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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새로운 문명의 길잡이, 함석헌의 씨알사상 /김경재

by 마리산인1324 2013. 2. 14.

<씨알의 소리> 2011-06-30 (목)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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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명> 62호, 2009, 겨울
 

 

새로운 문명의 길잡이, 함석헌의 씨알사상

김경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문화신학)

[1] 한국 현대 사상사에서 함석헌의 자리매김

  신천 함석헌( 信天 咸錫憲,1901-1989)이 우리시대에게 남긴 강한 이미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재야 역사철학자, 종교사상가, 시인,  비폭력 시민운동가, 고전연구가 등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단행본으로서 1996년도에 이미26판이나 간행되어(한길사,1996) 한국 지성인들과 청년학도들이 애독하는 현대판 고전이 되어 있다. 한길사에서 발간한 『함석헌전집』은 두 번 간행되었다. 20권으로 간행된 전집(한길사, 1983년, 제1판)과 30권으로 간행된 『함석헌 저작집』(한길사,2009년, 제1판)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첫 번째 판은 『전집』으로, 둘째번 판은 『저작집』으로 구별하여 표기한다.


 퀘이커세계협회에 의해 두 차례나(1979,1985)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될 만큼, 그의 사상과 활동은 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2008년 여름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를 내걸고 서울에서 개최된 제22차 세계철학자대회(XXII World Congress of Philosophy)에서는 공동개최자인 한국위원회의 제청으로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연구발표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국내외 철학자들의 여러편 논문이 발표되어 세계철학자들의 관심을 끈바 있다. Program on XXII WORLD CONGRESS OF PHILOSOPHY, July 30 - August 5, 2008,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유영모 ․ 한석헌 사상연구발표집』1권, 2권, 2008.8.2-3,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목암홀 (재단법인 씨알 간행)

  이 글에서는  그동안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함석헌의  ‘삶의 철학’을 그의 씨알사상과 연결시켜가면서 고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  사상사 속에서, 함석헌의 사상이갖는 의미는 일제식민치하에서  진주처럼 창작된 그의 역사철학서나, 한국동란 이후 ‘광야의 소리’로서 그가 발표한 민주 ․ 인권 ․ 비폭력 시민저항운동에서 보여준 자리매김보다도, 미래 인류문명의 지향성과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제시에 있어서 매우 뜻깊은 가치를 지닌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상가로서 제시하는 ‘삶의철학’은 지난날 보다는 다가오는 미래에 더 큰 비젼을 가져다 준다. 그  이유는 본론에서 다시 밝혀지겠거니와 여기에서 우선 그의 사상의 형성과정과 변화의 계기를 함석헌의  생애를 몇단계로 대별하여 잠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함석헌에 관한 평전으로서는 다음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김성수,『함석헌 평전』(삼인, 2001); 이치석,『씨알 함석헌 평전』(시대의 창, 2005); 노명식 엮음 ,『함석헌 다시 읽기』머리말과 서론,3쪽-25쪽(인간과 자연사, 2002)
 
 서양사 전공자요 함석헌의 애제자중 한사람인 노명식은 90여년간 살고간 함석헌의 사상발전단계를 다섯단계 큰 매듭으로 대별한바 있다.  노명식 엮음, 『함석헌 다시 읽기』서론 참조. 특히 18-25쪽.


제1단계(1901-1919)는  평북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 일명 사자섬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3.1만세 사건에 참여하여 삶의 방향전환이 이뤄지기 까지다. 제2단계(1920-1928)는 함석헌이  평양고보를 자진 퇴학하고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남강선생과 다석 유영모선생을 만나 진리와 인생과 역사에 눈을 뜨게 된 이후,   일본 동경사법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역사학과 윤리학을 공부하고, 종교적으로 우찌무라의 성서연구와 무교회 영향을 받던 시기이다. 함석헌의 사상적 편력은 매우 조숙한 편이어서, 이 기간동안, 그의 ‘삶의철학’ 알짬을 이루는 중요한 사상가들을 독서를 통해 만나게 된다. H.G. 웰스, 앙리 베르그송, 마치니, 셀리,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타고르, 니이체등을 읽는다. 1920년대 일본동경유학시절 마르크스 사회철학에 의하여 적지 않는 사상적 도전을 받는다. 이 학창시기에  함석헌은 종교와 과학, 역사와 윤리, 국가주의와 세계주의, 물질과 정신, 자유와 생명, 개체와 전체, 존재와 생성 등 상호긴장갈등관계에 있는 난제들에 관한 그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게된다.


