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 2012년 7월호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4) |
펜들힐 일기(4) |
빛의 십자가
뉴욕 한인교회에서 목회하는 후배 조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크로이를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그 안에 어떤 십자가를 두면 좋을지 자문을 구하는 전화였다. 크로이(Croi)는 아일리쉬(Irish)말로 심장이란 뜻이다. 북아일랜드에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해 온 코리밀라 공동체(Corrymeela Community)가 있는데, 그 공동체의 중심에 ‘크로이’란 이름의 기도처가 있다. 달팽이형의 지하로 만들어 놓은 작은 돔형 공간이다. 북아일랜드의 갈등하고 싸우는 집단들은 이곳에서 모든 인위적인 갈등과 증오심을 풀고 화해와 일치감을 체험한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상징이며, 화해를 체험하는 자리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조목사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안에 크로이를 두고 싶어 했다.
어떤 십자가를 크로이 안에 두면 좋을까?
눈이 많이 오는 날, 환한 빛 속에서 나는 ‘빛의 십자가’의 영감이 올라왔다.
빛의 십자가….
크로이(심장) 기도실의 십자가는 빛의 십자가이다.
투명한 크리스탈 안에 빛을 넣어서 형상화 시킨 빛의 십자가는 어떨까.
절망하고 낙담한 사람에게는 소망의 빛
흩어지고 불신하며 갈라진 교회 공동체에게는 사랑과 치유의 빛
어둔 세력에 지배당하는 세상을 향해서는 예언자적 빛이 되는 빛의 십자가
빛의 십자가가 우리 가슴속에, 우리 교회 안에 켜지도록 하자.
은밀한 지성소를 잃어버린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새벽 눈을 쓸던 날
문득 펜들힐에서 지내는 날들의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의 기록이다. 이곳에서의 날들은 특별한 은총을 받은 날들이니만큼 잘 적어 놔야겠다 싶다. 나만 느끼는 삶의 기쁨이 아니라 다른 이와도 나누는 삶의 기록이어야 하지 않을까. 딸들 이야기도 적자. 그 딸이 장차 성장하여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보자.
펜들힐에 눈이 많이 왔다. 수요일 아침이다. 수요일 오전은 펜들힐 사람들 모두가 일하는 날이다. 모두가 제각각 공동체의 곳곳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눈이 많이 내린 오늘 같은 날은 단연 눈 치우는 일이 압권이다. 셔블링(shoveling), 우리말로는 눈 치우는 삽질이다. 넓은 마당의 눈 치우는 일을 선택하면서 나는 10년 전 이곳에서 이른 새벽 눈 치우던 일을 기억한다. 10년 전 나는 밤새 눈이 내린 날 새벽에 일어나 눈을 쓸었다. 로이드라는 친구와 함께였다. 장학금을 받으면 일정 시간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의무를 갖는데 나는 공동체의 건물 관리와 외부 환경 조성을 맡아 일하는 로이드를 도와 일하곤 했다. 로이드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10년 후에 돌아 온 펜들힐은 그때 일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바뀌었는데 로이드는 여전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어 반가웠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나는 로이드와 함께 눈을 쓸면서 길을 만들었다. 쌓이는 눈을 쓸고 뒤돌아보면 다시 쌓여 있고, 돌아가 다시 쓸면서 우리는 떠오르던 해를 맞이했다. 로이드는 사람들이 일어나 아침 식사하러 가는 길을 쓸어놓아야 넘어지지 않고 안전할 것이라면서 열심히 셔블링을 했다. 아침 먹으러 가는 공동체 친구들의 안전한 발걸음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눈을 치우고 또다시 쌓은 눈을 치우던 그의 마음과 일하는 자세는 지금도 내 가슴에 울림을 준다. 그런 마음과 일이란 참 거룩하다. 이제 나도 눈을 쓸어내면서 그런 마음을 가져본다.
좋은 부모 good parenting
아이들과 펜들힐에서 9개월을 보내고 이제 떠날 시간이다. 아침 침묵 예배 중에 문득 좋은 부모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부모일까?
