어이가 없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실 이명박 정권이 도종환 시인이자 국회의원의 작품을 달가워 할 까닭은 없다. "담쟁이" 같은 작품은 함께 손을 잡고 연대의 힘으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폭력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표명할 때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유쾌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참에 교과서에서 도려내고 싶었나보다.

▲ 교과부가 도종환 의원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시스
문학작품에 대한 모독

야비하고 치졸하지 않은가? 문학작품의 가치를 그런 식으로밖에 볼 줄 모르는가? 그에 더해, 멀리 내다보고 이루어나가야 할 교육이 어찌해서 정권의 이해관계나 입장에 따라 좌우되어야 하는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면 당장에 삭제권고 조치를 취소하고 당사자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과를 해야 할 일이다. 이런 모독이 어디 있는가? 그 모독은 단지 작품의 저자에게만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 모두를 향해 저질러진 횡포다.

우선 도종환의 작품은 교과부가 삭제의 이유로 내세웠던 것처럼 정치인의 작품이 아니다. 시인으로서 써온 작품들이다. 그에 더해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들로서, 그러한 평가 위에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난데없는 폭언인가? 문학작품은 작품 자체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우선해서 논하기 마련이다. 문인시절 썼던 작품이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면 작품성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말인가? 게다가 국민들에게 사랑받아온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수되는 것이 어째서 "특정인물에 대한 편파적 옹호"인가? 문학작품에 대한 교육이지.

가령 시인으로서 정치인이 되었던 김춘수의 작품 "꽃"을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해서 지금 교과부가 앞세운 이유를 들어 문제 삼은 적이 없다. 왜? 당연하지 않는가? 시인으로서 심혈을 기울여 썼던 시기의 작품 가치가 그의 정치사회적 신분변화에 의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금서조치를 취하듯, 정치인이 되면 그의 작품은 후세에게 교육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그 자체가 동기가 불순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정신을 가진 정치를 꿈꾸며

이 사안은 시인이 정치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면 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도종환에게 시인이 시인으로 살지 왜 정치에 뛰어드는가,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권력욕이 아니라 문화계의 대표로 역할을 하기 위해 시인으로서의 삶을 일단 희생시키는 결단을 했다면 그건 당사자에게는 고뇌에 찬 결정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한편 아쉬우면서도 한편 고마운 일이다. 여기서 아쉽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그만큼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써 그의 문학작품이 교과서 삭제라는 난행을 당할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 정치가 인문정신을 가진 시인과 만난다는 점에서 시인이 있는 정치는 국민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치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예술이라고 하지만, 술수가 대세인 현실에서 예술정신을 지닌 이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시인 도종환을 아끼는 이들은 그가 정치로 길을 선택했을 때 아파했다. 마음 결 고운 그가 그 난리 통 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견딜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역정이나 그의 작품세계에서 드러난 정신이나 그의 성품이나 그의 세계관을 보더라도 국회의원 도종환은 시인 도종환 못지않게 진솔하게 활약할 것이다. 그는 꽃 하나 피워내기 위해 바람에 흔들려도 마다하지 않으며, 저 혼자 빠르고 멀리 앞서 가기보다는 손잡고 담쟁이처럼 "어쩔 수 없는 벽처럼" 보이는 담을 함께 넘어서는 모습으로 정치를 할 것이다. 정치란 바로 그렇게 하면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말대로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또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에 더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시인의 마음을 고문하는 권력이 있기에 시인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도종환의 시 <강>

우리는 시인의 작품을 난도질 하는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시인이 정치인이 되었다고 그가 시인이 아니지 않다. 그는 도리어 정치에 시인의 영혼을 불어넣는 이가 될 수 있다. 파블로 네루다를 잊었는가? 그가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사실에 대해 이 나라 정권은 어떻게 생각할까?

도종환은 언젠가 다시 시인의 자리로 귀환할 것이다. 그런 그를 모욕하지 말라.

어느 전철 역 승강장 유리창에 실린 그의 시 <강>이다.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

너희는 우리를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는 우리를 더럽다 하겠느냐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이게 도종환의 시이고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