함석헌 생애의 제3단계(1928-1938)는 함석헌 자신이 자기 일생의 ‘가장 좋은 때’ 였다고 회상하는 모교 오산학교에서의 교사로서의  교육활동에 전념하던 시기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동시에  일본의 식민지배통치가 점점 더 심화되던 시기였다. 이 무렵 함석헌은 김교신등 신앙동지들과 함께 동인지 『성서조선』을 발간하고, 그 매체를 통해 생각한 사상의 일단을 글로서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훗날 단행본으로 엮어져 나온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제2회 성서동계강습회(1933.12.30-1934.5)에서 3일간 연속강연한 것을 『성서조선』에 연제하였고(1934.2-1935.12), 그 원고가 이 명저의 일차원고가 되었다.


  함석헌 생애의 넷째단계(1938-1957)에 해당하는 15년은 함석헌의 가장 깊은 영혼의 시련기요,  해방,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그의 사상이 순금처럼 연단되어 갔던 시기이다. ‘고난은 생명의 한 원리’라고 이해하게 되기 까지 함석헌의 생애는 민족의 고난과 더불어 역사를 깊이 앓던 시기였다. 모교 오산학교 교사직을 떠나게 된 동기자체도 모든  공사립 교유기관에서 조선어 사용자체를   철폐시키고 황국신민양성의 교육을 강요하는 식민정책아래서  교육을 지속할 수 없었던데 있다. 창씨개명을 반대하고(1940) 평양교외의 송산리에서 농사학원을 경영하려 했으나, 『성서조선』필화사건, 해방정국에서 ‘신의주 학생사건’(1945.11.23) 배후인물로 소련군에 의해 검거투옥등 감옥살이를 여러차례 겪으면서 잠룡(潛龍)처럼 그의 사상의 골짜기는 점점 더 깊어만 갔다. 특히 한국동란을 겪는동안 함석헌의 신앙관과 역사관이 환골탈퇴를 경험하게 된다. 종교적으론 정통적 기독교 울타리를 넘어서게 되고, 그의 청년시절부터 그를 이끌었던 우찌무라식의 무교회주의와 결별하게 된다. 그는 천안 씨알농장을 시작하면서 민중 속으로, 밭고랑 흙 속으로, 생명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함석헌 생애의 마지막 다섯째단계(1958-1989)는  ‘하늘을 믿는 이’(信天)로서 신앙인이자 자유인인 함석헌이 붕새처럼 창공을 유유히 날며 금싸라기 같은 명문 글을 세상에 써내기 시작하고, 군중속에서 진리를 설파하던 진리공양(배품)의  시기이자, 정의와 인권과 평화의 비폭력 투쟁을 전개한 시기였다.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시절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를 『사상계』월간지에 발표하고, 박정희 군사혁명시기에 「5.16을 어떻게 볼가?」를 발표하여 수백명 신문기자들과 지식인들이 할 일을 혼자서 감당하였다. 그의 진리구도자로서의 순례길은 퀘이커 모임에 도달하였고, 모든 언론의 길이 막히자 『씨알의소리』를  창간하여(1970) 바닥생명인 씨알의 생명을 믿고 생명운동을  작지만 조용히 전개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다섯단계의 일생여정 속에서 그 때마다 시대적 삶의 상황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함석헌의  삶의 족적을 보게되지만, 그 매단계를 꿰뚫고 흐르는 변하지 않는 기조음(基調音)이랄가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중심화두가 있다. 그것들은 겉으로보면 다양한 핵심어휘들로 표현되곤 하는데 예들면 씨알, 민중, 뜻, 역사, 하나, 진리, 반복과 자람, 도전과 응전, 데듦, 저항, 위로 치솟아 오름,  환하게 꿰뚫어 비췸, 스스로함, 고난등이다. 그리고, 그 모든 중요한 어휘들은  모두 ‘생명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생명이 생명으로서  바르게 서고, 자기초월하려고 위에로 치솟아 오르려고 애씀 속에서 위에 언급한 모든 현상이 발생한다. 이제부터 함석헌의 ‘씨알사상’의 핵심이 왜 ‘생명철학’이요 인간의 ‘삶의 철학’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2] ‘씨알’ 이라는 생명의 메타포가 지닌 의미들

 우선 함석헌의 사상의 트레이드마크랄 수 있는 ‘씨알사상’ 속에 담긴 그의 ‘생명철학’ 혹은 ‘삶의철학’을 말하기 전에 ‘씨알’이라는 어휘가 상징하는 실재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씨알’이라는 어휘는  함석헌이  스승 다석 유영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함석헌은 ‘씨알’이라는 낱말을 다석으로 받아서, 그 단어에 생명을 불어넣고 심원한 철학적 사상으로 발전시킨 사상가이다.


