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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406
좌담: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 ||||||||||
哲學者로 본격 조명 필요 … 行動 정신 계승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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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함석헌’에 집중해서 서술
김용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쓸 수 없었을 텐데 말이죠. 이걸 쓰게 된 것은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내 동기 송석중과 관련이 깊습니다. 1940년대 후반 김교신, 함석헌 선생 등이 여름, 겨울 송두용 선생 댁에 모여 집회를 했습니다. 송두용 선생 아들인 송석중 씨가 저와 동기간인데 1949년 이전은 내가 모르니까 송석중이 니가 쓰고, 그 후는 내가 써서 우리가 함석헌 전집을 하나 내자, 이런 약속을 했었는데 이뤄지지 못하고 미뤄져 왔습니다. 그래서 연재를 하게 되었는데, 군사독재 때 함석헌 선생의 반독재 활동은 글에 많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꽤 많이 이야기가 돼왔기에 내가 본 함석헌, 거기에 초점을 뒀던 것이죠. 다만 운동권에 대한 함 선생의 크리티시즘이 있었는데, 그걸 내 나름대로 담으려 했고, 느낀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오늘 모인 분들을 보니까, 김용준 선생님은 함 선생님께 배운 1세대이시고, 저는 1.5세대, 김상봉 박사는 2세대인 것 같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가끔 ‘진리의 바통’ 얘기를 하셨는데요, 이걸 누구한테 넘겨줄 것인가 하면서 말이죠. 김용준 선생은 1세대니까 복이 많으시고. 2세대 3세대도 나와서 참 좋습니다.
그 때 제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 자아와 주체성의 문제였습니다.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 주체성은 굉장히 남과 북, 전통과 현대 등으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함석헌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책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죠. 아, 이게 단순한 자기역사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절망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길어내려고 하는 시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수 철학적인 텍스트로 눈에 확 들어와 그 후 한국 20세기의 유일한 철학자는 함석헌 선생이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굉장히 경이롭게 느꼈던 게 함 선생 책은 꼭 플라톤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당시 아테네의 일상적인 생활들을 늘어놓으면서 거기 철학적인 화두를 늘어 놓았는데 제가 함 선생 책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받는 것이 그 분이 자기 시대를 치열하게 통과하면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사유, 정신적인 사투를 벌이면서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저는 2세대로서 함 선생님을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사도바울처럼 정말 우연한 기회에 말씀만으로 감화를 받은 사람인데, 그것이 도리어 함 선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성계, 학계에 우리가 이런 자랑스런 철학자를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구요.
그러나 함 선생님은 참으로 폭넓은 분이셨습니다. 하나의 종교에 머무르신 분이 아니잖아요. 기독교, 노장사상, 인도종교, 순환사관, 불교철학적 측면도 있고요. 나의 문제를 자각하라는 모토가 불교와 밀접하게 연결돼있거든요. 저는 아직 함 선생 발길에 차여서 살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그 분이 제시하는 사상의 틀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적으로 한국의 민주화도 함 선생이 주도한 비폭력 혁명이었다고 봅니다. 또 함 선생이 내세웠던 국가를 극복하는 문제, 함 선생이 민족주의자가 아니진 않지만 말하자면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분 아닙니까. 그리고 그분 사상의 응축된 개념인 ‘씨알’ 민중사상의 한 단초를 제공하셨는데, 모두 그분한테서 얻어서 민중사상을 전개한 것 아닙니까.
民이라는 말, 민이 씨알이다는 화두를 유영모 선생이 던져놓았는데, 함 선생은 이걸 갖고 나름대로 체계화시키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씨ㅇ·ㄹ사상’은 정말 체계와 깊이가 있어요. 여기엔 누구나 참고해야할 인문학적으로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거든요. 우리가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는 ‘씨ㅇ·ㄹ’이란 말에 들어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함석헌 연구, 종교 분야에 치우쳐
사회: 김상봉 선생께 다시 여쭤보고 싶은데요. 현재 함 선생의 철학, 사상 등에 대해 스터디를 진행했거나 진행되고 있는 게 있습니까.
정치적 실천과 견고한 사유의 同行
김상봉: 저는 함 선생님을 연구하면서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함 선생과 유영모 선생의 비교인데요, 두분 다 철학적이신데, 유독 함 선생만 정치적인 문제에 앙가주망을 하셨던 것입니다. 거기에 함 선생의 고유성 같은 게 있는 건지, 함 선생이 정치적인 실천과 철학적인 견고한 사유를 언제나 함께 견지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결정적 차이
김용준: 함 선생은 원래 촌놈이었는데, 유영모 선생을 만나면서 전광석화처럼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내가 유영모 선생도 함석헌 선생과 함께 꽤 따라다녔는데, 유 선생은 워낙 기지가 튀시는 분이예요. 하루에 밥을 한 끼 먹는 것도 기인이고, 쉰둘에 해혼식을 하고 부인과 성관계를 끊은 것도 그렇고요. 어떻든 그 양반의 삶이 그래요. 생활이 기인이고 수재이고, 그게 유영모 선생님의 다예요. 누구에게 영감을 주기는 하지만 함 선생 말마따나 아마추어이지. 그것 이상으로 함 선생도 평가를 안 하셨습니다. 유영모 선생과 비하면 함 선생님은 그래도 현대라는 콘텍스트 속에서 제대로의 교육을 받았던 것이죠. 일제시대의 고등사범이면 대단한 것이예요. 동경대하고 맞먹는 것이죠.
김상봉: 저는 철학공부 하면서 문체에 대해서 나름의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사유와 글은 따로 놀지 않죠. 칸트와 헤겔이 다른 철학자와 다른 것은 사유내용 이전의 문체의 차이죠. 문체는 자기의 사유가 깊은 만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인데, 함 선생님의 사유는 가장 민중적인 사유이거든요. 마치 성경을 보면 그렇잖아요. 가장 쉽게 씌어졌지만 가장 심오한 문체를 보여주는 것처럼, 함 선생의 글은 가장 평범한 글인데, 가장 심오한 생각이 담길 수 있는 게 경이롭습니다.
김영호: 제가 언젠가 함석헌 기념사업회를 발전적으로 바꿔 함석헌평화재단을 만들어보자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함석헌 선생 뜻이 구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금전적인 지원문제를 떠나 함석헌 선생은 행동주의자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차원에서의 계승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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