1년 동안 펜들힐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난다. 미국의 집으로 혹은 해외에서 온 친구들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간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 학교가 며칠 더 남은 관계로 펜들힐에 남아 있다. 친구들이 떠난 쓸쓸해진 펜들힐에서 우리는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우리도 며칠 후면 펜들힐을 떠난다. 떠날 날을 며칠 남겨두고 저녁 노을을 느끼며 걷는 펜들힐 길이 더욱 마음 깊이 느껴진다. 그 길을 아내와 걸으며,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에게 이 펜들힐에서의 날들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모처럼 갖는 부부만의 평화로운 산책인데 아이들 이야기가 주제이다. 부모란 이런 운명을 타고난 존재의 이름인가보다. 오늘 아침 침묵 예배 중에 생각한다. 나의 목숨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 자식들이다. 나의 목숨으로 자식을 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아낌없이 줄 수 있다. 부모란 그런 존재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 한다. 이것은 창조자와 피조물, 신과 인간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무너뜨린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부모와 자식이다. 하나님은 자식을 위해 죽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이 되어 십자가에 달린다. 이 세상 자식들이 죽어야 할 것을 대신하여 죽은 부모의 사랑이다. 이것이 초기 교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깨달음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 사랑의 새로운 계시로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하나님 곧 자신의 죽음이다. ‘예수는 하나님이다’ 이것을 사도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은 깨달았고 믿었다.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부모의 사랑 체험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랑의 신비는 오늘 우리들 핏속에 이어져 내려온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사랑은 자기 목숨도 내 줄 수 있는 신비한 생명력이다.
부모의 무분별한 사랑은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더라도 물질적 분별력을 지켜야 한다. 비싸고 사치스런 집과 자동차, 고급 음식과 옷들로 자식들을 키우고 싶어 한다. 부모의 지나친 교육적 열정도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 현명한 부모는 물질적 사랑을 조절할 줄 안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을 물질적으로 조금 부족하게 키운다. 그러할 때 자식들은 물질의 소중함을 알고, 물건을 검소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가난하지만 검소하게 사는 부모에게서 좋은 자식이 많이 나온다. 검소한 생활은 인색한 생활과 다른 것이다. 검소한 삶은 가치있는 삶을 위해 물건을 잘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자식에게 좋은 것일까? 좋은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므로 먼저 잘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마치 도를 닦는 것과 같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 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풍요로운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 아이들이 잘 자라는 데는 적은 물질에 많은 영성이 더 좋은 영향을 준다. 좋은 부모는 먼저 부모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을 지키는 부모이다. 영적으로 자식을 양육하자. 이것은 다만 종교적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영적 자녀 양육의 바탕은 이해와 존중과 대화이다. 이렇게 자라난 자식은 외적 환경의 어려움이나 정신적 곤경을 잘 헤쳐나 갈 줄 아는 능력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된다. 이것이 영적 양육이다. 이것이 좋은 부모이다.
펜들힐에서 우리는 좋은 부모로 살았는가. 검소하고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 펜들힐은 검소한 삶과 영성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그려볼 수 있었다. 이것은 펜들힐 공동체가 우리 가족에게 준 선물이다. 비록 두 딸 세온과 하영은 어리지만 그 가슴 속에 이 삶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으리라 믿는다. 언젠가 미래 어느 날엔가 그 씨앗은 싹을 틔우리라. 자식에게 생명을 줄 만큼 사랑한다 해도 바르게 키우는 길은 지혜가 필요하다. 생명을 기르시는 분은 하나님을 명심하도록 하자. 이 궁극적인 지혜가 좋은 부모 되는 일에 필요하다.
고독한 영성과 사회적 영성
영성은 별도의 개인 고독을 요청한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은둔하는 삶을 갖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과 시끄러운 잡사속에 묻혀 살면 자신만의 고요한 영적 추구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성은 고독한 시간을 요청한다.
영성은 일상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홀로 고고하게 추구하는 영성도 귀한 것이지만 평범한 삶 속에서 영성은 빛을 발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평범함 가운데 성스러움을 추구한다. 사회적 영성은 일상 세속 사회 생활 속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예수의 삶을 돌아보건데 어느 쪽이 더 많았는가?
그는 때론 고독하게 홀로 떨어져 기도했다. 동시에 그는 세속 사회에서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했다. 고독한 영성과 사회적 영성은 같이 있을 때 빛이 난다. 이 둘은 같이 또 따로 늘 우리 삶 속에서 빛나야 한다.
어리석음에 대하여
어리석음(stupidity)은 악한 일보다 더 나쁘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양심의 거리낌이라도 갖지만, 어리석음은 나쁜 일의 인식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옥중서신에서 본회퍼는 궁극적인 문제로서 이 어리석음의 문제를 숙고했다. 그는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했다가 체포되어 옥사했다. 왜 그는 옥중 상황에서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일까? 히틀러의 악마성은 악 그 자체라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본회퍼의 눈에 비친 히틀러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악한 짓인가를 모르던 어리석은 자다. 이 어리석음이 거대 악을 낳는다. 히틀러의 어리석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게다. 히틀러를 칭송하고 찬양하며 지지하던 독일 제국교회와 지도자들, 그리고 대다수 독일인들의 어리석음을 본회퍼는 통렬하게 아파했던 것이다.