 다석 유영모가 1956년 서울 기독청년회 ‘연경반’(硏經班)강단에서 사상강좌를 할때, 그는 어느날 『대학』(大學) 첫구절(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을 아래와 같이 순수 우리말로서 옮겨놓았다: “ 한 배움의 길은, 속알 밝힘에 잇으며, 씨알 어뵘에 있으며, 된데 머뭄에 있느니라”.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고  했던가?. 수만년 수천년 동안, 삶의 공동체 맨 밑바닥에서 살림을 맡아 땀흘리고 일하며 온갖 궂은 일을 다 감당하면서도 자기 이름하나 없이 통치의 대상이거나 생산담당의 노예처럼으로서만 지내던 ‘민’(民)이 비로소 주체적 자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함석헌은  유영모가  작명(作名)한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에서 기초단위인 ‘씨알’을 “씨알”로 표기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생명철학의 첫 바둑돌을 놓는다. “알” 이라는 글자의 맨 위 큰 원은 “극대 혹은 초월적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아래아(점)은 극소 혹은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를 표시하는 것이며, 맨 아래 홀소리 한글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라고 말한다.  함석헌, “우리가 내세우는 것”, 『씨알의 소리』첫 창간호부터, 그 잡지의 매호 첫페이지에 반복적으로 싣는 씨알사상의 메니페스토이다.

 씨알이라는 메타포는 오랜세월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함석헌의 마음 밭 곧 동아시아의 문명의 정신적 토양 속에 그가 기독교에서 배운 헤브라이즘(Hebraism)에 근원을 둔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유혼의 씨종자를 심어 키어내 영글게한 생명철학의 낱말이다. 유불선 삼교의 자연철학과 서양 히브리사상의 역사철학을 자신의 사상 마음 밭에서 창조적으로 통전(統, integration)시킨 것이라고 말 할수 있는데, 바로 그점에 현대 20세기 한국 사상가들  중에서도 함석헌의 독특한 사상적 특징이 자리매김 된다.   단순히 ‘친민’(親民)을 순수 우리말로 번역해낸 결과가 아니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자연철학이 지닌 생명사상과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 헤브라이즘의 생명사상이 ‘지평융합’(地坪融合)을 이룬 것이다.


 그렇다. 함석헌의 생명철학을 드러내는 씨알사상에서 ‘씨알’ 이라는 은유(metaphor)는 우주를 구성하고 사람임을 규정한다고 보는  ‘창없는  단자(’(라이프니치), ‘사유하는 연장(延長)실재’( 데카르트), ‘영혼’(스피노자), 노동자(마르크스), 리비도(프로이드)와 분명히 다른 색깔을 지닌다. 함석헌은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잇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첫장 서론부문에서 다음같이 말한다.

   사실(事實) 은 두면이 있다. 인생과 역사다.   ..... 이리하여 여기서부터 우리살림의 두 원칙인 개인적인 생활체험과 세계적인 역사 이해가 나온다. (개인적) 생활체험이란 것은 개인이 자기의 존재를 한개 저만으로, 값을 가지는 인격적인 것으로 알고 파들어가고, 붙잡고, 나타내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세계적) 역사이해라는 것은 자기를 뜻있는 발전으로 보는 세계의 체계 속에 있는것으로 보아, 돌아보고 들여다보고, 내려다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를 나무의 씨라면 하나는 숲이다. 씨를 메기자는 것이 숲이요, 숲을 이루자는 것이 씨다. 『함석헌 전집』, 제1권 , 『뜻으로 본 한국역사』, 27-28쪽( 한길사, 1992)


 위의 인용문에서 지구생명의 진화과정에서 동물체보다 먼저 발생하여 나타난 식물의 씨앗과 나무 그리고 군락을 이루는 숲은 비유로 삼아 그의 씨알철학의 기초를 놓는다. 씨알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인격적인 개체생명의 상징이요, 그 순수성과 단순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씨알은  홀로 있는 단자가 아니요, 그 안에 그 식물성장의 전체진화과정과 본질을 DNA 속에 간직하고 있는 전체이기도 하다. 함석헌이 ‘씨알’을 그의 사상의 핵심어휘로서 주장 할 때, 우리는 몇가지 놓쳐서는 않되는 점을 강조해야만 한다.


  첫째, 함석헌의 생명철학을 삶이라는 역동성에서 파악해야 하는데 그 땐 ‘삶의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그에게서 생명은 명사적(名詞的)인 것이 아니라 동사적(動詞的) 실재이다. 언듯보면 씨알은  가만히 정지해있는 씨나 알인 듯 보여도, 그것은 숨쉬고 있는 살아있는 실재이지 진주 보석알이 아니다.


 둘째,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인간생명을  말 할 땐, 아무리 그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일지라도 데카르트식의 ‘물질과 정신’, 혹은 ‘자연과 역사’를  이원론적으로 분리시켜 후자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인격적 존재요 역사적 존재인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연사와 몸을 지닌 존재 곧 ‘진화생명으로서의 역사적 존재’ (bio-historical being)이다. 유물론이냐 유심론이냐의 케케묵은 논쟁은 함석헌에서 설자리가 없다. 과학과 종교간의 부질없는 논쟁도 한가한 사람들의 소모적 말다툼이다.


  셋째, 씨알사상에서 개체생명은 그 안에 전체를 간직하고 전체적인 하나와 통일을 이루려는 지향성을 갖기 때문에, 개체이면서 전체이고자하는 ‘하나’를 지향하는 전일성추구의 생명철학이다. 이것은 개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와도 다르고,  개인의 고유성과 창조성만을 극대화하는  개인주의와도 다르다. 어찌보면, 함석헌의 생명철학은  원효와 의상의 ‘성자신해’(性自神解)의 화엄철학, 고려조 선승 지눌의 ‘공적영지’(空寂靈知), 조선조 성리학자들과 수운의 ‘허령불매’ (虛靈不昧)를 이어 받으면서 가장 현대과학철학의 최고봉인 화이트헤드 유기체철학과 떼이랴르 샤르뎅의 진화론적 영성을 통전시킨 것이다.


  넷째,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씨알은 자신을 비존재에로 환원시키려는 온갖 존재론적 위협과, 자신의 존재권리를 억압박탈하려는 온갖 사회역사적 힘들에 대하여 저항하고 싸우는 역사주체로서 자기존재임을 강조하고 각성한다. 그 점에서, 함석헌의 생명철학은 서양의 20세기 ‘생명철학’(Lebensphilosopie)에서는 없는 ‘고난’의 문제가 등장한다. ‘고난’은 생명의 원리이자, 씨알이 자기를 지키고 완성하려고 활동하는 모든 창조적 활동속에서 부딪히는 ‘산고의 진통’이기도 하다.   그의 씨알사상은 생명현상을 조용히 관조하고 해탈하려는 ‘명상의 철학’이 아니다. 행동하고 참여하고 형성해가는 ‘비폭력적 행동의 철학’이다.


  다섯째,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지닌 생명철학의 특징은 프랑스 생의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 Bergson)과 신학자 신부 떼이야르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의 영향을 받아 생명의 실재를 ‘반복하면서 자란다’는 명제로서 압축하기 때문에, ‘역사적 상대주의’를 지지한다. 다시말해서, 시공간 속에 출현한 모든 것은 변하며, 상대적이며, 유한하고 , 과정적  실재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이든지 절대임을 주장하려는 우상숭배와 싸움을 의미하고, 우주적인  ‘하나의 몸’을 형해가는 ‘유기체적인 하나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주의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특정종교의 우월적 독선과 독단을 비판하고, 미래를  새로운 것이 출현하고 실현될수 있는 개방적 실재로서 이해한다. 그의 생명철학은 ‘상미존의 존재론'(not-yet-being ontology)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3] 함석헌의 생명철학, 씨알사상이 오늘에 주는 의미