이 어리석음은 오늘도 변함없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악한 줄도 모른 채 악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필시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악한 지도자의 어리석음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악한 지도자를 찬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 어리석음은 어리석음 자체도 모르는 것이니 어찌 이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어둔 심연, 이것이 스올(Sheol),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우리는 이 어리석음의 심연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고난과 용서.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는 자신을 못 박고 조롱하는 이들의 용서를 구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고난과 용서이다. 고난의 체험은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는 기회이며, 용서는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의 힘이다.
매일의 기도. 기도는 나 자신을 성찰하고 물어보는 일이다. 나의 어리석음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깨달으면서 살고 있을까? 매일 기도하고 깨어있으라는 예수의 말씀은 바로 이런 것을 하라는 것이지 아닐까. 나는 어리석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미몽에서 깨어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이다.
2011년 5월 17일-25일 자메이카 킹스톤에서 열렸던 국제 기독교 평화회의에 참석했던 한국 대표들을 초대한 가운데 뉴욕 한인교회(우리교회: 조원태 목사)에서 평화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가난한 목사는 물질적 신분적 혜택을 받기위해 미군 입대를 고민하는 아들에게 미국 제국주의의 용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아버지이지만 자신이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하는 길을 아들이 걸어가게 할 수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선택을 따랐다. 이런 고백적 이야기에 한 여인이 흥분하면서 비난했다. 무능력하면서 왜 아들의 길을 막느냐고, 미 제국주의가 싫으면 미국을 떠나라고. 어리석음은 자신에서 그치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자신을 못박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보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매일 깨어 기도하는 삶을 기도한다. (2011. 5. 31. 뉴욕 평화포럼을 마치고).
지미 카터 평화센터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애틀란타에 갔다. 지미 카터 센터와 남북한 평화를 위한 향후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에모리 대학과 인접한 작은 숲 속에 자리잡은 둥그런 원형 건물의 카터 평화센터는 잘 가꿔진 정원과 나무들로 편안하면서도 기품을 느끼게 한다. 안에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가 있다. 이미 약속이 잡혀있는 평화와 갈등해결 프로그램(Peace and Conflict Resolution Program) 국장 하이르 바리안(Hrair Balian)씨에게 전화로 연락해 준다. 잠시 기다리면서 둘러보니 둥그런 홀 안에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앉아 기다릴 수 있는 의자들이 있고 커다란 지구본이 있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일하는 카터 센터의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조금 후에 하이르 국장이 반갑게 우리 가족을 맞이한다. 하이르 국장은 인터넷 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아서 나도 처음 만나는 사이이다. 50대 중반의 편안하고 친절한 얼굴이다.
하이르는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한다. 중간에 또 하나의 둥그런 홀이 있는데 젊은 청년들이 수십 명 모여 컴퓨터도 하고 대화도 하고 있다. 저들이 누군가 물으니 세계 각국에서 온 인턴 대학생들이라 한다. 카터 센터는 매년 대학생 인턴들이 와서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이곳에 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하이르 국장 사무실에서는 애틀란타 중심가가 훤히 내다보인다. 코카콜라 본사, CNN 본사, 아메리카 은행 빌딩이 시내 중심에 서 있다. 잠시 소개를 한 후 가족은 카터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가고 나는 하이르 국장과 대화를 했다. 하이르 국장은 본래 중동 출신 변호사로서 UN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3년전 카터 센터에 와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카터 센터의 주요 과제는 중동 분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므로 하이르 같은 중동 출신 평화 전문가를 스카우트 한 것이다.
카터 센터는 세계 평화를 위해 1983년 세워진 민-관-학 합작 평화기관이다.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추진했고, 조지아 주 정부와 에모리 대학이 법적 물적 인적 자원으로 협력하여 1983년 설립되었다. 60여명의 전문 연구진이 전 세계 갈등 중재와 평화 구호활동 분야에서 일하고, 또 다른 60여명이 기금 모금과 행정 분야에서 일한다고 한다. 현재 사무총장은 의사 출신으로 카터 센터 초기부터 참여해 일한 사람이다. 건강 문제는 카터센터의 중요한 평화사업으로서 카터의 부인 로잘린 여사가 주로 관심을 갖고 발전시킨 분야이다. 전쟁과 평화, 분쟁 해결과 구호 활동과 함께 건강 문제를 중요한 평화 운동의 과제로 다룬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우 인상깊게 느껴졌다.