3.1. 기계론적 실재관과  물질환원론적 생명관의 극복


  무엇보다도 함석헌의  생명철학으로서 그의 씨알사상이 주는 현대적 의미는 자연과학의 정신에 정직하면서도 기계론적 유물론이나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귀착하지 않는 새로운 실재관을 제시해준다는 점에 일차적 의미가 있다. 생물학적 진화론과 현대 뇌과학과 컴퓨터로 상징되는  전자정보 기술공학 문명사회에 어느정도 익숙한 현대 젊은 이들은,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물질주의적 환원주의자’라고 자각하지 않더라도, 대분분은 그렇다고보는 것이 정직한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함석헌의 질문은  여기에 있다. 현대인이 생물학적 진화론과 양자물리학과 천체천문학과 분자생물학을 지성이 추구하는대로 진지하게 공부한다고 해서,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물질주의적 환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필연저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종교적 혹은 철학적 신념과 혼동하는 것이라고 본다. 과학적인 합리적 지식과 인간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적 신념사이엔  물론 긴밀한 관계가 있고 상호영향을 주고 받지만, 동일화시키는 것은 비약이자 위험한 것이다. 예들면 20세기 세계 지성계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한 곤충학자요 분자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손,  양자물리학자 알버트아인슈타인, 유기체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우주혼이라 일컫는 마하트마 간디가 지성수준의 우열 때문에 그들의 철학적 종교적 신념에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함석헌의 종교철학과 역사철학은 철저하게 과학적 지식이 밝혀주는 진실에 정직하려고 했다. 그는 동경사범학교에서 역사와 윤리를 전공하였기 때문에,  역사발전의 조건과 지반이 되는 지구의 지질학, 고생물학, 진화론적 세계관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종교철학이나 역사철학은 인격의 엄숙함을 칸트 못지않게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뇌과학에 깊은관심과 지식을 통섭한다. 그러나,  인간정신의 자기초월적 능력을 뇌세포 뉴론의 전자기적-생화학적  결과일 뿐이라고 단순처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함석헌의 독특한 생명론적인 ‘정신현상학’에 대한 지론은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물질주의와 정신주의 양단간 어느 하나를 택하도록 하는 강요된 이분법을 넘어서  제3의 실재관을 갖도록 도와준다.


 자연과학이 밝혀준 생물학적 진화론을 인간사회 발달과정에 대입시킨 영향으로 인하여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개된 ‘사회진화론적 가치관’이 한때 유행처럼 지성계와 제국주의자들에게 번졌나갔다.  ‘사회진화론’에 맞서서, 함석헌의 생명철학으로서 씨알사상은 철저하게 그런 시대사조를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고 동물이상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물질주의적 환원주의자’들도 훌륭한 휴메니즘과 윤리관을 지닐수 있지만, 그러나 대다수 일반적 경향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과 자연도태를 생명세계의 유일한 법칙으로 내세우면서,  인간 공동체 현실사회를 무자비한 경쟁과 먹이사슬구조로 만들어가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정치세력과  야합한다.


이것이 오늘의 세계 지구촌과 한국의 정치계 ․ 경제계 ․ 교육계의 현실을 지배하는 세계관이다. 고도성장과 능률성의 강조 댓가로 인간성은 황폐화되고  삶은 전투장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런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에게의 배려는  고작해서 강자의 자비심의 발로요 시혜로써 미화되어 삶의 진실을 기만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패러다임은 분명히 생명계의 단층적 현상을 전체로서 과장한 논리일뿐이고, 전체 생명계는 전일적이고 유기체적인 상자(相資), 상보(相補), 상생(相生)의 세계임을 역설하면서, 인간의 자기초월적 정신능력과 양심적 정언명령에 귀기울이는 인격성을 귀중하게 지켜갈 것을 함석헌은 강조한다.

3.2.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극복

 함석헌의 생명철학의 기조음은 ‘과정적 사고’라고 말했다. 그가 학창시절, 역사가 전개되는 무대마당인 지질기후풍토를  연구하고, 지층속에 묻힌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에 관심을  가질 수록, 생명은  진화하면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한 자연과학적 생명사실에 기초한  인문학으로서의 ‘역사’ 현실도 반복하면서 자란다는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확철하였다. 이것은 역사과정에서 등장한 모든 이념과 제도와 가치체계의 상대화를 의미한다. 그 점에서 보면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입각한 역사철학은 19세기 말에 절정에 도달한 서구 유럽의 ‘역사 상대주의’의 제자이다. 다만, 유럽의 철저한 역사상대주의가 범한 오류 즉  역사를  무의미한 허무주의에로 전락하거나,  ‘지금-여기’만을 강조하는 실존론적 내면주의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붙잡아준 것은  ‘하나님 신앙’이었다.


 그러한 함석헌의 역사철학적 이해는, 자연스럽게 그의 사고와 삶을 결정적으로 제약했던 국가주의의 망령과 혼신의 힘을 기울여 투쟁하였다. 함석헌 자신이 일본의 식민지배체제 아래서 그리고 해방이후  민족국가 분단상황에서 국가주의라는 이념적 우상에 의해 철저하게 몸으로서 고난당한 당사자요 산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주장은 ‘국가주의의 시대’가 이미 19세기 말로서 지났고 그 시대적 역할이 끝났다는 주장이다. 사실, 현대 지구촌을  형성하는 국적없는 거대 금융자본의 세계지배, 정보화사회의 넷트워킹 국제사회는 국가주의 시대를 지난시대의 유물로 만든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인간공동체를 규제하고, 통제하고, 권위로서 군림하는 현실적 정치세력들은   국가라는 절대이념을 최고 명분가치로 삼아 특권적 특혜를 누리고, 결과적으로  민초들 씨알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며, 전장에 몰아내 집단 인간살륙을 자행하게 하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유로운 왕래나 소통을 가로막고, 인간의 자기실현과 인류문명의 전진을 가로막는다.  


 함석헌이 국가주의 시대의 종언을 줄기차게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인간의 공동체성이나 민족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사회정치적 관계성을 떠난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삶과 역사적 삶은 상호공속적이고, 나무와 숲은 서로를 필요로하기 때문에, 함석헌의 생명철학은 공동체를 강조한다. 다만 ‘피와 토양의 친화성’에 강조를 두는 낭만주의적 혈연주의와 지역주의를 극복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가  국회의원 총선거철이 되면, 지역감정이 되살아나고 지연이나 혈연을 강조하는 정치권 작태는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유럽공동체 형성에 비하여 반세기 이상 뒤떨어진 동아시아 문명권을 대표하는 중국,한국,일본등은 국가주의나 제국주의적 정치철학 망령에 휘둘리고 있으며, 그만큼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에 뒤떨어져 있다.  그것이 곧 시대정신, 지구촌 시대 문명사 실현단계를 철저히 자각하지 못하는 동아시아의 정치후진성인 것이다. 그 후진성을 지속시키고, ‘동아시아 공동체’ 출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암초가 국가주의인 것이다. 함석헌은 그의 주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속에서, 지금부터 70년 전부터 “세계가 하나되는 시대‘에 문명사가 들어섰음을 강조하고 ‘하나’ 의식을 확장 심화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이 ‘전일화’(全一化)하는 인류의 동원령(動員令)은 절대로 시급하다. 그런데, 그것은 세계역사의 새로운 해석이 아니고서는 안된다....‘하나’를 어서 의식하여야, 그리하여 각각 한 몸의 지체인 것을 깨달아야, 이 미친 자살적인 경련이 그칠 것이다. ...... 새 종교, 하나의 종교,  참종교가 필요하다.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살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살리려면 일단은 버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 ...아마 과거에 언제나 그랬던 것 같이, 기성종교는 그대로 화석이 되어 , 역사의 지층 속에 남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돌같이  굳어진 신조만을 주장하고 경전의 해석은 기계적으로 되어 생명을 자라나게는 못하고 도리어 얽매는 줄이 된다. 『전집』, 제1권, 31쪽.