나는 귀국 후 국경선 지역 마을에서 ‘국경선 평화학교’(Border Peace School:BPS) 운동을 시작하여 남북한 갈등과 평화 건설 문제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데, 지미 카터 센터와 협력관계를 맺고 싶다는 나의 방문 목적을 하이르 국장에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카터 센터의 주요 관심 사업이 중동, 남미의 평화문제에 집중하는 중이라 남북한 문제로 사업을 확장할 수 없는 카터 센터의 사정을 나에게 설명했다. 한반도 분단 이슈는 카터 대통령 개인의 관심사이며 카터 평화센터의 주요 관심사는 지금도 앞으로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앞으로 중국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계획이 있다고 한다. 한반도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자신들도 우리 문제를 소홀히 하는데 타국의 평화 기구가 중시할 리 없다. 그러나 나는 남북한 갈등이 동북아 평화, 그리고 미국이 개입된 세계 평화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했다. 국경의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당면한 분쟁의 씨앗이고 국제평화를 위한 중요 문제임을 설득한다. 앞으로 내가 남북한 국경 지역에서 국경선 평화학교 운동을 전개할 때 카터 센터와 협력관계를 맺고 싶은 의지를 밝혔다. 하이르 국장은 한반도 문제에 관련하여 특별히 예산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재정문제를 염려하는 하이르 국장에게 나는 카터 센터에 재정 도움을 요청하고자 온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 후, 앞으로 카터 센터와 협력하는 행사를 할 때 한국에서 필요한 재정은 독자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세가지 점에서 카터 센터와 협력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하나는 지미 카터 센터의 분쟁지역에서의 축적된 분쟁해결 경험과 지혜가 우리 한반도 평화형성을 위해서 필요하다. 남북한 분쟁 해결 문제를 주제로 카터 센터의 전문가들과 한국 전문가들과 공동 워크샵을 갖자. 둘째, 국경 문제를 세계 평화의 주제로 삼아 남북한 비무장지대에서 카터 센터와 공동으로 국제 평화회의를 하자. 셋째, 카터센터의 평화 자료와 남북한 평화 자료를 서로 공유하자. 대화를 끝낼 무렵 하이르 국장의 얼굴은 많이 긍정적인 모습이 되었고 앞으로 계속 서로 관심을 갖고 연락을 이어가자고 한다. 개인적 방문이었지만 카터 센터의 평화담당 책임자와의 만남은 좋았다.
나는 카터 센터가 갖고 있는 갈등 현장 경험에 기반한 갈등 해결 자료들과 전문가들이 앞으로 남북한 갈등 해결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며, 이들이 남북한 갈등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카터 센터 방문은 남북한 국경선 평화학교의 유용한 국제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확인한 방문이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카터 평화센터와 같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기관과의 공동 협력 사업은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지미 카터 센터에 대한 첫 인상은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숲속 마을에 있는 카터 센터는 둥그런 지붕 세개가 서로 이어져 있는 건축물로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가지 깊은 영감을 받았다. 대학생 인턴들의 활동을 보면서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이런 곳에 와서 평화의 비전을 세계 친구들과 함께 넓혀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평화센터가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카터 센터 안에 있는 ‘카터 평화박물관’에는 카터 대통령이 2002년 수상한 노벨평화상 메달에서부터 대통령 재임시절 중동 평화협정, 소련과의 평화 활동, 그리고 부인 로잘린 여사의 정신병자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평화봉사 활동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 부부의 헌신적인 삶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깊이 생각한다. 하이르 국장은 많은 자료가 보관된 아카이브를 보여준다. 허락을 받으면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장과 연구의 결합과 소통은 평화운동 발전에서 매우 긴요하다. 연구 활동은 현장에서의 실천에 매몰되지 않고 늘 반성적 성찰을 돕는다. 동시에 현장경험은 연구에 구체성을 준다. 현장과 연구, 이론과 실천의 기록을 보관한 아카이브를 보면서 나는 카터 센터가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기관임을 느낀다.
카터 평화센터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평화센터를 꿈꾼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김대중 대통령도 이런 형태의 평화센터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 수준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다. 카터 센터에서 나는 그 꿈의 좌절이 참으로 아쉬웠다. 미국의 카터 센터와 같이 우리나라에도 김대중 평화센터가 세워졌다면 남북한 평화에 기여하고 아시아 분쟁지역에서 평화 건설을 위한 기여하리라 믿는다. 함석헌 평화센터를 꿈꾸었던 사람들도 있다. 수년전부터 그 일을 추진해 보려는 노력이 있다. 아직도 구상일 뿐이다. 그러나 꿈을 꾸면 언젠가 반드시 실현된다. 우리나라 어딘가에 카터센터와 같은 평화센터가 세워지기를 기도해 본다. 남북한 평화를 위해 국경선 평화학교를 하게 될 강원도 철원에서 이 꿈을 세워볼까나? (2011년 7월 1일 애틀란타 지미 카터 센터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정지석 l 목사는 영국 우드부룩(Woodbrooke)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KNCC,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UNESCO-APEIU 국제이해교육원에서 평화교육가로 일했으며, 성공회대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평화윤리와 교육을 강의했다. 한국 YMCA 생명평화센터 소장이며, 작년 펜들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현재는 철원에서 국경선 평화학교 설립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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