위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함석헌은 인류가 새로운 문명사시대 곧 전체인류, 아니 지구촌 전체생명이 하나의 유기체적 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하나의식’에 도달하려면 세계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비젼이 필요하고, 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종교의 역활이 중요하다고 본다. 알고보면 종교의  궁극적이고도 제 일차적 임무가 개별자로 하여금 ‘우주적 하나의식’을 깨닫도록 하는데 있다. 문명이 새로워 지려면 종교가 새로워지고, 근본적으로 혁신되어 참종교가 출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성종교가 그 일을 담당하려면 일단 자기를 부정하고, 전혀 새로운 ‘영과 진리의 종교’로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그 점에서 매우 비관적이다. 기성종교들이 과거의  영광스럽던 전통에 사로잡혀, 자기를 절대화하고 경전과 신조와 도그마들을 절대화 하여 스스로 경직화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지가 발전하더라도 종교없는 시대가 도래한다고는 보지않지만,  함석헌은 구태의연한 현재의 종교와 같은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생명가치를 종교가치보다 귀중히 여기며,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위하여 사람의 영성 내면 깊이 속에서 자기초월의 의식을 높고 깊게 고양시키는 종교라야 한다고 본다. 지극히 윤리적이되 금욕주의적 경직성을 벗어나고, 영적이되 종교적 권위냄세를 초연하여 모든 비판정신을 수용하며, 세속적이되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예언자적 열정을 잃지 않은 종교를 함석헌은 미래종교로서 대망한다.   

3.3. 생명의 3가지원리: 스스로함, 고난, 대리적 삶을 수용하는 성숙한 새문명시대

마지막으로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기초한 그의 생명철학, 삶의 철학의 진정한 특징을 말해야 할 순서가 되었다. 그것은 매우 역설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어서, 그의 사상을 일반인들이 즐겨 환영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가 강조하는 생명의 세가지 원리가 바로 그것인데,  첫째는 “생명은 스스로 함”이라는 원리이다. 위와 같은 책. 48쪽.
둘째는 “고난은 생명의 원리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책. 21쪽.
셋째는 “삶이란 대리적이고 대속적이라는 원리”인 것이다. 『전집』, 제14권, 276-277쪽.

  첫째 생각할 것은 “생명의 근본 원리는 스스로 함이다”라는 원리를 긍정해야 한다. 생명적인 것이 기계적인 것과 다른 근본특징이 ‘스스로함’이라는 특징이다. ‘자동기계’도 있고, 사람의 두뇌처럼 어느정도 주어지는 조건에 반응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고도의 ‘로버트 기계인간’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인간 심령의 자발성, 자유의지, 자기희생적 결단과 같은 로버트는 만들 수 없다. 인간이 그렇게 반응하도록 프로그램을 입력하기 전에는 않된다.  


생명의 진화곡선상에서 스르로 자기를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도덕적 책임을 스스로 느끼는  인격성이 출현하던 그 때가, 아담이 태어나던 시기이다. ‘스스로함’이란 자발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말이고, 그만큼 생각하고 심사숙고하여 분별력을 가진다는 말이고, 그만큼 자기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느낀다는 말이다.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자기의 양심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책임적이 되고, 강제나 관습이 아닌 자발적인 인격성이 항상 발현되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퇴화하거나 조롱당하는 문명은 죽어가는 문명일 뿐이다.


역사현실은 언제나 역사를 지어가는 공동체 구성원의 선택이고 결단이며 그 인과응보의 세계이다. 그런의미에서 역사는 세계심판이기도 하다. 강자와 타자가 역사적 현실 속에서 폭력과 회유와 위협으로써 ‘생명의 스스로함’을 방해하고 억압했을 지라도, 다수 희생자 민중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 짧았던 한국 현대사의  ‘절차적 민주주의’ 형성과정 중에서 경험하는 바 처럼, 민중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사이비 언론과  권력자들의 달콤한 약속이나 간접적 협박이 있었을 지라도,  잘못된 정치적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그것을 그렇게 선택한 민중들에게 돌아간다. 생명의 제일원리가 스스로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씨알들은 역사의 궁극적 책임자요, 씨알들이 스스로 깨어서 역사를 책임적으로 감당하기 전에는  ‘자유 ․  정의 ․ 박애’가 서로 입맞추는 인간다운 사회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하면서 씨알들의 깨어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난은 생명의 또다른 둘째번 원리이다”. 이점은 깊이 생각 할 문제이다. 함석헌은 고난을 찬미하는 종교적 금욕주의자도 아니며, 고난을 운명적으로 채념하는 나약한 사상가는 아니다. 다만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진실은,  생명이 있는 곳에 항상 거기에 고난이 동반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려는 것이다, 고난을 하나님이 인간을 훈련시키려고 주신 교육적 기능이라거나, 고난을 잘 견디면 훗날엔 고난없는 행복시대가 온다는 통속적 견해를 거부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 고난이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라는 이 불가사의한 운동과 현상자체가 물질계의 대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 곧 ‘앤트로피 원리’를 거슬러서서 역행하고서라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질계의 고요한 안정과 균형과 정지상태에서는 고난도 없고 생명도 없다. 작은 풀씨가 무거운 흙덩이를 밀치고 위에로 솟아오르려는 것 자체가 고난이자 생명운동이다. 계란은 서 달걀껍질 속에 그대로 있는 동안 고난은 없다. 그러나, 알을 깨고 부화하려는 생명운동이 시작되면 고난이 거기에 따른다.  정신적 삶에서 정의나 진실같은 윤리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나 예술적 아름다움을 꽃피우기 위해서라면 ‘고난’없이는 불가능하다.  고난은 인생의 생명만이 아니라, 생명자체를 정화하고, 연단하고, 고양시키며, 자기초월의 촉매작용을 한다.   


  새로운 문명시대의 동터옴을  가로막는  결정적 거짓철학은 고난을 면제시키거나 약화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정치, 종교, 교육, 예술의 범람이다. 고난을 회피하고, 죽음을 외면시키고, 관능적 쾌감과 심리적 유쾌함만을 증대시키는 현대문명은 현대인을 나약하게 만들고, 문명자체를 천박한 모방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로 치닫게 한다. 건강한 종교,정치,교육,예술은 고난을 방치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그것과 정면대결하여 바르게 돌파함으로서 생명을 더 높은단계에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생명의 제3원리는 언듯 들으면 기독교의 ‘속죄교리’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깊이보고 바르게 이해하고보면 무릇 생명이란 자기의 삶이면서도 ‘대리적 삶이요, 대속적 삶’이라는 것이다. 오늘 나의 삶의 향유는 내가 씨뿌리고 거둔 나의 노력의 댓가로서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의식주 생필품은 물론이요, 지식․ 기술 ․ 인권 ․ 민주주의 ․ 예술 등이 모두 누군가의 자기헌신과 희생의 결과물이요 선물이다.


  왜 생명의 근본적인 제3원리가 대속적이며 대리적인가?  함석헌의 이해에 의하면 생명이란 본래 ‘하나’이고 ‘하나되자는 운동’ 가운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한 속죄신앙교리’도 깊이 알고보면 ‘생명은 하나이다’라는 근본원리에 뿌리 박고 있는 것이다. 불교적으로 이해하면  존재함 그 자체가  ‘인연생기적 실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서로 잇대어 있고 서로 책임적이며, 서로 공덕을 배푸는 관계속에 있다. “내돈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큰 소리치는 사람은  힘센 강한 동물이지 아직 사람이 아니다.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慈悲), 기독교의 사랑(아가페)는 별다른 진리가 아니고, 생명이란  서로 내재적 순환구조 속에서 대리적 삶과 대속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삶의 반응이다.


지금까지 제한된 지면 안에서 나마,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담겨있는 생명철학 혹은 삶의철학이 왜 새로운 문명시대를 열어가야할  오늘날과 같은 문명전환기에  의미를 지니는가 함께 생각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함석헌의 지극히 종교적 색조를 띈 역사철학은 그의 생명이해에 뿌리 박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지나간 과거의 산물이라기 보다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할 새로운 새문명 출산을 독려하는 촉매재요 산파술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특히, 생태학적 윤리가 요청되고  새로운 실재관을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바 크다고 본다.

[참고도서]
1. 함석헌,『함석헌 전집』, 전20권.(한길사, 1983 )
2. 함석헌,『 함석헌 저작집』, 전 30권(한길사, 2009)
3. 노명식 엮음, 『함석헌 다시 읽기』(인간과 자연사, 2002)
4. 김성수, 『함석헌 평전』(삼인, 2001)
5. 이치석, 『씨알 함석헌 평전』(시대의창, 2005)
6. 김용준,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 2006)
7. 씨알사상연구회 편, 『한석헌의 철학과 사상: 씨알 ․ 생명 ․ 평화』(한길사, 2007)
8. 함석헌선생 팔순기념문집 간행위원회, 『씨알 ․ 인간 ․ 역사』(한길사, 1982)
9. 오산학교동창회편, 『함석헌 선생 추모문집』(남강문화재단출판부, 1994)
10. Kim Sung Soo, Ham sok Hon: Voice of the People and pioneer of Religious Pluralism in Twentieth Century Korea (samin, 2001)